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독설의 퐝세] 고대/중세철학

조회 수 1648 추천 수 0 2005.11.23 13:17:18
고대철학과 중세철학과 당분간 안녕을 고하며..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소-플-아 라인은 고대철학을 정리할 수 있는 두 개의 굵직한 라인 중 하나로 VIP, 즉 Very Important People라고도 할 수 있겠다. 철학의 중심 과제는 우주와 자연의 본질(아르케, arche)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했던 이오니아학파의 자연 철학에 회의를 느낀 소크라테스는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진리 추구에 열중했다. 따라서 정치에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았고(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겠느냐,의 입장) 민주정과 과두정이 대립하고 있던 당시, 모든 시민의 정치 참여를 원칙으로 하던 민주정 입장에서 보면 소크라테스는 반민주적 세력으로 보였기 때문에 고발당하여 결국 독배를 마시게 된다. 철학도 철학자도, 역시 시대를 벗어 날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철학자(혹은 이 시대의 지성쯤 해두자)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할 수는 있겠지만 고발하거나 독배를 마시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어쨌든, 소-플-아 라인은 자연과 우주 중심이었던 이전 철학에서 고대 그리스로 넘어와 인간과 사회 중심으로 변하면서 ‘이성(理性)’을 강조했다. 덕분에 감각적 본능과 욕구를 강조했던 소피스트들과는 당연히 대립의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고대철학의 굵직한 이 두 라인은 근세에 가면 다음과 같이 흘러간다.

▷ 소크라테스 → 플라톤 → 아리스토텔레스 → 스토아 학파 → 근세의 합리론 → 관념론
▷ 소피스트들 → 에피쿠로스 학파 → 근세의 경험론 → 공리주의 → 실용주의

  어찌보면 소피스트들은 소크라테스 라인보다 평가를 못 받거나 잘 다뤄지지 않았던 것 같다. ‘궤변론자’라 일컬으며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던 윤리 교과서의 한 부분 때문이었을까. 윤리적 행위의 주체는 인간이며 인간의 감각적 경험과 그 유용성을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감각적 경험으로 증명되고 쓸모 있는 것이 진리라고 주장했던 이들은 당시엔 ‘궤변론자’라는 소리를 들었을지 몰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가장 좋아할 생각들일지도 모르겠다.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과 주지주의 등 주요 개념들에 대해선 각자 정리해보기로 하고, 한마디 하고 넘어가자면, 일생동안 단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았던 소크라테스를 위해 플라톤은 여러 대화록을 썼는데, 한 가지 드는 의문은 어떻게 그 많은 대화를 기억해내고 책으로 써내려 갔을까,이다. 백프로 구현한다는 것은 물론 불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아무리 소크라테스의 대화록이라 하더라도 플라톤의 사상이 그 안에 들어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스의 국력이 쇠퇴하고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을 통해 그리스 문화와 페르시아의 오리엔트 문화가 융합되어 범세계적 헬레니즘 문화의 시대가 열리면서 이제 윤리적 관심은 개인의 현실 문제로 돌아갔다. 금욕주의의 스토아 학파(아파테이아)와 쾌락주의의 에피쿠로스 학파(아타락시아)가 여전히 고대철학의 두 라인을 이어받았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으로 인간 중심의 윤리 사상은 신(神) 중심의 윤리 사상으로 전환된다. 비로소 암흑의 시대라 불리는 중세가 시작된 것이다.

  중세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부철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 철학으로 이어졌다. “이해하기 위해선 믿어라”라고 말했던 아우구스티누스, 저서『신학대전』에서 “철학은 신학의 시녀다.”라고 말했던 토마스 아퀴나스를 통해 중세 철학이 어떠했는지를 단번에 알아 챌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그저 신을 설명하고 변명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다. 그러나 무조건 아우구스티누스나 토마스 아퀴나스가 중세를 암흑의 시대로 만들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그 당시 사람들의 뒷받침 없이 이들이 이렇게 현세에서 다뤄질 수는 없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마녀사냥'이다. 당시의 마녀사냥은 신학도가 아닌 마을주민들의 마녀고발이 거의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다른 시대, 다른 철학이나 철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철학도 역사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언제나 보편적인 진리는 없다.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고 시대가 변하고 낯선 사상이 당연한 논리가 되어버리면 다시 새로운 사상이 등장하는 것과 같다고 할까, 그러니까, 중세의 이런 분위기 속에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며 등장했던 데카르트를 보건데, 현세에서 불가능한 꿈과 같은 논리를 펼치는 이들의 사상도 언젠가는 꿈이 아닌 너무나 당연한 논리가 되어버릴 세상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생각으로 고대, 중세를 마무리하며 어마어마한 근대로 바통을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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