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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들
/ 김해자
한 달여 비워둔 집
엉거주춤 남의 집인 양 들어서는데 마실 다녀오던
아랫집 어머니가 당신 집처럼 마당으로 성큼 들어와
꼬옥 안아주신다 괜찮을 거라고
아파서 먼 길 다녀온 걸 어찌 아시고 걱정 마라고
우덜이 다 뽑아 김치 담았다고 얼까 봐
남은 무는 항아리 속에 넣었다고
평상을 살펴보니 알타리 김치통 옆에 늙은 호박들 펑퍼짐하게 서로 기대어 앉아 있고, 항아리 속엔 희푸른 무가 가득, 키 낮은 줄엔 무청이 나란히매달려 있다. 삐이이 짹짹, 참새떼가 몇번 나뭇가지 옮겨 앉는 사이, 앞집 어머니와 옆집 어머니도 기웃하더니 우리 집 마당이 금세 방앗간이 되었다. 둥근 스텡 그릇 속 하얗고 푸른 동치미와 살얼음 든 연시와 아랫집 메주가 같이 숨쉬는 평상, 이웃들 손길 닿은 자리마다 흥성스러운 지금은, 입동 지나 소설로 가는 길목
나 이곳 떠나
다른 세상 도착할 때도
지금은 잊어버린,
먹고사느라 잊고 사는 옛날 내 이웃들 맨발로 뛰쳐나와
아고 내 새끼 할 것 같다 엄마처럼 덥석 안고
고생 많았다 머나먼 길 댕겨오느라
토닥토닥 등 두드려줄 것 같다
참새떼처럼 명랑하게 맞아줄 것 같다
<녹색평론> 2020년 1-2월호(통권 17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