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밑줄] 5장 (앞부분)

조회 수 1417 추천 수 0 2011.07.24 16:04:34

[5장] 新しいヤンキーたちの夜明け

(번역: 은별)


그렇다곤 해도 가끔씩은 'ZEST'에서 판을 산 다음에 'CISCO'에 가보니 같은 레코드가 아주 약간 싼 가격이 붙어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분했다.

 

이미 현지에서 발매된 잡지의 기사 같은 걸 그대로 '최신정보'라고 해서 팩스로 일본에 보내는 경우조차 당시엔 보통 일이었다.

 

이러한 인물이 모여 독자적인 정보가 종합된 '터미널'과 같은 기능을 하고 있었던 것이 내가 언급한 유력 수입음반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터미널' 어느 곳에도 피시만즈는 없었다.

 

레코드 가게는 '거리'에 있다. 거리에는 이런저런 것이 있다. 여러 사람들, 그 사람들 각각 '관계가 있는' 가게나 장소, 그리고 '관계가 없는' 가게와 장소가 혼재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각자의 방법으로 돌아다니고 그들의 선이나 면이 무수히 교차하고 겹쳐서, 결과적으로 시부야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당시 그 거리의 문화체계라고 하는 것이 생겨나고 있었다.

 

결국 이것이 이른바 '스트리트'로부터 생겨나는 문화나 풍속이라고 하는 것이다. 대기업이나 대형 미디어로부터 톱 다운 방식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닌, '하류(川下)'로부터 수평적으로 퍼져 나가는 것-즉, 92년 즈음의 '화전'에도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도 하지 않았던 문화체계가 '거리' 중심엔 존재했다. 거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곳을 오가는 사람들이 손에서 손으로 거쳐 가면서, 서로의 표정을 보면서 나날이 키워 왔던 문화적 네트워크가 있었다. 내가 아는 한 시부야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농후했다.

 

"이야, 피시만즈 엄청 좋은 밴드네요". 그는 이어서 이렇게도 말했다. "지금까지는 이렇게 생각했었어요. '가벼운 레게에 (이마와노) 키요시로(淸志朗) 같은 보컬이 얹혀 있는 밴드'라고. 그런데…" 그런데 실물은 그런 선입관을 훨씬 뛰어 넘는 것이었다나. 매우 우수한 "라이브 밴드"였다고.

 

내게 있어서 'ZOO'는 학교와 같았다. 명문화된 교칙이라든가 교사가 있는 건 아니니까, '자유학교' 같다고나 할까. '문턱이 높은' 이 가게에는 면면이 쟁쟁한 DJ나 클럽 기획자가 한 배에 타고 있었다. 타키미 켄지(瀧見憲司) 씨의 '러브 퍼레이드'를 비롯하여 '블루 카페', '개러지 록킹 크레이즈', '체크 유어 마이크' 그리고 'LB 마츠리'…. 그 외에도 정말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있었고, 상당한 호걸들이 모이는 강호(梁山泊)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물론 그것은, 모조품의 사운드(音)였을 것이다. 부드럽게 부푼 올드 타임 소울 뮤직을 모방한 것이었을 거다. 그러나 그 '무서움을 모르는' 듯한 느낌, 젊디젊은, 싱싱한, 발랄한 음악적 표정은 뛰어날 정도로, 그 장소에 있던 전원을 한 순간에 매료시켰다.

 

마치, 갓 구운 빵을 차례로 주부들이 사 가는 것처럼, 방금 납품한 인디 잡지가 팔리고 있다-그런 현상을 목전에 마주한 것은, 나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시부야계>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 거기에서 '오오타 추천'을 받은 상품은, 곧 주위로부터 '시부야계'의 칭호를 얻은 것이라고 간주되는 것이었다.

 

그런 입장에서 본다면 이 러브 탬버린즈의 싱글 따위는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을 거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풋내기가 '소울 흉내'를 낸 것뿐인, 그런 것 밖에는 되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그러한 시각이나 부정적인 관점에 의한 필터가 몇 장 겹쳐 있다고 해도, 집요하게 그것을 쓰고 본다고 하더라도, 그 음악의 핵심에 있는 압도적인 반짝거림을 완전히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젊고 청렬한 정신이, 그 파동이, 모든 것을 꿰뚫을 것처럼, 무시무시한 광량으로 사방팔방 발산되고 있었다. 그것이 러브 탬버린즈의 '체리쉬 아워 러브'였다.

 

피시만즈는 '레게를 이용해' 도쿄에서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팝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 그곳에서, 그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소울 뮤직'을 매개로, 역시 '도쿄라는 동네'와 '거기서 살아가는 자신들'의 상(像)을 제기할 수 있는 듯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새로운 세대가 대두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그러한 편집자나 필자들이 러브 탬버린즈나 '크루엘'이 활동하던 거리의 영역과 네트워크, 그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의 발현이었을 것이다. 'ZOO'에 놀러가거나 'ZEST'나 'CISCO'에서 수입음반을 사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음악 전문 잡지는 완전히 뒤처지고 있었다. 메이저 레코드 회사의 광고비를 염두에 둔 기사 작성을 하는 게 보통이었던 그들은 '밴드 붐' 시기에는 큰 혜택을 입었다. 그러나 이 '시부야계' 초기에는 완전히 모기장(蚊帳) 바깥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시부야계'라 불리는 것은 인디펜던트한 레코드 레이블, 인디펜던트한 레코드점, 그리고 인디펜던트한 '개인'에 의한 수평 결합적인 연대로부터 발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HMV 시부야'의 오오타(太田)씨라는 강력한 지원군을 얻어서 그 영점에서부터 어마어마한 기세로, 전국구로 퍼져나게 된다.

 

<미국음악>을 통해 'ZOO'나 'HMV 시부야'가 있는 필드, 네트워크의 중심에, 피시만즈를 어필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관계자 전원이 판단해 주었다는 증거가 아닐까.

 

원래 나는 <미국음악>을 <영국음악>의 리뉴얼 버전으로 잡고 있었다. '팬진'의 발상과 수법을 좀 더 세련된 기술로 재현해서 세상에 던져보고자 생각하고 있었다. 패션에 있어 '셀렉트 샵'과 같은 콘셉트라고 하면 좋을까. '자기 자신들이 책임지고 추천할 수 있는 것만 싣는다'라고 하는 것이, 최대의 방침다운 방침이었다. 할 수 있는 한 손 닿는 대로 무엇이든 싣고, 레코드 회사로부터의 광고 수입에 의존한다고 하는 일반적인 음악전문잡지와는 180도 반대의 지점으로부터 시작한 것이 바로 <미국음악>이었던 셈이다.

 

래디컬이라고 한다면 래디컬, 전례가 없다고 하면 전례가 없는, 아무 생각이 없다고 하다면 또 그 말 그대로-그러한 일들을 그 당시의 나는 왕성하게 시작해나가고 있었다. <미국음악>의 친한 친구들과 함께.

 

그런 지점에서 나온 '묘한 제안'에 대해 미디어 레모라스의 야마모토 씨가 이해를 해 주고 나아가서는 회사에 추천까지 해주었다고 하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원래 '이쪽 편'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가령 사토의 보컬, 그 한 문장의 어미가 1mm의 어긋남도 없이 쇼트 에코로서 증폭되어 점점 커지고, 그것이 공중에 녹으려고 하는 그 순간, 스네어 드럼의 원 쇼트가 잔향 전부를 자른다. 그리고 다음, 그 쇼트가 증폭을 반복하고… 이러한 일이 한곡 안에서 몇 번이고 일어나는 것이 'ZAK가 라이브 엔지니어를 맡은 피시만즈'였다. 양자의 초기 커플링이 이루어지었던 시기가 이때다. 풀 앨범으로서는 밴드 최초이 셀프 프로듀스 판이 된 <네오 양키스 홀리데이>에 있어서, 피시만즈가 그들의 음 전부를 맡긴 남자야 말로 ZAK였다.

 

그는 일단, 앉아있지 않는다. 앉아있을 때도 있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에선 없다. 항상 서 있었고 믹싱 콘솔 위에 쓰러질듯 앞으로 기운 자세로 '움직인다'. 그 양손이 항상 여기저기 뻗쳐져 제 주변의 스위치나 페더, 노브 등을 슥슥슥, 계속 조정해 나간다. 잔상이 보일듯, 마치 손이 8개 정도 있는 것처럼, 끊임없이 그 일이 계속되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것은 마치 음 속에 들어가 춤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날의 ZAK의 믹싱도 라이브의 재현과도 같았다. 녹음된 멀티 트랙 테이프를 돌려가며 슥슥슥, 움직이고 또 움직인다. 그러면 거기에 맞춰서 가끔 음이 크게 흔들리고 메아리치면서, '덥'이 생겨난다. 내가 꼿꼿이 서 있는 눈앞에서 공기 중에, 복수로 입체적인 울림이 돌연 솟아오르고, 혀에 닿은 아이스크림의 한 조각이 녹듯 슷-하고 사라진다. -어느 정도 소극적으로 표현한다고 하더라도, '멋있는 건 어쩔 수 없어'라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것이야말로 믹싱 아티스트 ZAK의 묘기라고 하는 것이었다.

 

'응당 있어야 할 믹스 다운의 풍경'이라고 하는 것은, 분명 이런 느낌일 거다. 밴드 멤버 전원이 ZAK의 양 옆에서 믹싱 콘솔 앞에 진을 치고, 이것도 아니야 저것도 아니야 머리를 흔들흔들, 의견 교환을 한다… 상식적으로 말해 뭐 이런 것 아닐까.


그러나 이때 피시만즈는 스튜디오 내에 없었다. 멤버 누구 한명 없었던 거다. ZAK가 분투하고 있는 그 시간동안 죽. 


밴드 녹음이 끝난 순간, 사토는 ZAK에게 "자 그럼 다음 일은 잘 부탁해" 따위의 말을 하고 스튜디오를 나가버린다. 그에 "응"이라고 답한 ZAK를 흘끗 바라보고, 다른 멤버 전원도 스튜디오를 나간다.

 

예를 들어 허무승(虛無僧) 차림에 속에 칼이 든 지팡이(仕込み杖)라도 쥐어 준다면, 그대로 자토이치의 적수(好敵手) 역 정도는 연기할 수 있을 것 같은, 조금 조폭 같은(위협적인․凄みのある) 풍모의 ZAK와, 기본적으로 '삐리'(ぽよよん)한 피시만즈의 상성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좋은 것 같다고 생각됐다. '믿음직한 형 역'의 인품을 갖춘 ZAK는 피시만즈에게는 없어선 안 될 조력자라고 할까, 요짐보(보디가드)처럼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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