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 공중캠프 presents 알콜토크 vol.30
: 미셸 푸코, <철학의 무대>

철학의무대.jpg



* 일시: 2020년 10월 6일(화) door open 19:00 / alcohol talk 19:30 ~ 21:30
* 장소: 공중캠프
* 회비: 무료 (술/음료 별도 주문)
* 텍스트: 미셸 푸코, <철학의 무대(pp.11~56)> (기담문고, 2007)


[참가신청 방법] 

(신청 기간)

2020년 9월 14일(월) 낮 12:00 ~ 2020년 10월 4일(일) 낮 12:00


(신청 양식)

알콜토크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다음 참가신청 양식을 작성해 주시기 바랍니다.

https://forms.gle/9mnoaBh6HjmrX6hEA 




*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

1926년 10월 15일에 태어나 1984년 6월 25일에 사망했다. 고등사범학교 출신으로 철학과 심리학, 정신병리학 등에 관심을 두고 공부했으며 《광기의 역사》와 《말과 사물》로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젊은 시절 스웨덴에서 파리문화원장을 지내기도 했고 튀니지의 튀니스대학교 등에서 강의하기도 했지만 1970년 이후부터는 죽을 때까지 콜레주드프랑스 교수를 역임하며 '사유 체계의 역사'라는 과목을 가르쳤다. 푸코는 다양한 사회적 기구에 대한 비판, 특히 정신의학, 의학, 감옥의 체계에 대한 비판과 성의 역사에 대한 사상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또한 권력과 지식의 관계에 대한 이론들과 서양의 지식의 역사에 관한 담론을 다루는 그의 사상은 많은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국내에는 대부분의 저서(《정신병과 심리학》, 《광기의 역사》, 《말과 사물》, 《지식의 고고학》, 《담론의 질서》, 《감시와 처벌》, 《성의 역사》)와 강연록의 일부(《비판이란 무엇인가?/자기수양》, 《비정상인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주체의 해석학》,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안전, 영토, 인구》)가 번역되어 있다.


* <철학의 무대> (미셸 푸코, 와타나베 모리아키, 기담문고, 2016, 哲學の舞台 增補改訂版 (2007))

1978년 4월에 일본을 방문한 미셸 푸코의 강연과 대담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철학의 무대> 2007년 증보 개정판. 공저자 와타나베 모리아키가 자신의 전문분야인 연극과 문학에 입각하여 '푸코 읽기'를 시도한 논문 몇 편을 수록해 개정하였다. 푸코 연구로 주목을 받고 있는 이시다 히데타카와 나눈 대담 <지금, 푸코를 읽는다는 것은>이 실려 있다.

제1부에 수록된 푸코의 강연은 푸코 자신이 '목자=사제형 권력'이라고 부른 것이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기독교적 인간, 즉 서양적 인간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제2부는 연극과 프랑스 문학 연구자로서의 와타나베 모리아키 개인의 푸코 사후의 '푸코 읽기'라고 할 수 있다. 푸코 사후에 푸코의 담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다양한 논의들을 고려하면서 지금, 현재 푸코를 읽는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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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Vino Veritas! (술 속에 진리가!)" [알콜토크]는 맥주 한 잔 하면서, 느슨하고 흐릿한 기분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비정기 프리 토크 이벤트입니다. 입과 귀, 앎과 삶이 분리된 강의/세미나,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내용과 과정, 학연/가방끈주의자들의 허세와 먹물질 등을 지양합니다. 쉽게 바뀌지 않는 오래된 습관에 절망하면서, 새로운 리추얼의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입니다. (물론, 술을 원하지 않는 분은 소프트 드링크(Non-Alcoholic Drinks)를 마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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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ef History of "알콜토크"]

vol.1 2013.03.09 - 후쿠시마와 우리
vol.4 2014.03.08 - 후쿠시마와 밀양
vol.5 2015.05.02 - 세월호와 우리
vol.8 2016.01.31 - <옥상자국>
vol.12 2016.03.11 - <맨발의 겐>
vol.20 2017.03.11 - <핵의 나라 2>
vol.21 2017.07.28 - <전공투>
vol.27 2020.03.07 - <실록 연합적군>
vol.28 2020.03.26 - 사르트르, <닫힌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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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 "우리는 걷는다 단지 그뿐(ぼくらは步く ただそんだ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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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캠프

2020.10.05 13: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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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무대

시선·투쟁 - 지식인의 역할

와타나베 : 그것은 잡지 『비평』에 게재된 「철학 극장(Theatrum Philosophicum)」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푸코 씨의 친구인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과 『의미의 논리』에 대한 무척 흥미로운 서평입니다. 한편으로는 ‘사건’과 철학의 문제를 논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이트의 ‘환상의 무대’와 아르토의 ‘잔혹극’이 자연스럽게 서로 공명하고 니체의 ‘영겁회귀’의 지평이 ‘가면’과 ‘연희’라는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14-15)

당신의 담론 안에 지속적인 구조화의 요소로서 읽히는 ‘시선’이라는 계열과, 그것과 관련해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연극’이라는 계열은 어디에서 유래하고 있습니까? (17)

푸코 : 플라톤 이래로 - 그리고 데카르트 이후에 그런 경향은 더욱 현저해집니다만 - 철학에서 최대의 문제 가운데 하나는 사물을 본다는 사실은 무엇에 기대고 있는가를 아는 것, 달리 말하면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진실인가 환상인가, 현실 영역에 속하는가 아니면 허위 영역에 속하는가를 아는 것이었죠. 현실과 환상을, 진실과 허위를 분할하는 것, 그것이 철학의 역할이었습니다. / 그런데 연극은 이런 구분을 전혀 모르는 어떤 것입니다. ... 사실과 허위, 현실과 환상의 ‘비(非) 차이’를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연극이 가능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 제 관심을 강하게 끌고 또 제가 하고 싶어 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즉 서양세계에 속한 인간이 그것이 진실인가 아닌가하는 물음을 끝내 제기하는 일 없이 사물을 본 방식을 묘사하고, 그들이 그들 스스로 자신의 시선의 유희=작용을 통해 세계라는 연극(스펙터클)을 상연한 방식을 묘사하는 일입니다. (17-18)

병이라는 것을, 광기를, 범죄를 인간은 어떻게 무대에 올렸는가 하는 점입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인간이 병이나 광기나 범죄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러한 것들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어떤 역할을 하게끔 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제가 쓰려고 하는 것은 훗날 인간이 그 무대 위에서 진위의 분할을 수립하는 ‘무대’ 그 자체의 역사이며, 제 관심은 진위의 분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대’와 ‘극장’의 성립 자체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세계가 어떻게 ‘진리의 극장’을, ‘진리의 무대’를 자신들을 위해 구축했는가, 즉 서양적 합리성을 위한 무대의 구축 그 자체를 묻고 싶은 겁니다. (18-19)

와타나베 : 그 인터뷰에서 당신은 ‘사건’을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적인 문제를 거론하며 “사건을 명료하게 부각시켜 사건이 출현하는 그물망이나 차원을 다른 것과 구별해서 끄집어내고, 사건을 서로 연결하고, 그와 동시에 상호적으로 사건을 생성하게끔 하는 고리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상징체계의 장이나 의미의 구조가 아니라 “힘의 관계의 계보학과 전략적·전술적 전개라는 용어로 분석”을 시도해야 한다. 다시 말해 거기서 참고해야 할 것은 “언어와 기호의 위대한 모델”이 아니라 “전쟁과 싸움의 그것”이다. 우리를 데려가고 우리를 결정하는 ‘역사성’은 호전적이지 언어적이지는 않다. ‘의미의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권력의 관계’를 밝혀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0)

푸코 :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영원한 것’이나 ‘움직이지 않는 것’, 외견의 빛의 변화 속에서 ‘변하지 않고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사건’입니다. (21)

연극은 늘 ‘사건’을 다루고 있고, 게다가 연극의 역설은 바로 이 ‘사건’이 반복된다는 점에 있었지요. / 제가 쓴 책에서도 저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긴 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중요한 것으로는 보이는 ‘사건’을 포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22)

제 단점은 아마도 ‘사건’의 극적인 강조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속에서 빛나고 있고 현재도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은밀한 ‘사건’에는 최대한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3)


‘공간’의 역사학

와타나베 : 병원도, 정신병원도, 감옥도, 그러한 것들은 모두 당신이 말하는 ‘거대한 배제 시스템’의 작동을 통해 성립하는 폐쇄적인, 사회와 단절된 공간이었습니다. / 그런 의미에서는 닫혀 있음으로써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는 특권적이기도 한 공간을 무대로 삼은 연극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연극 자체를 연출하는 장치 - 극장이라고 할 수도 있는 - 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 『감시와 처벌』, 한편으로는 명백한 연극의 과시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극성 그 자체의 거부가 있습니다. 혹은 이 연극성의 거부 자체가 예컨대 벤담의 ‘일망감시체계’에서 볼 수 있듯이 연극을 권력 장치에 내재화시키는 절차라고 말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어쨌거나 거기서는 ‘공간’의 배분 자체를 ‘권력 장치’의 전략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4-25)

푸코 : 저는 ‘공간’이 어떻게 ‘역사’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어떻게 하나의 사회가 자신의 공간을 정리하고 거기에 힘의 관계를 써넣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공업화 사회에서, 아니 일반적으로 16세기 이래로 발전해 온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새로운 사회적 공간 질서가, 즉 사회적·경제적으로 공간을 배분하는 방법이 어떻게 성립했는가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 제게 이러한 사회적·역사적인 강력한 차이의 형성=분화를 현현시킨 최초의 공간은 ‘배제’의 공간, ‘배제’와 ‘감금’의 공간이었습니다. (27)

고대 그리스·로마 사회에서는 누군가를 내쫒고 싶으면 추방했습니다. ... 그리스에서는 항상 공간과 삶의 ‘다형성’과 ‘다의성’이 살아 있었고 주위에는 ‘외부’와 ‘부정한 것’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렇지만 현재 우리 세계는 가득 차버리고 말았어요. 지구는 둥글어졌고(웃음) 하늘나라조차 인구과잉으로 고민하고 있는 지경이지요. / 그래서 ‘배제의 공간’을 이젠 ‘추방’의 공간이 아니라 ‘감금’의 공간으로서 만들어 낼 필요가 생긴 것입니다. / 다시 말해 병자, 광인, 빈민이 들어가야 할 공간이 정해지고 부자의 거주지, 빈민의 거주지, 불결한 거주지 등이 구별되는 겁니다. 이러한 공간의 분화는 우리 역사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28-29)

와타나베 : 구조주의, 레비스트로스, 그것은 서양세계와는 이질적인 복수의 공간을, 각각 자립한 가치로서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었습니다. (31)

푸코 : 저는 “구조주의자이자 반역사주의자”라고 불리기도 했지만(웃음), 저는 구조주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고, 무엇보다 저는 역사학자입니다. 저는 역사연구의 약간 특권적인 대상으로서 일종의 문화공간의 조직·조정을 통해 성립하는 그런 ‘사건’들이라는 것을 선택합니다. / 프랑스의 비평가는 다소 성급해서 사람이 그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과 사람이 말하고 있는 것을 쉽게 혼동합니다(웃음). (31)

구조주의의 관계에서 중요한 또 하나는 구조주의라고 불린 작업이 서로 다른 다양한 시간을 출현시켰다는 점입니다. 헤겔이나 베르그송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단 하나의 시간이 모든 것을 실어 나르는 커다란 조류처럼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 ‘사건’이란 ‘시간의 선분’이 아니라 두 개의 지속, 두 개의 속도, 두 개의 진전, 두 개의 역사의 선 사이의 교차점이나 다름없습니다. (33-34)

와타나베 : 결국 식민지 지배라고 하는 것은 유일한 시간이라는 고정관념(obsession)을 동질적이어야 할 공간에 써넣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죠. (34)

푸코 : 군대... 17세기, 특히 18세기의 국가 계획에는 사회 전체를 군대를 모델로 구성하려는 유혹이 매우 강했고, 또한 나폴레옹 제국이나 프로이센 국가도 그러한 표현의 전형이었습니다. (35)


담론과 신체와 권력과

와타나베 : 『감시와 처벌』에 대한 들뢰즈의 『비평(1975년 12월호)』 - 「작가가 아니다. 새로운 지도 제작자이다」 (36)

푸코 : 저는 과학사의 전문가인 캉길렘의 제자였기 때문에 제 문제는 하나의 과학의 탄생과 발전과 조직화를 그 내적 구조화 속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한 외재적·역사적 요소에서 출발해 연구하는, 그런 과학사는 불가능할까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36)

『광기의 역사』에서는 정신병리학이 어떻게 발전했는가, 어떤 테마를 거론하고 어떤 대상을 다루고 어떤 개념을 사용했는가를 밝히는 동시에 그것이 이루어진 지반이라는 것, 즉 ‘감금’의 실천, 17세기의 사회적·경제적 조건의 변화를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37)

『말과 사물』에서는 과학적 담론 그 자체의 문제, ... 과학적 담론의 존재, 기능, 발전의 외재적 조건에 대한 분석. 다만 당시에 통용되고 있던 설명 방식이 저를 만족시키지 못했습니다. 즉 그런 것들을 모두 생산관계나 이데올로기로 환원시킴으로써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광기나 병, 정신병리학이나 의학의 예가 제게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은 오히려 사회 내의 ‘권력의 관계’ 쪽에서 ‘지식’의 조직화와 발전의 거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37)

최종적으로는 ‘지식’과 ‘권력’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이 진리의 무대화, 진리의 연극에 관한 역사를 써야만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37)

와타나베 : 『성의 역사』 제1권인 『앎의 의지』에서는 종종 언표(énoncé)와 담론(discours)이 구별되어 있습니다. (38)

푸코 : 제 문제는 언표보다는 더 큰 단위를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 요컨대 어떻게 해서 어떤 형태의 ‘담론’이 형성되는가, 또한 어떻게 해서 그 담론의 내부에 작동하는 일련의 규칙이 있는가, 그것을 알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38)

아주 간단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18세기 말까지 프랑스에서는 돌팔이 치료사의 담론과 의사의 담론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 의학적 담론이 과학적 담론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무엇에 대하여 말하고, 어떤 개념을 사용하고, 어떤 이론을 배경에 두고 있어야 하는가,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말과 사물』과 『지식의 고고학』 시점에서의 제 문제였습니다. (38-39)

와타나베 : ‘신체적 지식’, ‘신체의 정치적 테크놀로지’ (39-40)

푸코 : 어떻게 서양사회에서는 인간은 단지 불안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과학의 대상이 되었는가? ... 신체에 어떻게 정치적·경제적·종교적 권력이 작용을 가하고 있었을까? 표징(signe), 폭력/생사여탈권, 노동을 부과하는 것을 통해서 (41)

사람들이 건강한지 어떤지, 아이가 태어나는지 어떤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했고, 특히 사람들이 생활하고 행동하고 노동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 반대로 17세기 이후의 서양사회에서는 개인의 신체적 행동을 감시하고 조련하기 위한 일련의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학교, 군대, 노동, ... ‘신체의 생산성’의 촉진, ... ‘신체의 테크놀로지’의 일면(정신병리학, 의학), 경제적으로는 과대평가된 신체와 정신적=도덕적으로는 멸시받은 신체의 분열 (42-43)


‘주체’의 해체 - 니체의 표징 아래

푸코 : 들뢰즈와 함께 클로소프스키, 바타이유, 블랑쇼는 저에게 매우 중요한 인물들이고, 저는 제 자신이 쓴 글 속에서 이들로부터 받은 영향을 충분하게 인정하고 있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를 망각한 행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훨씬 더 마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그 사람들의 문학적·철학적 작품의 위대함에 비해 제가 쓴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권두에 ‘~에게 바친다’라는 식으로 써서 자신의 부족한 책을 마치 가치 있는 것처럼 보이게끔 하기 위해, 이들을 마치 나를 지켜주는 신격 같은 것처럼 불러내는 것은 정말 나쁜 짓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6)

이들은 모두 1950년대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가져다준 최초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첫째, 우리가 갇혀 있던 헤겔 철학의 현혹으로부터 벗어나게 했다는 점. 둘째, ‘주체(sujet)’ 문제를 철학의, 현대 사상의 근본적인 문제로 제기한 것도 그들이 최초였다는 점. ... ‘주체’란 근원적이고 근저적인, 시초에 있는 형태 같은 것이 아니라 ‘주체’는 몇 가지의 작용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이며, 그 작용은 ‘주관성’ 차원에 속하는 것이 아닌, 명명하고 출현시키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주관성’이라는 것보다는 훨씬 더 근원적이고 근저적인, 시초에 있는 그 어떤 형태로 보는 생각입니다. 주체는 생성과 형성 과정을 갖고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이지 시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 라깡의 중요성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 ‘주체’라는 시초에 있고 자명한 이치로 여겨지는 것을 해체시켰습니다. / 셋째로는 ‘주체의 해체’를 통해 니체로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47-48)

와타나베 : 니체의 ‘연극’, <니벨룽겐의 반지> (49)

푸코 : 제가 지금 행하고 있는 서양세계에서의 ‘권력의 기술’, 즉 ‘신체’ 및 ‘개인’을 대상으로 한 ‘권력의 기술’에 관한 분석을 통해 저는 기독교의 규율이라는 것에, 일반적으로 서양에서의 ‘개인성’과 ‘주체=주관성’을 형성한 것으로서의 기독교에 중요한 역할을 부여한 셈이 되고 말았지만, 거기서 저는 이러한 기독교의 기술을 불교의 기술과 비교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결국 기독교의 수도생활은 불교의 그것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므로 출발점은 아주 가까울 텐데도 결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불교의 수도생활은 ‘비개인화’를 지향하는 것이고, 개인성이라는 것을 극한으로 몰고 가서 그 극한의 끝에서 자신의 해방을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2)


관점의 전환 - 지식인의 역할

와타나베 : 19세기의 ‘성’에 관한 이중의 현상, 즉 ‘히스테리’로 나타나는 ‘자기 욕망의 인지 거부’와 ‘성 과학’을 성립시키게 되는 ‘성에 관한 지식의 과잉’ / 현대사회의 철학자 혹은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53)

푸코 : 첫 번째로 철학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을 보이게끔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사람들이 늘 보고 있으면서도 그 실태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 혹은 놓치고 있는 것을 약간 시점을 비틀어서, 그렇게 함으로써 확실하게 보이게끔 하는 작업입니다. 철학이란 이처럼 아주 살짝 고개를 비틀고, 아주 살짝 시점을 이동시킴으로써 성립하기 때문에 그것은 18세기 유럽에서 ‘필로조프’로 불린 의미에서의 ‘철학자’의 작업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미래에 관한 진리를 예언한다는 것이 더 이상 아닙니다. 오히려 그 역할은 현재시(現在時)의 진단자의 그것이며,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그것도 자신의 전문영역에 대하여 분석하는 일입니다. (54)

와타나베 : 전통적인 ‘보편성’의 지식인과 대비되는 ‘특수성’의 지식인 (54)

푸코 : 현대사회에서의 ‘지식(앎)’은 그 궤적이 너무나도 복잡해졌기 때문에 말 그대로 우리 사회의 ‘무의식’이 되어버리고 말았죠.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또 ‘지식’의 작용이 어떤 것인지를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식인의 역할이란 우리 사회에 무의식처럼 군림하고 있는 이 ‘지식’을 의식으로 전환시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5)

공중캠프

2020.10.08 12: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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