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悪の力, 2015)

 

강상중/노수경

 

 

 

프롤로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선은 간데없고 악이 이렇게 판을 쳐대는지, 어째서 평범한 사람들이 불행해지고 괴로워하고 이런 쓰라림을 맛봐야 하는 건지……. (8)

 

저는 60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악이 사람 안에 둥지를 틀고 마치 병원균처럼 마음을 좀먹는 일, 즉 악의 연쇄라는 것에 맞닥뜨렸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악인은 실제로 존재하는구나’라는 확신이 처음으로 마음속에 움트기 시작했습니다. (10)

 

그 결과 ‘이 녀석만은 용서할 수 없어’라는 감정의 싹이 인간성에 깊이를 더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회복하는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의 뒷면에는 자신의 내면에서 움튼 ‘증오’라는 에너지를 다른 사람에게도 공감받고 이해받고 싶은, 그러니까 다른 사람과 이어지고 싶다는 절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용서할 수 없다’라는 거친 감정의 근저에 실은 검디검은 에너지뿐만 아니라 사회와 이어지기를 바라는 공감을 향한 회로도 숨어 있는 것입니다. (11-12)



 

1장 악의로 가득한 세상

 

1. 우리 안에 있는 악

 

- 가와사키시 중학교 1학년 남학생 살해사건

- ‘귀축’인가 ‘자유의지’인가

- 환자 18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군마대학병원 사건

- 나고야대학 여학생 살인·상해·방화사건

 

2. 악의 기쁨

 

- 샤덴프로이데 = 꼴좋다

- 공허에 뿌리를 내리는 악

- 허무함을 메우는 순간의 ‘성취감’

- 신체성의 결여

 

3. 악의 축

 

- 홀로코스트를 낳은 나치 독일의 공동감(空洞感)

 

나치 독일이 품은 악에서는 ‘불순한 것’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 느껴집니다. 불순한 것에 대한 공포입니다. / 이것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생각해볼 때 우리는 나치 독일 안에 있는 악의 이면성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여기서 이면성이란 자신을 과대망상적으로 크게 보이고 싶다는 바람과 자신이 병적일 정도로 작은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공포에 관한 것입니다. (46-47)

 

이 공포의 반작용은 과대망상적으로 자기를 긍정하는 것인데, 나치 독일이 그러했듯이 자신을 마치 천사처럼 더럽혀지지 않은 존재로 그려내고 싶다는 몽상이 있었던 것 아닐까요. 즉 스스로를 순수한 존재로 정화시키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 / 나치 독일이 바라던 때 묻지 않은 세상을 더럽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여기서 호출된 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워해야 마땅할 불결하고 타락한 인간종 딱지가 붙은 유대인이었습니다. / 실제로 나치 독일은 유대인을 정말 징글징글하게 싫어했으며 불쾌하고 비정상적인 생물, 혹은 기분 나쁜 쓰레기라 부르며 철저하게 멸시했습니다. ‘가장 불쾌한 인종’인 유대인을 말살하여 자기 안의 공허함을 메우려고 했던 것입니다. (47-48)

 

- ‘복붙’ 같은 IS의 원리주의

- 악은 ‘무엇이든 OK’인 세상을 좋아한다

 

해도 되는 것과 하면 안 되는 것, 혹은 아닌 것은 절대 아니라는 지금까지 사회를 지지하던 객관적인 가치 기준이 흔들리는 가운데 이제는 무엇이든 다 괜찮다는 식으로 변하고 있는 듯합니다. 특히 인터넷상의 가상공간에서는 혐오 발언, 개인 공격, 리벤지 포르노가 마치 제 세상인 듯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52)

 

4. 시스템 속의 악

 

- 익명으로 나타나는 조직 속의 악

- 최대의 악은 자본주의?

 

“장차 이 쇠로 된 우리 안에서 살게 되는 것은 누구일지, 그리고 이 거대한 발전이 끝났을 때 완전히 다른 예언자가 출현할지 혹은 과거의 사상과 이상이 강력하게 부활할지, 아니면 - 둘 다 아니라면 - 어떤 종류의 이상한 거만함으로 치장된 기계적인 화석으로 변하게 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러한 문화 발전의 가장 최후에 등장하게 될 ‘마지막 자손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이 진리가 되지 않을까. “정신이 없는 전문인, 마음이 없는 향락인. 이렇게 ‘없는’ 이들은 그들이 인류가 지금까지는 도달한 적이 없는 단계에까지 올라갔다고 자만할 테지.” (58)

 

 

2장 악이란 무엇인가

 

1. 악의 백 가지 얼굴

 

- 악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 2000년 이상 변함없는 악의 이미지

 

바울이 열거한 악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1장 29~31절)” (64)

 

- 이교의 신 ‘베르제바브’란 누구인가

- ‘광조’ 때문에 배척된 베르제바브

- 악령의 진면목은 빙의

- 시대의 우화로 등장하는 악마

 

2. 어둠 속에서 나온 악

 

-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

- 순진무구한 존재에 깃든 어둠 저편의 악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에 소라껍데기가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모두가 모여 회의를 할 때 발언하는 사람은 반드시 소라껍데기를 쥐도록 하여 정확한 차례를 부여하는 것, 이것이 소라껍데기의 역할입니다. / 이 소라껍데기는 이성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혹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양심의 상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소라껍데기는 파괴되고 아이들 중 가장 선한 존재였던 피기와 사이먼은 살육에 의해 무참히 죽어갑니다. / 죽음이 닥쳐오는 가운데 피기는 “내가 소라를 가지고 있어!”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있는 상대방에게 필사적으로 묻습니다. “어떻게 할래? 규칙을 지키면서 사이좋게 살래, 아니면 사냥을 하고 죽일래?”라고. 하지만 이 혼신을 다해 던진 물음은 더 이상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습니다. (78-79)

 

- 『핀처 마틴』 - 어느 에고이스트의 회상

 

완전한 에고이즘이란 끝없는 허무, 속이 텅 빈 느낌, 즉 공동감 같은 것입니다. 악은 그런 공허한 존재에 깃듭니다. /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는 엄청난 반전이 있습니다. 엿새 동안 그렇게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 애썼지만 실은 마틴이라는 남자는 이미 죽었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버립니다.

 

3. 공허를 즐기는 악

 

- 그레이엄 그린의 『브라이턴 록』

 

“아니, 그렇지 않아. 나를 봐. 이제껏 조금도 바뀌지 않았잖아? 막대 사탕 같은 거야. 어디를 깨물어도 브라이턴이라고 쓰여 있지. 그게 인간의 본성이라고.” (86)

 

- 악에 의거하여 신을 믿겠다

 

“나란 놈은 평안과 어울리지 않아. 나에겐 그런 거 믿기지 않아. 천국이란 그저 말에 지나지 않지. 지옥이야말로 믿을 만해. 머리로 그저 생각해낼 수 있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뿐,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을 것을 생각해낸다는 것은 불가능해.” (90)

 

- 경험을 거절하는 공허한 악

-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 레버퀸과 ‘그 녀석’의 대화에 드리운 나치의 그림자

 

4. 근원적인 악과 진부한 악

 

- 인간의 자유와 악에 대하여

-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원죄

 

개인의 자유롭고 순수한 행동도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생각지 못한 결과를 낳거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악행이 되기도 합니다. (101)

 

-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로 보는 신체성의 결여

- 악은 병이다

 

“완전한 무사상성 - 이는 결코 어리석음을 뜻하지 않는다 - 이것이 바로 아이히만이 그 시대 최대의 범죄자 중 한 사람이 되는 요인이었던 것이다.” (107)

 

 

3장 왜 악은 번성하는가

 

1. 역사는 악으로 넘쳐난다

 

- 밀턴의 『실락원』으로 보는 악으로 가득한 역사

- 세계적 살육의 장, 20세기

 

‘인간은 왜 서로 죽이는가’ (114)

 

2. 악의 연쇄

 

- 악을 줄이는 세 가지 요소 - 안전, 정의, 자유

에리히 프롬, 『악에 관하여(인간의 마음)』 (115)

 

- 세상을 향한 마음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19)

 

- 자아와 세상 사이의 골을 돌파하는 악?

 

도스토옙스키, 『악령』 (123)

 

3. 무엇이 악을 키우는가

 

- 자본주의는 악의 배양기인가

 

자기 자신이 세계의 일부가 아니라는 절망감, 증오, 거절당한 느낌, 허무의 심연에서 악이 싹틉니다. (126)

 

- 악과의 거래를 통해 꽃피는 자본주의 - 『꿀벌의 우화』

- 중산층의 도덕을 파괴한 자본주의

- 소세키가 간파한 ‘패망의 자본주의’

- 세계와 단절된 인간의 파괴 충동, 테러

 

 

4장 사랑은 악 앞에서 무력한가

 

1. 악과 고뇌

 

- 악이 낳은 고뇌

 

“고통 그 자체가 그(=인간)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운가’라는 외침에 대한 답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 니체, 『도덕의 계보』” (140)

 

- 루프트한자 계열 항공기 추락과 유족들의 고뇌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부조종사는 왜 비행기를 추락시킨 것일까요? ... 하지만 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입니다. 누구도 그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 이는 어디에도 제 마음을 둘 수 없는 고통입니다. ... 이 아버지 역시 아들이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영원토록 이해할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그 답은 알 수가 없습니다. (143-144)

 

2. 「욥기」의 물음

 

- 신을 향한 욥의 질문

 

이렇게까지 말하는 친구들을 더 이상 참지 못한 욥은 자신이 도대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어디가 틀렸는지 가르쳐 달라며 그들에게 항의합니다. 그러자 친구들은 그것은 신만이 아시는 일이고, 신이 시련을 주시는 거라며 달래려 하지만 욥의 질문은 차츰차츰 격렬해집니다. / 자신은 정말로 정직하고 깊은 신앙심을 가지고 살았는데 왜 이렇게 불합리한 취급을 당하는 거냐고, 왜 전지전능한 신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느냐고 말입니다. / 욥의 물음은 비단 자기 자신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신이 만들어낸 이 세상에 왜 이렇게까지 불합리한 일들이 넘쳐나는지, 그리고 신은 왜 그것들을 그냥 내버려두는지 욥은 신을 향해 거의 항의하듯이 묻습니다. (148)

 

- 납득할 수 없는 「욥기」의 신

 

「욥기」에 관한 가장 큰 의문은 왜 악마를 부추겨서까지 신은 욥을 시험하려 한 것일까 입니다.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150)

 

- ‘대답할 수 없기에’ 만연하는 악

 

3. 이해하기 힘든 사랑

 

- 욥과 같은 상황에 처한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는 특히나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로 욥과 같은 상황에 내몰리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벌레로 변해버리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도 ‘세속적인 욥’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그레고르는 왜 자신이 가족 모두에게 무시당할 정도로 추한 모습으로 변했는지 그 이유를 물라 고통스러워합니다. 이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일과 관련된 약속을 지키려한다든가 부모나 여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름의 배려를 하지만 가족들은 그저 혐오스런 시선을 보낼 뿐입니다. / 가족에게 꺼림직한 존재가 되어버린 그레고르는 머지않아 자기 고뇌의 의미조차 불확실해지고, 마지막에는 자신을 사라져야 할 존재라 여기게 됩니다. 실의에 빠진 그레고르가 죽은 날 아버지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말은 “이로써 신에게 감사할 수 있겠군”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잔혹하고 부조리한 이야기입니까. (155-156)

 

- ‘복종’은 사랑인가

- 나는 세상의 일부인가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계가 아무리 악하다 하더라도 세계와 자기 자신을 선하다 여길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 우리는 자기 자신이 세상의 일부임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책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책임이란 ‘responsibility'이므로 타자에게 응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타자가 요청하면 거기에 응답한다, 세상과 자기 안에 있는 그 모든 악과 타락을 대면하고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 / 우리는 사랑받아야만 사랑할 수 있습니다. (159)

 

4. 절망 속에서도 함께 살아간다는 것

 

- 소세키가 그린 ‘세간’

 

혁명적인 로맨티스트는 세간을 무시하고 모멸합니다. 세간 따위는 단순한 질곡에 지나지 않으니 언급할 필요도 없다며 멀리 내던지고 고매한 이상만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요. 자연주의 문학도 마찬가지로 세간을 원수처럼 취급하며 자신이 독을 품은 세간의 이빨에 얼마나 크게 상처 입었는지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는 일종의 로맨티시즘으로 결국에는 악으로 귀결되고 맙니다. 근본적으로 세계는 타락하고 만다는 저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소세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세한 일상, 아무래도 좋을 세상 사람들의 심정이나 감정 그리고 인간관계 속의 밀고 당기는 모습 등을 섬세하게 그렸습니다. 실은 바로 거기에야말로 사회가 생생하게 투영되어 있습니다. 소세키는 틀림없이 사회와 국가를 생각하기 전에 ‘세간’을 생각했습니다. (162-163)

 

- 도덕은 세간 바깥에는 없다

 

도덕이란 세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엉망진창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어 보이는 세간의 세부에 있다 (163)

 

만약 거기에 있는 것이 에고이즘, 인간 불신,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 빠진 사람들의 아수라장이라 하더라도 그 어딘가에서 사람의 정을 느끼고 그것이 도덕의 연쇄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소세키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 혁명이나 사회의 변혁이라는 말이 가끔 공허하게 들리는 까닭은 그 말에는 살아 있는 몸을 가진 인간들의 ‘세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도덕도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164)

 

- 함께 살아간다

 

악은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의 연쇄를 인간적인 연쇄로 바꿔가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세간’과 얽힌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저는 소중하게 여기려 합니다. / ... / 자신을 사랑하고 또 스스로가 이 세상과 사회의 일부라 여기며 타자를 사랑하는 법을 아는 사람은 ‘핑키’나 ‘소년 A’처럼 ‘악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저 ‘살아가겠다는 약속’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만은 틀림없을 테지요. (167-168)

 

 

에필로그

 

악이란 결국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악이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병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악은 ‘텅 빈’ 마음에 깃드는 병입니다.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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