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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금주의 티셔츠

vol.027 조회 수 4204 추천 수 0 2016.07.28 16:24:10
금주의 티셔츠

/ 고엄마


Girls_Do_Not_Need_A_Prince.jpg



0.


2016년 7월 21일 저녁, 페이스북에 [금주의 티셔츠]라는 간단한 설명으로 위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다음 날 오전, 대학 동기 ㄱㅎ이가 "A prince do not need girls 는 없으려나....?"라는 댓글을 달아서, (혹시 취지에 대해서 잘 모르나 싶어) 텀블벅 링크 https://www.tumblbug.com/mersgall4 를 올렸더니, "페니미즘에는 문제가 없지만... 목적이 불순한 게 문제일뿐."이라는 답글이 올라왔습니다.


그 후 '메갈리아'와 '페미니즘'에 대한 가벼운 논쟁(?)이 있었고, 몇몇 페친들이 각자의 의견을 올려주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글을 함부러 옮길 수 없으니, 제가 올린 댓글의 일부를 옮겨둡니다.)



1.


"ㅎㅎ 안녕, 잘 지내지? 어언 20여년 만에 만나서 이런 댓글을 쓰고 있는 것도 좀 그렇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간단히 적을게 (만약 모르는 사람이었으면 바로 차단하고 삭제했을 거야.) 우선, 나는 너가 인용한 저 문장이 "불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리고 페미니즘에는 아주 다양한 이론과 실천이 있기 때문에 일부 동의하지 못하는 입장/활동이 있는 건 오히려 당연하다고 생각해. 특히, 지금처럼 (헬조선뿐 아니라) 전세계가 소수자 혐오/파시즘/IS-일베화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다양하고 급진적인 페미니즘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같이 참여하고 비판할 생각이야. 그렇다고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키배를 뜬다거나(이것도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하지-_-) 하긴 어렵겠지만, 그저 비슷한 뜻을 가진 친구들과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조금씩 하면서 오손도손 지내고 싶은 정도... 여튼, 즐거운 생일 보내길."


(2016/7/22 16:29)



2.


"앞선 댓글에도 썻지만, 제가 페북을 하는 주된 이유는 마음 맞는 친구들과 서로 위로/격려하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고민하고 실천하기 위해서 입니다. 서로 다른 입장에 대해 설득을 하거나 논쟁을 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오늘 오랜만에 miceteech를 들으면서 누룽지를 먹었더니 기분이 조금 좋아졌고, 캠프데이에 가기 전에 시간이 잠깐 남아 조금 더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목적이 불순한 프로그래밍, 의도가 좋지 않은 휘시만즈가 이상한 것처럼, 순수/불순한 페미니즘, 진짜/가짜 페미니스트는 각자의 머리 속에만 있습니다. 순수한/진정한 페미니스트를 구별할 수 있는 튜링테스트/리트머스 시험지는 없으며, 그저 서로 다른 페미니즘이 존재할 뿐입니다. (ㄱㅎ도 알듯이) 홈브류 컴퓨터 클럽처럼 sw 공유를 위해 활동을 할 수도 있고, GNU나 copyleft, 리누스 토발즈처럼 자본에 포섭되지 않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고, anonymous처럼 핵티비스트 활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ㅈㅈ씨도 알듯이) 사토신지가 없는 휘시만즈는 휘시만즈가 아니라는 사람도 있고, 제각각의 휘시만즈가 존재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리 휘시만즈를 좋아해도 휘시만즈 리이슈 앨범이나 티셔츠가 상업적이라고 생각되면 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ㄱㅎ이나 ㅈㅈ씨 역시 '순수하고 의도가 좋은 페미니즘'은 지지하지만, 메갈리아처럼 과격한(radical) 입장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온건한(weak) 페미니스트의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여, 개인적으로도 computer science나 휘시만즈에 대한 생각이 계속 바뀌듯이 맑시즘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입장도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좀 더 과격한 입장이었습니다. 엑스맨의 마그네토처럼, 남자 인간들이 다 사라지지 않는 이상 가부장제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고, 결혼 제도를 부정했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15여년 전 100인위 논쟁이 있을 때는 (사례가 모호하거나 이미 완결된 사건 조차) 폭로하는 방식의 활동에 대해 비판했던 적도 있습니다. 8년 전 다시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는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습니다(컴퓨터 사이언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페미니즘 역시 체계적이고 이론적인 교육/학습과 토론, 실천적인 행동과 수행, 비판과 반성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정치-경제-사회 전반적으로 훨씬 더 심각하다는 위기의식이 있기 때문에, 더욱 급진적인 이론과 활동, 더 풍부한 담론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까지 해야하는 게 안타깝지만,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은 생물학적/문화적/사회적 여성의, 여성에 대한 문제일 뿐아니라 타자/소수자에 대한 입장이기도 하고 인류와 비/생명체 모두를 위한 이론이자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2) ㅈㅈ씨가 친절히 알려준 링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제가 놀라운 것은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긁어 모은 게 고작 저 정도 밖에 안되느냐는 겁니다. 만약 반대로 전세계, 아니 우리 동네에서 지금 눈을 깜박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이 차별당하고 피해받고 있는 사례들을 모으면 어떻게 될까요? 과연 그걸 모을 수나 있을까요?


잘 아시겠지만, 어느 개인이나 조직이든 모순적이고 일관되지 않는 사례/사건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음악을 좋아하고 (ㅈㅈ씨처럼) 자전거를 좋아하고 환경과 평화를 사랑하고 어쩌고 하는 커뮤니티라고 해도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과 입장들과 감정들과 욕망들과 관계들이 들끓고 있을 겁니다. 특히, 무언가를 바꾸어 보자고 하는 운동 조직, 비난과 욕설과 조롱과 폭력과 고소, 고발이 난무하는 투쟁 현장에는 이런 문제가 더욱 첨예하게 대립하게 되겠죠.


하지만, 소스코드에 버그가 있다고 해서 전체 시스템을 셧다운 하지 않듯이, 난폭운전을 하는 라이더가 있다고 해서 자전거 타는 것 자체를 그만 두지 않는 것처럼, 일부 메갈리안에 대한 실망/분노로 (급진적인) 페미니즘 운동 전체를 포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컨대, 미러링에 대해서도 저는 다음과 같은 입장에 가깝습니다 : "원본이나 미러링이나 똑같은 혐오라는 말은 똥이나 거울속의 똥이나 똑같이 더럽다는 말과 같다. 보기엔 둘다 더러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역겨운 냄새는 온전히 거울 밖의 똥에서만 난다. 그 냄새를 없애는 방법은 똥을 치우는 것이다. 거울을 깨는 게 아니라.")


중언부언 거친 문장들이 부끄럽기도 하고, 더 하고 싶은 말도 잔뜩 있지만, 이제 씻고 나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음에 캠프에서 보면, 한 잔 하면서 말씀 더 나누시죠." 


(2016/7/23 15:38)



3.


"ㄱㅎ에게,


안녕. 간단히 몇자 적을게.


1) "저는 페니미즘은 지지합니다. 하지만, 메갈리아는 반대합니다." ???


우선, 어느 개인/조직/프로그램이든 버그가 있을 수 있다는 말에는 동의하는 거지?


그렇다면, 메갈리아의 일부 버그에 대해서는 ㅅㅇ씨 말씀대로 "잘못된 행동"은 "비판"하고 디버깅을 하려고 노력해야지, 인터넷 상의 일부 사례로 메갈리아 프로그램 전체에 "반대(?)"하는 건 좀 비약이 심한 것 같아.


이번 사건의 계기가 된 티셔츠를 입거나 태그를 달았다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비난하고 협박하고 해고하는 건 사회/시스템 전체를 퇴행시키는 훨씬 심각한 장애 상황이잖아.


당장 잡아야 하는 '버그'와 '폭주자'는 예스컷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나 살생부를 만들어 마녀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지 메갈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리고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는 건 페미니즘 이론/운동을 위해 노력하고 서포트하겠다는 의미인데, 여성혐오와 가부장제 타파라는 오브젝티브를 페미니즘과 공유하고 있는 메갈리아의 경우라면, 몇몇 버그들을 픽스하거나 장애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준다거나, 부당한 공격에 방어를 하면서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게 아닐까? (요즘엔 진영이나 당파성 비슷한 말만 하면 금방 돌이 날라오지만, 운동의 관점에서는 어쩔 수 없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페미니즘을 지지한다"면, 단지 생물학적/사회적 여성(/타자/소수자)이라는 이유로, 살아 숨쉬는 동안, 가정, 학교, 회사, 밥집, 술자리, 버스/지하철, 공원, 화장실 등 곳곳에서 신체적/심리적으로 위협받고, 차별과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 여성들(/타자/소수자)의 존재와 현실에 대해 공감하고, 여성들(/타자/소수자)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무리 거울을 비춰줘도 자신의 모습 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 권력자들과 주류 사회를 바꾸기 위해 스스로 반성하고 고민해 봐야하는 거 아닐까?


덧붙여, 앞의 글에서 "서로 다른 페미니즘이 존재한다"라고 말한 건, 메갈리아를 무조건 "옹호하고 방치"하자는 게 아니라 페미니즘의 넓은 스펙트럼 안에 너(와 같은 입장)를 배제하기 보다 가능한 포함하려고 했던 거니까 오해하지 않기를 바래.


이미 눈치챘겠지만, 적어도 여기에 댓글을 단 친구들 중에는 메갈리아를 "무작정 덮고 옹호"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거야. 

(일단, 거의 모든 글/사진이 친구공개인데 그런 분들과는 잘 페친을 맺지 않으니까. 사실 내 타임라인에서 이런 페북 댓글+논쟁도 처음이었음ㅎㅎ)

평소에 메갈리아나 워마드의 일부 활동 방식이나 글들에 비판적인 사람들이 더 많기도 하고. 거꾸로 메갈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듯 기계적인 중립과 양비론, 맥락없는 팩트주의,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라는 뒤바뀐 인식,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억하심정 등등을 포함하여) 극히 일부 특수한 사례나 회원을 근거로 무작정 반대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고...


덧붙여, 내가 알기로는 메갈리아가 특정 페미니즘/페미니스트 조직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일베나 소라넷에 반대해 현실 세계에서 생존에 위협을 느낀 여성들 스스로가 오프라인을 벗어나 온라인 상에서 직접 시스템을 구축하고 나름의 고민과 논의를 통해 상황에 맞게 변화와 적응을 거듭하고 있는 커뮤니티/운동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어떤 단일한 상위 조직의 지시에 따라 행동을 한다기 보다는 각자의 영역에서 각개전투로 저항하고 있고, 여전히 주체화/사회화/분화되고 있는 과정 중이기도 하니까.


너가 우려한 대로 미러링이 더 큰 혐오를 낳을지, 결국 DC의 전철을 밝게 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섣불리 단정하기 보다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더욱 많은 관심과 논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굳이 최근 메갈과 같은 활동들을 radical 페미니즘의 한 부류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야.)


2) "저는 일베를 반대합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메갈리아를 반대합니다." ???


최근 며칠 동안 이 문장이 제일 익숙하면서도 놀라웠는데, 그러니까 흔히 말하듯 "일베나 메갈이나"라는 거지?


그런데 애초 메갈의 주요 수단/목표가 미러링을 통해 여성혐호/가부장제 사회에 불편함을 주는 거였기 때문에, 지금처럼 많은 남성들이 일베와 같다고 (불쾌함을) 느꼈다면 정확히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도 할 수 있는 건 아닐까?


물론, 여성뿐 아니라 성소수자와 이주 노동자, 특정 지역과 세월호 유가족을 혐오하고 조롱하고 폭력을 일삼는 일베와, 그들의 언어를 그대로 돌려주는 방식으로 대다수 남성 기득권/가해자들을 비판하는 메갈리아를, (일베를 미러링 한다는) 이유로 양 쪽 모두를 "반대"하거나 "같다"라고 하기엔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일테면, 백골단이나 사수대나,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나 시민군이나 다 마찬가지라는 건가?


(이미 읽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아래 인용문으로 대신할게:


"그럼에도 과거의 수많은 싸움이 증명하는 건, 너희가 무기를 버리면 도와주겠다는 이들의 선심보단 내 손에 들린 몽둥이가 훨씬 믿을만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래 링크 등도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아.

(링크 원글 삭제됨)


3)


여튼, 오랜만에 + 바쁜 와중에 장문의 댓글을 남겨준 데 비해 (내 게으름 등으로) 그다지 생산적인 논의가 진행되지 것 못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네게 조금이라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래.


개인적으로는 나름대로 생각도 정리하고 스스로 반성할 부분도 있어서 부끄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괜찮은 시간이었던 것도 같아.


혹시 언젠가 어디선가 만나게 되면, 그 때 다시 얘기 나눠보자.

그럼, 모쪼록 앞날에 건강과 행운을...


ps. 장염 덕분에 수액 맞고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고 있는 마당에 맥주 드립은 생략하겠음;;"


(2016/7/27 0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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