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끝


정끝별 - 투신천국

조회 수 353 추천 수 0 2021.03.19 08:58:10
투신천국

/ 정끝별


재벌 3세가 뛰어내렸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출근한 아침 
그날 하루 부산에서만 십대 세 명이 뛰어내렸다는 인터넷 오후 뉴스를 보다가 
이런, 한강에 뛰어내렸다는 제자의 부음 전화를 받고 
저녁 강변북로를 타고 순천향병원에 문상간다 

동작대교 난간에 안경과 휴대폰을 놓고 뛰어내린 지 
나흘이 지나서야 양화대교 근처에서 발견되었다며 
세 달 전 뛰어내린 애인 곁으로 간다는 유서를 남겼다며 
내 손을 놓지 못한 채 잘못 키웠다며 면목없다며 
그을린 채 상경한 고흥 어미의 흥건했던 손아귀 

학비 벌랴 군대 마치랴 십 년 동안 대학을 서성였던 
동아리방에서 맨발로 먹고 자는 날이 다반사였던 
졸업 전날 찹쌀콩떡을 사들고 책거리 인사를 왔던 
임시취업비자로 일본 호주 등지를 떠돌다 귀국해 
뭐든 해보겠다며 활짝 웃으며 예비 신고식을 했던 

악 소리도 없이 별똥별처럼 뛰어내린 너는 
그날그날을 투신하며 살았던 거지? 
발끝에 절벽을 매단 채 살았던 너는 
투신할 데가 투신한 애인밖에 없었던 거지? 

불은 손목을 놓아주지 않던 물먹은 시곗줄과 
어둔 강물 어디쯤에서 발을 잃어버린 신발과 
새벽 난간 위에 마지막 한숨을 남겼던 너는 

뛰어내리는 삶이 
뛰어내리는 사랑만이 유일했던 거지? 
profile

"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 "우리는 걷는다 단지 그뿐(ぼくらは步く ただそんだけ)"

엮인글 :
http://kuchu-camp.net/xe/85048/7c3/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38 김중식 - 불더위에 달궈지고 달구어진 모래 속에 코를 처박은 낙타, 바로 그 낙타의 장딴지에서 불현듯 회오리바람 같은 힘이 솟구친 건 공중캠프 2024-01-05
37 [패터슨] Love Poem file 공중캠프 2022-12-04
» 정끝별 - 투신천국 공중캠프 2021-03-19
35 이산하 - 나무 [1] 공중캠프 2021-02-06
34 Louise Glück - "Snowdrops" 공중캠프 2020-10-10
33 김수영 - 사랑의 변주곡 공중캠프 2020-06-16
32 고정희 - 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공중캠프 2020-04-24
31 이광웅 - 목숨을 걸고 공중캠프 2020-04-02
30 김해자 - 이웃들 공중캠프 2020-02-01
29 신동엽 - 좋은 언어, 봄의 소식(消息) 공중캠프 2020-01-05
28 이백 - 행로난 공중캠프 2019-10-10
27 박노해 - 살아서 돌아온 자 공중캠프 2019-09-27
26 피천득 - 너는 이제 공중캠프 2019-07-25
25 고정희 -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공중캠프 2018-09-24
24 사상의 거처 - 김남주 [2] ㄱ ㅅㅅ 2014-09-22
23 시인은 모름지기 - 김남주 ㄱ ㅅㅅ 2014-09-22
22 브레히트 시 몇편 공중캠프 2013-12-20
21 지울 수 없는 낙서 - 베르톨트 브레히트 공중캠프 2013-12-20
20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공중캠프 2013-12-18
19 김중식 - 떼 go 2010-06-0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