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Fishmans!(my fishmans life)


 

휘시만즈 그리고 도쿄 스카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 - 메이지 대학의 서클에서 시작된 나의 음악 인생

 

 

도쿄 스카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의 드러머로 활약하는 모테기 킨이치 씨. 그 음악 커리어가 시작된 것은 메이지 학원 대학의 서클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음악 인생을 되돌아보며, 대학에서의 「운명의 만남」, 그리고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 계속 움직이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합니다.

 

 

 

 

 

모테기 킨이치(茂木 欣一)

 

 

1967년 도쿄 출생. 1991년 문학부 영문학과 졸업.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대규모 스카 밴드, 도쿄 스카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 (통칭: 스카파라)의 드럼 담당. 휘시만즈, 스카파라 멤버들과 결성한 3인조 밴드 So Many Tears로도 활동. 감정에 직결된 열정적인 드럼 스타일은 국내외 뮤지션들로부터 한 수 위로 평가받고 있다.

 

 

 

음악 인생을 결정지은 만남

 

메이지 학원 대학에 입학한 것이 1987년입니다. 요코하마 캠퍼스를 걷다가 권유로 들어온 곳이 음악 서클 「송라이츠(ソングライツ)」였어요. 음악 서클은 4월에 신입생 환영 라이브를 하잖아요. 송라이츠에서도 그런 라이브가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라이브가 그 이후의 제 음악 인생을 결정했던 것 같아요.

 

공연 전에 다른 선배들이 악기를 세팅하고 있는 동안, 한쪽 구석에서 빈둥거리고 있던 사람이 있었어요. 그 즈음 하고 있던 밴드가 해체됐다고 했는데, 다른 밴드의 게스트로 한 곡 불렀어요. 그걸 듣자마자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존재감이 이미 압도적이었거든요. 그 분이 두 학번 위의 선배 사토 신지(佐藤伸治)였습니다.

 

 

 

 

5월이 되면 봄 합숙이 있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사토 짱과 세션을 했던 게 그 때였어요. 저녁 식사 때 사토 짱이 「킨 짱, 여기서 나가서 저쪽 연습실에서 같이 세션하지 않을래?」라고 꼬셨어요. RC 석세션(RCサクセション)을 몇 곡 연주했던 것 같아요. 그것이 휘시만즈 결성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토 짱이 작곡과 보컬을 담당했던 휘시만즈에 드러머로서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일생의 보물이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어요. 서클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송라이츠에는 오리지널 곡을 지향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사토 짱이 만드는 곡은 더욱 특별했어요. 멜로디의 센스도, 단어를 엮는 방식도. 역시 대학에는 재능 있는 사람들이 모여드는구나 싶었어요. 그 중에서도 사토 짱은 특출했습니다. 아마 당시 일본 음악 신 전체에서도 톱 레벨이었다고 생각해요.

 

시대는 1980년대 말의 밴드 붐이 시작했던 무렵이었어요. 그 기세를 몰아, 제가 3학년 여름에 휘시만즈는 음악 사무소와 계약을 맺고, 대학 마지막 시험을 치른 직후에 호주 멜버른으로 데뷔 앨범을 녹음하러 갔습니다. 정말 축복 받은 시작이었던 거죠.

 

 

시간을 잊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날들

 

음악에 흠뻑 빠져 살았던 4년이었지만, 수업에 빠지지 않고 학점은 착실히 땄어요. 소규모 세미나에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거나 토론을 하면서 즐거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영문과였기 때문에, 만약 음악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다면 영어 선생님이 되려고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졸업 논문의 주제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아마 해외 영어 노래의 가사를 테마로 했던 것 같아요. 졸업 무렵에는 데뷔가 정해져 있어서, 정말 바빴어요.

 

또 하나, 대학 생활에 대해 뚜렷이 기억나는 것이, 서클실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잊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거예요. 음악이나 장래의 꿈에 대해 몇 시간 동안이나 계속 얘기했어요. 점심 시간이 끝나고, 3교시 시작종이 울리는데도, 모두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 대학 생활의 멋이었던 것 같아요.

 

 

 

 

 

서클실 같은 스튜디오에서 만든 작품

 

휘시만즈 음악은 레게와 덥 등을 베이스로 했는데, 말하자면 좋아하는 사람들만 좋아하는 밴드였어요. 열성팬들과 평론가들로부터 지지를 받긴 했지만, 데뷔 후 5년 정도 동안은 CD가 전혀 팔리지 않았거든요. 밴드 이름이 비교적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1996년에 발매한 5집(『오! 마운틴』(1995)을 포함하면 여섯 번째) 앨범 『공중캠프』부터였어요.

 

그 작품을 만들기 전에, 음반사의 디렉터가 저희에게 전용 프라이빗 스튜디오를 제공해 주었는데요. 24시간 언제든지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스튜디오였어요. 지금은 드문 일이 아니지만, 당시에 그런 환경을 누릴 수 있는 밴드는 별로 없었거든요. 그 스튜디오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정말 기뻤어요. 자는 것도 잊고, 정신없이 음악을 만들었어요. 거기서 만든 (첫) 앨범이 『공중캠프』에요.

 

메이지 대학의 서클 연습실이 그대로 일터가 된 것처럼, 송라이츠 무렵과 비슷한 것을, 같은 멤버와 함께, 훌륭한 작품을 만들게 된 거죠. 그러고 보면, 대학 시절부터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구나 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돼요.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하지만, 휘시만즈의 활동은 그로부터 3년 정도 밖에 지속되지 않았어요. 사토 짱이 갑자기 죽었기 때문에. 1999년 3월. 아직 33살이었어요.

 

조금 휴식 시간이 필요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사토 짱은 잠시도 쉬지 않고, 엄청난 페이스로 곡을 만들었거든요. 옆에서 보고 있으면, 몸을 갈아 넣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너무 자신을 몰아세우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결국 몸이 망가져 버렸어요.

 

저는 50살이 되어도 휘시만즈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사토 짱의 죽음을 마주하면서,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필사적으로 고민을 거듭했어요. 저로서는 생전 처음 겪어본 커다란 시련이었어요.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얼마 후에 다른 밴드로부터 오퍼가 왔어요. 사토 짱이 죽은 뒤 2개월 후에 비슷하게 멤버를 잃은 도쿄 스카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로부터. 제 음악 인생의 제 2막이 시작되었죠.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싶다고 말해야 한다

 

스카파라는 휘시만즈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밴드라고 할 수 있어요. 휘시만즈는 소규모로, 자신들의 조그만 세계에서, 소리 하나하나를 정성껏 만들어 가는 타입의 밴드였거든요. 하지만 스카파라는 정반대였어요. 멤버도 10명 정도 되고, 여러 다른 아티스트들과 세션을 하기도 하고 텔레비전에도 나오고. 그런 밴드로부터 제안을 받아서 처음에는 조금 망설였지만, 뛰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때까지 저는, 사토 신지라는 아주 커다란 존재가 지켜주었지만, 이제부터는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카파라에 참여하고 나서, 더욱 필사적으로 드럼을 연주했어요. 셀 수 없을 정도의 라이브를 경험하고, 멤버들과도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했어요. 휘시만즈는 저를 포함해서 굉장히 샤이한 사람들의 모임이어서, 조그만 목소리로 소곤소곤 이야기해도 서로 이해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하지만 스카파라는 커다란 팀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확실히 하지 않으면 전부 그냥 넘어가 버리게 되거든요. 잘못된 의견이라도 좋으니 일단 말해 보는 것. 어쨌든 큰소리로 말하는 것. 그런 자세를 배웠어요.

 

저만 바뀐 게 아니라, 밴드도 많이 변했다는 걸 느꼈어요. 원래 멤버들 모두 너무 친절했지만, 제가 들어가고 나서, 스카파라는 점점 더 오픈 마인드로, 웃음이 끊이지 않는, 정말 즐거운 밴드가 되어갔어요. 물론, 제가 그렇게 바꾸었다는 건 아니구요. 밴드가 새로운 스테이지로 나아가는 시기였던 것 같아요.

 

스카파라의 정식 멤버가 된 것은 처음 서포트 멤버로 참가한 지 2년 후였어요. 『은하와 미로(銀河と迷路)』라는 곡으로 처음 리드 보컬을 맡은 게, 그 때부터 1년 정도 지난 뒤였어요. 밴드 내에서 보컬 오디션을 했는데, 제가 가장 부르고 싶어 해서, 「그럼, 킨 짱이 부르는 걸로 할까」라고 정해진 거죠. 그 후로, 10곡 이상 노래를 불렀어요.

 

역시,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싶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말하고 나면 물러설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밖에 없거든요. 그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늘려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스카파라에서 활동하면서부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됐어요.

 

 

 

 

 

메이지 대학에 다닐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졸업하고 나서 처음으로 2019년에 요코하마 캠퍼스를 방문했어요. 올 여름 개봉 예정인 휘시만즈 다큐멘터리 『영화: 휘시만즈』의 촬영이 있었거든요. 영화에는, 예전 밴드 멤버와 관계자뿐 아니라, 지금의 송라이츠 회원들의 인터뷰도 나옵니다.

 

오랜만에 요코하마 캠퍼스에 갔더니, 이런저런 옛날 일들이 떠올랐어요. 서클실에서 종일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던 일. 캠퍼스 벤치에서 생각에 잠겼던 일. 학생식당의 런치.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교실. 당시에는 미처 몰랐지만, 학생들의 편안한 기분을 진심으로 고민했던 학교였구나 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됐습니다.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여유를 갖게 하고, 릴랙스하게 하고, 미래의 일을 천천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메이지 대학은 그런 곳이었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알았어요. 메이지 대학에 다닐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2020년 신형 코로나 바이러스의 쇼크로, 음악계도 큰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스카파라도 예정되어 있던 라이브의 대부분이 중지되었고, 레코딩도 거의 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밖에 없잖아요. 중요한 것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 계속 움직이는 거니까요. 공연장에 손님이 절반 밖에 올 수 없다면, 그 조건에서 전력을 다 한다. 그렇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런 자세를 모두에게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카파라 제대로 하고 있네. 돌아가고 있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고, 조금이라도 기운을 냈으면 좋겠어요.

 

 

 

 

 

휘시만즈가 메이저 데뷔를 한 지, 올해로 30년. 다시 말해, 프로 뮤지션으로서의 제 인생도 정확히 30년이 된 거죠. 음악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음악 인생의 스타트를 끊을 수 있는 계기가 된 메이지 대학과 그 시절의 친구들에게 마음 깊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번역: 고엄마 (20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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フィッシュマンズ、そして東京スカパラダイスオーケストラ── 明学のサークルから始まった僕の音楽人生

東京スカパラダイスオーケストラのドラマーとして活躍する茂木欣一さん。その音楽キャリアがスタートしたのは、明治学院大学のサークルからでした。これまでの音楽人生を振り返り、大学での「運命の出会い」、そして「歩みを止めないこと、動き続けること」の大切さを語ります。

茂木 欣一1967年東京生まれ。1991年文学部英文学科卒業。世界で活動する大所帯スカバンド、東京スカパラダイスオーケストラ(通称:スカパラ)のドラム担当。フィッシュマンズ、スカパラのメンバーらと結成した3ピースバンドSo many tearsとしても活動。感情に直結した熱血的なドラムスタイルは、国内外のミュージシャンからも一目置かれている。

音楽人生を決めた出会い

明治学院大学に入学したのは1987年です。横浜キャンパスを歩いている時に勧誘されて入ったのが、音楽サークル「ソングライツ」でした。音楽サークルは4月に新入生歓迎ライブをやりますよね。ソングライツでもそんなライブがありました。今にしてみれば、あのライブでその後の僕の音楽人生は決まったのだと思います。

ライブ前にほかの先輩たちが楽器をセッティングしている間、隅の方で暇そうにしている人がいました。ちょうど自分のバンドが解散した頃だったらしく、その人はほかのバンドのゲストで一曲歌ったのですが、それを聴いてすぐにただ者じゃないと思いました。存在感がもう圧倒的なんです。それが2つ上の先輩、佐藤伸治くんでした。

5月になると春合宿がありました。僕が初めて佐藤くんとセッションしたのはそのときです。夕食のときに彼が、「欣ちゃん、ここを抜け出して、向こうの部屋で一緒にセッションしない?」と僕を誘ってくれたんです。確か、RCサクセションの曲を何曲かやったと思います。それがフィッシュマンズ結成のきっかけになりました。

佐藤くんが作曲とボーカルを担当したフィッシュマンズにドラマーとして参加できたのは、僕の一生の宝だったと今でも思っています。サークル名からもわかるように、ソングライツにはオリジナル曲志向の人が多かったのですが、佐藤くんがつくる曲は別格でした。メロディーのセンスも、言葉の紡ぎ方も。やっぱり大学には才能のある人が集まってくるんだと思いました。その中でも佐藤くんは飛び抜けていました。おそらく、当時の日本の音楽シーン全体でも、トップレベルだったと思います。

時代は1980年代末期のバンドブームが始まる頃でした。その勢いにも乗って、僕が3年生の夏にフィッシュマンズは音楽事務所と契約して、大学最後の試験を受けた直後にオーストラリアのメルボルンにデビューアルバムのレコーディングに出発しました。本当に恵まれたスタートだったと思います。

時間を忘れて語り合った日々

音楽に心底夢中になった4年間でしたが、授業に出て単位はしっかり取っていました。少人数のゼミで、先生の話を聞いたり、議論したりしたことがすごく楽しかったことをよく憶えています。英文学科だったので、音楽の道に進めなかったら英語の先生になろうと思っていました。でも、卒論の題材が何だったかは思い出せません。確か、海外の英語の曲の歌詞をテーマにした気がします。卒業の頃はデビューが決まっていて、本当に忙しかったんです。

もうひとつ、大学生活でよく憶えているのが、サークルの部室で仲間たちと時間を忘れて語り合ったことです。音楽のことや将来の夢について、何時間も話していました。昼休みが終わって、3限が始まるチャイムが鳴っているのに、みんな立ち上がろうともせずに。かけがえのない時間をもてたことが大学生活の素晴らしさだったと、今になって思います。

部室のようなスタジオから生まれた作品

フィッシュマンズの音楽はレゲエやダブなどをベースにしていて、どちらかというと通好みのバンドでした。コアなファンの皆さんや評論家からは支持されたのですが、デビューしてから5年くらいの間は、CDはさっぱり売れませんでした。バンドの名前が比較的広く知られるようになったのは、1996年に発表した5枚目のアルバム『空中キャンプ』からです。

あの作品をつくる前に、レコード会社のディレクターが僕たちに専用のプライベートスタジオを持たせてくれたんです。24時間いつでも自由に使っていいスタジオです。今でこそ珍しくはありませんが、当時そういう環境を用意してもらえるバンドはほとんどなかったと思います。あのスタジオを使えることになった時は、本当にうれしかったですね。寝るのも忘れて、夢中になって音づくりをしました。そこから生まれたのが『空中キャンプ』です。

明学のサークルの部室がそのまま仕事場になったみたいで、ソングライツの頃と同じことを、同じメンバーでやって、素晴らしい作品ができた。そう考えると、大学時代からすべてがつながっているんだとあらためて思います。

これからどう生きていけばいいんだろう

でも、フィッシュマンズの活動はそれから3年ほどしか続きませんでした。佐藤くんが急逝してしまったからです。1999年3月。まだ33歳でした。

ちょっと休養をとればよかったのだと思います。だけど佐藤くんはまったく手を休めず、かなりのペースで曲をつくっていました。そばで見ていても、身を削っているという感じがしました。かなり自分を追い込んでいたのだと思います。それで体調を崩してしまったんですね。

僕は50歳になってもフィッシュマンズをやっていると思っていたから、どうしていいかわからなくなってしまいました。佐藤くんの死に向き合いながら、これからどう生きていけばいいか、自分に何ができるのか、そんなことを必死に考えました。あれは僕にとって、生まれて初めてと言っていい大きな試練だったと思います。

それでも僕が恵まれていたのは、それからまもなく別のバンドからオファーがあったからです。佐藤くんの死の2カ月後に同じようにメンバーを失った東京スカパラダイスオーケストラからでした。僕の音楽人生のそれが第2のスタートとなりました。

やりたいことはやりたいと言わなければだめ

スカパラは、フィッシュマンズとはまったく性格の違うバンドでした。フィッシュマンズは、少人数で、自分たちの小さな世界で、一つひとつの音をじっくりとつくっていくタイプのバンドでした。でも、スカパラはほとんど真逆です。メンバーは10人近くいるし、いろいろな人とセッションをするし、テレビにも出る。そんなバンドから声をかけてもらって、最初はとまどいましたが、飛び込むしかないと思いました。それまで僕は、佐藤伸治というとても大きな存在に守られていました。でも、これからは自分の力でやっていかなくちゃならないんだ、って。

スカパラに参加してから、僕は必死にドラムを練習しました。数え切れないほどのライブを経験し、メンバーのみんなとも積極的にコミュニケーションをとりました。フィッシュマンズは僕も含めてすごくシャイな人間の集まりで、小さな声でぼそぼそ話してもお互いに理解し合える感じでした。でもスカパラは大きなチームなので、言いたいことをしっかり言わないと、全部スルーされてしまいます。間違った意見でもいいから、まずは言ってみる。とにかく大声で言ってみる。そんな姿勢を学びました。

僕が変わっただけでなく、バンドも大きく変化していることを感じました。もともと、みんなすごく優しかったのですが、僕が入ってからのスカパラはどんどんオープンマインドになって、笑いが絶えない、本当に楽しいバンドになっていきました。僕が変えたというわけではもちろんありません。バンドが新しいステージに進む時期だったのだと思います。

スカパラの正式メンバーとなったのは最初にサポートで参加してから2年後のことです。『銀河と迷路』という曲で初めてリードボーカルを担当したのは、それから1年ちょっと経ってからでした。バンド内で歌のオーディションをしたのですが、僕が一番歌いたがっていたので、「じゃあ、欣ちゃんに歌わせよう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した。その後、10曲以上でボーカルを担当させてもらっています。

やはり、やりたいことはやりたいって言わなければだめなのだと思います。言ってしまえば後には引けないので、やるしかありません。そうやって自分のできることを増やしていくことが大事。スカパラで活動するようになってから、僕はそんなふうに考えるようになりました。

明学に通えて本当に良かった

2019年に、卒業してから初めて横浜キャンパスを訪れました。この夏に公開されるフィッシュマンズのドキュメンタリー『映画:フィッシュマンズ』の撮影に立ち合うためです。映画には、バンドの元メンバーや関係者のインタビューに加えて、今のソングライツの部員たちのインタビューも出てきます。

久しぶりに横浜キャンパスに行って、昔のことをいろいろ思い出しました。部室でずっと仲間としゃべっていたこと。キャンパスのベンチで物思いにふけっていたこと。学食のランチ。外からたくさんの光が入る校舎──。当時は気づかなかったけれど、学生たちの居心地の良さを本当に考えてくれていた学校だったんだとあらためて思いました。心を穏やかにしてくれて、余裕をもたせてくれて、リラックスさせてくれて、将来のことをじっくり考える時間を与えてくれる。明学はそんな場所でした。時が流れて思います。明学に通えて本当に良かったなぁって。

2020年の新型コロナウイルスのショックで、音楽界も大きなダメージを受けました。スカパラも予定されていたライブのほとんどが中止になって、レコーディングもほとんどできませんでした。でも僕は、やれることをやっていくしかないと考えました。大事なのは、歩みを止めないこと、動き続けることです。会場にお客さんを半分しか入れられないのなら、その条件の中で全力でやる。そうやって一歩ずつ前に進んでいく。そんな姿勢をみんなに見せていくことが大切だと思っています。「スカパラやってるね。動いているね」そんなふうにたくさんの人に感じてもらって、元気になってもらいたいと思っています。

フィッシュマンズがメジャーデビューしてから、今年で30年。つまり、プロのミュージシャンとしての僕の人生もちょうど30年ということです。音楽をやめたいと思ったことは一度もありません。音楽人生のスタートを切るきっかけをくれた明治学院大学とあの頃の仲間たちに、心から「ありがとう」と言いたいですね。

 

 

 

 

 

출처: https://www.meijigakuin.ac.jp/about/voice/motegi/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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