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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터 키튼 회고전 2004.06.13 - 06.25

조회 수 1699 추천 수 0 2004.06.11 07:53:15


http://www.cine21.co.kr/kisa/sec-002800804/2004/06/040609144726025.html#


● 제16회 문화학교 서울 영화주간 l 아크로바틱 액션 개그: 버스터 키튼 회고전

일시  2004.06.13.(일) - 06.25.(금)
장소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주최 시네마테크 문화학교 서울,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후원 한국영상자료원, 영화진흥위원회
문의 문화학교 서울 02-743-6003 |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02-720-9782 http://www.cinematheque.seoul.kr
시간표 바로 가기 http://www.cinematheque.seoul.kr

특별 강연 l 버스터 키튼의 액션스쿨
· 6월 19일(토) 4:00 키튼의 액션연출에 관하여 | 류승완(영화감독)
· 6월 20일(일) 2:00 무표정한 슬픔 - 키튼의 액션 코미디 | 김성욱(영화평론가, 문화학교 서울 프로그래머)
* 특별강연에는 선착순 무료로 입장하실 수 있습니다.
* 21일 월요일은 상영이 없습니다.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모든 상영작은 무성영화로 음악과 함께 상영되며, 영문자막과 한글자막이 함께 제공됩니다.


서울아트시네마, 6월13일부터 버스터 키튼 회고전 상영
1920년대를 줄기차게 달려온 버스터 키튼의 연출 필모그래피는 갑자기 1929년에서 1934년 사이에 공백을 남긴다. 그것은 순전히 외부로부터 불어닥친 변화 때문이었다. 토키영화가 발명되었다. 영화가 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움직이는 사진들의 열정적인 활동의 시대가 지나고 영화 속 인물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버스터 키튼에게 이 변화는 치명적이었다. 오로지 몸의 역학으로만 영화를 이해하고 뒹굴던 슬랩스틱코미디의 장인 버스터 키튼은 단절된 신세계에 쉽게 발을 딛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는 무성영화에서 보여준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저음이고, 또 종종 갈라지는 쇳소리로 터져나왔다.


토키영화와 갈등했던 예술 광대

버스터 키튼은 타개책으로 그의 거의 모든 영화를 프로듀싱한 조셉 M. 셴크의 제안을 따라 독립 제작을 그만두고 거대 영화사 MGM과 결합하기로 했지만, 사후적으로 그 판단은 “인생에서의 가장 큰 실수”로 남을 뿐이었다. 그를 지켜주던 개그의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영화사는 그의 연출 철칙과 어긋나는 완성형의 시나리오를 강요했고, 끝내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낮은 급료를 받는 수준까지 전락해갔다. 알코올 중독과 이혼으로 범벅된 악운의 1930년대 후반을 거쳐 재기를 노리던 1940년대를 힘겹게 지났지만, 여전히 빌리 와일더의 <선셋 대로>(1950)에 출연해서는 잊혀진 할리우드의 유령이라는 은연중의 모욕을 받았고, 한때 라이벌이었지만 당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앞서 나아간 찰리 채플린의 <라임 라이트>(1951)에 단역으로 등장하는 수치심까지도 감수해야만 했다. 1895년 ‘활동사진’이 탄생한 그해에 태어나, 찰리 채플린, 해롤드 로이드, 해리 랭던과 함께 이른바 “코미디의 가장 위대한 시대”인 1920년대를 활보했던 버스터 키튼은 그렇게 대중의 열광 뒤편으로 잊혀져갔다.

재기하려는 그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부활은 다른 곳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1945년 제임스 엣지가 <라이프>에 실은 글을 시작으로 버스터 키튼에 대한 재조명 붐이 일었다. 1950년대 후반을 지나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이곳저곳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그 즈음 마련된 베니스영화제에서의 회고전도 그중 하나였다. 물론 그의 한탄처럼 영광은 너무 늦게 찾아왔지만(베니스영화제 회고전 직후 버스터 키튼은 사석에서 “물론 영광이지. 하지만 삼십년이나 늦게 찾아왔군” 하면서 토키영화 초기의 어려웠던 과거를 떠올렸다고 한다) 뒤늦게나마 그의 진가는 재발견되었고, 어쨌거나 대부분의 평자들이 지적하듯 그는 진정한 무성영화 시기의 예술 광대로 인정받은 채 1966년 2월 삶을 마쳤다.


버스터 키튼 황금기의 작품들

  

<세 가지 시대>  

이번에 국내에서 상영되는 버스터 키튼의 회고전이야말로 그에 비하면 훨씬 더 늦게 찾아온 기회이겠지만, 총 31편의 장·단편 상영작은 정확히 1920년에서 1928년까지 만들어진, 그러니까 유성영화가 도래하기 직전 무성영화 시기 버스터 키튼의 황금 같은 작품들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차례는 버스터 키튼의 영화세계로 들어가보는 것이다. 그의 영화들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버스터 키튼이 활동사진의 마지막 후예로 남은 것은 어쩌면 천운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마치 그의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그런 기후처럼 폭풍우가 몰아치고 도처에서 집들이 날아가던 궂은 날에 보드빌 공연 배우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슬하에서 본명 조셉 프랭크 키튼으로 태어난 그는 태어난 지 여섯달 만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지만 어디 한 군데 다친 곳 없이 끄떡없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기예의 천기를 인정받아 세살부터 보드빌 쇼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그뒤 21살 때까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활동하면서 ‘스리 키튼’이라는 닉네임으로 통했고, 우연한 기회에 당대의 유명한 코미디언 로스코 아버클(일명 뚱보 아버클)의 영화 <푸줏간 소년>(The Butcher Boy, 1917)에 출연하면서 영화 인생을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장편 출연작은 <바보>(1921)였다(첫 번째 장편 연출작은 <세 가지 시대>(1923)이다). 버스터 키튼이 세상의 악을 모르는 순진한 갑부 청년을 연기한 <바보>는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이미 성공한 〈The New Henrietta>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연극에 출연했던 더글러스 페어뱅크스를 주연으로 하여 이미 한번 영화화가 됐던 것을 다시 리메이크하는 과정에서 더글러스 페어뱅크스는 자신에게 청이 들어온 역을 버스터 키튼에게 넘겨주게 된다. 버스터 키튼의 전기 작가인 데이비드 로빈슨은 <바보>를 두고 “그의 경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이라고까지 말했고, 이 영화에 대한 분석 글을 쓴 피터 크래머는 <바보>가 버스터 키튼의 마지막 웃음을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설명한다.


위대한 무표정, 단순한 플롯, 육체의 스펙터클

여기서부터 버스터 키튼 영화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이 관객의 이해를 도울 것이다. 납작한 팬케이크 모자, 어울리지 않게 큰 옷, 덜렁거리는 신발 외에도 버스터 키튼을 다른 슬랩스틱 코미디언과 구별짓게 하는 첫 번째 표식은 표정이다. 이른바 ‘위대한 무표정’(The Great Stone Face)이라는 닉네임을 선사받게 되는 버스터 키튼은 <바보>에서의 아주 희미한 두어번의 웃음을 제외하고는 이후 어떤 영화에서도 웃지 않는 무표정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은 웃지 않으면서 관객은 웃기는 아이러니한 특징을 가진 배우로 남게 된다. 이를 두고 버스터 키튼은 보드빌 쇼의 배우는 절대 웃어서는 안 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이 몸에 배어서라고 말하지만, 일부의 평자들은 그 무표정이 버스터 키튼이 자신의 코미디를 구축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도입한 결과라는 것을 지적하기도 한다(한편으로 그가 보드빌 쇼의 적자임을 확인하게 하고, 또 그 경력을 유감없이 활용하면서 실력을 선보일 때는 주로 춤을 추는 장면들에서이다. 인디언과 백인 사이의 싸움에 휘말리는 주인공을 다룬 <하얀 얼굴>(1921)에서의 인디언 탭댄스, 문과 벽을 사이에 두고 현란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극장>(1921)의 공연장면 등에서 드러나는 능숙한 몸놀림이 그 점을 여실히 반영한다).

보는 이마다 다른 해석의 여지를 주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버스터 키튼만의 것으로 인정되는 또 한 가지로 플롯의 단순성을 꼽을 수 있다. 주제의 내용만을 놓고 본다면 그의 영화는(특히 장편영화일 경우) 거의 언제나 사랑하는 두 남녀가 그저 벌이는 해프닝이며, 대개는 결혼에 골인하기 위해 벌이는 단순한 수난의 로맨스가 전부다. “분명한 어떤 구상에 몇 가지의 아주 적은 줄거리를 세워놓을 뿐”이라는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버스터 키튼의 영화는 크게 보아 서사의 핍진성 내지는 복잡한 인과관계를 극적으로 중요하게 설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러티브를 경제적이면서도 역동적으로 만드는 것은 카메라의 거리와 인물들의 동작이 기막히게 하나로 연결되는 편집의 순간이거나, 공간을 투시하거나 평면화하여 미장센으로 표현할 때 생겨난다. 영화의 내러티브에 매달리지 않는 그 경제적인 플롯의 진행 속에서 그가 독창적으로 추구한 것은 놀랄 만큼 위험천만한 스턴트 묘기의 연속이다. 12프레임 내지 16프레임으로 빠르게 영사되던 당시의 화면이 버스터 키튼의 행동을 아주 우스꽝스럽게 만들면서 그 긴박한 위험성을 감쇄시키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가 영화 속에서 펼쳐내는 곡예들은 순간적인 판단과 철저하게 측량된 어떤 구도가 없다면 도저히 시도하기 힘든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된다. 예컨대 사랑하는 두 남녀가 나무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앙숙의 부모들 때문에 만나지 못한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단편영화 <이웃>(1921)에서 두명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 인간 삼층탑을 쌓아 곡예를 하듯 한쪽 건물의 이층 창에서 건너편 건물의 이층 창으로 곧장 건너다니는 동작은 놀라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후 만들어지는 그의 대표적인 장편영화들은 이런 식의 곡예행진들을 다양한 밀도로 심화하고 있다.


버스터 키튼 독법 : ‘기계 개그’(machine gag)





<일곱 번의 기회>(위)
<스팀보드 빌 주니어>(아래)

이제 버스터 키튼의 영화적 스펙터클을 좀더 즐겁고 꼼꼼하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다소 총체적인 면면을 염두에 두면서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그 곡예들은 무엇을 뛰어넘기 위한 행동이며, 또 어떤 장애들과 부딪치기에 일어나는 것인가? 버스터 키튼은 곤란에 빠진 주인공을 그려낼 때마다, 그래서 그 위기를 넘어서려 할 때마다, 한계를 부여하는 대상으로 거대한 그 무엇을 영화 속에 도입한다. 즉, 그는 어떤 거대한 구조들을 가져와 상황과 행동을 창조한다. 종종 그것은 바다 위를 표류하는 두 남녀를 그린 <항해자>(1924)의 숨막힐 듯한 해저, 우람한 선장과 나약한 아들이 화해해가는 <스팀보트 빌 주니어>(1928)의 집채만한 태풍, 대를 이은 원수 집안의 두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손님 접대법>(1923)의 길고 긴 협곡과 절벽, 7시까지 결혼해야만 하는 절박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일곱번의 기회>(1925)의 산 위에서 아래로 구르는 무수한 바위들, 전쟁에 휘말린 기관사를 그린 <제너럴>(1926)의 멈춰지지 않는 기차와 홍수로 등장하여 주인공에게서 곡예와 익살을 끌어낸다. 쉽게 버틸 수 없는 최대치의 한계상황에 처한 인간 몸의 행동 반경 내에서 버스터 키튼은 뒹굴고 쓰러지면서 역설적으로 웃음을 끌어낸다.

대략의 장편영화들이 그 구조를 대자연의 힘으로 표현한 것이었다면, 단편에서 버스터 키튼이 자주 사용하는 대표적인 구조(물)은 ‘집’이다. 주인공의 개그는 그 집의 구조와 벌이는 숨바꼭질 중에 생겨나도록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의 첫 번째 독립제작 영화였던 <일주일>(1920)에서는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이동식 가옥을 조립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한다. 그러나 나쁜 친구의 간교함으로 판자들의 번호를 잘못 맞춘 결과 집은 이층에 현관이 붙고, 지붕은 반쯤 뚫린 이상하게 비틀린 모양이 되고 만다. <일주일>에서의 이 집은 버스터 키튼식 집의 신호탄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단둘이 살고 있는 <허수아비>(1920)에는 온갖 줄로 가재도구들을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반자동식 집안의 풍경이 웃음을 유발한다. 범죄집단과 코믹한 대결을 벌이는 <하이 사인>(1921)에서는 방과 방 사이에 회전벽이 달린 이층집 안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평면의 투시도로 보여진다. 또는 제목 그대로 <일렉트릭 하우스>(1922)에서는 전자동식 집 안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가 사람을 바깥으로 내다던지기도 한다. 집은 버스터 키튼에게 빠질 수 없는 웃음의 구조물이다.

집과 더불어 버스터 키튼의 영화세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기계’이다. 또는, 자동식, 반자동식 집이라는 점에서 <허수아비> <일렉트릭 하우스>의 그것은 이미 기계에 속한다. 그런 점에서 들뢰즈는 버스터 키튼의 영화를 설명하면서 “집-기계, 배-기계, 기차-기계, 영화-기계”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건 그의 생각만이 아니라 많은 무성영화 연구자들이 일컬어온 버스터 키튼의 ‘기계 개그’(machine gag)에 대한 나름의 확장 독법이다. 이를테면 <보트>(1921)에서 한 가족이 바다에 보트를 띄우기 위해 벌이는 엄청난 해프닝, <제너럴>이라는 이름의 기차 위에서 벌어지는 84분간의 코미디 추격전, <기구 조종사>(1923)가 타고 다니며 개그를 일삼는 수륙양용의 복합 기구, <세 가지 시대>(1923) 중 고대 로마 시대에 등장한 마차를 개량한 경기용 썰매, <항해자>의 숨바꼭질 놀이터로서의 배 등을 보여주면서 버스터 키튼은 기계를 활용한 익살의 상황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어릴 적 토목기사가 되는 것이 꿈이기도 했던 버스터 키튼의 기계에 대한 애착은 유명하다. 그가 처음 뚱보 아버클의 영화 현장을 방문했을 당시 그의 눈을 한눈에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영화를 만드는 기계, 바로 카메라였다. 때문에 그것으로 찍히는 영화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버스터 키튼은 카메라에 대해 수천 가지 질문을 쏟아냈고, 그것도 모자라 영사실로 달려갔다고 회고한다. 그 점에서 <카메라 맨>(1928)은 제목만으로도 그의 애착을 느끼게 한다. 동시에 <극장>(1921)은 영화라는 기계가 담을 수 있는 환상성을 관객과 배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날렵하게 넘어다니면서 일인다역하는 버스터 키튼만이 보여줄 수 있는 영화사 최고의 숨겨진 걸작이다. 또한 <셜록 주니어>는 오랜 시간 영화의 역사 안에서 회자되며, 자기반영적 측면을 즐거운 통찰력으로 사고한 영화로 인정받고 있다.

31편의 영화를 모두 소개하기보다는(더 정확히 말해 버스터 키튼의 영화는 그런 식의 소개가 불필요하다), 그것들을 꿰뚫고 있는 중심성을 연관하면서 보는 것도 재미있는 버스터 키튼 감상법이 될 듯하다. 그의 영화세계에 들어가면 무표정한 얼굴로 시종일관 폭풍우와 홍수 속에서 나자빠지는 한 남자와 그가 살고 있는 집과 그 집의 변형인 기계들과 그 기계를 다시 찍고 있는 영화기계에 대한 성찰을 웃음으로 접할 수 있다. 웃기는 사내의 웃지 않는 활동 사진은 6월13일(일)에서 25일(금)까지 볼 수 있다.

정한석 mapp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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