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프로젝트 게시판


이인숙이 이 달에 만난 세상

공중에 캠프 치고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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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숙세상01)



살다보면 열정이 넘쳐 이런 저런 새로운 일들을 벌이고 싶어 안달이 날 때가 있는가하면, 책 한 줄 읽을 의욕조차 없어 몸과 마음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그런 때였다. 할 수 있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던 때… 그 때 나는 그런 스스로를 견디다 못해 서울 여행이라는 미명 아래에 가출하듯 짐을 싸들고 나와 서울을 배회하고 다녔다. 가을 냄새가 나는 듯 마는 듯 하던 9월의 일주일이었다. 그리고 어느 날 저녁, 나는 오래전 같은 음악을 좋아하던 친구와 함께 맥주를 마시곤 했던 ‘공중캠프’라는 술집을 찾았다.

‘공중캠프’, 피쉬만스(fishmans)라는 일본 밴드의 앨범 이름이다. 피쉬만스를 이끌던 사토 신지는 99년도 3월 15일에 하늘나라로 떠나고 팀은 해체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피쉬만스를우주 최고의 밴드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한국의 팬들이 모여 만든 ‘공중캠프’라는 이름의 카페, 그러니까 당시의 나로서는 서울 여행 중에 하루 저녁 정도는 찾아가야 하는 장소가 바로 그곳이었던 것이다.

늦지 않은 저녁, 공중캠프에 들어섰다. 나는 맥주 한 병을 시키고 한쪽 벽에 전시 중인 예쁜 사진들을 구경한 후, 기분 좋게 들려오는 음악을 들으며 책을 꺼내 들었다. 그냥 소설책이었을 뿐인데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책을 덮고 멍하니 음악에만 귀를 기울였다. 그때 바에 앉아있던 여자 분이 다가와 말했다. “저녁 안 하셨으면 같이 밥 먹을래요?” 어쩐 일인지 나는 “네, 그래요.”라며 어떤 수줍은 마음도 없이 내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 그녀를 따라갔다. 어쩌면 나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내게 말을 걸어온 도로시라 불리는 여자 분과 고엄마라 불리는 한 남자 분과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밤이 깊어지자 공중캠프의 다른 회원들이 하나 둘 들어와 익숙한 듯 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함께 이야기했다. 그건 아주 오랜만의 유쾌한 대화였고, 나는 내가 우연히도 그 자리에 있게 된 것을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그 날 나는 공중캠프라는 공간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공중캠프는 피쉬만스 동호회 사람들이 직접 만든 술집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고, 그 외에도 공중캠프는 대표가 없는 공동의 장소라는 것, 공중캠프는 이익을 남기는 술집이 아닌 공중캠프 커뮤니티 회원들(일명 ‘캠퍼’)의 아지트와 같은 장소라는 것이었다.(일반 손님도 오지만, 이익이 생기면 그 돈은 공중캠프의 인테리어나 이벤트 등에 쓰이게 된다.) 그리고 공중캠프에는 아르바이트생이 없다. 그곳에서는 자발적으로 나선 스텝들이 돌아가며 일하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다시 한번 주저 않고 “저 시간 많으니까 스텝 할래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공중캠프라는 공간 안에서 음악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이벤트들을 벌이고 있었다. 나는 스텝으로서 가게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공연도 해보고 싶었고, 계절마다 만들어지는 캠프사이드라는 잡지도 함께 만들어보고 싶었고, ‘공중극장’이라는 영화제가 있는 수요일에 찾아가 내가 보지 못했던 영화도 보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우주 최고의 밴드 피쉬만스 덕이었을까,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고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던 때의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고 대화하고 싶어 했다. 나는 갑자기 많은 것들을 원하고 있었다. 의욕이라면 의욕, 호기심이라면 호기심, 열정이라면 열정, 그것이 무엇이든 그들과의 우연한 만남은 피쉬만스의 음악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설레고 행복한 것이었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났다. 나는 현재 일요일마다 공중캠프에서 스텝으로 일하고 있으며, 아직 밴드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원하고 있으며, 다양한 취향을 가진 캠퍼들과 일상이 아닌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즐겁다. 그리고 우주에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그런 의지가 존재한다는 것이 기쁘다.

 


고엄마와 함께 한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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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숙세상인터뷰이)


내가 가장 처음으로 알게 된 캠퍼인 ‘고엄마’는 누가 봐도 공중캠프의 운영과 이벤트 등에 가장 열심인 캠퍼이다. 그리고 그는 공중캠프를 만든 초기 멤버이자 자본의 일부를 댄 출자 멤버이기도 하다. 그는 피쉬만스 커뮤니티의 회장도 공중캠프라는 카페의 사장도 아닌 150여명 되는 캠퍼들 중의 하나이지만, 그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그에게 짤막한 인터뷰를 하자고 요청했다. (아래 인터뷰에서 ‘고’는 ‘고엄마’, ‘베’는 필자의 닉네임인 ‘베이비오일’.)

 

베 : ‘공중캠프’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고 : 2002년도에 나우누리에 있던 피쉬만스 동호회가 웹으로 옮겼어요. 그러면서 그 안에 여러 소모임들이 생겼는데, 그 중에 k#프로젝트라는 소모임이 있었어요. 우리 커뮤니티의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자는 취지였죠. 우리가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 여러 문화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가 가장 컸어요.

베 : 처음 이야기가 나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어요?

고 : 아주 좋았어요. 당시 열심인 회원들이 많았으니까 돈을 조금씩 모으면 될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이었죠. 그런데 실제로 돈을 출자할 사람들은 얼마 없었어요. 처음 단계에서는 현실을 몰라서 희망적이었던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갖으면서 부동산 정보나 인테리어 등의 역할 분담을 해서 일을 진행했어요. 그런데 사실 다 아마추어였어요. 예컨대 우리가 생각했던 인테리어라는 건 환경 미화 수준의 개념이었지, 어떤 공사를 어떤 순서대로 하는 지는 아무도 몰랐던 거예요. 하나씩 부딪혀 가면서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그래도 ‘갈 때까지 가보자’라는 추진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공중캠프를 오픈 할 수 있었던 거죠.

베 : 캠퍼라고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고 : 일단은 여러 문화에 관심이 많아요. 그래서 문화 쪽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도 꽤 되요. 지금 초창기 활동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뭐랄까 에너지가 많이 줄어든 면이 있어요. 새로운 멤버들을 불러들이고 에너지를 더 끌어올리는 게 공중캠프의 숙제이고도 하죠.

베 : 공중캠프에서는 언더에서도 더 언더에 있는 밴드들이 공연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어떤 취지가 있나요?

고 : 한국의 인디 음악이 10년 전 보다 더 나아졌다 더 나빠졌다 말하는 건 좀 힘들겠지만,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이 있고, 그 친구들 나름대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안타까운 건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다는 거죠. 캠프에도 부족한 게 많아서 체계적으로 이벤트를 준비하지는 못하지만, 그런 시스템을 잡아 나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항상 있어요. 그래서 이벤트들을 통해서 그런 밴드들과 새로운 것들을 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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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숙세상02, 캡션:공중캠프에서 공연 중인 이아립, 사진/고엄마)



베 : 공중캠프에서는 어떤 밴드들이 공연했나요?

고 : ‘비트볼’이나 ‘타일뮤직’ 같은 인디 레이블에서 대관해서 공연하는 경우도 있고, 공연 기획을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공중캠프를 빌리는 경우도 있었어요. 내부 행사이긴 하지만, 3월에 하나레구미를 초청해서 국내의 이아립, 에레나 등과 같이 하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게 공중캠프 자체에서 준비하는 첫 번째 공연인 셈이에요.

베 : 공연장으로서 공중캠프에 더 투자할 계획은 없나요?

고 : 물론 있지만 재정상 시스템에 투자할 만 한 돈이 없어요. 그래도 최근에는 중고시장을 이용해서 시스템을 조금씩 갖추고 있어요.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좋은 소리로 음악을 듣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베 : 사이트를 보면 여러 소모임들이 있는데, 그건 캠퍼들이 각자 만든 건가요?

고 : 회칙을 보셔도 아시겠지만 공중캠프 커뮤니티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게 피라미드식이 아닌 수평적인 체계를 유지하자는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그게 저희의 가장 큰 실험이라고 생각해요.

베 : 그런 상태로 운영이 잘 이루어지나요?

고 : 물론 불편한 것들은 있죠. 속도가 느리기도 하고 서로 눈치만 보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속도감이 생길 수도 있고 눈치를 안 볼 수도 있는 거 같아요. 중요한 건 어떤 조직체계이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지금의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지를 찾아내는 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공중캠프에서 실험하고 있는 가장 일차적인 주제가 아닐까 싶고요.

베 : 고엄마는 역할이 나름 큰데, 본인에게 공중 캠프는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인가요?

고 : 캠프를 통해서 돈을 벌고 싶은 것도 아니고 캠프에 훌륭한 뮤지션들을 세워보겠다는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캠프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수평적인 공동체를 유지해가는 실험의 장으로서의 의미가 커요. 저로서는 캠프를 위해서 회사를 다니고 있는 거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 개인적으로나 캠프 내부에서도 힘든 건 많죠. 하지만 그런 문제들이 재미있다고도 생각해요. 아직 즐길만하기 때문에 여전히 실험해볼 것들이 남아있는 거고요. 밖에서 보기에는 낭만적으로만 보이기도 하겠지만 내부에 있으면 이 공간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서 악전고투할 수밖에 없어요.

베 : 그런 문제들은 초기의 회원들이 많이 떠맡게 되겠네요?

고 : 네, 그 친구들이 있어서 공중캠프가 돌아가고 있죠. 하지만 가장 높은 기여를 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나머지 사람들을 평할 수는 없어요. 공중캠프에 대해 생각하는 게 다 다르고, 공중캠프에 자신의 시간이나 노력을 내어줄 수 있는 정도도 다르고, 캠프를 통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도 다 다르잖아요. 그런 여러 가지 다른 기대 수준, 애정, 희망이 있기 때문에 공중캠프가 의미 있고 재미있는 거라 생각해요. 전부가 열심히 한다고 한다면… 글쎄요. 무서울 거 같은데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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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숙세상03, 캡션:스텝들의 명찰, 대개 닉네임으로 불린다)



공중캠프 웹사이트_http://www.kuchu-camp.net

글과 사진_이인숙(bluebu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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