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끝


이미지 - 이윤학 + 로켓의 해설

조회 수 6425 추천 수 0 2002.12.09 15:22:01
로켓 *.193.1.250
이미지
- 이윤학

삽날에 목이 찍히자
뱀은
떨어진 머리통을
금방 버린다

피가 떨어지는 호스가
방향도 없이 내둘러진다
고통을 잠글 수도꼭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뱀은
쏜살같이
어딘가로 떠난다

가야 한다
가야 한다
잊으러 가야 한다



로켓의 해설:

'대학생' 출신 시인인 이윤학의 시 <이미지>는 숙제로 고통받는 학생의 도피를 위한 고백이다.

1연 - 첫 행 '삽날에 목이 찍히자'에서 '삽날'이 연상하는 것은 무엇인가? 숙제는 '삽질'이다. 쓸데없는 숙제를 하기 위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정력과 체력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삽질은 잔인하다. 그것은 뱀으로 상징되는 학생의 머리통을 짓이겨버릴 정도로 흉포하다. 숙제에 고통받는 학생은 이성과 감성이 동시에 마비된다. 이성이 온전하다면 그는 숙제를 할 것이다. 감성이 보존되었다면 그는 시라도 한 편 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왜냐면, 숙제 앞에서 우리는 머리통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2연 - 잔인한 삽날같은 숙제 앞에서 우리는 발버둥친다. 밤새 채팅을 하며 친구와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기도 하고, 책장에 꽂힌 책들을 보며 숙제만 아니면 당장에 다 읽어버릴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시간을 때우기도 한다. 이런저런 일들이 다 생각나고 과거에 잊혀졌던 채무관계까지 다 드러나는 이때에 우리의 방향감각은 완전히 상실된다. 그렇다, 우리는 '방향도 없이 내둘러지'는 것이다. 이 고통을 '잠글 수도꼭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이윤학 시인의 직관이 빛을 발한다. 수도라는 것은 돈을 내고 물을 쓰는 것이다(수도세). 그러나 여기에서 수도물은 고통의 흐름이다. 우리는 돈을 내고 고통을 느낀다. 등록금을 내면서 숙제의 고통을 사는 대학생의 아이러니한 고통. 우리의 고통은 이중의 고통이 된다. '수도꼭지'의 모티프는 엄격하게 선택된 것이라 할 수 있다.

3연 - 슬프다. '뱀은 어딘가로 떠나'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곳은 삽날의 고통만이 존재하는 방향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떠남이 지리적 이동은 아닐 것이다. 뱀이 느끼는 고통이 지리적 고통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참을 수 없는 부채관계(학점), 경제관계(등록금)에 얽매여 있는 공간에서 생겨나는 고통이기에, 떠남은 간단한 위치의 이동으로 무마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복잡한 사슬에 얽혀 고통받고 있는 대학생의 떠남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4연 - 그 떠남은 '잊음'이다. 망각은 관계들의 유령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공동묘지의 길안내판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행 '잊으러 가야 한다'는 '잊기 위한 떠남'이 아닌 '잊음으로써 떠남'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혹자는 망각이 도피를 위한 수단일 뿐이라고 비난한다. 그것은 옳다, 우리는 망각함으로써 이곳을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니체는 망각이야말로 강자의 능력이라고 했다. 우리가 어차피 쓸데없는 숙제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그것 때문에 진정한 행복과 몽상의 세계로의 진입이 불가한 상황임을 직시한다면, 우리에게 망각은 강해지기 위한 능력이 될 수 있다. 4연의 처음 두 행이 '가야 한다 / 가야 한다'로 서술되면서 '떠남'에 집착하는 듯 보이는 것도 심층적으로 이해하자면 바로 망각의 이러한 특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3행에서 우리는 이 떠남이 '잊으러' 가는 것임을 알게 되는데, 이에 따라 반추되는 것은 1,2행의 떠남에서 '잊음', 즉 망각 그 자체조차 망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숙제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망각은 이중의 망각이어야 한다. 우리는 떠나는 이유조차 망각해야 한다. 그것이 즐겁게 놀 수 있는 논리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이 시의 제목, <이미지>이다. 시는 숙제로 고통받는 대학생의 처절한 몸부림과 그것을 망각으로써 극복하기 위한 전략을 호소력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대학생이라면 '이미' 누구다 다 '알고(知)' 있는 것이다. 즉 대학생의 <이미 知>인 것이다. 시인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그러므로 망각을 통한 떠남의 재인식과 의지이다. 마지막 행에서 '.. 한다 / .. 한다 / ... .. 한다'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의지로써 행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제 그 선택은 대학생 각자의 몫이다.

댓글 '3'

로켓

2002.12.09 15:29:49
*.193.1.250

숙제하기 싫어 죽겠네...

2002.12.09 22:22:32
*.50.35.231

미 투 나는 허리도 등도 무진장 아프다.. 공순이 된 기분

시린

2002.12.10 00:25:17
*.117.51.55

안할 생각도 아니니 열심히들 하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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