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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eside - Gyorgy Ligeti

vol.001 조회 수 84 추천 수 0 2019.06.28 16:46:24
Gyorgy Ligeti (*1923)

/ 성훈



ligeti.jpg



먼저 웹진 출발을 축하해본다. 설마 하나쯤은 쓸 것이 있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덜컥 약속을 했는데 미루고 미루다가 마감시간을 하루 넘겨서야 겨우 글 내용을 정했다. 어설프게 모던록을 리뷰하자니 ‘요즘 들은 것도 없어 보이는데 쓰지나 말지’ 하는 냉담한 반응과 함께 빈티가 확 날 것 같고, 그렇다고 피쉬맨스 주변 음악을 리뷰하자니 이건 거의 여자화장실에 잘못 들어갔을 때의 그 어색함과 다를 바 없다. 마루에 뒹굴면서 음, 도대체 나한텐 왜 이렇게 들을만한 음반이 없냐, 라고 자학하며 애꿎은 스피커만 노려보다가 미친 척하고 리게티를 듣기로 했다. 아 그렇지, 리게티 정도의 현대음악이라면 한 번 써봄직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리게티에 관한 글을 시작할 수 있을까? 먼저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그의 <키리에>가 수록된 것을 상기시켜드려야겠다. 두 번째는 그의 공전의 히트곡(?)이자 비오는 날에 창문 열어놓고 빗물 떨어지는 배수관소리에 어울려 함께 듣기에 적절한 <100개 메트로놈 심포니>를 말씀드리고 싶다.

이 사람의 음악적 성향을 말하기 전에 정치적 성향부터 말하는 것이 좋겠다. 리게티는 나치즘이나 공산주의 물결, 독재주의라든가 소셜리스트 리얼리즘 등의 일단의 ‘통치’와 관련된 것들에 대한 반발이 뼛속에 사무친 골수 자유주의자다. 특히 그 통치가 독재주의로 흐를 법하다면 리게티와는 연줄이 끊겼다라고 보면 되겠다. 루마니아와 헝가리를 전전하며 독재 속에 지낸 유년 시절, 아버지 어머니 모두 아우슈비츠로 끌고 간 나치즘, 예술속의 자유의 혼을 앗아간 전체주의와 공산주의, 이들 모두 그의 일생에 태클을 걸었으며 한계를 부셔내는 듯한 그의 음악 속에 담긴 영혼은 이런 시절에서 깊이 각인된 것이 아닐까 싶다.

리게티 역시 음악을 공부하던 학창 시절에는 바하, 슈만 등의 고전들도 공부하였고 서툰 피아노 솜씨로 리스트 흉내도 내보았고 어설픈 멘델스존 스타일의 작곡도 해보았다. 그 와중에서도 특히 작곡을 시작한 초기에는 바르톡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보여지는데 그때는 별 볼일 없는 시기라고 봐도 되고, 후에 그가 베토벤이나 바르톡의 껍질을 벗고 다른 ‘현대음악’을 시작하면서부터 별 볼일이 많은 시기가 도래한다.

학구적이고 유쾌한 이 작곡가는 바르톡으로부터 독립한 뒤 처음엔 스톡하우젠이나 불레즈와 교감하면서 음악을 바꾸더니, 후엔 존 케이지라든가 스티브 라이히, 테리 라일리, 백남준(음악은 아니지만), 마우리치오 카겔, 또한 많은 전자음악가와 악기전문가들 등과 함께 동시대를 살면서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든다.

일단 존 케이지와는 좀 다른 노선인데, 존 케이지는 공연장 관객의 웅성대는 소리나 공연전의 조율 소리, 공기소리, 숨 쉬는 소리, 창밖에 들리는 무의미한 소음소리 등 모든 소리를 자기 음악 안에 집어넣은 사람이다 (이것은 소음을 ‘골라’ 사용하는 인더스트리얼 음악이나 소음을 ‘채취’하는 전자음악과는 전혀 다르다). 이처럼 존 케이지는 ‘음악은 삶의 일부이자 전체’라는 전제에서 출발했지만, 리게티는 그 정도는 아니고 대신 수많은 음의 격자로 이루어져 분석이 불가능해진 ‘마이크로폴리포니’라는 단위의 음원들을 뭉쳐서 음향 덩어리를 만들어냈다. 고전음악 애호가들에게 미친 놈 취급을 받는 클러스터(음악 덩어리. 듣고 있으면 천둥이 치는 것 같다)와 유사한 이 리게티의 블록 사운드에는 음악에 대한 리게티의 생각이 담겨있다. 베토벤이나 바르톡에서 보여주던 리듬, 화성 등 겉에 드러나는 요소를 음향 덩어리에 숨겨버리고 그 자체를 음악, 즉 우리 주변의 뭉뚱그려진 환경 자체처럼 승화시킨 것이다.

스티브 라이히나 테리 라일리 같은 미니멀리스트와 리게티는 어쩔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대놓고 미니멀리즘을 하지는 않지만 리게티가 <100개의 메트로놈 교향곡> 또는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작품 <모뉴먼트> 등에서 보여주는 ‘격자 짜집기’ 식의 음악은 규칙이 다른 음원들이 조합되면서 생겨난 많은 불규칙들, 그렇지만 최소공배수점을 찾아냈을 때 되돌아온 규칙, 뭐 이런 것들을 들려준다. <모뉴먼트>같은 작품을 듣고 있으면 어렸을 적에 왼손으로 삼각형을 그리고 오른손으로 사각형을 그리는 놀이(시체놀이의 일종인 것 같다)를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더욱이나 이런 리게티의 방향성은 백남준과 친구가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백남준이 TV를 100개 전시해서 트는 것과 똑같을 것 같다). 음, 다시 미니멀리즘으로 돌아가면, 내 생각에 미니멀리즘의 매너리즘을 주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필립 글래스나 미국발 아티스트 존 아담스와는 리게티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리게티 자신은 반복을 싫어하는 변화주의자이기 때문이다. 리게티가 스티브 라이히나 테리 라일리와 친분을 유지하며, <쇼팽곡을 뒤에 집어넣은 라이히와 라일리를 통한 나의 초상> 같은 작품을 내놓은 것은 그들이 ‘변화의 힘’을 가진 미니멀리스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우리치오 카겔과의 만남은 뭐, 필연적이다. 카겔은 리게티 보다도 더욱 클러스터에 충실한 아티스트이기도 하고, 음악적 이론은 탄탄하지만 나오는 내용물은 장난기와 유쾌한 조롱으로 가득한 괴짜이다. 생긴 외모로 보나 음악스타일로 보나 우디 앨런이 코미디 만들 듯이 음악 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리게티가 카겔이 주창하던 ‘오페라 해체’에 동참하면서 두 사람의 동거(?)는 시작되었는데, 그 와중에 교감이 있었는지 음악도 역시 비슷한 면이 보인다. 그리고 백남준이 자신의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상 나오는 인물들이 결국 동일 인물들인데, 스톡하우젠 – 리게티 – 카겔 – 백남준 – 존 케이지 뭐 이런 노선으로 링크가 걸려있다.

리게티는 굉장한 악기 지향형 음악가다. 그 자신은 교향곡을 쓰고 싶어 현악4중주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지만, 그는 교향곡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다. 사실은 그 바닥의 친구들은 모조리 교향곡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에게는 성능 좋은 메트로놈 100개, 진공관을 변형시킨 오르간, 세게 때려도 부서지지 않는 하프시코드, 계속 튕겨도 끊어지지 않는 줄을 가진 바이올린, 페달을 개조한 피아노, 뭐 이런 악기들이 더 어울린다. 리게티가 오르간을 위한 곡을 작곡하고 공연하려 했을 때, 다른 곳에서 연습 중에 그 곳의 오르간을 터뜨려먹어서 겁이 덜컥 난 성당이 공연을 취소시킨 적도 있었다. 그가 메트로놈 100개로 첫 공연을 할 때는 공연장 관계자나 무대 설치자들이 모두 당황하여 공연 시작 전까지 굉장한 삽질을 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방송국에서 그 공연을 녹화하여 방송하기로 했는데, 리게티가 그 시간에 TV를 보니 축구 경기로 대체되어 방송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음, 너무 길어져버렸다. 마무리를 할 시점이 온 것 같다. 리게티 선생님이 굉장히 괴짜이고 특이한 사람인 것처럼 써버린 느낌인데, 그의 작품을 보면 메카니컬 음악 쪽은 좀 어렵지만 피아노 곡들이나 키보드 곡들 중에는 귀에 달콤한 것들도 있는 등 스펙트럼이 엄청나다. 종합음원가게라고나 할까? 그의 악기지향성을 반영하여 소니 클래식에서 악기종류별로 구분된 시리즈를 릴리즈해 두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들어보시길 바란다. 피아노 -> 키보드 -> 스트링 -> 메카니컬 -> 일렉트로닉 뭐 이런 순서대로 무난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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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 "우리는 걷는다 단지 그뿐(ぼくらは步く ただそんだ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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