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진심’은 알 수 없는 것: 홍콩 현장에서 바뀌어간 질문들

장정아


1. 중국, 그런데 왜 홍콩?

그리하여 나는 중국 민족주의를 ‘주변’에서 바라보며 새로운 상상의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민족이나 국민·국가에 대해 강한 동일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떤 가치에 의탁하는지 알고 싶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를 통해 나 자신과 한국 사회를 다르게 바라보기 위해 홍콩을 연구대상자로 택했다. (136)

2. 현지에 진입하기

“도대체 홍콩에서 뭘 하고 있는 겁니까?”: ‘불법 아닌 불법’ 체류자로 살기
세 가지 언어가 필요했던 현지조사
일곱 번의 이사와 ‘숙소 아닌 숙소’ 맥도날드

3. 불순한 목적으로 중국 본토에서 온 여성으로 끊임없이 오해받다

연구대상자들과의 관계: 호기심, 호감, 보호, 그리고 우려의 대상
일상 속 오해와 차별: 중국 본토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을 체감하다

어쩌면 ‘현지’라는 것이 고정된 실재로서 거기 그대로 있고 사람마다 더 깊이 또는 덜 깊이 들어간다기보다, 그래서 얼마나 ‘완전히’ 이해하느냐라는 대답 불가능한 질문을 둘러싼 ‘성찰’을 무한루프처럼 반복해야 한다기보다, 내가 어떤 신분으로 어떻게 조우하느냐에 따라 현지가 다르게 나타나고 다르게 구성된다고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155-156) 

4. 도시에서 신분이 불안한 이들을 조사하기

민간단체를 통한 만남: 나에 대한 신뢰, 기대, 실망
언제 추방될지 모르는 불안감

‘행가지(行街紙, 길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는 종이)’ (159)

‘진심’을 듣기를 포기하고 질문을 바꾸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점점 나는 사람의 ‘진심’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고, ‘진짜 동기’를 알아내려 하는 것 자체가 ‘합리적 동기’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개인을 상정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진짜 동기를 알아내야만 논문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은 틀렸다고 결론 내렸다.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다시 말해 훨씬 구체적인 질문, 그들의 감정적 애착과 슬픔을 최대한 포착할 수 있는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 홍콩인이 되고 싶은 지뿐만 아니라, 중국 본토에 있을 땐 뭐가 즐겁고 뭐가 슬펐는지, 어떤 친구들이 있었는지, 부모와 동생들이 모두 홍콩으로 이주하고 혼자 본토에 남았을 땐 하루 종일 뭘 하며 지냈는지, 홍콩의 가족에 대한 느낌은 어땠는지, 중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이 어릴 때부터 가진 생각인지 아니면 홍콩에 와서 지내고 소송을 하면서 중국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는지, 지금은 고향이 그리운지, 가장 그리운 건 무엇인지, 홍콩인이 되지 못하고 평생 ‘중국인’으로 살면 삶이 어떨 거라고 생각했는지, 홍콩에 와서 소송하면서 스스로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홍콩에 대해 가지는 느낌과 기대는 무엇인지, 홍콩에서 지내면서 가장 즐거운 일은 무엇이고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인지, 힘들 땐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고향에 얼마나 애착을 느끼는지, 본토와 홍콩 중 어디에 속한다고 느끼는지, ‘중국인’이라는 신분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홍콩인’이라는 신분이 이렇게 차별받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낼 만큼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지, 만일 소송에 져서 신분증을 얻지 못하고 돌아가게 되면 홍콩에 오기 전의 삶과 무엇이 달라질 거라 생각하는지, 그리고 홍콩에서 보낸 시간에 대해 어떻게 느낄 것 같은지, 시간낭비였는지 아니면 그래도 얻은 것이 있는지,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164-165)

도시라는 현장

5. 중국과 홍콩: 현장이란 무엇인가

중국 본토로 확장된 현지조사
중국 연구자? 홍콩 연구자?: 지역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본토와 홍콩 사이의 경계는 강력한 통제가 작동하는 곳이며 그 경계를 넘으려는 이들에게 고통을 가한다는 사실을 보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현지조사를 통해 그 경계를 온몸으로 넘는 이들이 단지 홍콩에서 차별 받는 약자가 아니라 그 경계의 의미를 다시 묻게 만들고 경계를 뒤흔들며 홍콩에 충격을 가하는 존재라는 점을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다. (176-177)

자명한 듯 가정되는 중국과 홍콩이라는 ‘지역’은 자명하지 않다. 그 지역이 어떻게 그런 지역으로 불리고 상상되는지 그 기준을 물어야 한다. (177)

남은 질문: 현장성을 새로이 문제삼기

‘현장과 지식 연구회’, “현장에 대한 천착은 문제틀과 그에 상응하는 질문과 자료에 포섭되지 않음, 즉 예외의 발견이다.” (185)

현장과 연구자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 두 실재로서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 속에서 양자 모두 계속 변화한다. (185)

내가 중국·홍콩을 연구하고 현지인들과 상호작용함으로써 한국과 중국과 홍콩은 어떻게 서로 만나는가. 물리적 중국·홍콩과 현지인들이 상상하는 중국·홍콩 그리고 나와의 조우를 통해 만들어지는 중국·홍콩은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가. 이러한 여러 개의 현장성은 어떤 지식을 만들어내며 기존의 지식을 뒤흔드는가. ‘국민국가 체제를 넘어 정치적 상상의 지평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마찰점을 드러내는 작업’(조문영)이 되고 있는가. (190)



<여성 연구자, 선을 넘다 - 지구를 누빈 현장연구 전문가 12인의 열정과 공감의 연구 기록>, 눌민,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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