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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ZI, Just Thing

vol.001 조회 수 11869 추천 수 0 2012.03.03 15:04:08

HONZI, Just Thing

 

/ 김해리

 

 

honzi5.JPG  

 


‘당신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라는 질문은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모노톤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공간적인 위치란 자주 가던 술집이 바뀌는 것 이외엔 별다른 의미가 없다. 물론, 말이 통하지 않으므로 소통의 기회가 줄어들고, 따라서 웃는 횟수가 줄어들긴 하겠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나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고, 나는 여전히 유물론자이고, 나는 여전히 대부분의 것들에 아무렇지도 않다.

 

2002년 12월 21일 토요일엔 비가 왔다. 피곤했는지 스테키도 우산을 접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주문처럼 노래는 계속 반복되고 방안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하릴없이 이곳 저곳을 클릭하다가 혼지의 공연 소식을 본다. 지금 출발해도 그리 늦지 않을 것 같다. 별다른 준비 없이 양말을 신고 카메라 가방을 메고 CD몇 장을 챙겨 집을 나섰다.



honzi_2.jpg

 

JAM은 치바 노다시에 있는 작은 술집이다. 조금 실례하자면, 라이브가 불가능할 정도의 규모이다. 한쪽 벽에 붙어있는 ‘우리가 형편은 좀 어렵지만 괜찮은 건 안다’는 아이콘들이 눈에 띄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므로 한 손에 오니기리를 든 채로 문을 열었다. 입구 옆, 무대를 둘러싸고 있던 스무 남짓한 시선이 집중된다. 친절한 귀를 가진 50대 주인장이 다가와 마지막 남은 (무대에서 제일 가까운)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오는 길에 캔 맥주를 몇 개 사왔지만, 하이네켄을 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아무렇지도 않게 혼지가 나왔다.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버렸기 때문에 얼마 동안 맥주병과 입술 사이의 거리를 2cm 정도로 유지한 채 ‘푸훗-’ 하고 웃어버렸다. 오래되고 반가운 느낌… 왠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크 체크를 하고 바이올린 줄을 몇 번 튕겨 보더니 바로 공연이 시작됐다. 시간이 멈추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미안한 말이지만, 애석하게도 내게는 그때의 감동을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또한 그것은 여러분의 몫이므로 함부로 누설하여 퇴색하게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좀 너무 하니까 작은 에피소드를 하나 전하는 것으로 대신 했으면 한다.

 

이제 두 곡 정도를 끝냈을 뿐인데, (겨울비가 흠뻑 와서) 아무래도 줄이 잘 맞지 않나 보다. 당황스러워 하기 보다는 신기한 듯 즐기는 모습에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줄의 텐션이 커지는가 싶더니 ‘티잉-’하고 줄이 빠졌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잠깐 풀어 놓았다가 쉬는 시간에 다시 맞출께요’라는 표정을 지으며 술렁이는 관객을 안심시켰다. ‘아, 일부러 그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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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부 공연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세줄 바이올린을 쌍절곤 돌리듯 자유자재로 다루며 (피아니카와 아코디언을 번갈아 가며) 완벽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작은 무대였지만 최선을 다했고, 자신이 하고 있는 / 하고 싶은 음악(혹은 삶)에 대해 알기 쉽게 보여주었다.


마지막 앵콜 곡 “Just Thing”이 끝난 후, 조심스럽게 공중캠프 티셔츠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건네었다. 조금 클 것 같다고 하자 혼지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엷은 손에서 ‘그것’에 대한 공감이랄까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듯한 ‘그 무엇’에 대한 교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때 문득 사토의 메모리 박스 안에 있던 아무도 뜯지 않은 혼지의 편지가 생각났다. 그날은 마치 그 편지의 안쪽을 슬쩍 엿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이제는 하루에 두번씩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with_honzi01_021221.jpg honzi_postcard.jpg


 

ps 1. 현재 혼지는 여러 아티스트의 서포트 멤버로 활동하고 있으며, 3집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끔씩 “Honzi’s World”라는 이름으로 솔로 공연을 하는데,  JAM에서는 2000년부터 매년 12월 라이브를 하고 있습니다. 이날은 1부, 2부, 앵콜 순으로 약 2시간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Set List


1부
空飛ぶくじら (Happy End)
瞳孔のお話
白い部屋
灰の記憶
みんな夢の中
ひこうき (Fishmans)

 

2부
DE LA SIESTA
いらいら
Undergoing Mental Therapy
ピーヒャララ
きつねの嫁入り (上々颱風)
GATERA GATA
蘇州夜曲

AC
空飛ぶくじら
Just Thing (Fishmans)


HONZI – 보컬, 바이올린, 피아니카, 아코디언
西村直樹 – 우드 베이스
渡野辺マント – 드럼, 스틸팬
猪野陽子 – 키보드, 아코디언



honzi_4.jpg


(본문의 이미지는 아티스트의 허락 하에 촬영한 것입니다.)





ps 2. 지금은 3월 22일 새벽입니다. 어제 있었던 ‘Honzi’s World’에서는 혼지의 소개로 (수줍고 놀라운) 다츠 세키구치 씨를 만났습니다. 네, 너무 좋아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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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캠프사이드』 1호, pp.6-7, 2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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