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자살하는 이들은 그 배경이 어떻든, 자신의 삶이 부조리하며 더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살을 한다. (…)

 

행복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하는 막연하고 ‘값싼 희망’이나, 나 외의 어떤 외적 존재가 나를 이 부조리의 삶으로부터 끄집어내어 구원해 줄 것이라는 여타의 종교적 가설속에 있지 않다. (…)

 

그 부조리를 인정하고,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또한 가능한 것들 너머를 바라면서 이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존재함의 행복이 가능하다. (…)

 

이 현실세계에서 우리 각자는 여러가지 갈등적 상황, 이성과 합리적 추론으로는 이해되거나 해결될 수 없는 무수한 부조리를 경험한다. 그 지독한 부조리와 대면할 때, 포기와 낙담이 아니라 그것을 담담하게 마주하며 계속 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높은 곳으로 올리는 용기, ‘존재함의 행복’의 순간-경험(glimpse experience) (…)

 

“행복과 부조리한 것은 같은 지구의 두 후손들이다. 그 둘은 분리불가하다.” 

(Happiness and the absurd are two sons of the same earth. They are inseparable)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만 한다(one must imagine Sisyphus happy)”」

 

--------------

 

<‘시지프스’로 살아가는 이들 >

 

1. 지난 주간 여러 가지 착잡함을 경험했다. 9년여 동안 나와 같은 분야에서 가르치며 동료로 지냈던 A교수가 이번 봄학기를 끝으로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그가 연구실 정리하는 것을 거들고, 떠나기 전 나의 집에서 식사를 함께하며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이제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확실성은 아무것도 없다. 불확실성의 미래를 끌어안고서, 그는 자신의 물건을 실은 트럭을 운전해서 텍사스를 떠났다. 나는 그의 연구실에서 가지고 갈 책과 두고 갈 책을 선별하고 책들을 박스에 넣는 일을 도와주었다. 가지고 갈 책보다 훨씬 많은 책을 놓고 간다. 소위 아이비리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하고, 특정 주제로 책을 쓰고, 열정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던 사람이 예상하지 않았던 불확실성의 미래를 짊어지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 우리 삶의 도처에서 경험하게 되는 이러한 지독한 부조리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와 마지막 식사를 하고, 트럭을 몰고 떠나가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시지프스’를 떠 올렸다.

 

2. 미국 대학에서 전임직 교수가 되고 5~6년이 지나면, 한국에서는 ‘종신교수 심사’로 알려진 ‘테뉴어(tenure)’를 받기 위한 심사를 받는다. 이 테뉴어 심사과정은 대부분 3분야 (scholarship, teaching, shared governance and service)에 걸쳐서 받는다. 대학마다 또는 전공 분야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략 이렇게 세 분야로 심사를 받는다. 나의 동료교수A는 내가 보기에는 이 세 분야에서 조금도 모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학문성 평가에서 교수들의 의견이 갈라지고, 복잡한 과정을 거친 토론과 무기명 투표, 그리고 투표 후 거치는 최종 결정과정을 통해서 그의 테뉴어는 결국 거부되었다. 그의 책 정리를 거들면서  독어, 불어, 라틴어, 희랍어로 된 책들이 상당수 있는 것을 보면서 그가 이렇게 여러 언어를 심도있게 다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는 남겨둘 책 중에서 관심 있는 책을 가지고 가라고 했다. 그의 연구실에서 가져온 책들을 그가 떠난 후 살펴보면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그의 열정이 내게 느껴져서 더욱 마음아프다. 

 

3. 특히 인문학의 분야에서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 수치로 한 사람의 학문성과 그 학문적 기여도를 평가하기는 쉽지 않다. 한 사람의 테뉴어에 대한 투표가 만장일치가 아니라, ‘예스’와 ‘노’로 언제나 갈라지는 이유다. 누군가를 평가하는 제도적 권력이 ‘학문적 기여도’의 이름으로 한 사람의 삶에 이토록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할 수 있다는 것에, 근원적인 회의가 들곤 한다. 내가 일하는 미국의 아카데미아에서 ‘공정성’의 이름으로 자연화되곤 매우 비인간적인 ‘차가움,’ 그리고 소위 ‘다수 가결’이라는 민주적 절차가 언제나 낳을 수 있는 지독한 불공평성을 나는 이번에도 다시 경험하면서 착잡했다.

 

4. ‘부조리(absurdity)의 철학자’로 알려진 카뮈는 “자살이야말로 가장 진지한 철학적 주제”라는 말로 그의 <시지프스의 신화>를 시작한다. 자살하는 이들은 그 배경이 어떻든, 자신의 삶이 부조리하며 더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살을 한다. 카뮈는 <시지프스의 신화>에서 크게 세 가지 주제, 즉 자살, 부조리, 행복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자살을 인간의 삶이 지닌 부조리에 대한 자연적 반응으로 보는 까뮤는, 이 부조리의 경험 앞에서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을 통해서 그 부조리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 부조리는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성으로 또는 신이 정한 의도가 있는 것이라는 종교적 가설로도 해명될 수 없다. 

 

5. 이 부조리의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길은, 이성과 합리성으로는 해명될 수 없는 그 부조리를 당당하게 마주하고, ‘값싼 희망’에의 유혹에 저항하면서 떨어지는 바위를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는 ‘시지프스적 삶’이다. 이 부조리에 맞서서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길인 것이다. 행복은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하는 낭만화된 ‘값싼 희망,’ 또는 나 외의 어떤 외적 존재가 나를 이 부조리의 삶으로부터 끄집어내어 구원해 줄 것이라는 여타의 종교적 가설속에 있지 않다. 

 

6. 인간에게 행복이란 바로 이러한 부조리의 삶을 직시하면서,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서 떨어지는 바위를 끌어올리는 주체적 행위를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 ‘값싼 희망’을 거부하는 것은 동시에 낙담과 좌절을 거부하는 것이기도 하다. 부조리가 해결되거나 또는 그러한 상태가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 부조리 한 가운데에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카뮈는 <시지프스 신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행복과 부조리한 것은 같은 지구의 두 후손들이다. 그 둘은 분리불가하다.” 

(Happiness and the absurd are two sons of the same earth. They are inseparable)     

 

그렇다고 해서, 부조리를 느끼고 경험하는 것 자체가 행복으로 인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부조리를 인정하고,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또한 가능한 것들 너머를 바라면서 이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존재함의 행복이 가능하다. 충일하게 살아있음의 한 가운데서, 높은 곳으로 바위를 올리고자 씨름하는 그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시지프스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만 한다(one must imagine Sisyphus happy)”고 카뮈는 말한다. 

 

7. 연구실을 정리하면서도 유머로 나를 웃게 만들었던 나의 동료교수 A--그가 짐을 실은 트럭을 몰고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시지프스를 떠올린 것은 그의 뒷모습속에서 어쩌면 나의 모습, 그리고 무수한 이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현실세계에서 우리 각자는 여러가지 갈등적 상황, 이성과 합리적 추론으로는 이해되거나 해결될 수 없는 무수한 부조리를 경험한다. 그 지독한 부조리와 대면할 때, 포기와 낙담이 아니라 그것을 담담하게 마주하며 계속 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높은 곳으로 올리는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함을 나의 동료 A교수는 내게 상기시킨다. 부조리의 삶 한가운데를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시지프스와 같은 ‘존재에의 용기 (courage to be)’다. 존재에의 용기를 품고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면서, 그 부조리의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씨름하는 그 과정 한가운데에서, 어쩌면 ‘값싼 행복’이 아닌 ‘존재함의 행복’의 순간-경험(glimpse experience)이 가능하게 되는지 모른다.

 

2021. 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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