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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더미의 연금술사들 - 망아자의 책장에서

/ 방태정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부질없고, 시시한 것을 철저히 성실하게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문득, 내가 좋아하는 음악, 만화, 미술 등에 대해서, 「왜 그걸 좋아하게 됐을까?」라고 생각해 보았을 때, 몇명의 작가에게 느끼는 공통된 이유는, 바로 이 「부질없고, 시시한 일을 철저히 성실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철저히」라는 것이다. 「부질없고 시시한 일을 어설프게 한다」라는 행위만큼 어리석고 재미없는 행위는 없다. 어차피 하려고 마음 먹었으면 「철저히」 해야 한다. 「가치있는 일을 성실하게 한다」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행위이지만, 그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되는 「부질없고 시시한 일을 철저히, 집요하게 성실하게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있어,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해서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행동이나 사물, 인물은 사회에 의해 말살되는 운명에 처해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사회로부터 「터부」라고 여겨지는 존재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회적으로 무의미/무가치하다고 생각되는 「부질없고 시시한 일」에 빛을 쬐어 그것을 어떤 컨셉으로 표현(아웃풋)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 진지한 태도로 철저히 작품화했을 때, 그 작품은 최고의 엔터테인먼트가 되어, 쓸모없는 자갈은 빛나는 황금이 된다.

여기서 소개하는 일본 작가들은, 바로 그 「부질없고 시시한 일」을 테마로 삼아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표현 방법을 사용하여 작품으로 승화하는 재능을 가진 연금술사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들의 직함은 본래 「만화가」이지만, 영상이나 글 혹은 카테고라이즈 불가능한 장르로 다방면에 걸쳐 활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한사람 한사람의 작가성이나 작품성에 대해서 주관적인 평론을 하는 것은 가급적 피하고자 한다. 안타까운 일은 그들의 작품이 아직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아 한국의 독자들이 이 작품들을 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가고 신타로의 경우, 2001년에 「엽기 시대」라는 작품이 번역되었지만, 출판사의 도산으로 지금은 구하기가 힘들다). 사실 일본에서도 그다지 대중적인 작가들이 아니고 번역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일본 만화가 널리 유통되고 있는 한국이라도 쉽게 출판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일본에서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작품이라면, 언어의 차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바라건대 이 소개문이 여러분의 훌륭한 「만화 생활」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1.네모토 다카시(根本敬 Nemoto Taka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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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특수만화가」. 1981년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언더그라운드 만화 잡치 가로(GARO)에서 "청춘 흐느껴 욺(青春むせび泣き)"으로 데뷔. 이후 지금까지 만화라는 표현 장르에서 유일하고 독특한 존재로 활약중. 방사능을 받아 돌연변이한 정자 타케오와 그 아버지인 색골 스즈키 사다키치(鈴木定吉)의 기구한 운명을 그린 대작, "타케오의 세계(タケオの世界)"가 수록된 "괴인무예강라라바이(怪人無礼講ララバイ)"와 저속하면서도 매력적인, 묘한 설득력을 가진 망상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현실과 망상, 제정신과 광기의 경계가 서로 질퍽질퍽하게 녹아있는 스펙타클, "마이크로의 정자권(ミクロの精子圏)"이 수록된 "거북 머리의 수프(亀の頭のスープ)", 이 두가지 작품은 "정자 3부작"이라는 시리즈로 발표되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비록 세번째 작품인 "미래정자 브라질(未来精子ブラジル)"은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그리지 못하고 있지만. 그리고 최신작 "명명(命名)"은 음악으로 비유를 하자면 "noise" 같은 만화라고 할 수 있다.

네모토 다카시가 그린 그림을 보고 "변소의 낙서 같다"고 혐오하는 사람이 종종 있지만(특히 여성분들),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가 쓴 글들을 추천하고 싶다. 그의 필드워크인 "인과자"라고 부르는 "outsider" 와의 일상을 지은 "인생해독부두(人生解毒波止場)"와 "인과철도의 여행(因果鉄道の旅)", 그리고 "전기보살(電氣菩薩)". 이 세권의 책은 outsider의 눈으로 본 네모토 다카시의 "인간존재의 본질", "우주의 진리"를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로 보여 주는 수작이다.

그 이외에도 천황에게 새총을 날리거나 태평양전쟁 당시, 상관의 아들에 대한 살인미수의 죄로 교도소에 수감된 오쿠자키 겐조(奥崎謙三)란 사람을 주인공으로 찍었던 영화, "하느님의 귀여운 녀석(神様の愛い奴)" 등 두편의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

덧붙여 말하면 네모토 다카시는 한국에 대해서도 조예가 깊다. 한국에 다녀 간 횟수가 무려 40번 이상! 음악평론가 유아사 마나부(湯淺學), 편집자 후나바시 히데오(船橋英雄)와 함께 "환상의 명반 해방 동맹(幻の名盤解放同盟)"이란 명의로 "Deep Korea"라는 색다른 한국관광가이드를 출판하기도 했다.

홈페이지: http://www011.upp.so-net.ne.jp/TOKUSYUMANGA/  
(※영어 페이지 있음)


2.가고 신타로(駕籠真太郎 KAGO SHINTAR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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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신타로는 폭력, 변태성욕 같은 인간의 암부를 편집증적인 개그 만화로서 표현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작가이다. 피터 잭슨의 "BAD TASTE", "BRAIN DEAD"와 같은 공포영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가고 신타로 작품의 재미를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처음 입문하는데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작품은 떠돌이 사립탐정 쿠로다와 정체 불명의 소녀 조수가 기괴한 룰에 의해 지배되는 마을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해결하거나 하지 않거나 하는 "파라노이아 스트리트(パラノイアストリート)"나 비정상인 수집벽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그린 "아쯔메모노 시리즈(あつめものシリーズ)"가 수록된 "기인화보(奇人畵報)", 만화라는 장르에 대한 고찰을 만화라는 표현 방법으로 그려 낸 실험작품, "역전증식(駅前増殖)"이 수록된 최신작 "가스토로 식(カストロ式)" 등이 있다.

또한 가고는 개인적으로 똥에 대해서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강한 흥미와 관심을 갖고 있는데, 요새는 똥을 주제로 찍은 영화를 상영하는 "똥 영화제"를 열거나, 프로/아마츄어를 가리지 않고 100명의 작가들이 똥을 주제로 만든 작품들을 모아서 "세계가 만일 100개의 똥이라면"이란 책도 출판했다. 그 이외에도 자신의 만화를 영상화하거나 자신의 만화에서 나온 장면을 입체모형으로 재현해서 뽑기(ガチャガチャ)로 만들어 팔기도 한다.

홈페이지: http://www1.odn.ne.jp/~adc52520/


3.아마히사 마사카즈(天久聖一 AMAHISA MASAKA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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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히사 마사카즈란 사람은 출판된 작품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일부 열광적인 독자들에게 지지를 받는 작가다. 특히 백미는 다나카 가쯔키(タナカカツキ TANAKA KATSUKI)와 함께 쓴, "붓츄군 올 백과(ブッチュ君オール百科)". "도라에몽"을 비롯하여 수많은 작품으로 인기를 얻은 일본의 국민적인 만화가, 후지코 후지오(藤子不二夫)의 캐릭터를 답습, 패러디하여 “붓츄군”이라는 만화에 관한 270쪽 짜리 백과사전을 펴낸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캐릭터 소개, 단행본의 커버, 애니메이션판 붓츄군, 캐릭터 노래의 레코드 쟈켓, 제작시의 비화 등이 소개되어 있지만, 사실 이 책에 실려 있는 모든 것이 아마히사 마사카즈와 다나카 가쯔키가 지어낸 허구이며, 그런 의미에서 "망상책"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마히사 마사카즈 하면 많은 사람들이 아는 작품중의 하나가 "바보 드릴(バカドリル)"이다. "올바른 무엇을 하는 방법"과 같은 노하우 책을 철저히 패러디해서 전혀 쓸모가 없는 노하우 (예를 들면 "달력을 넘기는 올바른는 방법" 이라든가 "체중을 재는 올바른 방법" 등)를, 도해를 중심으로 소개한 작품이다. 이 책이야 말로 위에서 말한 "부질없고, 시시한 것을 철저히 성실하게 한다"는 정신을 정말 제대로 체현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이다.

역시 아마히사도 영상분야에서 ,"슬픔 조니(悲しみジョニー)"란 작품을 2003년에 발표했다 (음악은 TOKYO NO.1 SOUL SET의 와타나베 도시미!!). 일본 주재의 흑인 조니가 일본 전통춤인 "도죠 스크이(추어 건져냄)"를 배우러 성지 "시마네"에 가는 여정과 실제로 "도죠 스크이"를 배우는 광경을 스크래치, 리믹스함으로써 재구축하는, 웃기면서도 왠지 광기에 가까운 느낌을 갖게 하는 작품이다.

그 외에도 그는 약 1년전에 "아마히사 마사카즈의 아지샤 입문(天久聖一の味写入門)"이란 웹사이트를 시작했다. "아지샤"는 한국말로 하면 "맛(묘미/운치) 있는 사진"이란 뜻인데, 잘못 찍은 사진도 감상자의 시점에 따라 스토리성이 있는 의미있는 사진이 된다는 컨셉이다. 일주일에 두어장의 "아지샤"를 소개하면서 언뜻 보기엔 아무 재미도 없는 사진에서 정보를 읽어내고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는 세계나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즐거움을 선사 한다. 덧붙여 말하면 아마시하는 만화가가 되기 전에 지방 교도소에서 간수로 일했다.

아마히사 마사카즈의 아지샤 입문: http://www.1101.com/ajisha/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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