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이 인터뷰는 제 개인적인 필요 때문에 번역해 본 것입니다. 번역한 텍스트는 불어원본이 아니라 버소에 실려 있는 영어번역본입니다. 짧지만, 아래 올린 사이토 관련 몇몇 포스팅과도 매우 밀접하게 연관될 수 있는 인터뷰이고, 한 문장 한 문장이 매우 중요한 인터뷰입니다. (퍼가셔도 좋습니다.) (최종 번역 수정 2021년 9월 24일)


 

‘공산주의는 능동적이고 다양한 집단적 주체성이다’

에티엔 발리바르와의 인터뷰

 

(번역: 최원)

 

제롬 스칼스키(Jérôme Skalski)와의 대담에서 맑스주의 철학자[발리바르]가 역사, 공산주의, 사회주의 간의 연결들을 검토하다.

 

 

 

 

당신의 두 권의 『에크리(Écrits)』는 종종 대립되는 의념들인 개념과 역사를 결합합니다. 당신의 사유에서 무엇이 이 이중의 관심을 추동하는 것입니까?

살아오면서 저는 한편으로는 개념의 작업에 초점이 있는 질문들, 특히 인식론적이고 인간학적인 질문들에 대해 작업해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민이자 활동가로서 우리가 그 일부인 역사와 대면할 필요성을 느껴왔습니다. 사람들은 역사란 모든 것이 변화하는 영역이라고 말할 것 같습니다. 가장 견고한 입장들이 어느 시점에든 불가피하게 의문시되는 영역이라고 말이지요. 저는 이런 것 몇몇을 제 책에서 “자취들”이라는 제목 하에 논의했습니다. 다른 한편, 사람들은 개념의 작업은 시간의 흐름의 정반대인 일종의 영구성을 목표로 한다고 느낄 것 같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스타일의 작업인 게 맞습니다만, 저는 제 두 권의 책이 이 점을 보여주었으면 하는데, 역사와 개념의 작업에 대한 두 가지 성찰 모두에 포함된 세 번째 근본 항이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그 용어의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이지요. 그래서 한편으로 저는 과거나 현재의 사례, 그리고 심지어 추측이라는 의미에서 미래의 사례에 대해, 정치, 역사나 실천(praxis), 시간성 간의 본래적 관계가 어떻게 성립되는가에 대해 작업하고 성찰하려고 시도해 왔고, 또 다른 한편으론 특히 알튀세르와 푸코의 말년의 시도들을 쫓아서, 갈등이, 따라서 필연적으로 정치가, 우연한 외부성이나 심지어 방어해야할 위험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일종의 원천(wellspring) 또는 본래적 힘(intrinsic power)을 구성한다는 이론적 사유의 관념을 생산하고 검토하려고 시도해 왔습니다.

맑스 안에서 당신이 계속 마주치는 지점인가요?

맞습니다. 저는 베버나 슈미트처럼 자명하지 않은 몇몇을 포함해서 영감의 상이한 원천들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만, 가장 큰 원천은 항상 맑스입니다. 그에게는 제가 제 작은 책 『맑스의 철학』에서 이미 강조했던 경이로운 어떤 것이 있습니다. 저는 맑스가 두 가지 근본적인 요구에 대해 기본적으로 결코 양보하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간주합니다. 그 중 하나는 세계를 변혁한다는 거였지요. 이는 우리가 단지 모순적일 뿐 아니라 참을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으며 그 사회 자신의 미래나 대안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스스로를 기초시킬 수 있는 지렛대들, 힘들, 경향들을 찾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다른 한편 맑스 안에는 정치투쟁의 용이함이나 우연들과의 타협을 거부하는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그는 이 [두 가지] 요구 중 어떤 것에 대해서도 양보하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오해받을 위험을 감수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Sed intelligere’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 역자] 특히 무엇을 해왔으며 해온 그것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최대의 열의와 최대의 개념성입니다.

지성의 비관, 의지의 낙관. 그것은 또한 어떤 면에서 그람시의 정식이 아닌지요?

그것은 정확히 그람시의 정식입니다. 그것은 이런 긴장의 가장 분명한 표현 중 하나인데, 이는 확실히 쉬운 것이 아니지만 정치적 행동의 필수요소이기도 합니다. 다른 가능한 정식화들이 있습니다. 예컨대,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 간의 베버적 대립 안에 담긴 것이 있는데, 단 이 대립이 관점들의 배타성이 아닌 상호성으로 읽힌다는 조건 하에서 말이지요. 막스 베버는 위대한 혁명주의자로 간주되지 않지만 제 관점에서 그는 적어도 방법이라는 측면에서는 적어도 그람시나 맑스만큼이나 중요한 선생입니다. 또한 마키아벨리의 정식도 있지요. ‘Andar drieto alla verità effetuale della cosa’(‘사태의 실효적 진리를 추구하라’). 이 말은 마키아벨리가 프란체스코 귀차르디니(Francesco Guicciardini, François Guichardin)에게 쓴 편지에 나오는 것이고 개념의 열정들[『에크리(Écrits)』 제2권]의 도입부에서 제가 인용하는 것입니다. 당시 토스카나의 언어에서 ‘Andar drieto’는 ‘곧바로 나아가라’를 의미하지 않고 오히려 ‘뒤따라 가라’, 즉 진리를 ‘쫓아가라’ 또는 ‘추구하라’를 의미했습니다.

이른바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주의’의 역사에 대한 당신의 성찰은 당신으로 하여금, 스피노자를 쫓아서, 특히 민주주의라는 관념을 복원하는 비판적 성찰에 이르게 했습니다. 왜인가요?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주의’의 역사에는 몇 개의 결정적인 전환점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스탈린은 불가피한 준거점입니다. 제기되는 질문은 스탈린과 그가 대표했던 모든 것이 레닌 사후 얼마 안 지나서 소비에트에서 권력을 잡았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10월 혁명의 자취(trace)에 대한 저의 텍스트에서 이를 공산주의 혁명사에서의 국가주권 원칙의 복귀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앞서 무언가가 일어났는데, 저는 제 삶의 도정에서 이 일에 대한 제 생각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그것은 1918년에 내전의 고조 속에서 레닌이 의회 선거가 무효이고 의회민주주의는 혁명적 변혁에 대한 장애물이거나 반혁명적인 저항의 온상이라고 결정했던 순간입니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소비에트나 평의회 민주주의의 형태를 갖는 더욱 급진적인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서는 [의회적인] 이런 종류의 대의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지요. 비록 그것이 얼마나 필요하다고 믿어졌든지 간에 이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사실상 유일 정당의 전능함이었지만 말입니다. 당시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신이 체포되어 암살되었기에 스스로 출판할 수 없었던 텍스트를 예언적인 방식으로 하나 썼고, 거기서 그녀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문장을 썼지요. ‘자유란 언제나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자유다.’ 이는 이데올로기적 다원주의의 폐지는 어떤 면에서 혁명 시도의 사형선고를 그 안에 담고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제가 속해 있는 공산주의 전통에서 이 질문은 해결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레닌이 맞았다고 말이지요. 그것은 [마키아벨리가 말한] ‘사태의 실효적 진실(the effective truth of the thing)’을 움켜쥐는 데에 실패하면서, 즉각적인 효율성이라는 명목 하에, 마키아벨리를 가능한 한 최대로 악용했던 주장이었습니다. 저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소비에트 스타일의 사회주의의 미래를 위한 [레닌의 결정이 가져올] 재앙적 결과들과 함께 상당히 결정적인 어떤 것을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제가 의회민주주의를 민주적 관념의 최대치라거나 알파와 오메가라고 보게 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예컨대 제가 평등자유(equaliberty)에 대한 글들에서 급진 민주주의의 관념에 어떤 내용을 부여하려고 했던 시도는 대의제나 의회주의보다 더 진전된 민주적 형태들이 있다고 생각하도록 이끌었습니다. 또한 그것들[대의제․의회주의와 더 진전된 민주적 형태들]의 상호관계는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순수하고 단순하게 폐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보다는 역동적이고 따라서 갈등적인 방식으로 일종의 상보성이나 교대성(alternance)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도 그럴 듯합니다. 저에게 이는 지금 세계 곳곳에서 출현하고 있으며 해방의 이상들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함으로써 그 이상들의 생명력을 번역하고 있는, 참여 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를 요청하는 많은 봉기적 운동들이 지시하고 있는 바로 보입니다.

뤼시앙 세브(Lucien Sève)와 같은 어떤 맑스주의 사상가들은 이런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주의”의 역사적 교착상태를 비판적으로 극복할 것을 전망하면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분리할 것을 주장합니다.

저는 공산주의에 대한 토론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생생하고 살아있다는 것이 매우 기쁩니다. 저는 이 토론들에 참여하려고 애씁니다. 저의 입장의 기본은 우리가 선택해야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많은 요소들과 함께 위대한 전통의 대표자인 뤼시앙 세브를 포함해서 우리 동시대인들 가운데 몇몇은 [‘실제로 존재하는 사회주의’의] 이 모든 역사로부터 우리가 사회주의라는 범주를 땅에 묻어야만 한다는 교훈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들은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일종의 기원적 순수성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하고, 동시에 사적 소유와 국가의 세계에 대한 급진적 대안의 이런 형태의 공산주의라는 이념(어떤 이들은 난처한 역사적 함축을 피하기 위해 ‘공통의 것the common’이라고 부르는)은 우리가 오늘날 살아가는 절대적 자본주의의 모순들에 의해 얼마간 요구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고 시도합니다.

이는 적어도 표현상으로 안토니오 네그리가 자신의 편에서 말하는 것이나 또는 알튀세르가 자신의 생의 몇몇 마지막 텍스트들에서 설명한 것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보기엔 인상적인 수렴입니다. 저는 급진적 대안들의 측면에서 사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만, 또한 우리는 여전히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의 양 범주가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물론 고전적 맑스주의가 다음과 같은 것들을 기입해 넣은 진화적인 관점과는 완전히 결별한다는 조건 하에서입니다. 첫째, 정치권력의 장악, 둘째, 경제적 사회적 이행 ...... 역사에 의해 완전히 부당한 것으로 드러난 것은 바로 이런 단계-주의적(stage-ist)이자 동시에 국가주의적(statist)인 도식입니다.

부당한 것이 아닌 것은 장구한 이행 또는 급진적으로 대안적인[서로 다른-역자] 세계관들을 체현하는 사회, 정치, 문화적 세력들 간의 대립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돌이킬 수 없이 진입한 환경재앙의 현실, 매우 긴 기간 동안 우리가 적대적 세력들 간의 갈등들을, 타협의 국면들, 다소간 견고한 동맹들, 그리고 점점 심오해지는 개혁들과 함께, 다루게 될 것이라는 사실과 우리를 피할 수 없이 대면시키는 환경재앙의 현실은 사회적 이행을 위한 통치체계들과 강령들을 가공하고 구현하고 발명하는 것의 중요성과 긴급성을 그만큼 더 강조합니다.

저의 글 가운데 「21세기의 사회주의를 위하여: 조절들, 반란들, 유토피아들」이라고 가설적으로 제목을 붙인 마지막 텍스트에서 제가 시도한 것은 역사의 교훈들과 즉각적인 응급성에 기초해서 완전히 재사유될 내용을 갖는 사회주의적 변혁의 관념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는 이런 조건 하에서 제가 안토니오 네그리처럼 사회주의에 굿바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산주의에 굿바이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상당히 그 반대라고 믿습니다. 사실 저는 만일 이런 이행과 이런 투쟁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발명, 상상, 유토피아를 위한 역량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필요로 하는 혁명적 급진주의를 공급하는 공산주의자들, 더욱이 많은 상이한 이름들을 가지고 있는 공산주의자들이 없다면, 그 어떤 종류의 사회주의적 이행이나 강령도 없을 것이라고, 특히 오늘날 유일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회주의로서의 생태사회주의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공산주의는 소유형태나 생산양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능동적이고 다양한 집단적 주체성입니다.

낡은 패턴들에 대한 대안은 사회주의를 잊고 오늘날의 세계 안에서 공산주의를 곧바로 달성하려고 시도하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것은 반대로 공산주의를 먼, 심지어 접근 불가능한 이상으로 연기시키자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데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과 같은 어떤 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 내에서 자신의 현실성을 찾기를 바란다면,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공산주의자 대중들(masses of communists), 지식인들과 또 다른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저는 우리의 전통 안에서 또 다른 ‘수정주의자’인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Eduard Vernstein)의 정식을 인용합니다. ‘최종 목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운동이 전부다.’ 이는 실은 맑스에게서 온 정식입니다.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공산주의를 달성해야 할 상태나 이상이 아니라 현실의 모순을 폐지하는 현실의 운동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 역자]

이 인터뷰는 2020년 2월 21일 <뤼마니테>(L'Humanité)에 처음 나왔다.

 

출처: https://marxpino.tistory.com/m/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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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sm is an active and diverse collective subjectivity’: An Interview with Etienne Balibar

Untitled-

 

The first two volumes of your Écrits*  combine concept and history, notions that are often opposed. What drives this dual interest in your thinking?

Over the course of my life, I have worked, on the one hand, on questions whose focus was the work of the concept, in particular epistemological and anthropological questions, and then, on the other hand, as a citizen and an activist, I have felt the need to confront the history of which we are a part. One might say that history is the field in which everything changes. In which the most secure positions are, at one time or another, inevitably called into question. I discuss a number of these in my book under the name of ‘traces’. On the other hand, one might have the feeling that the work of the concept aims at a kind of permanence that is the very opposite of the flight of time. It’s true that these are two styles of work, but I would say – and I hope that these two books show this – that there is a third fundamental term involved in both reflection on history and the work of the concept, which is politics in the broadest sense of the term. So, on the one hand, I have tried to work and reflect on examples, past or present, and even future examples, in the sense of conjecture, on how the intrinsic relationship between politics, history or praxis and temporality is established, and then, on the other hand, I have tried, particularly following the late attempts of Althusser and Foucault, to produce and explore a conception of theoretical thought in which conflict, and so inevitably politics, would constitute not a contingent exteriority, or even a danger to be guarded against, but on the contrary a kind of wellspring or intrinsic power.

 

 

A point that you keep coming across in Marx?

Yes, I can claim different sources of inspiration – including some that are not self-evident, like Weber or Schmitt – but the greatest of all for me is always Marx. There is something about him that is admirable and that I have already stressed in my little book The Philosophy of Marx. I see Marx as someone who basically never conceded on two fundamental requirements, even when they were in conflict with each other. One of these was to transform the world. This is the idea that we live in a society that is not only contradictory but unbearable, and that it is absolutely necessary to find the levers, the forces and tendencies which we can base ourselves on so as to give birth to its own future and alternative. On the other hand, there is in Marx a thirst for truth that rejects compromise with the facilities or contingencies of political struggle. He did not concede on either of these demands, which also means that he took the risk of being mistaken. Truth can only be discovered through error. As Spinoza said, ‘it is necessary to understand’, especially to understand what one has done and what happens to what one has done. Maximum enthusiasm, therefore, and maximum conceptuality.

 

 

Pessimism of the intelligence, optimism of the will. Isn’t that also, in a way, the Gramscian formula?

It is exactly Gramsci’s formula! It is one of the clearest expressions of this tension, which is certainly not easy, but which is also a sine qua non of political action. There are other possible formulations. For example, that contained in the Weberian opposition between the ethics of conviction and the ethics of responsibility, provided that this is read not as an exclusion but as a reciprocity of perspectives.  Max Weber is not seen as a great revolutionary, but from my point of view he is a teacher at least as important as Gramsci or Marx, at least in terms of method. There is also Machiavelli’s formula: ‘Andar drieto alla verità effetuale della cosa’ [‘Pursue the effective truth of the thing’], which appears in a letter from Machiavelli to François Guichardin and which I quote at the start of Passions du Concept. ‘Andar drieto’, in the Tuscan language of the time, did not mean ‘go straight ahead’, rather ‘go behind’, that is to say, ‘follow’ or ‘pursue’ the truth.

 

 

Your reflection on the history of what was called ‘actually existing socialism’ leads you, in the wake of Spinoza, to a critical reflection that particularly rehabilitates the idea of democracy. Why?

There are a number of decisive turning points in the history of ‘actually existing socialism’. Naturally, Stalin is the inescapable point of reference. The question that arises is what happened when Stalin, and everything he represented, took power in the Soviet Union some time after Lenin’s death. I described this in my text on the trace of the October Revolution as the return of the principle of state sovereignty in the history of the communist revolution. But something happened earlier than that, which I completely changed my mind about in the course of my life. It was the moment in 1918, at the height of the civil war, when Lenin decided that the Constituent Assembly elections were null and void and that parliamentary democracy was an obstacle to revolutionary transformation or a hotbed of counter-revolutionary resistance. The idea was that representative institutions of this type had to be abolished in order to put in place, it was claimed, a more radical democracy in the form of soviet or council democracy – though in fact, this would actually mean the omnipotence of the single party, however necessary this was believed to be. At that time, Rosa Luxemburg, in a premonitory way, wrote a text that she herself was unable to publish because of her arrest and assassination, and in which she wrote the famous sentence: ‘Freedom is always the freedom to think differently.’ This means that the abolition of ideological pluralism contains within itself, in a way, the death sentence of the revolutionary attempt. In the communist tradition to which I belonged, this question was considered settled: Lenin was right. It was an argument that made the worst possible use of Machiavelli in the name of immediate efficiency, failing to grasp ‘the effective truth of the thing’. I think Rosa Luxemburg understood something that was quite decisive, with catastrophic consequences for the future of Soviet-style socialism.

The consequence is not that I see parliamentary democracy as the nec plus ultra or the alpha and omega of the democratic idea. The attempts I have made, along with others, to give some content to the idea of a radical democracy, in my collection on Equaliberty, for example, lead me to think that there are democratic forms more advanced than representation or parliamentarism. It is also likely that their mutual relationship should be seen in a dynamic, and therefore inevitably conflictual, way, as a kind of complementarity or alternance, rather than as the pure and simple abolition of one form for the benefit of the other. This seems to me to be indicated by the many insurrectional movements calling for participatory democracy that are emerging at the moment throughout the world, and are translating the vitality of the ideals of emancipation by adding new content to these.

 

 

Some Marxist thinkers such as Lucien Sève insist on separating socialism and communism with a view to critically overcoming the historical impasses of this ‘actually existing socialism’. What do you think of this?

I am very happy that discussions on communism are more lively and more alive than ever. I try to take part in these. The basis of my position is not that we have to choose. Some of our contemporaries – including Lucien Sève, who is the representative of a great tradition, with many elements that we have share – have drawn from all this history the lesson that we must bury the category of socialism. They propose to go back to a kind of original purity of the idea of communism and, at the same time, they try to show that the idea of communism in this form of a radical alternative to the world of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what some call the ‘common’, to avoid embarrassing historical connotations) is somehow required by the contradictions of the absolute capitalism in which we live today.

This is not very different, verbally at least, from what Toni Negri says on his side or from what Althusser explained in some of the last texts of his life, a convergence that I find impressive. I agree with the idea that we need to think in terms of radical alternatives, but I also tend to think that we still need both categories of communism and socialism. On condition, of course, that we break completely with the evolutionary perspective in which classical Marxism had inscribed these: first, the seizure of political power; second, economic and social transition... It is this ‘stage-ist’ and at the same time statist schema that has been completely invalidated by history.

What is not invalidated is the idea of long-term transition or confrontation between social, political and cultural forces that embody radically alternative world-views. And the reality of the environmental catastrophe we have now entered, with no possible return back, highlights all the more the importance and urgency of forging and implementing, inventing systems of government and programmes for social transition that inevitably confront us with the fact that, over a very long period of time, we will be dealing with conflicts between antagonistic forces, with phases of compromise, more or less solid alliances and increasingly profound reforms.

In the last text of my collection, hypothetically entitled ‘For a Socialism of the 21st Century: Regulations, Insurgencies, Utopias’, what I try to do is to clarify the idea of a socialist transformation whose content would be completely rethought on the basis of the lessons of history and the immediate emergency. One might therefore think that, under these conditions, I am saying goodbye not to socialism, like Toni Negri, but to communism. But I believe that the reality is quite the opposite. I am convinced, in fact, that there will be no socialist transition or programme of any kind, particularly ecological socialism, which is the only conceivable one today, if there are not communists, under many different names moreover, who provide this transition and this struggle with the energy, the capacity for invention, imagination and utopia, but also the revolutionary radicalism that it needs. Communism is not a form of property or a mode of production, it is an active and diverse collective subjectivity.

The alternative to the old patterns is not to say: let’s forget socialism and try to achieve communism right away in today’s world. Nor is it the alternative of saying: let’s put off communism to a distant, even inaccessible ideal. It is that which consists in saying: more than ever we need masses of communists, intellectuals and others, if we want something like an alternative to capitalism to find its reality in the world we live in. That is why I quote the formula of another ‘deviationist’ in our tradition, Eduard Bernstein, that ‘the final goal is nothing, the movement is everything’ – a formula that actually comes from Marx. 

This interview first appeared in L’Humanité, 21 February 2020

* Histoire interminable. D’un siècle l’autre. Écrits I, and Passions du concept. Épistémologie, théologie et politique. Écrits II (La Découverte,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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