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서론

 

노동운동이 위기를 맞으면서 맑스주의는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년 사이에, 노동력 발전과 계급모순의 발전 사이에 놓여 있다고 간주되던 연결관계는 끊어져버렸다.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자본주의의 모순이 명백하게 나타난 때는 없었다. 지금처럼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문제해결 능력을 거의 갖추지 못하던 때도 없었다. 그러나 이런 무능력 때문에 자본주의가 치명적으로 위협받는 건 아니다. 자본주의는 발생한 문제들을 미결인 채로 다루는 방법을 터득했고, 이런 능력은 거의 연구되지도 않을 뿐더러 잘 이해되지도 않고 있다. 자본주의는 비정상적 상태에서도 계속 작동하는 법을 알며, 심지어 그 상태에서 새로운 힘을 끌어낸다. 왜냐하면 해결될 수 없는 그 문제들이 본래 힘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급 정당들이 국가권력을 갖는다 하더라도,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을 것이다. 생산양식·생산력·생산관계의 본성이 변화하지 않는 한, 그 문제들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들로 남을 것이다.

누가 혹은 무엇이 그 생산양식·생산력·생산관계를 변화시킬 것인가? 이것이 오늘날 맑스주의 위기의 기원에서 발견되는 근본적 물음이다. 실제로 맑스주의는 어떤 현상들이 연결관계를 이루며 발생하리라는 가정에 근거를 두었는데, 지금 우리는 그 관계에 대해 다음의 사실을 알고 있다. 즉 여기서의 연결관계는 과거에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명확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없다. 그 연결관계란 다음과 같다.

 

1. 생산력이 발전하면 사회주의의 물적物的 토대가 마련된다.

2. 생산력이 발전하면 사회주의의 사회적 토대가 마련된다. 곧 전생산력을 집단적으로 소유하고 경영할 능력을 지닌 노동계급이 출현한다. 생산력 발전이 탄생시킨 노동계급인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1.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자본주의의 논리와 필요와 관련해서만 발전한다. 이 발전은 사회주의의 물적 토대를 만들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나아가 사회주의가 생겨나는 데 장애가 된다. 자본주의가 발전시킨 생산력에는 자본주의의 본성이 너무 깊이 각인되어, 그 생산력은 사회주의적 합리성에 따라 경영될 수도, 작동될 수도 없다. 비록 사회주의가 존재하더라도, 이때의 생산력은 다시 해체되거나 변질될 것이다. 현재의 생산력에 맞춰 사고한다면 사회주의적 합리성을 정교하게 발전시키는 일, 심지어 그것을 개략적으로 생각하는 일조차 불가능하다.

2. 자본주의의 생산력 발전은 이 생산력을 이용하는 노동자 집단이 생산력을 직접 소유하지 못하게끔, 프롤레타리아가 생산력을 집단적으로 소유하지 못하게끔 이루어져 왔다(1).

 

실제로 자본주의는 발전하는 동안, 대부분 생산수단의 주인이 될 능력이 없고 직접적으로 의식하는 이해관계로 인해 사회주의적 합리성을 따를 수 없는 노동계급을 양산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 있다. 자본주의는 그 자체 자본주의적 합리성과 관련해서만 기능하는 생산력에 따라 이해관계·능력·자격조건을 결정하는 노동계급(넓게 말하면 임금근로자(2))을 만들어냈다.

지금부터 다른 합리성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서고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일은 노동계급 자체를 포함해 모든 계급의 해체를 상징하거나 예고하는 계층에게서 올 것이다.

 


 

(1) 내가 프롤레타리아라는 용어를 통해 지칭하는 이들이란, 생산관계와 사회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 때문에 하나의 계급으로서 집단적으로 부르주아 권력의 지배를 종결짓는 방식을 통해서만 착취와 무기력을 끝낼 수 있는 노동자들을 말한다.


(2) ‘임금근로자는 노동자와 사무직·서비스직 근로자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피고용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는 노동자와 구별하여, 사무직이나 서비스직의 피고용인을 가리킬 때는 근로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 옮긴이



- 앙드레 고르/이현웅,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 사회주의를 넘어서, 생각의 나무, 198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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