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 공중캠프 presents 알콜토크 vol.26
: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강독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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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20년 1월 9일 ~ 3월 26일 (매주 목요일) door open 19:00 / alcohol talk 19:30 ~ 22:00
(1/23 휴강, 세미나 진행 상황에 따라 일정이 조정될 수 있습니다.)

* 장소: 공중캠프 (마포구 와우산로 150 2층)
* 진행: 최 원 (<라캉 또는 알튀세르> 저자)
* 교재: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새물결)
* 회비: 무료 (공중캠프 술/음료 주문)


[참가신청 방법] 

최원 님께 이메일( wonchoi68@hotmail.com ) 혹은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신청 마감)

(2020년 1월 9일 첫 모임 때는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될 예정이고, 교재의 1장을 읽어오시면 됩니다.)



Le Seminaire de Jacques Lacan.jpg



라캉의 열한 번 째 세미나인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1964)은 라캉이 국제정신분석협회 및 프랑스정신분석협회에서 파문 당하고, 그 동안 세미나를 진행했던 생트 안느 병원에서도 쫓겨나, 파리 고등사범학교로 옮겨와 처음으로 진행했던 세미나로, 프랑스 인문학의 최고 지성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선보이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신분석학 무엇인지를 제시했던 세미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분석에 대한 그의 근본적 생각이 체계적으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3개월 동안 이 세미나를 해부하고 퍼즐을 맞추듯이 재구성하여 이 텍스트에 대한 거의 완벽한 이해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라캉에 대한 해설서나 2차 문헌은 넘쳐 나지만, 오히려 그것들이 라캉에 대한 오해에 더 기여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세미나는 우리가 함께 라캉의 진수를 맛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 세미나를 마친 시점에서 우리는 라캉의 다른 텍스트들을 마구 누비고 다닐 수 있는 튼튼한 다리를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강독 세미나를 마친 후 지속적으로 세미나 모임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공부 주제와 세미나 방식 등에 대해서는 서로 논의하여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오래 동안 이어질 지적 우정과 배움의 기쁨을 나누는 이 자리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 자크 라캉 (Jacques Lacan, 1901.4.13 - 1981.9.9)

라깡.jpg


1903년 4월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고등사범학교에서 처음에는 철학에 몰두했으나 이후 정신병리학 등 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20년 파리 의대에 입학했고, 1932년 「인격에 관한 편집증적 정신병에 대하여De la psychose paranoiaque dans ses rapports avec la personnalite」로 박사학위를 받고 의사 자격을 얻은 이후로 평생을 정신분석가로 활동했다. 대학시절부터 초현실주의자들과 교류했으며, 1923년경 프로이트의 이론을 처음 접하게 된다. 파리의 한 유명한 서점에서 열린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최초 공개 낭독회에 참석하거나, 알렉상드르 코제브의 헤겔 강독 모임에 참가하는 등 정신분석 외에도 20세기의 다양한 지적 흐름과 교류를 계속했다.

여기서 라캉의 박사학위 논문이 처음부터 프랑스 정신분석 1세대에게 외면당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34년 파리정신분석협회SPP 회원이 되고, 처음으로 1936년 마리엔바트에서 열린 제13차 국제정신분석학회IPA 총회에 참가하여 ‘거울단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지만, 회장인 어니스트 존스의 제지로 중단되게 되는데, 이는 그의 이후 활동과 관련해서도 의미심장한 사건이었다.

프로이트 이론에 바탕을 둔 학위논문이나 ‘거울단계’ 논의 등에서 드러나는 라캉의 견해는 한마디로 ‘무의식은 하나의 언어활동으로서 구조화되어 있다’는 테제로 집약된다. 주체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면서 어느 사이에 타자가 되어 ‘타자의 욕망’을 가지고 자기를 재발견하려 한다. 이 타자로의 자기소외는 주체의 형성에 있어서 구성요건이며, 주체는 처음부터 분열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타자의 언어로의 관여를 정신분석 이론과 실천의 근원에 둔 그의 입장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정신생리학이나 자아심리학에 흡수하고자 하는 이른바 주류 정신분석과는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라캉의 주도로 1951년부터 매주 사적으로 열리던 세미나는 그가 SPP로부터 ‘파문(라캉 자신의 표현)’당한 이후 1953년부터 파리 생탄 병원에서의 공개적인 세미나로 전환되고, 그 뒤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이어진다.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이 시기 라캉의 입장은 마치 소피스트들에 맞서 제자들에게 산파술을 가르치던 소크라테스의 입장과 흡사한 것이었다. 같은 해 라캉의 가장 유명한 글 중 하나인 ‘로마 담화’가 나온 것 또한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가 독자적으로 고안한 ‘단시간의 세션’이라는 정신분석 실천의 방법을 둘러싼 갈등으로 라캉은 동료들과 함께 SPP를 떠나 SFP(프랑스정신분석학회)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1960년대에 IPA 내에서의 SFP 지위에 관한 협상이 진행되었지만, 그와 그의 동료들은 제명된다.

1963년에는 파리 프로이트 학교L'Ecole Freudienne de Paris(EFP)를 설립하고, 알튀세르와 레비-스트로스의 후원 하에 고등실천연구원EPHE이라는 프랑스 지성계의 최고 기관에 새로운 ‘기지’를 마련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의 파란 많은 지적 · 실천적 여정은 거듭되었고, 마침내 1981년 파리에서 “고집스러웠던 저는 이제 갑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남겨진 책으로는 그가 쓴 30여 편의 논문을 엮은 『에크리Ecrits』(1966)가 있으며, 40여 년간 이어온 라캉 세미나Seminaire를 책으로 펴내는 작업은 사후에도 그의 제자이자 사위인 자크-알랭 밀레Jacques-Alain Miller의 책임 하에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그의 사상은 EFP 해산 이후 다시 설립된 프로이트 대의 학교Ecole de la Cause Freudienne(ECF)에서, 그리고 밀레,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등이 참여하는 매체 『라캉주의자의 잉크lacanian ink』 등을 통해 계승되고 있다. (출처: 알라딘)



* 진행: 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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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연구자. 뉴욕주립대학교 스토니브룩 캠퍼스 철학과를 졸업한 뒤에 뉴욕의 뉴스쿨대학교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시카고의 로욜라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라캉 또는 알튀세르: 이데올로기적 반역과 반폭력의 정치를 위하여』(2016)로 제9회 일곡유인호학술상을 수상했으며,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2016), 『알튀세르 효과』(2011), 『무엇이 정의인가?』(2011) 등을 공저했고, 워런 몬탁의 『알튀세르와 그의 동시대인들: 철학의 영속적인 전쟁』(근간), 에티엔 발리바르의 『대중들의 공포: 맑스 전과 후의 정치와 철학』(공역/2007)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현대 정치철학과 정신분석학을 중심으로 연구와 번역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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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Vino Veritas! (술 속에 진리가!)" [알콜토크]는 맥주 한 잔 하면서, 느슨하고 흐릿한 기분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비정기 프리 토크 이벤트입니다. 입과 귀, 앎과 삶이 분리된 강의/세미나,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내용과 과정, 학연/가방끈주의자들의 허세와 먹물질 등을 지양합니다. 쉽게 바뀌지 않는 오래된 습관에 절망하면서, 새로운 리추얼의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입니다. (물론, 술을 원하지 않는 분은 소프트 드링크(Non-Alcoholic Drinks)를 마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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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ef History of "알콜토크"]

vol.1 2013.03.09 - 후쿠시마와 우리
vol.4 2014.03.08 - 후쿠시마와 밀양
vol.5 2015.05.02 - 세월호와 우리
vol.8 2016.01.31 - <옥상자국>
vol.12 2016.03.11 - <맨발의 겐>
vol.20 2017.03.11 - <핵의 나라 2>
vol.21 2017.07.28 - <전공투>


공중캠프

2019.12.09 10:40:24
*.223.30.211

[참가신청 오픈]

https://marxpino.tistory.com/260
https://www.facebook.com/won.choi.98/posts/3405996122774193

공중캠프

2019.12.09 12:00:32
*.223.30.211

"make revolution"?
https://youtu.be/6aqGYYBwKbQ

공중캠프

2019.12.09 22:09:40
*.131.236.200

"라캉 강독 세미나 신청하신 분들이 20명에 달했습니다. 게다가 지인들 통해 결합하실 분들도 더 있을 수 있어서 더 이상 받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신청을 마감할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최원 님)

공중캠프

2019.12.31 18:49:15
*.131.236.200

「대위 선율」

/ 아라공

네 모습은 헛되이 나와 만나니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네. 여기서 나는 네 모습을 비출 뿐
네가 나를 향해 돌아선다고 해도 내 응시의 벽에서
네가 찾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네가 꿈꾸던 너 자신의 그림자

나는 거울과도 같은 불행한 존재
비출 순 있지만 볼 수는 없다네.
나의 눈은 마치 거울처럼 텅 비어 있고 마치 거울처럼
너의 부재에 홀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네.

(『엘자에 미친 남자』, 1963)


Contre-Chant

Vainement ton image arrive à ma rencontre
Et ne m'entre où je suis qui seulement la montre
Toi te tournant vers moi tu ne saurais trouver
Au mur de mon regard que ton ombre rêvée

Je suis ce malheureux comparable aux miroirs
Qui peuvent réfléchir mais ne peuvent pas voir
Comme eux mon oeil est vide et comme eux habité
De l’absence de toi qui fait sa cécité.

– Louis Aragon, Le Fou D'Elsa (1963)


"언제가 할례식에 초대받았을 때 안-낫지는 이렇게 말했네."

(pp.33-34)

공중캠프

2020.01.02 16:38:39
*.7.19.35

자크 라캉 세미나 11
<정신분석의 네 가지 근본 개념>



1장. 파문

어떻게 해서 권한을 부여 받았는가?
순수하게 희극적인 요소
실천이란 무엇인가?
과학과 종교 사이
히스테리증자와 프로이트의 욕망


‘제가 어떻게 해서 이런 [이 주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는가?’ / 여기 계신 몇몇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저는 진정 제 인생을 다 바쳤던 직무에서 물러났습니다. / 이번에 제가 처한 난처한 상황에 대해 묵묵히 침묵만 지키고 있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해주신 그분(페르낭 브로델)의 고매한 기품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고매함이란 단어야말로 저같이 피난민 처지에 있는 사람을 환대해준 분의 태도를 가리키기에 적격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이 모든 것은 제 강의의 ‘기지(base)’, 장소적인 의미뿐 아니라 군사적인 의미에서의 기지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1-13)

1

정신분석의 토대를 이루는 것에 관해 말하자면 제 세미나는 처음부터 그것에 ‘내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3)

분명 ‘정신분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관련해선 몇 가지 애매한 점이 있습니다. ... 이 질문은 항상 박쥐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 이제 완전히 안에 있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밖에 있다고도 볼 수 없게 된 것이지요. / 즉 제 수업이라고 일컬어졌던 것이 ‘국제정신분석협회’라 불리는 국제 조직의 소위 ‘집행위원회’로부터 검열을 당했다는 건데요. 전혀 평범하지 않은 검열이었지요. 결국 제 강의를 정신분석가의 자격 부여와 관련해선 ‘무효’로 간주하며 금지해버렸고, 그 금지를 제가 속한 정신분석협회가 국제정신분석협회에 가입되는 조건으로 제시했으니 말입니다. / 그런데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정신분석가 양성에 관한 한 제 수업이 ‘두 번 다시는’ 재개되지 않을 것을 보장할 때만 가입을 받아들인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 따라서 여기서 문제는 실로 다른 분야에서라면 대파문이라 불리는 것과 비견될 만한 것입니다. 그래도 그 용어가 사용되는 분야에서는 복귀의 가능성이 없이 그것이 선포된 적이 없었습니다. / 파문이 복귀의 가능성 없이 존재하는 곳은 오직 ‘유대 예배당(synagogue)’이라는 의미심장한 상징적 용어로 지칭되는 어떤 종교 단체뿐이며, 바로 스피노자가 그 대상이었지요. 묘하게도 프로이트 탄생 200년 전인 1656년 7월 27일에 스피노자는 ‘헤렘(kherem)’, 즉 대파문에 준하는 파문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얼마 뒤 그는 ‘샴마타(chammata)’의 대상이 됩니다. 즉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다는 조항이 추가되었지요. / 여러분도 곧 아시게 되겠지만 제 생각에 그러한 사실[파문]은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방향뿐 아니라 그것이 함축하고 있는 구조 때문에도 정신분석 실천에 대한 우리의 문제제기에 핵심적인 어떤 것을 끌어들입니다. (14-15)

저는 이 우회로에 담긴 어마어마한 희극적 차원에 속하는 무언가를 간과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 희극적 차원은 앞서 제가 파문이라 부른 수준에서 벌어졌던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지난 2년간 제가 처해 있던 상황에서 유래합니다. 즉 저는 다름 아닌 저의 동료나 제자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에 의해 제가 ‘거래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겁니다. / 문제의 핵심은 과연 어떤 잣대에 의해, 분석가 자격을 부여하는 제 수업의 가치에 관한 양해가 다른 한편 그렇게 해서 취득되는 협회의 국제적인 자격과 맞교환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었기 때문이지요. / 제 생각에 이것은 오직 정신분석가에 의해서만 제대로 파악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인간의 존엄성이니 인권이니 하고 떠들어대는 것과는 정반대로 인간 주체가 거래의 대상이 되는 일이 그렇게 보기 드문 상황은 아닐 겁니다. (16-17)

그러나 분석을 통해 잘 드러나듯 주체의 진실은 이 주체가 주인의 입장에 있을 때조차 주체 자신이 아니라 대상 속에, 본성상 베일 속에 감춰져 있는 대상 속이 있습니다. 바로 이 대상을 불쑥 드러나게 하는 일이야말로 순수하게 희극적인 것의 기본이 되겠지요. / 특히 저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대한 산 증인이라는 위치에서 그렇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 내부의 위치에서 저는 이러한 희극적 차원이 지극히 근거 있는 것임을 여러분에게 증언할 수 있습니다. 저는 분석적 관점에서 희극적 차원이 충분히 체험 가능한 것이며, 심지어 그러한 차원을 지각함으로써 그것을 뛰어넘게 되는 어떤 방식을 통해서도, 다시 말해 유머 - 유머란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보면 희극적인 것에 대한 인정에 불과합니다 - 라는 관점에서도 충분히 체험 가능한 것임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17-18)

이러한 지적은 제가 정신분석의 토대와 관련해 제시하는 것에서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실제로 ‘토대’라는 말은 하나 이상의 의미가 담긴 중의적인 용어입니다. 이 말이 신이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 중의 하나를 가리킨다는 점을 환기시키기 위해 굳이 카발라를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요. 카발라에서 그러한 방식은 정확히 pudendum(치부)과 동일시됩니다. ... 아마 여기서 토대는 ‘밑바닥[내막](dessous)’이라는 형태를 띠게 되겠지요. / 여기서 추문거리가 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우리는 ‘교육 분석’ - 정신분석에 관한 모든 출판물에서 아주 모호한 상태로 방치되어온 바로 그 실천 또는 그러한 실천의 단계 - 이라 불리는 것을 좀더 명확하게 파악하고, 또 그것의 목적과 한계와 효과를 조명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이제 더 이상 pudendum의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바로 정신분석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기대해야 하는지를, 또 걸림돌이나 실패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18)

바로 이런 이유에서 저는 여기서 조금의 가감도 없이 [파문이라는] 한 가지 ‘사실’을 하나의 대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 ‘사실’의 윤곽과 함께 그것을 어떤 식으로 다룰 수 있는지를 좀더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 ‘사실’을, 여러분에게 넓은 의미에서 ‘정신분석의 토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지금 제가 논의해야 할 것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겁니다. 그 질문은 결국 ‘정신분석을 실천으로 정초짓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될 겁니다. (19)

2

실천이란 무엇일까요? ... 실천이란 그것이 무엇이건 상징적인 것을 통해 실재적인 것을 다룰 수 있도록 인간에 의해 의도된 행동을 가리키는 매우 포괄적인 용어이지요. 그 가운데 다소 상상적인 것을 만나게 된다는 사실은 부차적인 가치밖에 없습니다. / 저는 제가 문제에 접근하기 위해 염두에 둔 두 가지 용어를 별다른 이행 과정 없이 소개하면서도 먼저 이렇게 단언하고 싶습니다. 제가 여기에, 이 강의실에, 이러한 장소에 이렇게 많은 청중 앞에 선 것은 저 자신에게 ‘정신분석이 하나의 과학인지’를 묻고 그것을 여러분과 함께 검토하기 위해서라고 말입니다. / 정신분석과 관련해 참조되는 또다른 것으로는 종교가 있는데, ... 종교와 과학, ... 정신분석은 우리가 두 용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조명해줄 수 있습니다. (19-20)

저는 탐구(recherche)라는 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 개인적으로 저는 한 번도 저 자신이 탐구자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 피카소의 말처럼 “저는 찾지 않습니다. 저는 발견합니다.” / 게다가 소위 과학적 탐구의 장에는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두 개의 영역, 즉 탐구의 영역과 발견의 영역이 있습니다. / 특이하게도 이는 과학이라 규정될 수 있는 것에서 아주 잘 구획되어 있는 어떤 경계선(인간 과학/자연 과학)과 일치합니다. 여하튼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탐구와 종교적인 영역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습니다. 종교적인 영역에서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이미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나를 찾으려 할 수도 없을 것이다.” / 인간과학에서는 ‘해석학적 요구’라 부를 수 있는 것이 모든 발견자의 발걸음 밑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인데요. 이는 바로 탐구에 대한 요구입니다. 항상 새로우면서도 결코 다 헤아릴 수 없는, 그러나 다 자라기도 전에 발견자에 의해 베어질 위험이 있는 의미효과(signification)를 탐구하려는 요구이지요. / 많은 식자들이 해석학이 제시하는 바와 같은 의미효과의 발달 경로를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해석’과 혼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1)

과학을 특징짓는 것은 그것이 하나의 대상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과학은 적어도 ‘실험[경험]’이라 불리는 어떤 재생 가능한 차원의 조작에 의해 한정되어 있는 하나의 대상을 통해 규정된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섣불리 단정하진 말아야 하는데, 왜냐하면 이 대상은 특이하게도 과학이 진화함에 따라 변화를 겪기 때문입니다. / 이렇게 지적한다면 아마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전술상으로라도 후퇴한 다음 다시 실천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실천이 하나의 장을 규정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우리는 만물박사라곤 할 수 없는 현대 과학자가 규정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실천에 의해 규정되는] 장의 수준에서가 아닌지를 자문해야 합니다. / 저는 모든 과학이 하나의 통일된 체계, 소위 세계라는 체계에 의거해야 된다는 뒤엠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 과학의 나무가 하나의 줄기만을 가질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고 많은 줄기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21-22)

그러나 어떤 실천의 장으로 이해된 실험[경험]이라는 개념에만 머무는 것으로는 과학을 정의하기에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그러한 정의는 가령 신비 체험[경험]에도 아주 훌륭하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연금술은 결국 과학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즉 [연금술에서는] 조작자의 영혼이 지닌 순수성이야말로 그 자체로, 그리고 그 이름에 걸맞게 사태의 본질적인 요소였던 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이러한 지적은 부차적인 게 아닙니다. 정신분석이라는 연금술에서 분석가의 현존과 관련해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면서, 아마도 우리의 교육 분석이 추구하는 게 그런 것이 아니냐는, 더군다나 제가 최근 강의들에서 온갖 방법을 동원해 그리고 극히 공개적인 방식으로 분석가의 욕망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물음으로 저 핵심적인 지점을 겨냥해 이야기한 것도 그와 똑같은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올 법도 하니 말입니다. (23-24)

3

분석을 올바르게 수행하기 위해선 분석가의 욕망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이 질문을 우리의 장의 경계선 밖에 내버려둬도 좋을까요? 과학, 가장 확실하다고 하는 유형의 현대 과학들에선 실제로 이러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고 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24)

농업은 과학인가 ... 이 질문에 대해 어떤 이는 그렇다고 대답할 테고, 또 어떤 이는 아니라고 대답할 겁니다. 이러한 예를 든 이유는 다름 아니라 여러분이 그래도 하나의 대상에 의해 규정되는 농학과 하나의 장에 의해 규정되는 농학을, 즉 농기술(agriculture)과 농과학(agronomie)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싶어서입니다. 이를 토대로 저는 하나의 확실한 차원, 즉 ‘공식화’의 차원을 등장시킬 수 있습니다. 공식화만으로 과학의 조건을 정의하기에 충분할까요? 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가짜 과학도 진짜 과학처럼 공식화될 수 있겠지요. / 정신분석에서 공식은 무엇에 관한 것일까요? 무엇이 대상의 미끄러짐을 초래하고 그것이 변주되게 만드는 걸까요?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정신분석 개념이라는 게 있을까요? 프로이트가 분석 경험을 구조화하기 위해 제안한 용어들이 마치 종교처럼 고수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 그러한 몸통, 버팀대, 기둥이 없다면 도대체 우리의 실천을 어디에 정박시킬 수 있을까요? 문제의 관건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념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들은 형성 중인 개념일까요? 발전하고 운동하는 개념, 재고되어야 하는 개념일까요? / 여전히 프로이트의 개념들을 이해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며, 그 개념들 중 대부분은 왜곡되고 변질되고 단편화되었고, 지나치게 난해한 개념들은 그대로 폐기되어버렸지요. 하나의 사례에서 이론의 변별적 특질을 찾아내 그것으로 왜 당신 딸이 말을 하지 않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신분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핵심은 ‘그녀가 말하게’ 하는 것이며, 이러한 효과는 변별적 특질을 참조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한 유형의 어떤 개입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24-26)

히스테리증자의 변별적 특질은 정확히 ... 말하는 운동 자체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구성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프로이트가 바로 이 [히스테리증자라는] 입구를 통해 사실상 욕망과 언어의 관계라고 할 수 있는 것 속으로 들어가 무의식의 메커니즘을 발견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 프로이트에게 욕망과 언어의 관계가 베일 속에 감춰져 있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일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욕망과 언어의 관계를 완전히 해명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 또한, 히스테리는 우리로 하여금 분석이 지니고 있는 원죄의 흔적과 대면케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아마도 진정한 원죄란 하나밖에 없을 텐데요. 바로 프로이트 자신의 욕망입니다. 즉 프로이트 속의 어떤 것이 전혀 분석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 제가 아버지의-이름들(Noms-du-Pere)에 대해 말하려 했던 것은 사실 다름 아니라 오로지 기원을 문제 삼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프로이트의 욕망은 도대체 어떤 특권을 갖고 있었기에 그가 무의식이라 부른 경험의 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 하고 말이지요. / 분석을 바로 세우려면 이러한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 어찌되었건 분석 경험의 장을 탐사하는 이 같은 방식은 다음번 강의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따라 인도될 겁니다. 프로이트가 근본 개념으로 도입한 용어 중 다음 네 가지, 즉 ‘무의식’, ‘반복’, ‘전이’, ‘충동’에 어떤 개념적 지위를 부여해야 하는가? / 올해는 1시 40분에 강의를 끝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급하지 않은 분들은 잠시 남아서 제 강의를 들으며 품었던 의문에 대해 질문을 할 수 있도록 말이죠. (26-28)

공중캠프

2020.01.17 10:44:00
*.223.15.84

무의식과 반복


2장.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우리의 무의식

야생의 사고
잘못된 것에만 원인이 있다
간극, 헛디딤, 발견, 상실
불연속성
시뇨렐리


「대위 선율」

/ 아라공

네 모습은 헛되이 나와 만나니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네. 여기서 나는 네 모습을 비출 뿐
네가 나를 향해 돌아선다고 해도 내 응시의 벽에서
네가 찾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네가 꿈꾸던 너 자신의 그림자

나는 거울과도 같은 불행한 존재
비출 순 있지만 볼 수는 없다네.
나의 눈은 마치 거울처럼 텅 비어 있고 마치 거울처럼
너의 부재에 홀려 아무것도 보지 못하네.

(『엘자에 미친 남자』, 1963)


Contre-Chant

Vainement ton image arrive à ma rencontre
Et ne m'entre où je suis qui seulement la montre
Toi te tournant vers moi tu ne saurais trouver
Au mur de mon regard que ton ombre rêvée

Je suis ce malheureux comparable aux miroirs
Qui peuvent réfléchir mais ne peuvent pas voir
Comme eux mon oeil est vide et comme eux habité
De l’absence de toi qui fait sa cécité.

– Louis Aragon, Le Fou D'Elsa (1963)


"언제가 할례식에 초대받았을 때 안-낫지는 이렇게 말했네."

이 시를 그 중단된 [작년] 세미나에, 그 때 개진된 불안과 대상 a의 기능에 대한 논의에 몇몇 분들이 품고 있을 향수에 바치는 바입니다. / ‘마이너스-파이[(-φ)]’의 중심적인 상징적 기능에 대상 a의 다양한 형태들이 상응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33-34)

1

몇 해에 걸친 제 모든 노력은 분석가들이 ‘말(parole)’이라는 도구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것이었음을 그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말에 본래의 존엄성을 되돌려주기 위해, 그리고 그들이 말을 미리부터 무시하고 그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분석 작업의 준거를 다른 데서 찾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 또 다른 것을 하나 더 비판해보자면, 이곳에서라면 분명 좀 더 속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으로서, 제가 개념에 대한 거부 반응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을 거론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이미, 첫시간 말미에 언급했듯이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프로이트의 주요 개념들 - 말 그대로 그러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으로서 제가 선별한 네 개의 개념들 - 을 소개하려는 겁니다. (34-35)

그 중 처음 두 가지는 무의식과 반복입니다. ... 전이 개념은 우리를 분석 실천을 위해, 특히 진정한 분석 기술을 완성하기 위해 마땅히 개진되어야 할 알고리즘들로 곧장 인도하게 될 겁니다. 충동은 여전히 접근하기 까다로운 개념이며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 미개척된 개념이기에, 올해는 전이를 살펴본 후에야 비로소 접근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그렇다고 해서 충동 개념에 대한 접근이 안고 있는 불안정하고 난처한 측면을 축소시키지는 않을 겁니다. 불충분하고 빈약한 준거들만 믿고 무턱대고 덤벼드는 이들과는 분명 다르게 접근할 겁니다. (35-36)

현실을 포착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 실제로 그 현실에 대한 접근을 본뜬 것이라면, 개념의 완전한 실현은 오직 도약, 즉 극한으로의 이행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 칠판 끝에 적어놓은 다른 두 개의 용어는 ‘주체(sujet)’와 ‘실재(le réel)’입니다. ... 지난 시간에 우리는 역설적이고 특이하며 모순적인 측면을 가진 정신분석이 과학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는지, 그것이 과학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는지 질문을 제기한 바 있지요. (36)

2

여기 계신 대부분의 분들은 제가 제시했던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명제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계실 겁니다. ... 저는 이 명제를 명백히 과학적이라 할 수 있는 수준에서 구체화된 어떤 것, 즉 레비스트로스가 ‘야생의 사고’라는 제목을 붙여 탐색하고 구조화하고 연구했던 장을 통해 설명해볼까 합니다. / 모든 경험 이전에, 모든 개별적 연역 이전에, 심지어는 사회적 욕구로 귀결될 수 있는 집단적 경험들이 새겨지기 이전에 무언가가 이 장을 조직하고 그것의 최초의 역선(力線)들을 그어놓습니다. 이것이 레비스트로스가 토템 기능의 진리로서 보여주었던 기능, 토템 기능의 [다양한] 외관을 축약시키는 [진리의] 기능, 바로 일차적인 분류 기능입니다. / 이를테면 자연은 시니피앙들을 제공하며 이 시니피앙들은 창시적인 방식으로 인간관계를 조직하고 그것에 구조와 모델을 부여합니다. /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여기서 주체가 구성되기 전에, 즉 사유하는 주체, 스스로를 사유하는 주체로 간주하는 주체가 구성되기 전에, 그것이 셈을 하면서 셈해지고, 그리하여 그 셈 속에서 셈하는 자가 이미 포함되어 있는 심급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주체는 거기서 자신을 계산하는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나에게는 세 명의 형제가 있어요. ... 폴, 에르네스트, 아 이렇게 말이죠”라는 한 꼬마의 말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던 지능지수 검사관의 순진한 실수를 다시금 떠올려봅시다. (37-38)

오늘날 우리는 인문과학으로 분류될 수 있지만 여타 심리-사회학과는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는 하나의 학문이 형성되고 있는 역사적 시기에 있습니다. 바로 언어학을 말하는 것인데, 그것은 전前주체적인 방식으로 저 혼자 자발적으로 작동하는 조합 작용을 모델로 삼습니다. 무의식에 본연의 위상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구조입니다. 어쨌든 이 구조가 무의식이라는 명칭 아래 무언인가가 규정될 수 있고 접근 가능하며 객관화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지요. (38)

오늘 제가 참조점으로 삼게 될 것은 바로 원인(cause) 기능입니다. / 만약 이성의 준칙, Vernunftsregel이 항상 어떤 비교, Vergleichung이나 등가성이라면 원인은 결국 분석될 수 없는 개념, 이성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개념이 되며 원인의 기능에는 본질적으로 어떤 ‘간극(béance)’이 남아 있게 된다. 칸트, 『부정량 개념에 대한 시론』, 『프롤레고메나』 (39)

원인은 ‘법칙(loi)’과 구분됩니다. 법칙은 하나의 연쇄 속에서 결정 작용을 수행하는 어떤 것이지요. 가령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을 생각해봅시다. 여기서는 [각 항들이] 하나로 이어져 있을 뿐이라고 할 수도 있지요. 하나는 다른 하나가 없으면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물체가 땅에 떨어져 으깨졌다고 칩시다. 그 물체의 활력의 대가로 되돌려받은 것의 원인은 그 물체의 질량이 아닙니다. 질량은 오히려, 반동 효과를 통해 물체로 되돌아가 그것을 으깨버린 그 활력에 통합되어 있는 것이지요. 최후의 순간이 아니라면 여기에는 어떤 간극도 없는 셈이지요. / 반면 원인에 대해 말할 때 거기에는 언제나 반反개념적이고 규정되지 않은 무언가가 있습니다. 달의 상相은 조수의 원인입니다. 마찬가지로 장독臟毒은 고열의 원인입니다. ... [원인이라는 표현이 쓰이는 경우] 거기에는 어떤 구멍이 있고 그 틈새로 무언가가 흔들릴 뿐이지요. 요컨대 뭔가 잘못된[절뚝거리는] 것에만 원인이 있다는 겁니다. / 무의식은 우리에게 간극을 보여주며 신경증은 바로 이 간극을 통해, 결정될 수 없는 어떤 실재에 다시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원인에 특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구멍, 틈새, 간극 속에서 그는 무엇을 발견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실현되지 않은 것(non-réalisé)’의 차원에 속하는 어떤 것입니다. (40-41)

처음에 무의식은 우리에게 ‘태어나지 않은 것’의 영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떤 것으로 나타납니다. 억압이 그러한 영역 속에 무엇인가를 쏟아붓는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는 낙태전문 산파와 림보의 관계와 같은 것입니다. / 분석가가 누군가에게 있는 악령들을 미처 빛이 있는 곳으로 끌어내지 못한 채 그들의 세계를 환기시켰다면, 아마도 그 분석가는 그 누군가에 의해 ‘실재적으로’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될 겁니다. 이 경우 위험성이 전혀 없는 담화는 없습니다. ... 심지어 어떤 공적인 담화일지라도 그것이 주체들을 겨냥하고 프로이트가 배꼽 - 그가 궁극적으로 꿈의 미지의 중심을 지칭하기 위해 쓴 용어인 ‘꿈의 배꼽(nombril des rêves)’ - 이라 불렀던 것을 명중시키게 된다면 어떤 효과가 없진 않을 겁니다. 해부학적 배꼽이 그러하듯 그것은 바로 앞에서 언급된 간극을 가리킵니다. (41-42)

사실 프로이트가 정확히 예견했듯이, 제가 환기하고 있는 이러한 차원의 무의식은 ‘망각되어 버렸습니다’. 2세대, 3세대 분석가들이 분석 이론을 심리학화하면서 그러한 간극을 봉해버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정형외과의로 열심히 활동해준 덕분에 무의식은 자신의 메시지를 닫아버렸습니다. / 제가 오직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그 간극을 다시 열어 보이리라는 것을 믿고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42)

3

물론 이 시대, 이 시점, 지금의 저는 원인과 관련해 이러한 간극이 발생하는 지점에 시니피앙의 법칙을 도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정신분석에서 중요한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프로이트가 무의식 개념을 고안하기 위해 거쳤던 다양한 시기들에 따라 그 개념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 프로이트적 무의식은 결코 상상력이 빚어낸 낭만주의적 무의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밤의 신령들이 지배하는 장소가 아니지요. ... 프로이트가 낭만주의적 무의식의 용어들을 이어받은 융을 파문했다는 사실은 정신분석이 그와는 전혀 다른 것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을 충분히 시사해줍니다. (42-43)

무의식을 원초적인 것으로 간주된 어떤 불투명한 의지, 많건 적건 언제나 의식 이전의 것과 연관시키는 이 모든 관념들에 반해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수준에는 주체의 수준에서 일어나는 것과 전적으로 동일한 무언가가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의식도 의식의 수준만큼이나 정교한 방식으로 말하고 기능한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의식은 자신의 특권처럼 보였던 것을 잃고 맙니다. /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현상이라고 제시한 것의 작동 방식... 꿈, 실수 행위, 재담 등에서 제일 먼저 우리의 주의를 끄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이 모든 것들이 어떤 헛디딤(achoppement)이란 양상 아래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43-44)

헛디딤, 실패, 균열. 말해진 문장이든 쓰인 문장이든 그 속에서 무언가가 발을 헛디디게 됩니다. / 프로이트는 이러한 현상들에 이끌려 바로 그곳에서 무의식을 찾게 되지요. 거기서는 다른 무언가가 자신이 실현되기를 요구하는데, 그것은 분명 의도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떤 기이한 시간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 간극에서 발생하는 것은 ‘발견(trouvaille)’처럼 나타납니다. / 우리를 동요시키는[적중시키는] 알 수 없는 무언가... 그것은 바로 ‘뜻밖의 것(surprise)’입니다. 주체는 ‘뜻밖의 것’에 압도당함을 느끼며, 거기서 자신이 기대한 것보다 더 많으면서 동시에 더 적은, 그러나 어쨌거나 자신이 기대한 것에 비해 독특한 어떤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44-45)

그런데 이러한 발견(물)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것은 곧 재발견이 되어버립니다. 게다가 그것은 상실의 차원을 수립하면서 항상 다시 사라질 준비가 되어 있지요. / 이는 오르페우스가 두 번이나 잃고 마는 에우리디케와 비유할 수 있는데, 이것은 분석가 오르페우스와 무의식의 관계에 대해 신화 속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이미지라 할 수 있습니다. / 바로 이런 점에서 무의식은 사랑 속에서 일어나는 것과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사랑은 언제나 둘도 없이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말은 “하나를 잃으면 열을 되찾는다”입니다. (45)

불연속성은 무의식이 처음에 현상으로 가시화될 때 나타나는 본질적인 형태입니다 - 이러한 불연속성 속에서는 무엇인가가 흔들리는 것으로서 나타납니다. / 불연속성에 대해 ‘하나(un)’가 선행할까요? ... 최근 몇 년 동안 저는 줄곧 이 완결된 ‘하나’를 요구하지 말라고 가르쳐왔습니다. 이 완결된 ‘하나’는 거짓된 통일성의 지배를 받는다고 가정되는 일종의 유기체의 분신, [육체의] 외피로서의 심리 작용을 언급할 때 붙어 다니는 환영일 뿐이지요. 무의식의 경험이 도입하는 ‘하나’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균열, 자취, 결렬의 ‘하나’일 뿐이라는 저의 주장에 여러분도 동의하시게 될 겁니다. /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의 한 가지 몰인식된 형태인 Unbewußte(무의식)의 Un이 불현듯 나타납니다. Unbewußte의 한계, 그것은 Unbegriff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이는 Unbegriff가 비개념이 아니라 결여의 개념이란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45-46)

그렇다면 그 밑바탕은 무엇일까요? 부재일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결렬, 균열, 열림의 흔적이 부재를 나타나게 하지요. 외침이 침묵을 배경으로 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외침 때문에 침묵이 침묵으로서 솟아나듯 말입니다. / 이 최초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무의식과 관련해 가령 ‘무의식은 담화의 소실이 욕망과 결부되는 수준에서 자신의 역사 속에서 소외된 추체이다’라는 식의 이런저런 부분적인 시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 무의식은 어떤 존재의 수준, 하지만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는 한에서의 어떤 존재의 수준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 주의식이 하나하나의 문장과 화법에 따라 재발견되지만 그만큼 다시 사라져버린다는 점에서, 그리고 감탄문, 명령문, 기원문, 심지어는 말실수 속에서도 항상 자신의 수수께끼를 던지면서 말을 건넨다는 점에서 그 무의식이 위치하는 곳은 바로 언표 행위의 수준입니다. 프로이트가 꿈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무의식은 요컨대 그 속에서 꽃피워진 모든 것이 균사체처럼 하나의 중심점을 놓고 퍼져나가는 수준에 있습니다. 언제나 문제의 관건은 결정되지 않은 것으로서의 주체인 것입니다. (46)

Oblivium(망각)은 장음 e가 있는 lèvis입니다. lèvis란 매끄럽고 평탄하며 반들거린다는 뜻이지요. Oblivium, 그것은 무언가를 지우는 것입니다. 무엇을 지우는 것일까요? 바로 시니피앙 자체를 지우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조작적인 방식을 통해 무언가로 하여금 다른 것을 빗금 치고 삭제하는 기능을 맡도록 만드는 기본적인 구조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이는 좀 더 나중에 나타나게 될 억압보다 구조적으로 더 근원적인 수준에서 일어나는 삭제입니다. 자, 그런데 삭제를 수행하는 이러한 요소가 바로 프로이트가 처음부터 검열 기능에 대해 말할 때 염두에 두었던 것입니다. / 그것은 가위로 잘라내는 것입니다. “아무개씨 부부는 기쁨에 가득 차서 자유와 같이 아름다운 아기의 탄생을 여러분에게 알리게 되었다”라는 구절에서 검열을 맡았던 호프만 박사는 ‘자유’라는 단어를 지워버립니다. (47)

여지껏 한 번도 제대로 활용된 바 없는 예를 한 가지 들어봅시다. 이는 프로이트가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했던 첫 번째 예로서 그가 오르비에토 대성당에 있는 회화들을 관람한 후에 ‘시뇨렐리(Signorelli)’라는 단어를 잊어버린 기억 장애에 대한 것이지요. 어떻게 여기서 사라짐, 제거, Unterdrückung, 즉 밑으로의 내리눌림이 은유가 아닌 현실로서 텍스트 자체에서 솟아나와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할 수 있을까요? ... 언젠가 제가 말한 적이 있는 절대 주인, 즉 죽음이 거기서 사라져버리지요. 그런데 또한 우리는 이 모든 것의 이면에서 프로이트가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신화들 속에서 자기 욕망에 대한 조율을 발견할 수밖에 없게 되는 모든 계기가 드러남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 그는 자신의 신화 속에서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게 된다는 점에서 니체와 의견을 같이 합니다. ... ‘신은 죽었다’는 신화는 아마도 거세 위협에 대항해 찾아낸 안식처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 만약 오르비에토 대성당의 묵시록적인 벽화들을 읽을 줄 안다면, 여러분은 거기서 거세의 위협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47-48)

그리하여 주체의 절단[단절]이 프로이트가 욕망 - 우리는 잠정적으로 이 욕망을 문제의 담화 속에서 주체로 하여금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스스로를 포착하게 만드는 발가벗은[훤히 드러난] 환유 속에 위치시킬 수 있을 겁니다 - 과 동일한 것이라 생각했던 어떤 발견[물]이 불쑥 다시 튀어오르는 지점이라면, 무의식은 항상 바로 이러한 주체의 절단[단절] 속에서 동요하는 무엇으로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48)

프로이트 그리고 그와 아버지의 관계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그가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남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그 문제를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여자들 중 한 명에게 털어놓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여자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문제였지요. 그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 프로이트는 만약 히스테리라는 형태로 타자에게 헌신하지 않았다면, 분명 감탄할 만한, 열렬한 이상주의자가 되었을 겁니다. (49)

공중캠프

2020.01.17 15:44:42
*.223.15.84

L’orientation lacanienne: le cours de Jacques-Alain Miller
http://jonathanleroy.be/2016/02/orientation-lacanienne-jacques-alain-miller/

공중캠프

2020.01.17 17:45:33
*.223.15.84

백상현, 라캉 세미나11_강해_수업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HxjjIQyVOtusQjW_r9xj4YGS2Zwyn4SV

라캉 정신분석 강의_ 무의식의 시간_ 세미나11의 독해 수업 (철학, 심리학, 인문학)
https://youtu.be/wkRG0oQadJo

Lacanian Praxis Institute
https://www.lacanpi.com/

공중캠프

2020.01.22 16:13:20
*.223.27.28

3장. 확실성의 주체에 관하여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욕망의 유한성
달아나는 것
무의식의 위상은 윤리적인 것이다
이론 속의 모든 것은 재구성되어야 한다
데카르트주의자로서의 프로이트
히스테리증자의 욕망


무의식 기능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은 간극이기 때문에, 저는 그 간극을 통해 무의식 기능을 소개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간극의 핵심이란 바로 어떤 존재론적인 기능이라는 점에서, 그의 질문은 특히나 시기적절한 것이었습니다. (52)


1

무의식의 간극, 우리는 그것을 ‘전前존재론적’이라 말할 수 있을 겁니다. ... 무의식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 실현되지 않은 것 / “천상의 힘들을 꺽을 수 없다면 저승을 움직이련다(Flectere si nequeo superos Acheronta movebo).” ... 지옥을 여는 것이라 선포되었던 것이 이후 그토록 보란 듯이 무균처리 되어버렸다는 점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52-53)

무의식에 대한 우리의 연구 성과는 일종의 건조 과정 쪽으로, 식물 도감 - 오로지 이미 체계적으로 목록화된 영역이나 자연 그대로를 표방했던 어떤 분류법 안에서만 표본을 수집한 식물 도감 - 으로의 환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전통 심리학의 영역에서는 신이 인간의 욕망에 남긴 것이라 생각되는 그 뭔지 모를 자취를 보면서 인간 욕망이 통제 불가능하며 무한한 것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지만, 분석 경험이 확인시켜주는 것은 오히려 욕망의 유한한 기능입니다. 인간의 그 어떤 가능성보다도 더 어딘가에서 한계지어져 있는 것이 바로 욕망입니다. (53-54)

쾌락이란 인간의 가능성을 제한합니다. 다시 말해 쾌락원칙은 항상성의 원리이지요. 반면 욕망은 자신의 경계선, 자신의 고정된 간계, 자신의 한계에 맞닥뜨리게 됩니다. 욕망은 바로 그러한 한계와의 관계 속에서, 쾌락원칙에 의해 부과된 문턱을 넘으면서 욕망으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54)

무의식의 기능에서 존재적인 것은 틈새(fente)입니다. 이 틈새 사이로 무엇인가가 순간적으로 환하게 드러나지요. / 무의식을 정의하는 수준 자체에서 우리는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순이나 시공간적 배치뿐 아니라 시간의 작용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54-55)

그런데 욕망은 그것이 과거의 이미지를 통해 지탱하고 있는 것을 항상 일순간의 한정된 미래로 실어나르기만 할 뿐인데도, 프로이트는 그런 욕망을 ‘불멸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 만약 불멸하는 욕망이 시간을 벗어난다면, 그것은 사물들의 질서 중에서 어떤 영역에 속하는 것일까요? ... 우리는 여기서 지속(durée)이라고 하는 사물의 실질적 시간 이외에 또다른 양태의 시간을, 즉 논리적 시간을 구별해낼 수 있을까요? (55)

바로 그 틈새가 일으키는 맥동脈動 운동의 절분된(scandé) 구조를 여기서 다시 발견하게 됩니다. 사라지면서 출현하는 것(apparition évanouissante)은 논리적 시간의 시작과 끝이라는 두 지점 사이에서, 즉 직관 자체로부터 무언가가 항상 생략되고 상실되기까지 하는 순간인 보는 순간과, 무의식이 완전히 손에 붙잡히지 않고 항상 미끼에 속았다는 듯이 되돌아서 빠져 나가버리는 순간 사이에서 이뤄지지요. / 따라서 존재의 수준에서 볼 때 무의식은 달아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의식을 하나의 구조, 그것도 시간적인 구조 속에서 파악하기에 이르렀는데, 그러한 구조는 지금껏 한 번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구조로서 해명된 적이 없었다고 말해도 좋을 겁니다. (55-56)

2

프로이트 이후의 분석 경험이 간극 속에서 출현하는 것에 대해 보여주었던 것은 그것을 경시하는 태도였습니다.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의 한 전환부에서 사용한 비유를 빌려 말하자면, 우리는 그 간극에서 나온 악령에게 “피를 공급해주지” 않았던 것이지요. (56)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반복 개념은 전이 개념과 완전히 무관하다는 점입니다. / 무의식이 좀처럼 포착되지 않는 견고하지 못한(inconsistant) 존재라는 위상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그것을 발견한 사람의 행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 제가 존재의 수준에서는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한 무의식의 위상, 그것은 윤리적인 것입니다. (57)

프로이트는 ... 무의식의 일렁이는 무늬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 “아버지, 제가 불타고 있는 게 안 보이세요?” ... 아들은 무엇에 의해 불타고 있는 것일까요?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결부시킨 햄릿 신화 속에서 망령이 짊어진 아버지의 죄악의 무게[가책]에 의해서가 아닐까요? 아버지, 아버지의-이름은 법의 구조를 가지고 욕망의 구조를 지탱하지요. 하지만 키에르케고르가 지적했듯이 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은 곧 아버지의 죄악입니다. (58-59)

햄릿의 망령이 등장하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아버지가 자신의 죄악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불의에 목숨을 잃게 되었음을 스스로 밝히는 곳, 그리고 아들의 욕망을 존속케 할 법의 금지들을 햄릿에게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아버지 자신이 그렇게 지나치게 이상적인 아버지[라는 역할]에 대해 마 순간 깊은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 스스로 드러내는 곳이 아닐까요? / 사실 거기서 중심 용어는 진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Gewißheit, 즉 확실성입니다. 프로이트의 행보는 확실성의 주체를 토대로 해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데카르트적입니다. (59-60)

실제로 겪었던 것과 이야기되는 것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존재한다면 어느 누가 주체가 하는 꿈 이야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 그런데 의심은 바로 프로이트에게 확실성의 근거입니다. / 즉 의심 자체는 무언가 지켜야[숨겨야] 할 것이 있음을 뜻하는 기호라는 것입니다. 의심은 저항의 기호인 셈이지요. (60-61)

프로이트는 자신이 의심하는 바로 그곳에 - 왜냐하면 결국 그것은 ‘그의’ 꿈이며, 처음에 의심을 품었던 것도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 무의식적이라 할 어떤 생각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했지요. 무의식적이라 함은 그 생각이 부재자로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을 뜻합니다. ... 프로이트는 조금이라도 누군가가 자기 대신 [자기 자리에서] 사유를 하고 있다면 - 바로 여기에 도약이 있는 것이지요 - 그러한 사유가 이를테면 그것 자체만의 “나는 존재한다”와 함께 그곳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61-62)

바로 여기서 프로이트와 데카르트 사이의 비대칭성이 드러납니다. ... 비대칭은 프로이트에게선 주체가 거처하는 곳이 바로 그 무의식의 장이라는 데 있지요. 프로이트가 세상을 변혁시킬 만큼의 진보를 완수해낸 것은 그가 [주체가 거처하는 곳으로서의] 그 무의식의 장의 확실성을 단언했기 때문입니다. / 데카르트의 경우 ... 기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진리의 토대를 보증해줄 수 있는 어떤 타자, ... 완전한 신이라고 할 타자의 손에 진리를 되돌려줌으로써... 진리는 타자의 소관이 되는데, 왜냐하면 타자가 무엇을 말하려 했건 그것은 언제나 진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2+2는 5라고 해도 그것은 진리인 겁니다. /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기하학을 해석학으로 변형시키는 대수학의 소문자들을 가지고 놀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겠지요. 이제 우리에게 집합론으로의 문이 열린 것이며 모든 것이 진리의 가설로서 허용된다는 겁니다. (62-63)

데카르트는 ... 주체가 이전의 모든 지식을 폐기한 확실성의 주체라는 것밖에 알지 못했지요. 하지만 프로이트 덕분에 우리는 무의식의 주체가 자신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그가 확실성을 얻기 이전부터 사유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63)

3

제가 지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제부터 주체의 상관항은 더 이상 속이는 타자가 아니라 속는 타자라는 사실입니다. ... 주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이 우리[분석가]를 속일 수 있으며 잘못된 길로 들어서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우리[분석가]가 속을 수 있다[틀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 “하지만 우리를 지고의 진실로, 신적인 진리로 이끌어준다고 하는 그 잘난 무의식은 어디에 있는가? 보라. 당신의 환자는 당신을 비웃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녀가 주위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당신이 생각하게 하기 위해 분석 중에 고의적으로 만든 꿈이기 때문이다.” (63-64)

프로이트는 제가 여러분에게 도출해 보여드리고자 하는 구조적 지표들을 미처 알지 못했기에 히스테리증자의 욕망...이 아버지의 욕망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도라의 경우에도 그녀의 욕망은 대리를 통해 아버지의 욕망을 유지하는 것이었음을 간파하지 못했던 겁니다. / 마찬가지로 여성 동성애자의 욕망이 또 하나의 해결책을 발견한 것도 아버지의 욕망에서입니다. ...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 (66)

다음 시간에는 ... 기만의 반복으로서의 반복 개념을 통해 프로이트가 어떻게 속이는 것으로서의 분석 경험을 어떤 실재와, 즉 과학의 장 속에서는 주체가 놓칠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그러한 놓침 자체를 통해 계시되는 것으로서 규정되는 어떤 실재와 조화시키는지를 확인하시게 될 겁니다. (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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