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의 끝


말도로르의 노래

조회 수 7136 추천 수 0 2002.12.19 01:00:25
- 조만간 만나도록 해요!


보름 동안 손톱이 자라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활짝 열린 눈을 가진, 윗입술의 위에 아직 아무것도 나지 않은 어린아이를 침대에서 난폭하게 끌어내려, 그의 아름다운 머리털을 뒤로 쓸어주면서, 그의 이마에 그윽하게 손을 내미는 체하는 것, 아, 그것은 얼마나 감미로운가! 그 다음, 그가 가장 예기치 않은 순간에, 갑자기 긴 손톱을 그의 부드러운 가슴에 박아 넣는다. 아이가 죽지 않도록. 만약 아이가 죽는다면, 후에 그의 비참함의 양상을 즐기지 못할 것이니까. 그런 다음 상처를 핥으면서 피를 마신다. 영원함이 지속되듯 지속되어야 할 그 시간 동안, 어린아이는 운다. 소금처럼 씁쓸한 그 아이의 눈물 말고는, 내가 금방 말한 것처럼 뽑아낸, 아직 꽤 뜨거운 그의 피만큼 맛있는 것은 없다. 어쩌다 너의 손가락을 베었을 때, 너는 너의 피를 맛본 일이 없는가? 그 맛은 참으로 좋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어떠한 맛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그리고 또 어느 날엔가 음울한 생각에 잠겨서 눈에서 흘러내리는 것으로 축축히 젖은 너의 병든 얼굴에, 바닥이 움푹 파인 손을 갖다 댔던 것을 너는 기억하지 않는가? 그 다음 손은 숙명적으로 입을 향해 나아갔고, 그 술잔, 자기를 박해하기 위해 태어난 자를 곁눈질로 쳐다보고 있는 소학생의 이빨처럼 떨리는 그 술잔에서 입은 벌컥벌컥 눈물을 삼켰던 것을 너는 기억하지 않는가. 눈물의 맛은 참으로 좋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식초의 맛을 가지고 있으니까. 가장 많이 사랑하는 여인의 눈물을 들먹일 것이지만, 그러나 어린아이의 눈물이 미각에 더 좋다. 아직 악을 모르는 어린아이는 배반하지 않는다. 가장 많이 사랑하는 여인은 조만간 배신하는 것이다. 우정이나 사랑 같은 걸 내가 모른다 할지라도, 유추에 의해 나는 그 배반을 점칠 수 있다(인간 족속에 관한 한, 나는 우정과 사랑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너의 피와 너의 눈물이 너에게 역겹지 않으니, 먹어라, 소년의 눈물과 피를 안심하고 먹어라. 그의 고동치는 살을 찢는 동안 그의 눈을 붕대로 묶어 두어라. 그리고, 전투에서 죽어가는 부상자들의 목구멍이 내지르는 날카로운 헐떡임과 흡사한 그의 장엄한 외침을 오래도록 들은 다음, 눈사태처럼 재빨리 몸을 피했다가, 옆방으로부터 서둘러 내달아 그를 구조하러 온 체하라. 다시 그의 눈물과 피를 핥기 시작하면서, 힘줄과 핏줄이 부어오른 그의 손을 풀어주고, 방황하는 그의 눈에 시력을 돌려주라. 그때의 뉘우침은 얼마나 진실된 것인가! 우리에게 있는 것이지만 그토록 드물게만 보이는 신성한 섬광이 그때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너무 늦었도다! 화를 당한 무고한 아이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터진다. <잔인한 고통을 겪고 난 소년이여, 도대체 누가 너에게 이름도 모를 그런 범죄를 범할 수 있었던가! 너는 불행하구나! 너는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인가! 만약 너의 어머니가 그것을 안대도, 그녀는 범인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죽음에 현재의 나보다 더 가까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아! 선과 악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동일한 것으로서, 우리는 그것을 통해 우리의 무력과 또 아무리 무모한 수단이라도 동원해 무한에 다다르고자 하는 우리의 정열을 맹렬하게 증명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두 개의 서로 다른 것인가? 그렇다... 그것은 오히려 동일한 것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심판의 날에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소년이여, 나를 용서하라. 너의 뼈를 부러뜨리고, 네 몸의 여러 군데에 달려 있는 살을 찢은 것은 바로 너의 고귀하고 성스러운 얼굴 앞에 있는 자다. 그 죄를 범하도록 나를 부추긴 것은 내 병든 이성의 착란인가, 또는 먹이를 찢는 독수리의 본능과 흡사한, 이성의 작용과는 상관없는 은밀한 본능인가? 그렇지만, 희생자만큼 나도 괴로워했노라! 소년이여, 나를 용서하라. 순간적인 이 이승의 삶에서 일단 벗어나면, 나는 우리가 영겁 동안 서로 얽혀 있기를 바란다. 내 입과 네 입이 붙은 하나의 존재를 형성해서, 그러나 그런 방법으로도 나의 징벌은 완벽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너는 나를 찢어라, 결코 멈추지 말고, 이빨과 손톱으로 동시에. 나는 이 속죄의 희생의식을 위해 향기로운 화환으로 내 몸을 장식하겠다. 그리고 우리 둘 모두 괴로워하리라, 나는 찢기는 것으로 너는 찢는 것으로, 입을 서로 붙이고. 오 금방과 그렇게도 부드러운 눈을 가진 소년이여, 내가 권고하는 것을 너는 지금 하겠느냐? 네가 싫더라도 그렇게 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면 너는 나의 양심을 행복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동시에 한 인간에게 해를 가하면 너는 인간에게 사랑받을 것이다. 그것은 생각할 수 있는 최상의 행복이다. 후에 너느는 그를 병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불구자는 제 생계를 벌 수 없을테니까. 사람들은 너를 선량하다고 부를 것이고, 월계관과 금메달이 큰 무덤 위에 흩어진 헐벗은 네 발을 늙은 얼굴로부터 감춰줄 것이다. 오 너, 범죄의 성스러움을 거룩하게 하는 이 페이지 위에 나는 너의 이름을 쓰고 싶지 않으나, 나는 너의 용서가 우주처럼 무한했음을 안다. 그러나, 나, 나는 아직 존재한다!

- 로뜨레아몽, 말도로르의 노래 1장 中

2003.02.06 16: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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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자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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