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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 리뷰

 

/ 현경

 

 

그러니까 모든 기억은 자신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항상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할라치면 '내 얘기'부터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어떤 것을 조우했을 때, 내가 그것을 아주 좋아하게 되었을 때, 그것과 관련된 인상 깊었던 순간에 대해서. 그것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이야기를 잘 시작하지 못하겠달까. 아니,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하겠다라기보다 어쩌면 그것이 결국엔 그것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재미없고 사소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보노보를 처음 내게 들려주었던 건 M이었는데, electlyric을 씨디에 구워주었다. 날짜는12월 31일이었고, 날씨는 화창. 강풍이 불었으며 우리는 영화를 보고 나와 만족스런 마음이 되어 가벼운 말들을 주고받으며 내년에는 이런 걸 해볼까, 하며 실현하기 어려울 것 같은 것과 소소한 것들이 뒤섞인 다음 해의 계획을 세웠다.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보노보를 씨디 플레이어에 돌려놓고서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끼고, 낭창하게 들어오는 햇빛을 맞으며 조조영화를 위해 간만에 일찍 일어난 기운 탓에 꾸벅꾸벅 졸면서 집에 돌아왔다. 신지사토와 한 구석이 닮았지만 더 안정적이고 차분하게 들리는 채충호의 목소리는 빛나는 햇빛과 함께 조용하게 떨어져내려 버스에서의 낮잠은 평화로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M은 어떻게 된 일인지 기억과 꿈과 몽상과, 아무튼 현실이 아닌 모호한 영역에만 존재하는 인물이 되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노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보노보를 처음 들은 날로부터 1년쯤 지나고 M을 위해 몇몇이 모인 어느 날 밤, 우리는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고듣고 했는데 그러다가 우리는 우리가 나무인지 물인지 혹은 불인지를 찾아보았고, 그래서 나무가 되고 물이 되어 있는 서로를 상상하고 있었다. 우리 나무들은 모여 숲을 이루고 그 안에는 깊고 맑은 우물이 있는 그런 장면이었는데, 그 깊은 겨울 밤에도 보노보의 노래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말, 그 빛. [あの言葉、あの光]

 

消えないでもっと、さよならをずっと
あの娘にそっと、おやすみをずっと
ありふれた言葉に うたうmagicさ
사라지지 말고 조금만 더, 계속 안녕을
그녀에게 살며시, 계속 잘자라는 말을

흔해빠진 말로 노래하는 마법이야.

 

그리고 또 1년 후, 예전의 2로부터도 다수로부터도 떨어져 1이 된 내게 지리하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여름이 왔고, 그리고 보노보의 노래가 있었다. 하루의 일과를 모두 끝낸 후의 귀가길에 나는 왼쪽으로 지는 해를 끼고 운동장을 지나쳐 갔는데, 약간 경사가 져서 끝 부분이 아주 완만한 오르막인 그 운동장을 지나갈 때면 커다란 페스티벌의 축소판 같은 지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황금빛 나날"이라는 제목을 가진 음반을 들으며 보노보의 페스티벌 공연을 상상하곤 했다. 후덥지근한 공기, 헐렁한 페스티벌에서 한바탕 놀다가 마침내 보게 되는 석양 같은 것. 아직 다 끝나지 않았어,라고 얘기해주는 것 같은 목소리. 좀 더 웃고, 좀 더 즐거워해 보라고, 아직 시간이 남았다고 상냥하게 등을 밀어주는 것 같은 노래들이 그 짧은 시간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또 1년쯤이 지나, 보노보의 공연을 보았다. 석양도 너른 들판도 없었지만 공연을 할 때에는 마법같이 변하는 캠프공간에서, 그것도 친숙하고 좋은 사람들이랑 함께 이틀의 시간을 함께 했다. 사람들의 열광에 살짝 얼빠진 표정을 짓곤 하던 멤버들의 모습이 좋았다. 따뜻한 낮잠 같은 보노보의 노래도, 투명한 밤 같은 보노보의 노래도, 한 여름의 열기 같은 보노보의 노래도, 그 노래와 노래 이외의 것들에 호들갑을 떨고 있는 우리들도, 같이 공연을 보고 있는 무명의 사람들도, 하늘을 향해있는 사람들의 손들도, 캠프 공간도, 그 공간에 집중된 즐거움의 에너지도 모두 좋았다. 일상공간에서의 나는 1이고, 개인적이고, 사소하고, 너무나 일상적이라 가끔은 슬프기도 한 그런 존재지만, 이런 순간의 나는 공동체의 일부이고, 공유하고, 확대되고, 그런 기쁨의 기운이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넘실거리는 것을 느끼는 존재다. 그래서 항상 즐거웠던 공연의 이야기는 '모두'의 이야기로 끝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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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캠프사이드』 12호, pp.12-13, 2008.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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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 "우리는 걷는다 단지 그뿐(ぼくらは步く ただそんだ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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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ㅈ

2012.07.06 10:21:42
*.251.154.2

여기서의 m은 왜 이니셜이 m인가.. ㅎㅎ 이번 양갱나잇때는 아노코토바아노히카리 불러볼까나..

2012.07.16 18:22:15
*.221.158.27

좋은, 바람직한 후기입니다. 좋네요 ㅎㅎ 아노코토바 떼창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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