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 공캠x자캠 present 알콜토크 vol.6
: 김항, <제국일본의 사상> 알콜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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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15년 6월 26일(금) open 18:00 / start 20:00
* 장소: 공중캠프
* 회비: 무료 (알콜/음료 별도 구매)
* 프로그램: 
- (18:00~20:00) 충분한 알콜 섭취 (극동아시아 주류를 저렴한 가격에 판매합니다. 물론 서양 주류도 판매합니다.)
- (20:00~??:??) 저자(김항)와의 대화 (미리 책을 읽고 코멘트/질문지를 작성해 오시면 더욱 좋습니다) 


김항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및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도쿄 대학 대학원에서 표상문화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말하는 입과 먹는 입』 『제국일본의 사상』 등이, 옮긴 책으로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 『근대초극론』 『예외상태』 『정치신학』 등이 있다.

<제국일본의 사상> 
포스트 제국과 동아시아론의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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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창비) 서평

광복 70주년인 올해는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전한 지 70년째가 되는 해이기도 하다. 1868년 1월 3일, 일본 메이지(明治)정부는 천황을 국가 원수로 내세우는 제국주의를 주창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80여년간 일본은 적극적으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개방 정책을 통해 ‘근대화’를 이룩했다. 풍부한 물자와 강력한 군대를 바탕으로 급성장한 일본은 동아시아 각국을 식민지배하며 제국을 건설했다. ‘제국일본’의 탄생이다. 

오랜 식민지배와 연이은 대규모 전쟁. 제국일본이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은 엄청났다. 그러나 제국의 몰락은 순식간이었다.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하나로 묶는 ‘대동아 신질서 건설’을 외치며, 미국이라는 ‘외세’를 방어한다는 명분으로 일으킨 태평양전쟁에서 제국일본은 처참하게 패배했다. 그리고 한국과 대만을 비롯한 제국의 식민지들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해방을 맞았다. 제국일본이 몰락한 이후 미국·소련이라는 새로운 질서 아래에서 동아시아에는 새로운 주권국가가 하나둘 건설됐다. 이른바 ‘포스트 제국’ 상황이다. 포스트 제국 시기가 시작되고 반세기가 지나 사회주의 소련이 몰락했고, 최근에는 서구·일본 등 제국의 침탈에 시달렸던 중국이 새로운 제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포스트 제국에 새로운 전기가 도래한 것이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물음이 있다. “과연 제국일본은 청산되었는가”다. 제국일본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증거는 신문지상에도 수시로 등장한다. 일본이 동아시아 각국과 벌이고 있는 영토분쟁,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위안부 문제, 제국일본을 미화한다는 의심을 받는 친일 교과서 등이다. 그러나 제국과 식민지의 경험이라는 비대칭성 때문에 발생하는 지금의 논란 속에서도 ‘제국일본’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제국’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제국의 기억을 파묻기만 하는 콘크리트 공사를 멈춰라!”

『제국일본의 사상』은 제국의 기억을 끄집어내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을 ‘콘크리트 공사’에 비유한다. 포스트 제국 시기가 도래하자마자 동아시아 각국들이 과거 제국의 기억을 깡그리 지우는 일에 집중했다는 의미다. 이는 식민지배를 한 일본뿐만 아니라 여러 식민지에서도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다. 전후 일본은 ‘파시즘’ ‘침략전쟁’ ‘식민지배’를 지금의 일본과 분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제국을 담론장에서 지워나갔다. 뼈아픈 식민경험을 한 한국은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단일 민족’ 등의 구호를 통해 상처입은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듯 제국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 해방과 동시에 찾아온 미소냉전과 한국전쟁, 뒤이은 극심한 좌우분열 때문에 제국일본을 성찰할 여유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엄연히 존재했던 제국일본이라는 지층을 탐사하려는 노력 없이, 새로운 국가 건설을 명분으로 콘크리트를 바르듯이 제국의 기억을 망각한 것이다.

그러나 제국일본은 콘크리트 바닥 아래에서 가만히 잠들지 못했다. “정상국가로 돌아가자”며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평화헌법 개헌 움직임에 대해 과거 식민지들이 크게 반발하는 등 제국과 식민지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제국일본이라는 지층은 요동쳤고, 콘크리트에 균열을 냈다. 악화 일로에 있는 지금의 동아시아 정세가 이를 잘 나타낸다. 이제 과거를 콘크리트로 덮는 일을 멈추고, 제국일본이라는 지층 탐사에 나서자는 게 이 책이 주장하는 바다. 

토오꾜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김항(연세대 국학연구원 HK교수)은 이미 2010년 일본에서 『帝國日本の閾』(제국일본의 문턱, 岩波書店)을 저술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일본 내부에서 천황제의 의미,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등 근대 일본이 은폐하고 있는 핵심 요소들을 파헤쳤다. 한국으로 돌아온 저자는 더욱 폭넓은 관점에서 제국일본이라는 지층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국의 지층이 콘크리트에 균열을 내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 세가지를 찾아냈다. ‘주권’ ‘식민지’ 그리고 ‘아시아와 한반도’다.

주권·식민지·아시아를 넘어 ‘동아시아’를 상상하기

이 책의 제1부 제국의 히스테리와 주권의 미스터리는 제국일본의 주권 문제를 다룬다. 19세기 후반 일본은 전제군주 천황이 있는 상황에서 서구의 주권개념을 수입했다. 국민을 배제하고 천황에게만 주권을 귀속하기 위해 일본 사상계는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그리고 제국 몰락 후 주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또 한번 진통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일본의 유명 소설가 미시마 유끼오(三島由紀夫, 1925~70)의 할복자살 사건은 눈길을 끈다. 미시마는 전후의 ‘민주주의’와 ‘전쟁 포기’가 일본인의 영혼을 부패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명존중 이상의 가치가 있다. 그것은 자유도 민주주의도 아니다” “천황 폐하께 자위대를 돌려드리기 위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을 통해 저자는 천황과 주권 때문에 생긴 강박과 불안이 근원적으로 죽음을 내포하고 있음을 포착한다. 

제2부 제국의 문턱과 식민지의 인간은 소설가 이광수와 염상섭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한다. 저자는 이광수의 「민족개조론」(1921)을 독해하며 식민지의 인간은 ‘국민’이 아니라 ‘난민’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염상섭의 『만세전』(1924)에서는 제국의 지배가 자본주의적 침탈과 겹친다는 관점을 바탕으로 식민지 조선을 새롭게 들여다본다. 

제국시기 조선인들은 한반도에서 쫓겨나 만주로 사할린으로 팔려갈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배의 이면에 자본주의 논리가 숨어 있었기 때문인데, 한반도에는 살아갈 땅이 없는 조선인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외국으로 팔아 스스로 난민이 되어간 것이다. 이들이 다시 한반도에 돌아올 수 있는 건 죽어서 무덤에 묻힐 때 뿐이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식민지의 민족이 인간으로서 의미를 획득하는 곳은 무덤뿐”이라는 함의를 읽어낸다.

제3부 제국의 청산과 아시아라는 장소, 그리고 한반도는 ‘동아시아’라는 관점에서 제국일본을 살펴본다. 이 과정에서 ‘해적’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자는 해적을 ‘전인류의 적’, 즉 국제범죄자로 해석한 카를 슈미트(CarlSchmitt)를 차용해 제국일본을 거대한 해적선에 비유한다. 붙잡힌 해적은 모두 교수형에 처해졌지만 쇼오와(昭和)천황 히로히또의 목이 잘리는 일은 없었다. 해적선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사회주의 소련을 방어하는 ‘극동의 방패’를 자처하며 국제무대에 복귀한다.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해적선은 이제 유령선이 되어 동아시아를 떠돌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저자는 “항해를 멈추고 항로 없는 망망대해에 표류하며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본 사상가 타께우찌 요시미(竹內好, 1910~70)를 환기한다. 길을 잃는 것이 도리어 길을 찾는 하나의 방도가 될 수 있다는 제안이다.

제국일본을 넘어, 평화의 공간 동아시아로 

제국일본이라는 과거가 동아시아라는 지평 위에서 탐구될 때, 한일·한중·중일 등 국가 간의 ‘화해’ 따위가 아닌 인간 실존을 위한 ‘공존’의 장이 펼쳐질 수 있다는 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바다. 이 책이 다루는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1914~96), 타께우찌 요시미, 미시마 유끼오, 이광수, 염상섭, 야스이 카오루(安井郁, 1907~80)의 사상은 고매한 지성의 산물이 아니다. 제국의 멍에를 짊어진 지식인으로서 생존을 모색하는 절체절명의 몸부림이다. 

일본 내부에서 일본의 노예성을 비판하고(타께우찌 요시미), 주권의 문제를 안고 자신의 목숨을 끊고(미시마 유끼오), 민족을 개조하기 위해 반민족의 낙인을 쓰고(이광수), 자신의 진보를 지키기 위해 주체사상을 신봉하는(야스이 카오루) 등 그들이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실존과 생존을 위한 길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사상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지금 우리가 탐사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거인 ‘제국일본’과 마주하게 된다. 제국의 기억과 단절된 채 포스트 제국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 기억을 끄집어내야만 여태껏 상상하지 못했던 평화의 공간 ‘동아시아’를 새롭게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85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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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Vino Veritas! (술 속에 진리가!)’ [(가칭) 공캠x자캠 present "알콜토크"]는 맥주 한잔 하면서, 느슨하고 흐릿한 기분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비정기 프리 토크 이벤트입니다. 기본적으로 입과 귀가 분리된 강의/세미나, 형식적 일방적 토론, 학연/가방끈주의자들의 허세와 먹물질 등을 지양합니다.

 

[Brief History of 공캠x자캠 present "알콜토크"]

- vol.1 2013.03.09 - 후쿠시마와 우리
- vol.3 2013.11.15 - 맑스 재장전(Marx Reloaded)
- vol.4 2014.03.08 - 후쿠시마와 밀양
- vol.5 2015.05.02 - 세월호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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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 "우리는 걷는다 단지 그뿐(ぼくらは步く ただそんだ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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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9 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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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밑줄]

1. 다께우치의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노예가 노예의 주인이 되는 것은 노예의 해방이 아니다. 하지만 노예의 주관으로 보자면 그것이 해방이다. 이를 일본문화에 적용해보면, 일본문화의 성질을 잘 알 수 있다. 일본은 근대의 전환점에서 유럽에 대해 결정적인 열등의식을 가졌다. 그래서 맹렬하게 유럽을 추격했다. 자신이 유럽이 되는 일, 보다 나은 유럽이 되는 일이 탈각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즉 자신이 노예의 주인이 되는 일을 통해 노예로부터 탈각하려 했다. 모든 해방의 환상이 그 운동의 방향에서 생겨났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해방운동 자체가 노예적 성격을 벗어날 수 없을 정도로 노예근성이 뼈 속 깊숙이까지 스며들어 버렸다. 해방운동의 주체는 자신이 노예라는 자각을 가지지 않고, 자신이 노예가 아니라는 환상 속에서 노예인 열등 인민을 노예로부터 해방하려 했다. 자신은 각성된 고통 속에 없으면서 상대를 각성하려 한 셈이다. 그래서 아무리 해도 주체성이 나오지 않았다. 즉 각성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어져야 할 ‘주체성’을 밖에서 찾으러 나갔다.” (233)

“노예가 노예임을 거부하고 동시에 해방의 환상을 거부하는 것, 자신이 노예라는 자각을 포함해서 노예인 것,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꿈에서 깨어났을 때의 상태다. 갈 길이 없지만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오히려 갈 길이 없기 때문에 더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다. 그는 자신인 것을 거부하고 동시에 자기 이외의 것인 점도 거부한다. 그것이 루쉰에게 있는 그리고 루쉰 그 자체를 성립케 하는 절망의 의미다. 절망은 길이 없는 길을 가는 저항에서 나타나고 저항은 절망의 행동화로 드러난다. 이것은 상태로서 본다면 절망이고, 운동으로서 본다면 저항이다. 거기에 휴머니즘이 파고들 여지는 없다. (269) (이 문장은 p.231에도 다른 버전으로 등장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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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에또오와 코바야시의 모노(モノ)의 실제가 (312-321)

“인간은 머리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위(胃)가 있어 머리가 자살을 공상한다 해도 위는 착실히 저작(咀嚼)운동을 하는 법인데, 이 냉철한 사실에 이제 눈을 떠야하지 않겠는가.”

“‘전후’라는 허구를 없애보자. 일본을 지탱한 것은 생활하는 실제가의 노력이었고, 위험에 빠트린 것은 이상가(理想家)의 환상이었다는 하나의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확인된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제가가 얼마나 개인적 불행을 견뎌왔는지가 보일 것이다. 생활자는 불운을 관념으로 해소하려는 일 따위에 관심이 없다. (...)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자기가 말한다는 일 외에 사상의 역할은 없다. 권력과 사상, 도덕의 야합은 이제 그만하자.”

“코바야시: 가령 키모노(着物)를 고르는 경우에 여성들은 다 완성돼 입었을 때를 상상하면서 고릅니다. 나는 그 관점이 자연스럽고 건강하다고 봅니다. (...) 미(美)를 조금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문화에는 미가 필요하다고 떠들어대는 부류가 있습니다. 그렇게 떠드는 말로만 미에 접근하죠. 그래서 뭐든지 엉망이 돼버리는 것이죠.
에또오: 제대로 생활하지 않기 때문일까요?
코바야시: 지식과잉이랄까, 언어과잉이랄까. 미라는 것은 바로 우리 옆에 있기 때문에 인간은 매우 자연스러운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생활의 반려니까요. 하지만 현대문화에서 ‘미의 위치’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나오는 까닭은 미의 일상성에 관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런 생각에서 출발하게 됩니다. 이러면 말밖에 남는 게 없죠.”

“꽃의 아름다움 같은 건 없다. 존재하는 것은 아름다운 꽃이다(花の美しさなどない、あるのは美しい花である)”

“인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여러 곳에서 선구자를 찾아보는 것도 역사를 아는 한 방법이다. 하지만 한 가지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소라이를 선구자로 간주하는 것은 우리가 역사를 회고함으로써 가능한 관점이다. 하지만 그것은 소라이의 얼굴이라기보다는 우리 얼굴의 자화상이다. 이것을 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역사를 아는 한 방법은 역사를 망실하는 한 방법이 되고 만다.”

“역사의 발전이라든가 필연이라든가 하는 말로 치장된 초라하고 어두운 집이 있다. 이곳이 역사에 대한 객관적 이해라는 램프가 빛나는 황폐한 두뇌의 거처임을 떠올려본다. 왜 이 두뇌는 역사에서 선구자만을 찾아 헤맬까. 선구자가 충분히 선구적이지 않았음을 발견하고 역사적 한계라는 말을 구사하며 역사를 이해하려 할까. (...) 고정관념에 강박적으로 사로잡힌 이 두뇌 속에서는 그것이 역사라는 말이 울려 퍼지고 있다. 말에 완전히 복종하기 때문에 이 환자는 결코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만 모르는 증상은 명백하다. 그는 현재의 삶과 접촉면을 잃어버린 불감증을 앓고 있다. (...) 자기의 현재를 상실한 인간에게 과거 인간의 현재가 보일 턱은 없다.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사람과 만나려면 상상력을 발휘해 이쪽에서 마중을 나가야 한다. 이 상상력의 기초로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 자신의 현재 생활을 충분히 음미해봐야 한다. 그것 외에 아무것도 할 일은 없다. (...) 그래서 현대풍의 역사이해 방식은 과학의 가면을 쓴 원시적 주술의 잔존이라 비난받아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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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자가 없는 나라에서 보편의 ‘의장’을 차례로 벗겨낸 뒤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해석’이나 ‘의견’으로는 꿈쩍도 않는 사실의 절대성이었다(거기엔 그저 모노(モノ)로 가는 길만이 있다 - 노리나가). 코바야시의 강렬한 개성은 이 사실과 모노 앞에서 그저 입 다문 채 머리를 조아리는 수밖에 없었다. (마루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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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이는 회의파도 아니고 비합리주의자도 아니다. 사물에 자연스럽게 깃든 리(理)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리를 조종하는 마음을 생각한다. 마음이 향하는 도처에서 리를 만나는 것은 좋은데, ‘세계는 리’라거나 ‘리 속에 세계가 있다’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리라는 언어에 도취해버린다는 것이 소라이의 주장이다. 학자의 이런 도취심을 찾아내면 학설의 수미일관성은 중요치 않다고 소라이는 생각했다. 그가 공자의 ‘좋아한다’라는 말에 주의를 기울인 것도 이 때문이었다. 소라이는 후세의 학문이 뜻을 찾는 데 예민하고 마음을 조종하는 것을 서두르며 리를 마음에서 구하여 달변이 된다고 했는데, 공자 같은 학자가 되면 달변을 싫어하고 ‘삶을 기다린다’는 침착한 태도를 학문의 근저로 삼았다고 했다. 리를 말하며 지혜를 즐기기보다 삶을 사는 쪽이 근본적이라는 것이다. 알기보다 행하는 것이 먼저다. 이것이 소라이의 기본적인 사상이었다.”

“진사이 학문의 기본적 태도는 구체적인 형태 없는 의미나 의리(義理)에서 출발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을 때는 우선 문세(文勢)를 봐야하고, 도를 논할 때는 반드시 혈맥을 봐야 하며, 문세와 혈맥이 합일된 절대 속일 수 없는 사실에서 의미가 생겨나는 것을 기다리라고 말한다. 진사이와 노리나가가 쓴 것을 의미를 뒤로 하고 문세에 먼저 주의하며 읽으면 실제 있는 것, 아름다운 것에 대해 매우 예민한 마음, 일본인의 혈맥은 속일 수 없다는 사실이 뚜렷이 느껴져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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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9 17:10:48
*.70.51.64

[오늘의 발견]

62, 94, 126, 158, ..., 222, 254, 286, 318...

62페이지부터 32페이지 간격으로 6행5.4열 근처의 미세한 프린터 오류(ex. 체득득, 얼굴굴)는 레어템일까요?-_-;; 책 인쇄는 원래 A1양면인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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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5 14:33:04
*.54.229.211

이번 주 일요일 18시, 사전 세미나를 빙자하여 알콜을 섭취합니다.

* 일시: 2015년 6월 21일(일) 18:00
* 장소: 공중캠프 (날씨 좋으면 야외 음주)
* 준비물: <제국일본의 사상>을 일독하고 할 말을 생각해 옵니다. 미리 밑줄 그은 문장을 이곳에 올려주거나 독후감/코멘트를 작성해 주시면 더욱 좋습니다. 물론 콩나물 모드로 몸만 오셔도 환영합니다.
* 참석 가능하신 분은 댓글 남겨 주시거나 삐삐쳐 주세요.

공중캠프

2015.06.16 11:27:55
*.54.29.225

[페이스북 이벤트]
https://www.facebook.com/events/435175479988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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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20 22:24:38
*.227.149.171

[오늘의 실존]

규범과 사실의 틈새

"하지만 여기에 근원적 아포리아가 도사리고 있다. 슈미트의 주권론에 대한 벤야민의 비판에서 알 수 있듯이 유한한 인간이 무질서로부터 질서를 만들어내는 결단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푸꼬와 데리다의 논쟁에서 드러난 것처럼 데까르뜨적 회의는 인식의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광기의 식별 불가능성을 알려줄 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논쟁 자체라기보다는 결단의 주체가 유일신을 모델로 하고 있다는 사실과, 강인한 정신은 광기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사실이다. 신을 모델로 하는 한 결단하는 주체는 결코 현실의 영역에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 그것은 있어야 할 규범의 인격화로서 미래로 투사되든지 초월적 자리에 고상하게 앉아 있을 따름이다. 반면에 강인한 정신이 광기와 식별 불가능한 한에서 정신은 기존의 규범을 정지하는 정신으로 존립할 수 없다. 기존의 규범을 방법적으로 효력 정지해 사실을 발견하는 정신이 광기라면 기존의 인식-이해틀은 결코 방법적으로 포착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범에서 사실에 이르는 코바야시의 정신과, 사실에서 규범으로 향하는 마루야마의 결단은 규범과 결단의 틈새에서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실존을 은폐한다. 이 무능하고 우울한 삶의 형상을 회피하고 은폐한 허구의 형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사람의 비판적이고 반성적인 지적 영위로 추출된 일본은 매우 이성적이고 지적인 주체와 정신의 장소이자 이름이었다. 이 일본은 통속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일본론과 결연하면서 엄격한 방법과 금욕적 태도를 통해 추출된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사람의 일본론은 극한형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극한의 일본론은 신을 모델로 한 주체론이며 엄격한 방법적 회의 끝에 다다른 광기의 정신론이다. 이 주체론과 정신론은 늘 외부 상황에 휘둘리며 살아가면서 과거와 깨끗하게 단절할 수도 없는 우유부단한 일상의 주체와 나약한 보통의 정신을 사유할 수 없다. 이 책의 맥락에서 보자면 단호한 결단과 강인한 정신이 국민국가 성립을 위한 극한의 주체론이었다면, 이 논리는 제국일본의 지층을 콘크리트 공사로 덮어버리려는 시도의 가장 세련된 버전인 셈이다.

아마도 코바야시와 마루야마 일본론의 아포리아를 돌파한 곳에서 더디지만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다. 그 지평은 근대적 사유가 꿈꾸고 원하던 단호하고 강인한 주체의 세계가 아닐 것이다. 아포리아를 돌파한 곳에 서 있는 것은 비겁하고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실존들일 터이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타자의 폭력 앞에 벌벌 떨면서도 타자에 대한 폭력에 탐닉하는 모순 덩어리의 실존이 살고 있다. 과연 이 괴상한 실존이 사는 포스트 제국의 동아시아를 그려낼 수 있을까? 이 과제와 마주할 때 포스트 제국의 동아시아는 때로는 폭력적이고 때로는 사랑이 넘치는 분열적 공생의 장소로 재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제일사, 323-325)

공중캠프

2015.06.25 17: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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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컨닝 페이퍼] (Hang Kim 제공)

김항, <제국일본의 사상>, 창비, 2015.

1. ‘주체’와 근대성

- 역사의 콘크리트 공사 : ‘주체’의 자연화가 전제된 역사인식 비판
=> 이 책의 모티프 ; 망각된 잠재성의 흔적을 찾아내기 = ‘현재’를 존립시킨 ‘역사화’의 궤적 비판

- ‘주체’란 무엇인가? : 세계를 ‘대상’화하는 전유방법 (원근법주의 perspectivisim)
=> 데카르트의 전략 : 어떻게 광기에 빠지지 않고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 자연과 사회의 예측불가능성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
=> not less a method for surviving than a method of philosophy

- 주체화 없는 주체의 지배
=> 인간을 주체로 이해 = 인간이란 언제나 자연과 세계를 대상화하는 존재
=> 어떻게 주체가 되는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 없이 언제나 이미 주체인 인간
=> 더 이상 주체가 아닌 주체, 주체화 없는 주체로서의 인간 => 비판이론과 구조주의의 물음
=> 주체화에 대한 물음이란 주체로 만들어지는 지배구조/담론의 분석이라기보다는,
미치지 않고 또한 망가지지 않고 살기 위한 ‘방법’을 상실한 인간 조건에 대한 근원적 비판

2. 국민국가의 역사와 국민의 조건

- 국민(nation)은 내셔널리즘(nationalism)이란 운동 없이 실존할 수 없음
=> 언어/관습/문화를 공유해온 종족(ethnic group)을 국민으로 전환시키는 운동 = 내셔널리즘
=> ‘반민족 행위’조차도 하나의 민족주의 – 이광수의 경우
=> 내셔널리즘이란 국민을 ‘자연화’시키는 것

- 내셔널리즘의 이율배반
=> 하나의 실천/방법임과 동시에 실천/방법으로서의 성격을 지우는 운동(자연화)
=> 주체화 없는, 주체화를 말소하면서 이뤄지는 주체의 주조
=> 현재의 주체를 자연화함으로써 역사화 속에서 말소된 잠재성을 상기하지 못하게 함

- 전후 일본의 내셔널리즘 비판/구성의 계보
=> 주체를 구성해온 주체화의 중층적 실천을 탐구 (어떻게 국민이 되었는가)
=> 개인 실존의 탈국민화와 국민화의 변증법(마루야마 마사오)
=> 제국주의와 내셔널리즘 사이에서 망각된 주체화의 계기 = 아시아주의(다케우치 요시미)

- 주체화를 벗어난 인간 실존의 생존 가능성이란?
=> 데카르트적 주체의 패러다임 외에 생존의 가능성이 있는가?
=>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는 ‘삶’의 복수성 = 폭력, 공포, 사랑 etc 속의 인간
=> ‘의식’의 확실성에서 ‘응답’의 소통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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