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PSIDE ON-LINE


(2012/10/14) Walking Together vol.63에 대한 단상

(부제: 회사에서 시간을 빨리 보내기 위한 후기)


 


 



2012.10.15 18:00:09 처음 쓰고

2013.04.11 18:00:00 조금 수정

2014.03.19 18:00:00 다시 수정

 

고엄마

 

 


1. 


헨의 친구인 부산아.들이 김일두, 곽푸른하늘 등과 캠프에서 공연을 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 "Walking Together" (이하 WT)의 포맷이 있으니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 WT 기획서와 이벤트 상세도 깔끔하게 작성해 주었고, 포스터도 직접 인쇄하여 택배로 보내 주었다. 인터넷 친구 보다는 술 친구가, 같이 술을 마시는 것 보다 같이 일을 해보면 그 사람에 대해 더욱 잘 알 수 있다. 특히, 할 일은 제대로 안 하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만 혈안이 된 사람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공동(common)의 무언가를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비교해 보면, 그 사람의 정체를 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간혹, 공중캠프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들 중에, WT를 그저 대관료 없이 공짜로 이벤트를 할 수 있는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 물론 그렇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캠프가 아니라도 상관없는 이벤트라면, 굳이 캠프에서 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가끔 리허설 중에 “아, 씨발 존나 꼬졌네”라며 자신의 수준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분들이 있다. 아마 그런 분들일수록, 그 무대가 너님들 허세나 떨라고 마련된 자리가 아니라는 것, 열악한 상황에서도 최선의 사운드/퍼포먼스를 준비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이 리허설이라는 것, 자신이 얼마나 자격 미달인지를 깨닫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험난한 세상을 함께 걷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애정과 respect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 ‘씨발 존나 꼬진’ 분들이 당신들보다 훨씬 오래 공중캠프를 지켜왔고, 훨씬 더 좋은 연주를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2. 


지난 달 WT.62 (2012/9/23) 때, ㅈㄱㅂㅈㅇ의 보컬 분이 공연 중에 "여기를 밟으면 쑥 들어가네요ㅎㅎ"라는 MC를 한 적이 있다. 작년 3월, SNC.11(써니데이 서비스)를 위해 만든 (일명) ‘설중매 스테이지’의 박스(주류 박스 중에 가장 부실하다)가 일부 깨졌기 때문이다. 며칠 뒤 주류회사에 전화를 걸어 혹시 좀 더 튼튼한 팔레트로 바꿀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한꺼번에는 힘들지만 생기는 대로 조금씩 가져다 주겠다고...


그 즈음 ㄱㅎ로부터 야외 공연을 위한 장비 대여 문의가 있었다. 바로 다음날 WT.63이 예정되어 있어 일정 상 조금 무리가 있었지만, 필요할 때 친구가 진짜 친구! 이런저런 음향 장비들을 무대에서 내리고, 내친 김에 바에 앉아 술을 마시던 친구들과 100여 개 남짓한 설중매 박스를 들어내었다(그 중 33개가 아직 0.5층에 쌓여 있(었)다). 혼자 했으면 까마득했을 일이 순식간에 끝났다 (상견례를 하고 온 ㅂㄱㄹ 커플도 정장차림으로 손을 보탰다). 역시, 한 사람이 열 박스 보다 열 사람이 한 박스! 힘들고 복잡한 일도 같이 하면 즐겁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공연 당일(10/13), 장소 섭외에 문제가 생겨 그냥 캠프에서 하게 되었다;; 급한 대로 그때까지 배달된 팔레트들을 쌓고, 그 위에 회사 바자회 때 가져 온 카펫을 패치 형태로 깔아 공연을 치뤘다.)


얘기가 길어졌지만, 그 다음 날 WT.63이 더 특별했던 건, 이 팔레트 스테이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래된 숙변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사실 오프라인 캠프를 처음 만들 때부터 무대를 만들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종종 있어왔다. 하지만 매번 판단이 유보되었는데, 더 잘 보이는 (높은) 무대가 자칫 물리적인 경계를 만들고, 이벤트 참여자들을 ‘관객(보는 손님)’으로 대상화 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런 탁상공론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니 마침내, 계속 이렇게 아무 것도 안하고 똑같은 고민만 몇 년째 지속하는 것은 정말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차라리 일단 한번 만들어 보고, 정 아니다 싶으면 그 때 다시 되돌리는 걸로, OK?



3. 


여튼, WT.63 전날, 급 결정된 (폐펑크락) 공연이 무사히 끝나고, 평상시처럼 조용하고 쓸쓸해진 캠프에 일본 분들이 놀러 왔다.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불역락호 - 벗이 멀리서 찾아주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고교 선후배 사이로, 한 분은 오사카, 두 분은 도쿄에 살고 있다고 했다. 역시나 휘시만즈, 폴라리스, 보노보, 키세루, 하나레구미, 써니데이 서비스 등을 좋아해서 오게 됐다고. 학교나 회사에서 수백 수천 일을 함께 보낸 사람보다 5분 전에 처음 만난 친구가 훨씬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건배를 하며 수다를 떨다가, FREENOTE라는 밴드에서 활동 중이라는 하타 상이 언젠가 휘시만즈와 이쿠코가 공연했던 이 곳에서 연주할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아, 혼또니? 마침 내일 공연이 있으니까, 기획하신 분들께 한번 여쭤볼까요?” (아, 그러고 보니 이 얘기를 하고 있던 새벽에 신종 아줌마 재난이 오기도 했구나;;)



4. 


부산아.들의 대답은, “물론이에요. 저희야 고맙죠”. 오픈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키보드를 급히 구해야 했다. 염치 불구하고, 캠프 친구들에게 헬프를 쳤다. 다행히 ㅁㅊ의 키보드가 ㅅㅅ씨 집에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특유의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캠프까지 가져다 주었다. 그런데 막상 키보드를 설치하려는데, 어댑터가 없었다;; 이미 도어 오픈을 한 상태... 다행히 기타 이펙터 어댑터가 규격에 맞아, 전원을 켤 수 있었다. 


하타 치카코의 공연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덜컹거리는 스탠드에 리허설도 없이 급하게 준비한 공연이었지만, 역시 10년 이상 쌓아온 내공 때문인지, 여러 악조건들을 유연하게 컨트롤 하며, 좋은 연주와 노래를 들려 주었다. 캠프에서 처음 공연을 한 곽푸른하늘 역시, 아주 좋았다. 바로 CD를 사서 싸인을 받았다. 세 번째가 이 이벤트를 기획한 부산아.들. 맥주 두 잔에 취한 덕분이었는지, 천천히, 좌우로 흔들거리며, 장난처럼 진지하게 이어진 우울하고 따뜻한 노래들이 마음에 들었다. 괜찮은 친구들이 정말 많아졌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넉넉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순서는 지니어스 어쿠스틱, 깔끔하게 4단콤보를 완성해 주었다.


아티스트뿐 아니라 따뜻한 시선과 호응으로 공연을 즐기는 참여자들 또한 최고였다. 이런 사람들/마음들/기분들이 자칫 썰렁하고 퀴퀴할 수 있었던 공간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술이 저절로 입 안으로 들어 갔다. 간혹 어떤 이벤트/공연을 평가할 때, 이벤트의 규모와 라인업, 이벤트 참여자(관객)의 수를 결정적인 기준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추상화된 숫자와 다른 사람의 평가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수록 더욱 자주, 좀 더 깊은 만족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5. 


부산팀은 23시 KTX, 일본팀은 다음 날 귀국, 뒷풀이는 무리였다. 공연이 끝나고 케이블을 정리하고 있는데,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여러 우연과 애정이 겹쳐 새로운 쯔나가리(つながり)가 생겨나고 있었다. 문득, "기분을 담는다고 하는 의미에서. 나무(기운)를 따뜻하게 해준다는 것, 자신의 체온으로 느낀다는 감각... 바이올린도 피아노도 생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던 혼지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좋은 음악과 Live Act 역시 그런 따뜻함을 전해준다. 


다시 쓸쓸해진 캠프에서 오랜만에 <Thank you for the music>을 들으며, (당시 일요일 스탭이던) 헨의 사천 짜파게티를 흡입했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싶다가도 좀 더 튼튼히 살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다음 Walking Together에는 또 어떤 귀찮고 어이없고 재미있는 일들이 생길까… 



6. 


자, 6시다. 퇴근하자!


profile

"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 "우리는 걷는다 단지 그뿐(ぼくらは步く ただそんだけ)"

엮인글 :
http://kuchu-camp.net/xe/53078/d20/trackbac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vol.001 Fishmans 再確認 !! [ バリヤバ (5호) - 모테기 킨이치 인터뷰] file

  • 2015-07-20

vol.027 [번역] 에머슨 키타무라 ototoy 인터뷰

  • 2015-04-28

vol.027 [번역] 후지카와 타케시 - 에머슨 키타무라의 탄생

  • 2015-04-28

vol.027 [번역] エマーソン北村 - 遠近(おちこち)に 수록곡 코멘터리

  • 2015-04-28

vol.027 [단상] SNC.14 - 공기공단

  • 2015-04-28

vol.027 ROOTS CAMP vol.1 - ROOTS TIME meets KUCHU-CAMP (2014.9.20)

  • 2015-04-24

vol.027 [김경묵 병역거부 소견서] “죽음을 부르는 군대를 거부한다”

  • 2015-01-14

vol.027 [끄적] 네 번째 회사 1000일째 아침 [2]

  • 2014-04-30

vol.027 [단상] '어려운 문제'에 대한 대답 [1]

  • 2014-03-31

vol.027 [후기] Walking Together vol.63에 대한 단상

  • 2014-03-21

vol.027 [끄적] 311 이후 3년 file

  • 2014-03-18

vol.001 [가사번역] 챤스(チャンス) file

  • 2014-03-17

vol.027 [끄적] 안녕들의 반격 file

  • 2013-12-30

vol.027 [사진] ‘고요함’과 ‘생략’, ‘폭력’과 ‘장소상실(placelessness)’의 “빈 공간” file

  • 2013-10-05

vol.027 [리뷰] 장찰스 - 겨울이었어 : Polaris Live 2012 ‘光る音’ 京都METRO

  • 2013-09-05

vol.011 [캠퍼 릴레이 인터뷰] 정미환 묻고 박의령 답하다 [2]

  • 2012-11-16

vol.027 [번역] 모테기 킨이치가 말하는 [공중캠프]의 추억

  • 2012-09-12

vol.020 타히티

  • 2012-07-18

vol.009 제헌절

  • 2012-07-18

etc 몇몇 캠퍼설문

  • 2012-07-1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