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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 311 이후 3년

vol.027 조회 수 2211 추천 수 0 2014.03.18 14:39:42

 
 
1.
 
벌써 3년이 지났다.
 
위의 사진은 3년 전 이맘 때, 센다이의 스시집에서 친구가 사준 컵이다. 
 
950일 전 지금 회사에 입사할 때, 어떤 컵을 가져올까 하다가 이 컵을 골랐다. 
 
손잡이가 없어 뜨거운 물을 따를 때마다, 3년 전 그 일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2.
 
2010년 가을, 공중캠프에서 (말그대로 꿈만 같던) FISHMANS and MORE FEELINGS FESTIVAL http://kuchu-camp.net/xe/17898 이 있은 뒤, 
유주루 상과 이쿠코 상을 비롯한 여러 친구들의 도움으로 이듬해 2월, 도쿄 기치죠지에 있는 키치무 등에서 약 일주일 동안 공중캠프 전시회 및 라이브 이벤트를 개최했다. 
 
야구팀 두 팀 정도 되는 공중캠프 친구들과 함께 소풍을 떠났다. http://kuchu-camp.net/xe/29437
 
개인적으로는 2007년 가을 세 번째 회사를 그만두고 전공을 바꿔 학교로 돌아가,
두 번째 석사 논문을 마치고 난 뒤였기 때문에 잠시 쉬고 싶었던 즈음이기도 했다.
 
도쿄에서의 이벤트를 모두 마치고 비행기 티켓을 연장하여, 
오오이소의 아누에누에 기지(?)에도 가고, 센다이에서 부모님을 모시며 살림을 차린 ㅎㄹㄲ&ㅊㄱㅁㅊ의 신혼집에 놀러가기도 했다. 
 
멋진 전시 공간 같던 작업실과 집, 한적한 동네와 거리, 세계 최고의 스시와 사케, 나른한 온천과 아침 산책, 편안한 웃음과 소소한 이야기들... 
사랑하는 친구들의 따뜻한 배려로 그야말로 최고의 방학을 보낼 수 있었다.
 
3.
 
그리고 다시 도쿄로 돌아와 마지막 알콜 지옥의 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떡실신이 되어 서울로 실려왔다.
 
그 때가 3월 10일 밤이었다...
 
4.
 
다음 날(3/11) 오후, 숙취에 찌든 채 느즈막히 눈을 떠 스마트폰의 사진첩을 스크롤 하며,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희미한 기억 조각을 패치하던 중에, 트위터에 갑자기 "지진이다!!!!"라는 트윗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처음엔 비몽사몽 '뭐 일본에선 흔한 일이니까...' 무심히 지나쳤다. 
 
그런데 잠시 후, "쓰나미가 오고 있다, 빨리 대피하라!!"는 등의 심상치 않은 글들이 잇달아 올라왔다. 
 
'설마...'하는 마음으로 NHK를 틀어보니, 며칠 전 한가롭게 산책을 하던 센다이의 들판을 거대한 쓰나미가 집어삼키고 있었다. 
 
"저기 저기 사람이 있다, 빨리 빨리 도망쳐!!!"라는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시꺼먼 바다물이 대지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충격적인 영상이 그대로 중계되었다. 
 
5.
 
어젯 밤 늦게 몸은 서울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아직 그 들판과 강가를 걷고 있었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정신이 멍해졌다. 
 
잠시 숨호흡을 하고, 센다이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을 걸어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오오이소의 친구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공연 관계로 센다이에서 운전 중이던 ㅊㅈ에게도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마음이 시꺼멓게 타들어 갔다. 
 
6.
 
그렇게 몇 시간을, 그 뒤로도 며칠을,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고, 리얼타임으로 속보를 전하거나 번역을 하면서,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일과 방법을 찾아 밤낮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소식도 전해졌다...
 
7.
 
그리고 3월 15일, 사토신지의 13주기에 맞춰, 
공중캠프 유리문에 "MINASANG, GANBARE!!!"라는 손글씨를 써 붙이고, 일본 친구들에게 안부 편지를 보냈다. 
 
지금껏 살면서, 그 때만큼 초조하고 절실한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http://kuchu-camp.net/xe/3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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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t: Tuesday, March 15, 2011 9:00 PM
Subject: みなさん、がんばれ!!! We are always with you!
 
皆さん、
 
こんにちは。
みんな、大丈夫でしょうか?
 
空中キャンプはいろんな人々のお蔭様で、
キチム・イベントなど濃密な時間を過ごして、みんな無事に戻りました。
 
このたびの大震災からは空中キャンプのみんな、驚きと心配で、
小さな力でも歌とか絵とか文章とか募金とかvolunteerや追慕平和デモ参加など
自分の生活をちゃんとしながらこっちで僕らが出来ることをやってます。
 
原発などまだまだ心配だし、
これからもいろいろ大変なこといっぱいあると思いますが、
たまに春の風や星空を感じながら、
「明日は笑えるように」お互い頑張りましょう。
これしか表現できないのがもどかしいけど、
最後の最後まで愛と希望を持って、
一日でも早くいつものくだらない日常がもどってくるようにね。
 
ではでは、また、笑顔で出会う日を楽しみに待ってます。
今日は佐藤ちゃんの13回忌だし、空中キャンプでFishmansの曲を流し続きます。
 
いつものように、
いつもありがとうです。
 
with love,
 
空中キャンプ(ゴ)
http://kuchu-camp.net/
 
----------------------------
 
8.
 
지난 주말(2014.3.8)에 있었던 네 번째 "미나상 간바레 vol.4" 때는,
지금 이 시간에도 끔찍하고 처절한 싸움을 하고 있는 밀양의 할머니들이 등장하는 <밀양전>을 보았다. http://kuchu-camp.net/xe/52419 
 
최근 계속 이어지는 부고 탓인지, 먹먹하던 마음에 계속 눈물이 흘러내렸다. 
 
9.
 
그 전에는 그저 당위로, 잘 모르지만 나쁜 거니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원전반대와 탈핵을 외쳤지만, 
그 때 그 재해와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핵은 삶과 사랑과 평화를 지속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되었다. 
 
원전과 핵(폐기물)은 인간이 다루기에는 역부족이다. 
 
인간/동물과 식물이 세포의 결합과 재생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같이 공존할 수 없다.
 
세포로 이루어진 bio-생명체에게 기준치란 무의미하다. 
 
아무리 극소량의 방사성 물질도 세포의 결합을 끊기에는 충분하며, 이 물질은 당신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고,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저는 방사능보다 강하니까요"라며 방사성 물질이 듬뿍 담긴 음식을 맛있게 쳐드신 울끈불끈 아저씨는 머지않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할 수 밖에 없다.
 
"지금 당장 영향은 없다, 안전하다"를 반복하던 일본 관방장관의 암울한 표정이 떠오른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있다"는 정부관료와 핵마피아들의 거짓은 오히려 그들의 무능과 무력함을 드러낼 뿐이다.
 
10.
 
지금 당장 동아시아에 있는, 지구상의 모든 원전을 폐기해야 그나마 파국을 막고, 인간의 시간을 지속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권력과 자본을 독점하고 있는 그들이 순순히 핵-노다지를 포기할 리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탈핵운동은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가 서로 이어져 있음을 깨닫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우리의 강력한 무기이자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변함없이 3년 전 오늘을 잊지 않고, 어두운 진지에서 조그만 목소리로 미나상 간바레를 계속계속 외칠 것이다.
 
(아마 우리 세대에는 힘들겠지만,) 그리하여 마침내 전세계의 원전이 가동을 멈추는 축제의 날, 후쿠시마의 아이들과 밀양의 할매들이 중국 산둥반도와 태평양을 건너 전세계 주민들과 함께, 다시 2011년 3월 11일을 기억할 것이다.
 
 
(2014.3.11 / 고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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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 "우리는 걷는다 단지 그뿐(ぼくらは步く ただそんだ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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