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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hmans 再確認 !! [ バリヤバ (5호) - 모테기 킨이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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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마츠다 요시히토

번역 : 김해리(aka 고엄마)

walkin_in_the_rhythmjp@yahoo.co.jp
walkingintherhythm@gmail.com


 

"[바리야바]에서 휘시만즈를 다룬다"고 사람들에게 말하면, 다들 "왜?"라는 표정을 짓는다. "왜?"라고 물었기 때문에, 나도 "왜?"라고 되물을 수 밖에 없다.

 

아마 "왜?"라는 표정을 지은 사람은 "휘시만즈는 있잖아, 너무 멋있어서 말이야, [바리야바]같은 후진 잡지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구" 라거나 "쓰리코드 밴드 정도라면 모를까." 라는 의미였겠지만, 그런 뒤떨어진 사람이 있어 주는 한, 이 잡지는 안전. 망하지 않고 좀 더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펑크락이라든가 간단한 쓰리코드 락앤롤이 좋아서 음악을 듣기 시작했기 때문에, 장르만으로 따지자면, 어떻게 해서든 이 잡지에서 그런 밴드들을 소개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더 고민해 보면, 내가 소개하고 싶은, 아주 아주 괜찮은(*1) 음악이란 "가능한 한 불순물이 없는 음악"이다.

 

'불순물'이라는 것은 자의식이기도 하고, 이상한 마이너/메이저 지향성이기도 하고, 아티스트와 상관없는 사람이 제멋대로 관여한다거나 하는… 언뜻 생각해 봐도 떠올릴 수 있는 몇가지 것들인데… 그러한 '불순물'이 있으면, 이 음악이 나한테 맞는지, 기분이 좋아지는지 등을 생각하기 전에, 그 아티스트의 표현과 말하고 싶은 것, 좀 더 멋있게 말하자면, 그 빠져들 것 같은 기분이 하나도 전해져 오지 않기 때문에(*2), 뭐가 뭔지 전혀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아티스트는 좀 더 자유롭게, 오리지널하고 열려있는 음악을 만들고… 리스너로서의 우리들도 이상한 부가가치로서가 아니라 음악 그 자체를 심플하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음악에 정확히 도달한 사람만이 듣고, 춤추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므로 그다지 어려운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음악은 장르와 관계없이 그러한 '불순물'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기 때문에 이 잡지에서는 그런 것만 소개하려고 한다. 덧붙여 말하면, 본 잡지 자체도 언제까지나 그런, 아무것도 덧붙여지지 않은 상태로 있기를 바란다.

 

서두가 길어졌지만, 그러한 이유로, '휘시만즈'. 알고 계신 것처럼, 4년 전인 99년 봄, 보컬 사토신지의 갑작스런 죽음이 전해졌고, 휘시만즈의, 그 '불순물 없는', 깊은 산속의 육각수와 같은 빼어난 음악은 거기서 멈춰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휘시만즈의 명반들을 즐겁게 듣고 있고, 여전히 아직까지도 그보다 아름다운 아티스트를 떠올릴 수 없다.

 

이번 호에는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비장의 사진들과 함께, 휘시만즈의 유일한 멤버로 남아 있는, 현재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에서 드럼을 치고 있는 모테기 킨이치의 과거의 명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들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재확인하려고 한다. (마츠다 요시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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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마츠다 요시히토

 

사토신지가 죽은 지 벌써 4년. 그 후, 휘시만즈의 활동은 거기서 멈춰버렸지만 과거에 발표했던 여러 작품과 그에 대한 생각은 멤버들에게나 팬들에게나 계속해서 살아있는 것 같다. 이번 호에는 사토신지가 죽을 때까지 멤버로서 함께 활동했던,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의 정식 멤버가 된 지금도 여전히 휘시만즈의 멤버로 자신을 소개하는 드러머, 모테기 킨이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휘시만즈의 과거의 작품들과 그때 당시의 상황 등을 재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Fishmans 재확인

: 모테기 킨이치(휘시만즈/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가 되돌아 본, 휘시만즈의 작품과 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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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시만즈에서 느꼈던, 그 기분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어요"

 

- 모테기씨는 자기 소개를 할 때,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와 휘시만즈를 둘 다 말씀하시네요?

 

- 네, 스카파라의 정식 멤버가 된 것이 재작년(2001년) 11월 10일이지만 아직도 여전히 휘시만즈의 멤버로 소개하는 것은 기분의 문제랄까, 가장 큰 이유는 음악에 임하는 자세에 관한 건데요. "휘시만즈에서 느꼈던, 그 기분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라는 의미로 그렇게 하고 있어요. 지금은 그런 정도로 받아들여도 괜찮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언젠가 다시 그때 그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해야지"하는 마음도 있으니까, 그런 생각도 포함해서 여전히…

 

- 지금도 다른 아티스트의 레코딩에서는 같이 연주하고 있죠?

 

- 네, 그런 거라면, 어제도 역시 유주루, 하카세와 같이 레코딩을 했어요. 유주루가 꼬셔서. 브라우니즈라는 밴드 일로. "연주 좀 도와죠"라고 하길래. 스튜디오에 갔더니 "실은 하카세한테도 전화를 했는데, 오늘 시간이 된다고 해서 말이야…", 그래서 갑자기 하카세와도 같이 연주를 하게 되었죠(웃음). 우연이었지만, 그런 적도 있고. 또, 이전에는 유주루와 쿠라모치군(YO-KING)의 레코딩도 같이 했었어요. "서로 도우면서 계속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왠지, 작년 여름 정도부터 원멤버나 ZAK와도 서로 연락할 기회가 조금씩 늘어가고 있어요.

 

 

"비 그친 밤 하늘에"를 같이 연주한 뒤, "재밌는데!"

 

- 처음에 휘시만즈는 어떤 경위로 결성된 건가요?

 

- 음, 그러니까 87년 4월에 무사히 메이지학원 대학에 입학했어요. 그리고나서 "송 라이츠"라는 음악 서클에서 가입 권유가 있었어요. 그 서클의 두 학년 위에 이미 사토짱이 있었고. 물론, 사토짱은 권유 같은 건 하지 않았지만(웃음). 어쨌든, 그 서클에 들어가서 사토짱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 무렵 사토짱이 하던 "시간"이라는 밴드가 해산해 버려서, "밴드는 없어"라고 했었죠. 여튼 그 때부터 한 수 위라고 느꼈어요. 서클의 신입생 환영 공연 같은 데서 사토짱이 가끔 한두곡 노래하면, "끝내준다!"라고 생각했어요. "이 사람, 격이 달라!"라든가. 역시, 노래를 잘 했어요. 잘 했달까, 당시에도 목소리가 특이했으니까. 그래서 우리 신입생은 모두 "신지상~, 신지상~" 끝을 올려서 불렀었죠. "아, 이 사람하고 밴드하고 싶다"라고 늘 생각했기 때문에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거꾸로 사토짱이 먼저 말을 걸어 왔어요. 서클의 봄 합숙이 5월에 있었고, 다들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사토짱이 제 쪽으로 와서는 "연주할 만한 스튜디오가 있는데, 잠깐 연주하러 가지 않을래?"라고. 모두 마시고 있던 중에 살짝 빠져나와서 RC(*3)의 카피를 했어요(웃음). "비 그친 밤 하늘에"를 연주한 뒤, "재밌는데!"라고 했었죠.

 

- 그게 처음이었던 건가요?

 

- 네, 맞아요. 그 뒤에, "이번 6월 서클 발표회 때 같이 한번 해보자"라는 얘기가 있었고. "기타에는 오지마라는 애가 있으니까"라고 했었죠(웃음). 그 6월의 발표회를 위해 만들었던 밴드가 휘시만즈에요. 그러니까 최초에는 3명이었던 거죠. 사토짱하고 오지마하고 저 이렇게. 그 때가 시작이었어요. 아, 그리워라(웃음). 

 

 

"오디션도 통과하고 최고!"

 

- 처음에는 그냥 장난이었단 말이죠?

 

- 네. 87년도에는 줄곧 서클 내에서 장난 반으로. 학교 축제 같은 데서 재밌게 놀려고. 그런데, 88년 봄에 "이제 슬슬 라이브 하우스에서 해볼까"라는 생각으로 오지마가 라 마마에 데모 테잎을 들고 갔어요. 그리고 낮 공연에 오디션 라이브 비슷한 게 있었는데(웃음), 그때 라 마마의 나카야마 씨가 마음에 들어 해서 "저녁 공연으로 해보자구" 하는 식이 된 거죠. 그 라이브에 별로 할 일 없는 서클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 와서는, 오디션 라이브였는데도, "우와-!!"하고 막 소리를 지르고 엄청 신나했거든요(웃음). 너무 기분 좋은 공연이었기 때문에 이미 완벽. "오디션도 통과하고 최고!"였죠. 하지만 그때부터 고생이었어요. 티켓을 직접 팔아야 했거든요.

 

- 시작은 좋았는데(웃음)

 

- (웃음)처음에는 좋았지만, 저녁 공연이 되니까 티켓이 전혀 팔리지 않았어요(웃음). 아, 그리고 저녁에 공연을 하게 되면서, 곧 유주루가 들어왔어요. 라이브에서 베이스를 치던 친구가 "나, 고향으로 돌아가"라며 큐슈로 가버렸거든요. 저는 이미 타켓으로 정조준 하고 있었기 때문에(웃음), 곧바로 "사토짱, 유주루가 있잖아요, 유주루랑 같이 해요"라고 말했죠. 라 마마의 그때부터는 그 네명으로 쭈-욱. 게스트로도 자주 불려다녔었어요. 하바나 엑조티카… 지금은 버팔로 도터로 활동하고 있지만. 블랙 마켓이라는 밴드나 킹 비즈라거나 있잖아요. 정말 좋은 그루브를 하는 밴드들로부터 언제나 도움을 받았어요. 그렇게 한 1년 정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우리들이 나왔을 때는, 객석이 썰렁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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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캡틴 레코드에서 나온 옴니버스 앨범 [패닉 파라다이스]에 참가한 것이 그 즈음인가요?

 

- 맞아요 맞아요(웃음). 89년. 거기에 두 곡이 수록되었죠. 그 앨범의 발매 기념 라이브가 신주쿠 로프트에서 있었는데, 그 직전에 KUSU KUSU가 [이카 텐(*4)]에 나왔어요. 엄청난 사람들이 모였죠. KUSU KUSU는, 그 전부터 인기가 있었으니까. 정말 사람이 많았어요. 하지만 우리들이 나왔을 때는, 객석이 썰렁했었죠.

 

- 아...(웃음)

 

- 하지만, 분위기가 싸늘했던 건 아니었어요. 아주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었거든요. 다들 빠른 곡들을 연주했는데, 우리들만 "스페셜 나이트" 같은 아주 느린 곡을 했었죠. 아, 그때 쯤엔 이미 "챤스"도 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 때가 89년. 그러니까 1년 간격으로 이야기가 척척 잘 진행되네요. 그 후에 어쩐지 사람들이 늘어났던 것도 같고, 게스트 섭외가 있기도 했고, 아, 리본이라는 사무소와 계약을 하기도 했죠. 정말 순조로웠다고 할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순조로운.

 

 

사토 짱이 "나, 공무원 되려고"라고 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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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에 들어가면…

 

- 90년도에는요, 무스탕에 있던 하카세가 "라 마마"에 놀러와 버렸죠(웃음). "휘시만즈가 좋아서"라고 했던가. 그리고 유주루의 강력한 러브 콜이 하카세에게 꽂혀서 그때부터 5인 편성 라이브를 시작했어요. 다같이 데모 테잎 같은 것도 만들어 보고. "라 마마"에서의 첫 원맨 라이브는 그 다섯명이 했어요. 그 때, 레코드 회사에서도 와서, "그럼, 한 번 해봅시다"라고 했던 게 90년 여름. 그리고 첫 앨범 녹음을 해외에서. "진짜!?"(웃음). 그리고는 코다마 씨와 함께 호주로 가서 만든 것이, [채피 돈 크라이]였어요.

 

- 정말 순조로웠네요.

 

- 진짜 순조로웠죠. 역시, 밴드 붐의 영향도 있었구요. 그런데, 메이져 데뷰를 하기 전에 사토 짱이 "나, 공무원 되려고"라고 했던 적이 있어요(웃음).

 

- "공무원"이요?

 

- 네, "나, 공무원 시험 봐서…". 정말 그럴 것 같았어요.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공무원이라면 야근도 별로 없잖아요. 자기 시간을 적절히 쓸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을까요.

  

- 그렇구나(웃음).

 

- 하지만 자기가 만든 노래가 좋게 평가받고, 밴드가 순조롭게 굴러가고 있었으니까, 사토 짱도 "이런 페이스라면 괜찮은 건가"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실제로 "데뷰하기 전이 제일 즐거웠다"라고 말하곤 했으니까요(웃음). 그 시절의 리듬감이 [채피 돈 크라이]에 녹아 있다고 생각해요. 그 즈음의 밴드라면 좀 더 빠른 템포의 곡이 많이 들어가 있어도 괜찮은 때였지만, 휘시만즈는 아주 느린 템포감으로. 리듬에 관해서 라면 말이죠. 

 

- 그럼 의도적으로 느리게 한 거란 말인가요?

 

- 그건 역시 코다마씨하고 같이 했던 게 큰 것 같아요. 그랬기 때문에 "역시 레게 밴드지"라는 재확인이 가능했다고 할까요. 역시 그래요, 리듬의 걸음걸이라고 할까요. 전혀 들떠있지 않은 느낌. 코다마씨는 정말 대단했어요. [The Best of ROCK STEADY]라는 카세트 테잎을 만들어서 우리한테 줬어요. A면 처음에 "에-, 이 테잎은, 에-, 제가 좋아해 마지않는, 보석의 빛을 지니고 있는 락 스테디라고 하는 음악들입니다. 자 그럼 한번…"이라는 코다마씨의 메시지가 있었어요. 그리고 앨턴 엘리스가 나오는데, 정말 좋았어요. 근데, A면에서 B면으로 넘어갈 때도, "이제 슬슬 B면이에요"라고 다시 코다마씨의 목소리가… "에, 이 테잎을 중간에 끊는다거나 듣지 않는다거나 하는 건 범죄입니다" 하면서(웃음). 그래서, 다들 "뭐야, 이사람!"이라고(웃음).

  

- (웃음) 코다마 씨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 겉으로 보기에는 다가가기 어렵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정말 애정이 흘러 넘치는 사람이에요. 물론 자신의 독자적인 리듬을 가지고 있죠. 건강하세요, 정말. 어쨌든, 그 테잎은 진짜 좋았어요.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을 만큼. 락 스테디는 코다마씨가 가르쳐 준 거에요. 그러니까 [채피 돈 크라이]는 코다마씨를 만나서, 락 스테디와 레게가 지닌 리듬의 힘를 배운 앨범이에요. 데뷰 앨범이었으니까, 사토짱의 보컬을 넣어도 원하는 대로 "좀처럼 잘 안되네!"라고 하곤 했어요. 그래서 모두들 더욱 열심히 노력했던 공기감이 잔뜩 배어있는 앨범이에요.

 

 

휘시만즈가 라 마마 시대에 가지고 있던 측면이었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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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미니 앨범 [코듀로이스 무드]

 

- 그게 91년 11월 릴리즈였던가. 7월인가 8월에 코부치자와에 가서 녹음했어요. 그때 제가 감기에 걸렸던가 그래요. [채피 돈 크라이]를 계기로 코다마씨를 만나서 저희들 마음 속에 들어온 락 스테디와 레게의 리듬감이라는 한 측면과 코다마씨를 만나기 전의 휘시만즈의 공기감이라고 할까, 휘시만즈가 라 마마 시대에 가지고 있던 측면이었다고 할까요. 데뷰반을 잔뜩 긴장한 채로 했기 때문에, "다음엔 어떻게 해볼까"에 대한 대답으로, 한 번 정도는 [코듀로이스 무드]적인 제작 방법을 시도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건 라이브를 하게 되면서 멤버들 모두 생각하고 있던 것이기도 해요. [코듀로이스 무드]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앨범이에요. 최근에는 들을 기회가 줄어들 긴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듣고 있어요.

 

- 아티스트 중에는 자신의 작품을 전혀 듣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던데요.

 

- 그러게요. 하지만 저는 자주 들어요. 되돌아 보거나 하면서.

 

- [코듀로이스 무드]는 쟈켓도 좋은데요.

 

- 이 쟈켓은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유주루라거나 너무 재밌어요, 여기(웃음) (*5). 하지만 흔치 않은 일이에요. 다섯명이 모여서 이런 식으로 찍는 건(웃음). 그리고, 이거, 이렇게 두껍게 입고 있지만, 사실 한여름에 찍은 거에요. 사토짱을 보면 알겠지만. 이 사람만 얇은 옷을 입고 있잖아요(웃음). "웃옷을 입어주세요" 하니까, "네, 네"라고 대답만 하고 절대 입지 않았죠(웃음). 

 

 

"밴드 사운드가 전혀 아니잖아"라고 늘 말하던 사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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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컨드 앨범, [킹 마스터 죠지]

 

- 우선, 싱글 [100미리 촛토노]가 92년 2월에 나왔죠. 그리고 그걸 만든 후에 "세컨드 앨범 프로듀서를 알아보자"는 이야기가 있었고, 여러 후보들 중에, "쿠보타 씨에게 부탁해 볼까"라고. 이번에도 그게 정답이었어요. 네, 돌이켜 보면, 코다마씨에게 데뷰 앨범, 쿠보타씨에게 세컨드 앨범이라고 하는 건, 그 후의 휘시만즈에게는 정말 행운이었던 것 같아요. 쿠보타씨는 "스스로에게 가능한 것만 하세요"라고 말했던 사람이에요. "되지 않는 걸 무리해서 하면, 나중에 또 무리하게 된다"는 걸 아주 잘 가르쳐 주었던 분이에요. 가끔은 "너희들, 라이브를 좀 더 해"라고도 했고(웃음). "밴드 사운드가 전혀 아니잖아"라고 늘 말하던 사람이었어요.

 

- 데뷰 이후에는 라이브를 별로 안한 거에요?

 

- 조금(웃음). 너무 조금이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다는 거지만. 그 때 쿠보타씨가 그런 얘길 해주어서 그 다음부터 였어요, 라이브를 늘려간 것은. [킹 마스터 죠지]에는, 그 당시의 순수한 신곡은 적고, 시행착오는 잔뜩 있죠. 그래서 아주 장난 같은 것도 있지만. 앞서 [채피 돈 크라이]와 [코듀로이스 무드]에서 말했던 것이 섞여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이이 코토바 쵸우다이] 라든가 [타요리나이 텐시] 같은 노선과는 별도의 노선으로… [아메오토코 니쿠마레루] 처럼, 조금 날뛰는 듯한 곡도 있고. 그러니까 아주 덜 익은 기분으로 녹음했었어요. 덜 익은 기분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데뷰 앨범 같지 않아요? [채피 돈 크라이] 보다 훨씬(웃음). 그래서 다시 들어 보면 얼굴이 붉어지는 부분도 있지만, 그랬기 때문에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거겠죠.

 



한눈 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던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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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네오 양키즈 홀리데이]

 

- [킹 마스터 죠지]를 내고 난 후에, 버진 재팬이 사라진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래서 미디어 레모라스라는 레이블로 바꿨죠. 그리고 나서 [워킹]이라는 싱글을 녹음하고. 아, 그런데 그 전에 발표했던 [100미리 촛토노]나 [워킹]을 TV프로그램의 타이업(*6)으로 만들게 되었어요. 당시는 지금보다 더 "타이업 용으로 싱글을 낸다"라는 분위기가 강했으니까요. 언젠가 전부 모였을 때 "(타이업) 어떻게 할까?"에 대해 회의를 했어요. 어쩐지, "그런 거 좀 그렇지 않아?"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됐어요. "우리, 특별히 타이업을 위해 레코드를 만든 게 아니잖아". 그래서 그런 일은 그만두고 "우리만의 세계를 확실히 만들자", "음악은 그저 즐거움만을 위해!"라고 결의했죠. 그리고 나서 만든 앨범이 [네오 양키즈 홀리데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시작할 때의 마음이 있어요. 아주 아주 중요한 앨범이라고 생각해요.

 

- 저는 이 앨범을 제일 좋아해요.

 

- 그런 사람이 많아요. 다행이네요. 개인적으로 연주면에서는 "나, 아직 멀었어~" 싶은 데가 있지만, 악곡으로는 이미 대단한 세계라고 생각해요. 이제 이 앨범부터는 "사토신지, 망설이지 말고 가세요. 일단 가기만 하면 알 수 있어요"의 세계인 거죠, 진짜로. "시작했습니다"의 느낌이랄까. 처음 데모 테잎을 들었을 때, "저스트 씽", "이카레타 베이비", "에브리데이 에브리나잇"이 흘러 나왔던 날에는, "아, 이걸 어떻게 한거지!" 싶었으니까요(웃음). 정말 굉장했어요, 여기부터는. 그러니까 저는 그저 따라가는 것이 최선이었죠. 정말 열심히 했어요. "어떻게 하면 연주를 좀 더 잘 할 수 있을까"만 끊임없이 생각했죠. 이건 제 개인적인 고민이었으니까 유주루나 하카세는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즈음 힙합이 유행하기 시작해서, 어레스티드 디벨럽먼트 등이 나왔어요. 다들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레코딩 중에도 같이 어레스티드 디벨럽먼트을 들으면서, "이거 아니야?".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사토짱이 샘플러를 사게 됐어요. 어레스티드 디벨럽먼트를 듣고 단번에 바뀌어서.

 

- 그리고, 엔지니어로 ZAK 씨의 존재도 컸다고 들었는데요. [네오 양키즈 홀리데이]부터였던 거죠?

 

- 네, ZAK의 존재는 매우 컸어요. 어쨌든 멤버로서 "엔지니어는 무조건 ZAK에게 맡겨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죠. ZAK는 데뷰했을 때부터 줄곧 라이브에서 엔지니어를 했으니까요. "어떻게, 이렇게 좋은 소리를 내는 사람하고 레코딩하지 않을 수가 있죠?"라고 말했었죠.

 

- 구체적으로 다른 사람하고 소리가 어떤 식으로 달랐나요?

 

- 그건 들으면 알겠지만. 일반적으로, 어떤 엔지니어라도 소리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잖아요, 근데 ZAK는 그 타협하지 않는 정도가 대충 적당히가 아니에요. 그야말로 목숨걸고 하는 거죠(웃음). 또, ZAK는 TD(*7)는 받아주지 않아요. 오직 완성품만 들어주죠. "여기는 좀, 이렇게 하고 싶은데"라고 말해봤자 전혀 먹혀들지 않아요(웃음). 하지만 그 앞뒤가 전부 일리가 있으니까요. 

게다가 ZAK는 엉망진창으로 정이 많은 사람이이요. 최고에요. 정말 소중한 만남이었어요. 물론 지금도 일상적으로 만나고 있긴 하지만. 그러니까 ZAK와 함께 하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한 눈 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던 앨범이라고 할 수 있어요.



 

"모두, 이 정도는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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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고 고 라운드 디스 월드!]

 

- 이 무렵에는, 레코드 회사 측에 들려줘도, "이 곡이면 됐죠?" 정도 밖에 할 말이 없었어요. 이제 악곡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절대적으로 뛰어났으니까. [네오 양키즈 홀리데이]를 내고 나서, 모두들 라이브에서 밴드 사운드를 확실히 해보고 싶어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라이브를 아주 많이 했고, 그 중에 녹음을 하기도 했죠. 더욱 탄탄해진 이유이기도 하고. 그랬기 때문에 점점 더 좋아지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이제 비로소 시작이었던 거죠(웃음).

 

- 시작이었다는 건?

 

- 자신들의 세계가 점점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고 할까요. 진짜 좋은 곡들이 잔뜩 쏟아져 나왔어요. 정말 대단했어요, 이 때는. 왜냐면, [고 고 라운드 디스 월드]를 4월에 내고, 6월에는 또 [멜로디]를 냈거든요. [멜로디]도 엄청났죠. "모두, 이 정도는 만들어!"랄까, "덤벼봐!"라는 식으로. 사실 데뷰 때부터 무리해서 앨범을 냈지만 이 정도의 곡이라면 만들 수 밖에 없지 않나요? 최고에요. 그야말로 전개(全開). 음, 이 앨범을 끝으로 기타의 오지마가 나갔지만, 힉스빌의 코구레군을 맞이해서 투어를 마쳤죠. 그대로 척척 일이 진행되어서 런던 레코딩으로 [오렌지]를 만들었어요. ZAK가 "국내 보다 2주 정도 해외에서 녹음하는 것도 좋잖아?"라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런던으로 갔어요. [오렌지]의 제작 방식은, "한번에 끝내는(*8)" 식이었어요. 라이브 모드였기 때문에. 기타는 슈거 요시나가씨였어요. 이게 또 압권이었어요. "두손 들었습니다!"랄까. 역시 센스가 좋았어요, 빠른 반응. 다들 "와아, 그렇게 치다니~, 너무 멋있다!"라고 했었죠. 저희 모두가 슈거씨의 팬이었어요. 아주 좋아하는 기타 리스트에요. 센스도 좋고, 소리도 좋고, 리듬도 좋고. 뭐랄까, 세계적으로 따져봐도 아주 좋아해요. 요컨대, 그 라이브, 라이브, 라이브의 시기와 슈거씨의 기타가 강렬한 한 장의 앨범이었죠.

 

 

결국, 그런 때의 라이브가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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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 마운틴]

 

-앞의 [오렌지]를 만들고 그 후에도 가능한 한 자주 라이브를 했어요. [오렌지]를 만들 때의 투어 음원으로 만든 거죠. 거의 모든 곳에서 녹음했는데, 좋은 테이크가 많았던 곳은 후쿠오카였어요. 후쿠오카가 제일 많고, 교토나 도쿄에서의 테이크도 들어가 있죠. 라 마마에서 했던 것도 있지만(웃음). 그리고 투어에서 돌아와 팬클럽의 이벤트가 있었어요. "그럼, 라 마마에서!" 하는 걸로 되었고, 그 때 코구레가 그걸 보러 왔어요. 객석에 있었는데, 스테이지로 끌려나와서 기타 솔로를 했어요. 그때 진짜 재밌었어요. 결국, 그 때의 라이브가 좋았어요. "히코우키", "블루 썸머"는 라 마마에서 했던 거였던가. 그러니까, 일단, 그 무렵까지의 라이브, 라이브, 라이브를 일단락해서 모아놓은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제껏 그 때 뿐이었던 것 같아요. 곧 "눈물이 나온다!"라고 하는 기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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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공중캠프]

 

- [오! 마운틴]은 95년 3월에 나왔는데, 미디어 메모라스와는 [오! 마운틴]을 끝으로 계약이 끝나게 되었어요. 비록 3월에도 투어가 있긴 했지만, 다음 레코드 회사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좀 느긋하게 할 수 있었어요. 특별한 일이 없으면 사토짱은 합숙면허에 가기도 하고. 사토짱이랑 같이 차 구경을 하러 다니기도 하고(웃음). 그러니까 이 때는 노래를 만들 수 있는 시기였어요. 그 후에, 폴리도르와의 계약이 결정되고, 개인 스튜디오를 탈취하고(웃음). 견적을 뽑아 보기도 하고(웃음). "이건 이 정도면 될까". 아, 그리고, 이 때 하카세가 탈퇴했어요. 이건 유명한 얘기이지만, 사토짱이 하와이 여행을 떠나려고 할 때, 하카세한테 전화가 왔어요, "사토군, 나 그만두고 싶은데.."(웃음). 그런 타이밍에 전화가 와서, "아, 그래"(웃음). 그리고는 바로 하와이로 가버렸다고(웃음). 그래서 하카세는 [공중캠프]에는 참가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개인 스튜디오가 생긴 건 좋았지만, 그 때부터 3인조가 되어버린 거죠(웃음).

 

- 그것이 그 유명한 와이키키 비치 하와이 스튜디오

 

- 하와이에 갔다 왔으니까 그런 이름을 붙이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요(웃음). 그 스튜디오는 7월 하순 무렵부터 한 달 정도 걸려서 만든 거에요. 와이키키에서 제일 처음 녹음했던 게 "나이트 크루징". 역시 제일 컸던 부분은, 어딘가의 스튜디오를 빌려서 "며칠까지 마무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없었으니까, 자기가 하고 싶을 때 얼마든지 연주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와이키키에서 만든 것은 한 곡 당 보통 20~30번 정도 연주했어요. 이 무렵의 레코딩은 "한번에 끝내는" 식의 녹음은 거의 없었고. 미디그램이라는 걸 이용해서 처음엔 제가 하고, 다음에 유주루가 베이스를 넣고, 녹음이 끝난 사람은 중간에 게임을 하거나 수다를 떨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식이었어요.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거죠, 이 때에는(웃음). 아무 걱정없이 몇시간씩 몇시간씩 그렇게 지냈어요. 사토짱도 음향 장비의 사용법을 익혀서 직접 녹음 버튼을 눌러 가면서 몇번씩 노래를 하고, 앨범도 아주 긴 텀으로 만들 수 있었어요. 요컨대, 느긋하게 한결같이 추구하던 마음이 있었어요. 또, TD가 대단했어요. TD를 도대체 며칠동안 하는 건지 모르게 되었을 즈음에, 겨우 "다했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리고 모두 같이 들었는데, "이거 너무 끝내주잖아~!" 라고 했었죠. 이제껏 그 때 뿐이었던 것 같아요. 곧 "눈물이 나온다!"라고 하는 기분은.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말하자면 어딘가로 이끌려 가는 느낌이었는데요. 그 끌려 가는 정도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랐어요(*9). 그런 순간이 여러번 있었어요, 이 레코딩 때는. 아이디어도 훌륭했고. 그러한 이유로 [공중캠프]는 이견 없이. 최고!

 

 

ZAK가 눈에서 피를 흘렸다고 했었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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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서 [롱 시즌]이네요.

 

- 이것도 두말 없이, 최고(웃음). 멋졌어요. 이 해는 굉장했어요. 정말 대단했어요. [공중캠프]의 여덟 곡을, [롱 시즌] 한 곡으로 해버린 것 같아요. 이 때, 다 같이 했던 말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롱 시즌]은 "한 번에 끝내는" 녹음 방식이었어요. 하지만, [롱 시즌]에 대해서는 그다지 세세하게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웃음). 어쨌든, ZAK의 TD가 훌륭했어요. ZAK가 눈에서 피를 흘렸다고 했었죠(웃음). 눈에서 피를 흘리고 있을 때, 저희는 이 (쟈켓)사진을 찍고 있었어요(웃음)

 

 

사토 짱의 프라이비트감이 보다 깊어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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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우츄 니폰 세타가야]

 

- [롱 시즌] 이후, 96년 끝무렵에 [롱 시즌 96-97]이라고 하는 투어를 블릿츠에서 마지막으로 했어요. 그리고 97년에 들어와서 "그럼, 이제 좀 쉴까"라고 했었는데, 1월에 전부 모였을 때, 사토짱이 2곡 정도 데모 테잎을 들고 왔었죠. "오! 해보고 싶다!". 결국, 2월부터 5월 경까지 제작했어요. 게다가 3월에는 꽃가루 알러지 때문에, 저하고 ZAK는 이미 너덜너덜 해져서(웃음), 카시미아 티슈로 코를 풀면서 스튜디오에서 흐물흐물 거렸죠(웃음). 음, [우츄 니폰 세타가야]는, [공중캠프] 때처럼 서로 파트별로 분업을 해서 작업했어요. 말하자면, 저와 유주루에게서 나온 곡에 먼저 리듬을 따고, 그 후에 사토 짱이 노래를 하고, 하는 식으로 쭉 계속되었죠. 왠지 악곡의 분위기는 점점, 사토 짱의 프라이비트감(*10)이 보다 깊어지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실제 말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 와이키키 비치 하와이 스튜디오에서의 작품은 이게 마지막이죠?

 

- 네, 그러니까 와이키키는 만 2년정도? 95년 완성했을 때부터 97년 7월 말까지. 그 건물은, "곧 헐린다"고 들어서, "그럼 뭐 별 수 없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케익 가게가 됐어요. 좀 분하던데요(웃음). 우리들, 쫒겨난 건가 하고 약간 서운한 기분도 들었지만, 건물이라도 남아있으니까 "뭐, 좋잖아"라고 생각해요. 97년, [우츄 니폰 세타가야]가 나온 해에는, 전반부는 레코딩, 후반에는 늘 라이브였던 것 같아요. 투어에 충실했어요.

 

 

"잠깐 여기서 쉴까" 했었죠. 누가 뭐라고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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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그 97년 후반의 라이브 사이에, [워킹 인 더 리듬]인 거에요?

 

- 음, [워킹 인 더 리듬]은 전부, ZAK에게 맡겼어요. "ZAK가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 줘"라고 해서 만들었어요. 이 앨범으로 ZAK와의 레코딩도 마지막이 되었지만. 그리고 98년도에 다시 "잠깐 여기서 쉴까"라고 했었죠. 누가 뭐라고 해도… 그리고 방대한 라이브 음원 중에서 여기 저기 손을 봐서 만든 것이 이 [8월의 현상].

 

- 이 건 앞서 말했던, 라이브를 활발히 했던 때의 음원인가요?

 

- 맞아요. 스튜디오에서 조금 손을 보거나 해서. 이 무렵의 라이브는, 한곡 한곡의 연주 시간이 엄청나게 길었어요. 뭔가 그런 시기였어요. 그리고 그 길이 그대로, 그 길어진 느낌 그대로, 다음 싱글, [유라메키 인 디 에어]를 녹음했어요. 이것도 길죠. [유라메키 인 디 에어]는 98년 여름 무렵에 나온 곡이에요. 98년도에는 유주루가 탈퇴를 결정했죠. 그건 전혀 음악적인 이유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탈퇴였지만, 그런 일도 있었고, 서서히…… 라고들 말하지만 아닐 지도 몰라요. 실제로는 라이브를 가장 많이 한 해였어요. 맞아요, 투어 중에 TD를 듣기도 하고, "여기는 이렇게" 같은 얘기도 하고, 그리고 다시 투어를 계속하고. 확실히 바빴어요, 가을 무렵엔. 10월 10일에는 야음(*11)을 했었나? 야음이 끝나고 조금 쉬고. 오랜 만에 사토 짱을 만났더니. "열이 많이 나서 좀 위험했어"라고 했던 적도 있고. 언제나 감기에 걸려 있었죠, 그 사람(웃음). 예전부터. 무슨 일이 있나 싶으면 감기에 걸려 있고. 투어가 끝나면 감기에 걸리고. 매번 이렇게 두꺼운 옷을 입고서(웃음). 보컬리스트니까요, 감기 걸리면 큰일이잖아요. 

 

 

길을 묻고 물어 다다른 소리가 여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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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98.12.28 남자들의 이별]

 

- [8월의 현상]을 내고, 가을에 투어를 하고, 그리고 한번 더 투어를 했죠, 마지막이 된... 그러니까 이게 우리들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어요. 네, 이 날의 라이브에 대한 집중력은 정말 최고였어요. CD를 들어봐도 역시 그래요(웃음). [네오 양키즈 홀리데이]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들에게서 밖에 나올 수 없는 음악을 만들자"라는 말로 시작해서, 계속 추구하고, 여러 가지로 시도해 보고. 라이브 때도 그저, "좋은 라이브를 하고 싶다"는 것만 생각했어요. 그렇게 길을 묻고 물어 다다른 소리가 여기에 이르렀다고 생각해요. 정말 아주 훌륭한 라이브였어요. 유주루가 탈퇴하는 것도 있었고, 마지막 날이라는 것도 있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있겠지만요. 이 세 명, 총 다섯 명의 연주자가, [공중캠프]를 내고 나서 줄곧 해왔던 멤버로. 다섯 명이 쌓아 올린 마지막 스테이지. 정말 최고였어요. 유주루가 탈퇴했기 때문에 [남자들의 이별]이라는 타이틀이 된 거지만…… 설마 아니겠죠(*12).

 

 

"나한테 딱 맞는 밴드였구나" 하는 기분이 들어요.

 

- 지금까지 되돌아 봤는데요, 특히 인상에 남는 악곡이라든가 앨범이라든가, 시대는 언제쯤인가요?

 

- 역시, 라 마마의 시기가 그립기도 하고, 96년도 정말 멋졌던 것 같고. 96년에 [공중캠프]와 [롱 시즌]을 냈다는 게 무엇보다 대단해요. 또, 와이키키에서 [나이트 크루징]의 TD를 들었을 때도 잊을 수 없고… 악곡은 전부 좋아하는 곡밖에 없으니까(웃음). 진짜 좋아해요. 이건 제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이러한 20대를 보낼 수 있었다는 게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휘시만즈의 드러머로서가 제일 잘 어울린다"라고 할까요. 되돌아 보면 말이에요(웃음). 왠지 "나한테 딱 맞는 밴드였구나" 하는 기분이 들어요. 자그마하고 아담했던 분위기도 그렇고. 어쩌면, 그건 사토짱도, 유주루도, 저도 동경 출신이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생각하는 방식이라든가 삶을 사는 방식이라든가 하는 면에서요(*13). 둘도 없이 소중한 만남이었어요. 너무 행복했어요. 견딜 수 없을만큼(웃음)

 

- 마찬가지로, 듣는 쪽도 그러한 기분이 들어요.

 

- 맞아요. 정말 그래요. 여러 곳에 휘시만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명 한명, 그들과 연락을 주고 받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아직까지 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나도 열심히 해야 겠다"는 마음이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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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닉 파라다이스]

휘시만즈 초기의 음원으로 아는 사람만 아는 옴니버스. 포테이토 칩스, KUSU KUSU등 수록. 휘시만즈 수록곡 - "이나고가 톤데루", "스페셜 나이트"

 

[채피 돈 크라이]

뮤트비트의 코다마 카즈후미 프로듀스에 의한 퍼스트 앨범

 

[코듀로이스 무드]

91년 11월 발표된 미니 앨범. 현재, 교환 가능한 5장의 카드식 쟈켓도 그대로, 재발매되었다.

 

[킹 마스터 죠지]

쿠보타 하루오 프로듀스의 세컨드 앨범. 당시 생각할 수 있는 음악적 아이디어와 장난끼가 가득한 이색작

 

[네오 양키즈 홀리데이]

엔지니어 ZAK와의 협력으로 인해, 그 사운드의 세계를 심화시킨 중요작. CD 엑스트라로 휘시만즈 사전 등을 수록

 

[고 고 라운드 디스 월드]

맥시 싱글. 풀 앨범 미수록이기도 하며, 후기의 라이브에서는 반드시 연주되어 인기가 많았다.

 

[멜로디]

이전 앨범에서 개화한 실험정신과 밴드의 육체성이 융합된 타이틀 곡

 

[오렌지]

런던 레코딩의 4번째 앨범. 슈거 요시나가를 서포트 기타 리스트로 맞아, 라이브감이 강한 작품이 되었다.

 

[오! 마운틴]

라이브 레코딩 소재를 기초로 스튜디오에서 대폭 가공. 한장의 앨범으로서 완성도가 높은, 유례없는 라이브 앨범

 

[공중캠프]

젊지만 역사가 있다. 폴리도르 이적 제1호. 3인조가 된 휘시만즈가 새로 만들어 낸 마스터 피스

 

[롱 시즌]

유일무이의 사운드 스케이프. 1곡 40분의 원트랙 앨범

 

[우츄 니폰 세타가야]

[공중캠프]가 정(靜)이라면, 이것은 동(動). 개인 스튜디오, 와이키키 비치 하와이 스튜디오에서의 라스트 작

 

[워킹 인 더 리듬]

[우츄 니폰 세타가야] 수록 버전과는 다르다. ZAK의 리믹스에 의해 다시 태어난 네가지 버전 수록

 

[8월의 현상]

방대한 멀티 테이프 중에서 엄선된 아홉 곡과 스튜디오에서 라이브 레코딩한 두 곡을 추가해 총 열한 곡 수록

 

[유라메키 인 디 에어]

[8월의 현상] 투어에서 알려진 [유라메키 인 디 에어]. 한 곡 들어있습니다. 들어 보세요,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98.12.28 남자들의 이별]

1998년 12월 28일, 아카사카 블릿츠에서의 라이브를 수록한 두 장짜리 라이브 앨범. 사토신지 생전 최후의 스테이지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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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 및 변명

 

*1. 'バリバリヤバイ' (very very 야바이), 이 잡지의 이름, [バリヤバ(바리야바)]를 염두해 둔 표현인 듯.

 

*2.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그러니까 이 글을 쓴 사람은 '그 아티스트의 표현과 말하고 싶 것, 그 빠져들 것 같은 기분이' 먼저 들고 난 다음에 '이 음악이 나한테 맞는지, 기분이 좋아지는지 등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3. 'RC Succession'. 실제로 사토신지를 보며, 이마와노 키요시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시 인기였던 ARB나 RC Succession이나, 그 정도는 되어야 데뷔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 카도카와 96년 5월호

 

*4. 'イカ天'. 90년 전후 유행했던 일본 아마츄어 밴드들의 TV 오디션 프로그램. 『미야케 유우지의 멋진 밴드 천국(三宅裕司のいかすバンド天国)』의 줄임말로, 1989년 2월 11일부터 1990년 12월 29일까지, 일본 TBS에서 방송됐던 심야 프로그램의 한 코너였다고 합니다. '이카텐'은 오징어 튀김덮밥을 뜻하기도 합니다;

 

*5. ㅋㅋㅋㅋㅋ 사실, 이 쟈켓에서 재일 재밌는 사람은 모테기 아닌가요? 다른 쟈켓도 그렇지만... =)

 

*6. tie-up. 예컨대, A라는 TV 드라마나 광고에 B라는 뮤지션의 노래가 나온다면, 이 경우 A와 B가 tie up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7. TD: Track Down. 여러 개의 트랙에 녹음된 소리에 밸런스와 이펙트 처리 등을 해서 만든 마스터 테잎, 혹은 그 작업. Mix Down이라고도 합니다.

 

*8. 'いっせ-のせ', '하나, 둘, 셋' 하고 동시에 뭔가를 할 때 쓰는 말인데요, 이어지는 문장에 라이브 모드라는 말이 있으니까, 라이브 때처럼 '하나, 둘, 셋'하고 ‘좌앙~~~~’ 시작해서 '한번에 끝내는' 것으로 번역했습니다.

 

*9. '要は持ってかれる感じなんだけどさ.連れていかれる度合が今までと全然違った.' '持ってかれる'를 持って(い)かれる로 보고, 어색하긴 하지만, '들려 가는 느낌', '끌려 가는 정도' 라고 직역했습니다.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 정도로... 어쨌든, 감동의 정도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달랐다는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10. 'private感'. 왠지 건드리면 의미가 훼손될 것 같아서 그냥 그대로…

 

*11. 日比谷野外音樂堂 / 1998. 10. 10. [기억의 증대] 10번 트랙 "A Piece Of Future"가 이 때의 영상입니다.

 

*12. '……'와 '설마 아니겠죠'의 사이에 사토의 죽음이 떠오른 걸까요.

 

*13. 'スタンスとか步み方とかがね.' '스탠스(スタンス)'를 무언가에 대한 '입장'이나 '생각하는 방식'으로, '걷는 방법(步み方)'을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번역했습니다.

 

---------------

네, 이상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그다지 자연스러운 글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해요. 사실, 번역을 할 만한 실력이 안된다는 건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앞으로도 조금씩 고쳐나갈께요.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모쪼록, 이글의 제목처럼, 휘시만즈를 재확인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2003.6 / 고엄마)

 

ver1.0 2003.06.28 처음번역

ver2.0 2005.12.07 부분수정

ver3.0 2006.05.31 부분수정

ver4.0 2015.07.20 부분수정 



[출처] 『캠프사이드』 1호, pp.8-17, 2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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