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공중캠프

2017.10.01 18:42

[첨부 이미지 - "태내에서 부화하는 에일리언 레고" 참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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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자신이 『자본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한 「상품」장에서 그는 ‘상품의 이중적 성격’(사용가치(Gebrauchswert/worth)와 가치(Tauschwert/value))과 그 상품에 체현된 ‘노동의 이중성’(사용가치를 낳는 서로 다른 구체적 유용노동(work)과 가치를 생산하는 동일한 추상적 인간노동(labour))에 대해 먼저 설명한다. 그리고 ‘단순한 가치형태’로부터 ‘화폐형태’로의 ‘가치표현의 발전과정’을 꼼꼼히 분석하면서, 사적 노동과 사회적 노동의 모순으로부터 발생하는 상품의 물신적 성격은 교환을 위해 상품을 생산해야 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상품 형태나 이 형태가 나타내는 바의 노동생산물들의 가치관계는 노동생산물의 물리적인 성질이나 그로부터 생겨나는 물적 관계와는 절대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인간 자신들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일 뿐이며 여기에서 그 관계가 사람들의 눈에는 물체와 물체의 관계라는 환상적 형태를 취하게 된다. [...] 이것을 나는 물신숭배(物神崇拜, Fetischimus, fetishism)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자마자 이들에 달라붙는 것으로서 상품생산과는 불가분한 것이다.

즉, 맑스에게 있어 물신성은 인간/관계의 사물화에 대한 비판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부의 기본형태”인 상품의) 근본적인 속성이며, 상품생산사회를 지속시키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인 것이다. 『공산당 선언』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에 관한 부분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기존의 신분 질서를 무너뜨리고 “거대한 생산력들을 창조”한 부르주아지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하며 다음과 같이 경의를 표한다:

부르주아지는 지금까지 존경받았던, 사람들이 외경을 갖고서 바라보았던 모든 직업으로부터 그 신성한 후광을 벗겨 버렸다. 부르주아지는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를 자신들의 유급 임금 노동자로 바꾸어 버렸다. [...] 모든 신분적인 것, 모든 정체적인 것은 증발 되어 버리고, 모든 신성한 것은 모독당한다. [...] 부르주아지는 백 년도 채 못 되는 그들의 계급 지배 속에서 과거의 모든 세대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고 더 거대한 생산력들을 창조하였다. 자연력들의 정복, 기계, 공업과 농업에의 화학의 응용, 기선 항해, 철도, 전신, 전 대륙들의 개간, 하천의 운하화, 땅 밑에서 솟아난 듯한 전 주민들 - 이와 같은 생산력들이 사회적 노동의 태내에서 잠자고 있었다는 것을 과거의 어느 세기가 예감했을까

하지만 그 장의 마지막 문단에서 그들은 “부르주아지를 그 무의지적 무저항적 담지자로서 가지고 있는 바의 공업의 진보는 [...] 노동자들의 혁명적 단결”을 가능하게 하여, “대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부르주아지가 생산하며 생산물들을 전유하는 그 기초 자체가 부르주아지의 발 밑에서 무너”질 것이라고 역설한다. 즉, 부르주아지는 “자기 자신의 매장인”을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고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바로 부르주아지의 “발 밑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지젝의 『시차적 관점』에서 나오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는 투쟁 자체를 대표한다(in the class struggle between bourgeoisie and proletariat, the proletariat stands for the struggle as such)” (지젝, 2009(2006): 89(42))는 문장은 바로 이러한 ‘부르주아의 내재적 분열’을 의미한다. 노동자 계급의 착취를 통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부르주아의 시대”는 노동의 소외와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인 동시에 새로운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한편 토대와 상부구조,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에 관한 아래의 유명한 구절은 변증법의 운동 법칙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의지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일정한 필연적 관계들, 즉 자신들의 물질적 생산력들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조응하는 생산 관계들에 들어선다. 이러한 생산 관계들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 즉 그 위에 법률적 및 정치적 상부 구조가 서며(arises on) 일정한 사회적 의식 형태들이 그에 조응하는 그러한 실재적 토대를 이룬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 방식이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 과정 일반을 조건 짓는다. 인간들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들은 그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지금까지 그것들이 그 내부에서 운동해 왔던 기존의 생산 관계들 혹은 이 생산 관계들의 법률적 표현일 뿐인 소유 관계들과의 모순에 빠진다(come into conflict with). 이러한 관계들은 이러한 생산력들의 발전 형태로부터 그것들의 족쇄로 변전한다(turn into their fetters). 그때에 사회 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더불어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서서히 혹은 급속히 변혁된다. [...] 한 개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그 개인이 자신을 무엇이라고 여기는가에 따라 판단하지 않듯이, 그러한 변혁의 시기가 그 시기의 의식으로부터 판단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의식을 물질적 생활의 모순들로부터, 사회적 생산력들과 생산 관계들 사이의 현존하는 충돌(the existing conflict)로부터 설명해야만 한다. 한 사회 구성체는 그것이 충분히 포용하고 있는 생산력들 모두가 발전하기 전에는 결코 몰락하지 않으며, 더 발전한 새로운 생산 관계들은 자신의 물질적 존재 조건들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내에서 부화되기(have matured in the womb of the old society itself) 전에는 결코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맑스, 1859)(*1).

즉, 현재의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물질적 생활의 모순들로부터”, 자본주의의 바깥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서서히 혹은 급속히 변혁”되는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공산주의”를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state of affairs)”나 “현실이 이에 의거하여 배열되는 하나의 이상(ideal)”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real movement)”으로 정의하고 “이 운동의 조건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전제들로부터 생겨난다”(*2)고 강조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맑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은 서로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요소들이 뒤섞여있는 도시 공간 연구에 기본적인 방법론을 제공해 왔다. 서로 다른 가치와 문화가 공존하는 ‘홍대 앞’이나 주류 질서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인디’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더욱 잘 이해될 수 있다. 자본주의 도시 공간과 소비문화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들춰내어 비판하거나 주류와 인디의 관계를 교집합이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대립항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현존하는 충돌”로 바라볼 때 더욱 정치적·변혁적일 수 있다. 즉, ‘인디 공간’이란 자본주의적 도시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면서 그 “발 밑에서” 혹은 “태내에서 부화”하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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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사람들은 이 문장을 인용하며, 맑스주의를 토대 결정론 혹은 경제 결정론이라고 비판한다. 훗날 엥겔스는 이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추가해야 했다: “역사를 유물론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궁극적으로 역사를 결정하는 요소(the ultimately determining element)는 현실적 삶의 생산과 재생산이다. 맑스도 나도 이 이상의 것을 주장한 적은 없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이것을 왜곡해서 경제적 요소만이 유일한 결정적 요소(the economic element is the only determining one)라고 말한다면, 그는 그 명제를 무의미하고 추상적이며 얼빠진 소리로 전락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 엥겔스, (Letters) Engels to J. Bloch In Konigsberg, London, September 21, 1890

*2. “공산주의란 우리에게 있어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가 아니며, 현실이 이에 의거하여 배열되는 하나의 이상도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을 공산주의라 부른다. 이 운동의 조건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전제들로부터 생겨난다.(Communism is for us not a state of affairs which is to be established, an ideal to which reality [will] have to adjust itself. We call communism the real movement which abolishes the present state of things. The conditions of this movement result from the premises now in existence.)” (맑스&엥겔스, 1988(1846))

*3. 이러한 관점에서 인디는 엘리어트의 자전거에 태워 먼 우주로 보내야 하는 ‘ET(Extra-Terrestrial)’가 아니라 케인의 가슴을 찢고 나오는 ‘에일리언’이라고 할 수 있다. 주류와 인디의 관계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본 논문의 3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ㄱㅇㅂ,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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