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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캠프 SNC.19 - bonobos 관련 단상, 기대, 제안, 부탁, 소식, 추천하는 블로그나 SNS 글 등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예매 양식 중 "리퀘스트 곡 (Request Songs) / 아티스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Letter to Artists / 공중캠프에 하고 싶은 말 Comment to Kuchu-camp"에 적어주신 글도 정리해서 (익명으로) 올릴 예정입니다.
고맙습니다.
[bonobos]
Mighty Shine,Mighty Rhythm / スモーク / Headphone Magic / 汚れた部屋 / スカ-トガ-ル ブル-ス / Good Morning Groove / もうじき冬が来る / I talk / Night Apes Walking / tobo tobo tobo / water / あの言葉、あの光 / クロージングタイム / 今夜はGroove me / THANK YOU FOR THE MUSIC / LOVERS ROCK / Asian Lullaby / 運命の人 / Beautiful / Standing There〜いま、そこに行くよ〜 / Someway / GOLD / 月よ来い / LONG RIVER / ICON / 星の住処 / スユンチ! / あなたは太陽 / うつくしいなまえ / グッドモーニング・マイ・ユニコーン / Cruisin' Cruisin' / Shag / 23区
(ぜひゼヒ是非) Night Apes Walking / スユンチ! / あの言葉、あの光
(fishmans cover) 感謝(驚) / Night Cruising / Ikareta Baby / MELODY / 土曜日の夜 / ずっと前
[구릉열차]
Taxi / 문밖에
[파라솔]
너의 자세 / 미끼 / 베개와 천장 / 어느 거리에 / 뭐 좀 한 것처럼 / 멀어진 축제 / 법원에서
[위댄스]
우리가 잃어선 안되는 것 / 거기 살자 / 빈옷 / 음악이 출렁출렁 비트를 쪼개네
[전자양]
멸망이라는 이름의 파도 / 소음의 왕 / 봄을 낚다 / 쿵쿵
(ㄱㅇㅁ 님)
Mighty Shine,Mighty Rhythm / スモーク / Headphone Magic / 汚れた部屋 / スカ-トガ-ル ブル-ス / Good Morning Groove / もうじき冬が来る / I talk / Night Apes Walking / tobo tobo tobo / water / あの言葉、あの光 / クロージングタイム / 今夜はGroove me / THANK YOU FOR THE MUSIC / LOVERS ROCK / Asian Lullaby / 運命の人 / Beautiful / Standing There〜いま、そこに行くよ〜 / Someway / GOLD / 月よ来い / LONG RIVER / ICON / 星の住処 / スユンチ! / あなたは太陽 / うつくしいなまえ / グッドモーニング・マイ・ユニコーン / Cruisin' Cruisin' / Shag / 23区
(ぜひゼヒ是非) Night Apes Walking / スユンチ! / あの言葉、あの光
(fishmans cover) 感謝(驚) / Night Cruising / Ikareta Baby / MELODY / 土曜日の夜 / ずっと前
[구릉열차]
Taxi / 문밖에
[파라솔]
너의 자세 / 미끼 / 베개와 천장 / 어느 거리에 / 뭐 좀 한 것처럼 / 멀어진 축제 / 법원에서
[위댄스]
우리가 잃어선 안되는 것 / 거기 살자 / 빈옷 / 음악이 출렁출렁 비트를 쪼개네
[전자양]
멸망이라는 이름의 파도 / 소음의 왕 / 봄을 낚다 / 쿵쿵
(ㄱㅇㅁ 님)
[D-1]
1.
2002년 11월, 시부야의 한 술집에서 "오사카에서 대단한 밴드가 나왔다"는 일본 친구의 추천으로 따끈따끈한 보노보의 라이브 부틀렉을 처음 들었다.
그리고 2003년 봄, 8cm 데모 싱글 음원과 첫 미니 앨범 『Headphone Magic』이 나오고, 《Chelsea Hotel》에서 첫 도쿄 라이브가 있었다.
(http://kuchu-camp.net/xe/62834)
공연이 끝나고 사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4년이 지났다.
2.
개인적으로 공중캠프 커뮤니티에 가장 에너지가 넘쳤던 시기는, 거의 매일 오프라인 번개를 했던 2002년 가을과, 카페 공중캠프를 지금의 시스템으로 리뉴얼한 2006년 봄이었던 것 같다.
그 때의 그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우리 힘으로 해보자'는 생각을 갖게 했고,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저절로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2003년 오픈한 카페 공중캠프도, 2007년에 시작한 "스바라시끄떼 나이스쵸이스(SNC)" 이벤트도 2002년과 2006년의 에너지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 아닐까?
그로부터도 어느새 10년이 지났다.
3.
그 무렵 공중캠프에서 가장 부르고 싶었던 뮤지션은 보노보(bonobos)나 폴라리스(Polaris)였다.
Fishmans를 아끼던 사람들이나 공중캠프 친구들이 'Post Fishmans'라는 단어를 써가며 기다려왔던 밴드 사운드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차이에 대해 강조하던 친구들도 있었다ㅎㅎ)
그리고 2008년 3월, 보노보가 공중캠프에서 첫 공연을 하게 되었다.
'기적의 순간', '마법의 사운드'라는 낯 뜨거운 말들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http://kuchu-camp.net/xe/62830 )
"웃는 얼굴은 웃는 얼굴을 부르는군요. 기분은 성의를 지니고 상대에게 전해지나 봅니다."
(코지로, http://kuchu-camp.net/xe/18892)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좋았을까?
대답은 싱겁다.
좋아서 했기 때문에,
서로 친했기 때문에.
말없이 묵묵히 손을 잡아준 오래된/새로운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자체가 이유이자 목적(loving as loving)이었기 때문에.
(http://kuchu-camp.net/xe/64877 )
4.
지금도 여전히, 매번 새롭게 맨땅에 헤딩과 슬라이딩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깨닫고 있지만, 그 때는 정말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비자 이슈가 걱정되어 가까운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알리거나 공지글에 친목을 위한 이벤트라는 내용을 강조하기도 했다.
("본 행사는 공중캠프 커뮤니티 회원(캠퍼)들의 내부 이벤트로 보노보 오피셜 홈페이지와 공중캠프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홍보할 예정입니다. 공연전까지는 기타 홈페이지나 개인 블로그 등에 올리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http://kuchu-camp.net/xe/3217 ))
예매를 하기 위해서는 공중캠프 홈페이지에서 [캠퍼신청]을 해야 했고,
번거로운 설문에 일일히 답변을 적어 메일로 보내야 했다.
스태프들의 경우, 일은 일대로 하고 회비(+후원금+적자)는 회비대로 지불했고,
어려운 형편에 입장료를 내고 오는 분들을 생각해서 공짜밥 좋아하는 게스트는 받지 않았다.
아티스트 케어라는 개념도 없었기 때문에, 출연 아티스트들에게 술값이나 뒷풀이 비용을 받기도 했다.
스태프와 아티스트 모두 이벤트 참여자(관객)와 동일한, 수평적인 관계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이벤트 참여자들을 '관객(보는 손님)'으로 대상화 시키고, 물리적인 경계나 수직적인 위상이 생긴다는 우려로 스테이지도 만들지 않았던 때였다.
변변치 못한 캠프의 장비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캠프에서 처음 들어보는 사운드에 놀라면서, 리허설과 PA (엔지니어)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수십수백통의 메일을 주고 받으며 이벤트의 모든 일정을 꼼꼼히 챙기고,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서(!) 아티스트가 최선의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히 챙기는 모습(예컨대, 멤버별로, 시간대 별로 마시는 차의 종류를 제각각 준비하는 분도 있었다)을 보고, 매니져의 역할에 대해서도 어깨 너머로 배우게 되었다.
그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공연 준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했고, 형편이 닿는 껏 믹서와 파워앰프와 스피커 등을 조금씩 업그레이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젯밤과 오늘과 내일처럼 캠프에 없으면 염치 불구하고 주위 친구들에게 빌려서라도;;;
5.
그 다음 해(2009년) 여름, 보노보의 4번째 정규 앨범 「오리하루콘 날씨(オリハルコン日和)」를 발매하고 다시 공중캠프에서 공연을 했다.
코지로(기타)가 탈퇴했기 때문에, 코구레(Hicksville, Fishmanss)가 서포트 멤버로 함께 내한했고, ㅎㅅ형의 도움으로 EBS 공감에도 출연했다.
(이 때도 싸이의 비자 문제로 공연이 취소될 뻔했다.)
중간에 쉬는 날 야구장에 갔던 것도,
장마비에 계속 침수되어 전기공사를 했던 것도,
비를 쫄딱 맞고 창전동 불가마 문을 두드리던 츠지의 모습도,
공연이 끝나고 가라오케 라이브를 하거나 댄스파티를 했던 것도,
노개런티로 공연을 한 것도 모자라 공중캠프에 출자회비를 냈던 것도,
"비~어~ㄹ", "치~어~ㄹ~스"를 외치며 매일 새벽까지(특히 마츠이) 달리던 것도,
아직 말할 수 없는 서프라이즈/에피소드들도 생각난다.
"라이브 중에 죽어도 좋다라는 순간을 지금까지 2번 보았습니다. 그것은 지난 번과 이 번의 한국 라이브입니다!"
(마츠이, http://kuchu-camp.net/xe/64886 )
6.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SNC 이벤트의 경우, 공중캠프나 아티스트 모두, 돈을 목적으로 하는 공연이 아닌데다가,
그 사이 이런저런 인연(츠나가리)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서로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해 봄(2009년 4월), '공중캠프 초메이와크단(초민폐단)'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엄청난 민폐를 끼치기도 했고,
공연 다음 달(2009년 8월)에도 히비야 야옹(日比谷野音)에서 있었던 보노보 원맨 라이브를 보러 우르르 몰려갔다.
그 다음 주에는 보노보 차로 다같이 Fishmans가 출연했던 SLS 페스에 다녀오기도 했다.
당시 보노보 멤버들이 대부분 기치죠지 근처에 살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도쿄에 갈 때마다 항상 신세를 졌다.
2008년 4월, 하나레구미와 키세루를 만났을 때도,
2010년 1월, 공중캠프 커뮤니티 10주년 기념으로 도쿄에서 이벤트를 했을 때도,
언제나 베이스 캠프는 키치죠지의 본도호텔이었다.
2010년 가을, 한강과 공중캠프에서 있었던 Fishmans+ 공연에 코지로가 함께 왔고,
2011년 봄, 키치무 이벤트 때도 코지로가 Fishmans 멤버로 기타를 연주했다.
시모키타와 기치죠지에서 있었던 go go round this world 이벤트 때는 츠지가 Shleeps로, 사이가 솔로로 공연(+코지로&츠지와 서프라이즈 세션)을 해주기도 했다.
키치무 전시회 때는 사이와 낫짱, 츠지가 아이들을 데려왔고,
코지로는 ㅅㅌㄹ쇼를 선보였다;;;
7.
그 후 6년 동안은 공식적인 교류/이벤트가 없었다.
그 동안 보노보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2008년 연말, 코지로가 탈퇴하고,
2010년 연말, 마츠이가 탈퇴하고,
2015년 6월에는 츠지가 탈퇴했다.
오지마가 탈퇴하고,
하카세가 탈퇴하고,
유주루마저 탈퇴한 Fishmans가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 사이에도 기치죠지나 오사카에서 같이 술을 마신다거나,
새로운 멤버들의 보노보 공연을 보거나
마츠이가 활동하고 있는 YSIG 공연에 가곤 했다.
(아, <야음에서 키세루> 공연 뒷풀이 때 택시에서 펑펑 울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보노보의 예전 멤버들과 같이,
공중캠프의 오랜 친구들도 하나둘 스탭을 그만두었다.
사람이 바뀌면 음악도, 관계도, 시간도, 공간도 달라진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8.
사토신지가 있는/없는 휘시만즈, 초기/후기 휘시만즈를 구분하듯이,
'예전 보노보'와 '요즘 보노보'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사실 저도 종종 술자리에서 그런 식의 말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예전 보노보'와 다른 '요즘 보노보'에 더욱 관심을 갖고 기대를 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
"밴드에 관해서는, 오리지널 멤버 지상주의 같은, 이상한 환상이 있잖아요? 그게 (밴드를) 하는 측과 관계 없이, bonobos라는 그릇 안에서 사람이 늘거나 줄거나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까지도 기본은 쓰리피스로 하면서, 관악기나 현악기를 더하는 식으로 활동해왔고, bonobos는 "유니온" 같은 느낌도 있었구요."
(사이, http://kuchu-camp.net/xe/63303 )
"데뷔 때부터 생각해 봐도, 지금은 멤버 모두를 존경하면서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여러 가지 것들이 뒤섞인,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사이, http://kuchu-camp.net/xe/63675 )
"유니온", "리스펙트", "아직까지 없는".
"예전 공중캠프"와 다른 "지금 공중캠프" 역시, 고민하고 논의해야 될 주제라고 생각한다.
9.
그래서 더욱, 8년 만의 이번 보노보 공연이 반갑고 기대된다.
이번엔 어떤 새로운 음악, 어떤 유니온, 어떤 관계들을 만나게 되고, 만들게 될까?
보노보(와 공중캠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언제라도 아낌없이 시들자
그리하여 아름답게 살아가자
우리들이 바라는 건
이렇다 할 것도 없는 봄날
우리들은 기다리고 있어
이렇다 할 것도 없는 봄날을
산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끊어지지 않는 빛을"
(三月のプリズム, http://kuchu-camp.net/xe/64744 )
"사라지지 말고 조금 더, 작별 인사를 계속
그녀에게 살며시, 잘 자라는 말을 계속
흔한 말들에 노래하는 매직이야"
(あの言葉、あの光, http://kuchu-camp.net/xe/16286 )
10.
자, 그럼 이제 공항으로 출발!
Mighty Shine, Mighty Rhythm!
2017.2.11
고엄마
1.
2002년 11월, 시부야의 한 술집에서 "오사카에서 대단한 밴드가 나왔다"는 일본 친구의 추천으로 따끈따끈한 보노보의 라이브 부틀렉을 처음 들었다.
그리고 2003년 봄, 8cm 데모 싱글 음원과 첫 미니 앨범 『Headphone Magic』이 나오고, 《Chelsea Hotel》에서 첫 도쿄 라이브가 있었다.
(http://kuchu-camp.net/xe/62834)
공연이 끝나고 사이와 함께 사진을 찍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14년이 지났다.
2.
개인적으로 공중캠프 커뮤니티에 가장 에너지가 넘쳤던 시기는, 거의 매일 오프라인 번개를 했던 2002년 가을과, 카페 공중캠프를 지금의 시스템으로 리뉴얼한 2006년 봄이었던 것 같다.
그 때의 그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우리 힘으로 해보자'는 생각을 갖게 했고,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저절로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2003년 오픈한 카페 공중캠프도, 2007년에 시작한 "스바라시끄떼 나이스쵸이스(SNC)" 이벤트도 2002년과 2006년의 에너지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 아닐까?
그로부터도 어느새 10년이 지났다.
3.
그 무렵 공중캠프에서 가장 부르고 싶었던 뮤지션은 보노보(bonobos)나 폴라리스(Polaris)였다.
Fishmans를 아끼던 사람들이나 공중캠프 친구들이 'Post Fishmans'라는 단어를 써가며 기다려왔던 밴드 사운드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차이에 대해 강조하던 친구들도 있었다ㅎㅎ)
그리고 2008년 3월, 보노보가 공중캠프에서 첫 공연을 하게 되었다.
'기적의 순간', '마법의 사운드'라는 낯 뜨거운 말들 외에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http://kuchu-camp.net/xe/62830 )
"웃는 얼굴은 웃는 얼굴을 부르는군요. 기분은 성의를 지니고 상대에게 전해지나 봅니다."
(코지로, http://kuchu-camp.net/xe/18892)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좋았을까?
대답은 싱겁다.
좋아서 했기 때문에,
서로 친했기 때문에.
말없이 묵묵히 손을 잡아준 오래된/새로운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자체가 이유이자 목적(loving as loving)이었기 때문에.
(http://kuchu-camp.net/xe/64877 )
4.
지금도 여전히, 매번 새롭게 맨땅에 헤딩과 슬라이딩을 거듭하면서 조금씩 깨닫고 있지만, 그 때는 정말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비자 이슈가 걱정되어 가까운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알리거나 공지글에 친목을 위한 이벤트라는 내용을 강조하기도 했다.
("본 행사는 공중캠프 커뮤니티 회원(캠퍼)들의 내부 이벤트로 보노보 오피셜 홈페이지와 공중캠프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홍보할 예정입니다. 공연전까지는 기타 홈페이지나 개인 블로그 등에 올리지 말아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http://kuchu-camp.net/xe/3217 ))
예매를 하기 위해서는 공중캠프 홈페이지에서 [캠퍼신청]을 해야 했고,
번거로운 설문에 일일히 답변을 적어 메일로 보내야 했다.
스태프들의 경우, 일은 일대로 하고 회비(+후원금+적자)는 회비대로 지불했고,
어려운 형편에 입장료를 내고 오는 분들을 생각해서 공짜밥 좋아하는 게스트는 받지 않았다.
아티스트 케어라는 개념도 없었기 때문에, 출연 아티스트들에게 술값이나 뒷풀이 비용을 받기도 했다.
스태프와 아티스트 모두 이벤트 참여자(관객)와 동일한, 수평적인 관계라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이벤트 참여자들을 '관객(보는 손님)'으로 대상화 시키고, 물리적인 경계나 수직적인 위상이 생긴다는 우려로 스테이지도 만들지 않았던 때였다.
변변치 못한 캠프의 장비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캠프에서 처음 들어보는 사운드에 놀라면서, 리허설과 PA (엔지니어)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수십수백통의 메일을 주고 받으며 이벤트의 모든 일정을 꼼꼼히 챙기고, 주어진 조건과 상황에서(!) 아티스트가 최선의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히 챙기는 모습(예컨대, 멤버별로, 시간대 별로 마시는 차의 종류를 제각각 준비하는 분도 있었다)을 보고, 매니져의 역할에 대해서도 어깨 너머로 배우게 되었다.
그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공연 준비에 더욱 신경을 써야 했고, 형편이 닿는 껏 믹서와 파워앰프와 스피커 등을 조금씩 업그레이드 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젯밤과 오늘과 내일처럼 캠프에 없으면 염치 불구하고 주위 친구들에게 빌려서라도;;;
5.
그 다음 해(2009년) 여름, 보노보의 4번째 정규 앨범 「오리하루콘 날씨(オリハルコン日和)」를 발매하고 다시 공중캠프에서 공연을 했다.
코지로(기타)가 탈퇴했기 때문에, 코구레(Hicksville, Fishmanss)가 서포트 멤버로 함께 내한했고, ㅎㅅ형의 도움으로 EBS 공감에도 출연했다.
(이 때도 싸이의 비자 문제로 공연이 취소될 뻔했다.)
중간에 쉬는 날 야구장에 갔던 것도,
장마비에 계속 침수되어 전기공사를 했던 것도,
비를 쫄딱 맞고 창전동 불가마 문을 두드리던 츠지의 모습도,
공연이 끝나고 가라오케 라이브를 하거나 댄스파티를 했던 것도,
노개런티로 공연을 한 것도 모자라 공중캠프에 출자회비를 냈던 것도,
"비~어~ㄹ", "치~어~ㄹ~스"를 외치며 매일 새벽까지(특히 마츠이) 달리던 것도,
아직 말할 수 없는 서프라이즈/에피소드들도 생각난다.
"라이브 중에 죽어도 좋다라는 순간을 지금까지 2번 보았습니다. 그것은 지난 번과 이 번의 한국 라이브입니다!"
(마츠이, http://kuchu-camp.net/xe/64886 )
6.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SNC 이벤트의 경우, 공중캠프나 아티스트 모두, 돈을 목적으로 하는 공연이 아닌데다가,
그 사이 이런저런 인연(츠나가리)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서로 가까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해 봄(2009년 4월), '공중캠프 초메이와크단(초민폐단)'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엄청난 민폐를 끼치기도 했고,
공연 다음 달(2009년 8월)에도 히비야 야옹(日比谷野音)에서 있었던 보노보 원맨 라이브를 보러 우르르 몰려갔다.
그 다음 주에는 보노보 차로 다같이 Fishmans가 출연했던 SLS 페스에 다녀오기도 했다.
당시 보노보 멤버들이 대부분 기치죠지 근처에 살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도쿄에 갈 때마다 항상 신세를 졌다.
2008년 4월, 하나레구미와 키세루를 만났을 때도,
2010년 1월, 공중캠프 커뮤니티 10주년 기념으로 도쿄에서 이벤트를 했을 때도,
언제나 베이스 캠프는 키치죠지의 본도호텔이었다.
2010년 가을, 한강과 공중캠프에서 있었던 Fishmans+ 공연에 코지로가 함께 왔고,
2011년 봄, 키치무 이벤트 때도 코지로가 Fishmans 멤버로 기타를 연주했다.
시모키타와 기치죠지에서 있었던 go go round this world 이벤트 때는 츠지가 Shleeps로, 사이가 솔로로 공연(+코지로&츠지와 서프라이즈 세션)을 해주기도 했다.
키치무 전시회 때는 사이와 낫짱, 츠지가 아이들을 데려왔고,
코지로는 ㅅㅌㄹ쇼를 선보였다;;;
7.
그 후 6년 동안은 공식적인 교류/이벤트가 없었다.
그 동안 보노보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2008년 연말, 코지로가 탈퇴하고,
2010년 연말, 마츠이가 탈퇴하고,
2015년 6월에는 츠지가 탈퇴했다.
오지마가 탈퇴하고,
하카세가 탈퇴하고,
유주루마저 탈퇴한 Fishmans가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그 사이에도 기치죠지나 오사카에서 같이 술을 마신다거나,
새로운 멤버들의 보노보 공연을 보거나
마츠이가 활동하고 있는 YSIG 공연에 가곤 했다.
(아, <야음에서 키세루> 공연 뒷풀이 때 택시에서 펑펑 울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보노보의 예전 멤버들과 같이,
공중캠프의 오랜 친구들도 하나둘 스탭을 그만두었다.
사람이 바뀌면 음악도, 관계도, 시간도, 공간도 달라진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8.
사토신지가 있는/없는 휘시만즈, 초기/후기 휘시만즈를 구분하듯이,
'예전 보노보'와 '요즘 보노보'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사실 저도 종종 술자리에서 그런 식의 말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예전 보노보'와 다른 '요즘 보노보'에 더욱 관심을 갖고 기대를 하게 되는 측면도 있다:
"밴드에 관해서는, 오리지널 멤버 지상주의 같은, 이상한 환상이 있잖아요? 그게 (밴드를) 하는 측과 관계 없이, bonobos라는 그릇 안에서 사람이 늘거나 줄거나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까지도 기본은 쓰리피스로 하면서, 관악기나 현악기를 더하는 식으로 활동해왔고, bonobos는 "유니온" 같은 느낌도 있었구요."
(사이, http://kuchu-camp.net/xe/63303 )
"데뷔 때부터 생각해 봐도, 지금은 멤버 모두를 존경하면서 음악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여러 가지 것들이 뒤섞인, 아직 들어 본 적이 없는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사이, http://kuchu-camp.net/xe/63675 )
"유니온", "리스펙트", "아직까지 없는".
"예전 공중캠프"와 다른 "지금 공중캠프" 역시, 고민하고 논의해야 될 주제라고 생각한다.
9.
그래서 더욱, 8년 만의 이번 보노보 공연이 반갑고 기대된다.
이번엔 어떤 새로운 음악, 어떤 유니온, 어떤 관계들을 만나게 되고, 만들게 될까?
보노보(와 공중캠프)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언제라도 아낌없이 시들자
그리하여 아름답게 살아가자
우리들이 바라는 건
이렇다 할 것도 없는 봄날
우리들은 기다리고 있어
이렇다 할 것도 없는 봄날을
산다는 것의 아름다움을
끊어지지 않는 빛을"
(三月のプリズム, http://kuchu-camp.net/xe/64744 )
"사라지지 말고 조금 더, 작별 인사를 계속
그녀에게 살며시, 잘 자라는 말을 계속
흔한 말들에 노래하는 매직이야"
(あの言葉、あの光, http://kuchu-camp.net/xe/16286 )
10.
자, 그럼 이제 공항으로 출발!
Mighty Shine, Mighty Rhythm!
2017.2.11
고엄마
1. 보노보란 이름도 이제 십오년 이상, 새로운 멤버들도 비슷하거나 그 이상 음악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라 꾸준히 쌓여온 노련한 연주에 뭉클했다.
2. 8년전 스페이스 공감에서 보노보를 소개할때 '덥팝 밴드'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지금 이순간의 보노보는 '덥재즈'라고 하고싶었던 음알못의 내뱉음. 새로운 키보디스트는 짧은 시간이지만 쿠루리에서는 드러머였다고. 노련한 드러머에 드러머 경력의, 비트와 선율 모두에 능란한 키보디스트(여기도 역시 노련. 멤버들 모두가 노련노련. 하, 연륜이란 멋있어라)가 더해져서인지 되게 성숙하고 세련되었다. 그래서 덜 보노보같기도 하고, 비트나 합의 이상향이 더 보노보, 이것으로 꽃피려했던 보노보같기도 했다. 보노보 라이브를 꾸준히 챙겨봐온 사람도 아니라 장담할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성숙&노련 최고. 계속 만들어져가는 보노보 최고.
3. 밴드라이브는 처음 경험한 혜빈이는 "이런 거구나!"하면서 네번째 곡에 이르러서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그런 순간에 같이 있어서 기뻤다.
4. 대학시절에 듣던 곡들이 연주될때 "그때로 돌아간 기분 들고 그러지 않았어?" 혜빈이가 물었다. 전혀 그렇진 않았다. 바로 지금 연주된 음악이 정말 훌륭했고 거기에 즐거웠다. 보노보도 지금의 보노보, 나도 지금의 나로 만난다. 수년전 들었던 음악의 반복이 아니라 여기서 새롭게 나타난 음악이었다.
5. 키보디스트를 보면서, 저런 연주가는 어릴때부터 제대로 교육받았겠지,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17.2.12
ㅈㅅㅇ 님
2. 8년전 스페이스 공감에서 보노보를 소개할때 '덥팝 밴드'라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지금 이순간의 보노보는 '덥재즈'라고 하고싶었던 음알못의 내뱉음. 새로운 키보디스트는 짧은 시간이지만 쿠루리에서는 드러머였다고. 노련한 드러머에 드러머 경력의, 비트와 선율 모두에 능란한 키보디스트(여기도 역시 노련. 멤버들 모두가 노련노련. 하, 연륜이란 멋있어라)가 더해져서인지 되게 성숙하고 세련되었다. 그래서 덜 보노보같기도 하고, 비트나 합의 이상향이 더 보노보, 이것으로 꽃피려했던 보노보같기도 했다. 보노보 라이브를 꾸준히 챙겨봐온 사람도 아니라 장담할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성숙&노련 최고. 계속 만들어져가는 보노보 최고.
3. 밴드라이브는 처음 경험한 혜빈이는 "이런 거구나!"하면서 네번째 곡에 이르러서는 눈물이 날 것 같았다고. 그런 순간에 같이 있어서 기뻤다.
4. 대학시절에 듣던 곡들이 연주될때 "그때로 돌아간 기분 들고 그러지 않았어?" 혜빈이가 물었다. 전혀 그렇진 않았다. 바로 지금 연주된 음악이 정말 훌륭했고 거기에 즐거웠다. 보노보도 지금의 보노보, 나도 지금의 나로 만난다. 수년전 들었던 음악의 반복이 아니라 여기서 새롭게 나타난 음악이었다.
5. 키보디스트를 보면서, 저런 연주가는 어릴때부터 제대로 교육받았겠지,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17.2.12
ㅈㅅㅇ 님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공중캠프 사랑해요 늘 고맙습니다"
(ㅈㅎㅁ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