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옮김] 나는 약자인가?

조회 수 386 추천 수 0 2019.03.05 22:03:30
나는 약자인가? - 각종 폭로현상에 부쳐

ㅇㅅㅇ
2018.2.14 11:23


3년전쯤 부터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각종 폭로현상을 보면서 적어본 글입니다.
우리는 모두 스스로를 약자라 생각하고, 어떤 문제를 대할 때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약자를 위하는 것이 곧 정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정확한 순서를 지킬 때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동료시민에 대한 연대를 통해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정의를 지키는 일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가해와 피해사실, 피해의 정도를 엄격하게 판단하는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사상자가 생겨나게 됩니다.
사람을 위한다는 일이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결과로 나타납니다.
매우 위험한 방식입니다.

누가 약자인가, 누가 피해자인가를 즉각 판단하기 전에 자신의 약자성을 돌아보는 일이 필요한 때입니다.
누군가에게는 공포와 광기로 느껴질만큼 폭풍처럼 몰아치고 있는 온갖 폭로사태를 보며
누구의 삶도 다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글입니다.
원글은 제 블로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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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자인가?

나는 여성이고 소득으로 분류하면 도시의 저소득층 생활자다. 이 두가지 만으로도 나는 이른바 사회경제적으로 구조적 약자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나 약자인가?
나는 글을 쓴다. 그 이유로 나와 비슷한 연령과 소득의 여성남성들에 비해 문화자본을 가지고 있다. 무명의 작가라고 해도 작가라는 직업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긍정성과 장점을 누리고 산다. 그리고 여자다. 그 이유로 사회가 도입한 약자배려의 혜택을 누린다. 동료시민들이 규범으로 지키며 사는 여성에 대한 배려도 받으며 산다.

나는 약자인가?

나는 사회경제적 약자로 분류될수 있고 주장 할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타인의 삶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힘을 가졌다. 나는 이 곳에 몇 마디 쓰는 일만으로도 누군가의 인생을 구체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일, 겪은 일, 진실만으로도 그럴 수 있고, 조금 과장을 섞어서 내가 가진 글쓰기의 요령으로 잘 포장해 누군가를 망가뜨릴 수 있다.
피해서사를 극대화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다. 거기에 여성이라는 나의 성별, 그간 내 영역에서 직업적으로 쌓아온 신뢰의 정도, 인간관계들을 활용해서 기능적으로 호소하면 얼마든 파장을 만들 수 있다. 상대방이 잃을 게 많은 사람일수록 효과도 크다.

나는 약자인가?

어떤 사안이 생기면 스스로 정의롭다 생각하는 이들은 누가 약자인가를 판별하려고 한다. 그걸 기준으로 가해/피해(자)를 규정하며 그 결과를 의심하지 않는다. 자신의 정의로움을 과시하거나 사회의 정의실현을 위해 연대한다는 믿음의 자뻑에 빠져든다.

그러나 약자라는 규정은 단순하지 않다. 어떤 관계, 어떤 사안,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대와 얽혀있는지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게 약자성이다. 같은 사안 안에서도 상황에 따라 피해자도 약자성도 무시로 변한다.
나는 사회경제적으로 나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누군가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 사회지표상 그는 나보다 강자지만 그와 나의 관계에서 나는 약자가 아니다.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한 진보매체의 여성기자와 얘기를 나눴다. 내가 그랬다.

"만약 내가 나의 이전 파트너나 내가 함께 일해본 진보의 유명한 남성들에게 성희롱,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다면 기자님은 그거 의심하시겠어요? 저는 정말 그럴듯하게 잘 쓸 수 있고 어떤 일들은 사실을 포함하기도 해서 약간만 포장을 해도 상대가 부인하지 못할수도 있어요. 수 년 전의 일도 모두 소급해서 쓸 수도 있구요. 그럼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은 먼저 여자인 내 말을 의심할까요 믿어줄까요? 폭로란 이렇게 위험하고 허약한 겁니다. 그래서 신중하게 다루어야 하고 사실을 규명하려는 노력이 먼저입니다. 누군가의 삶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자라서, 경제적 약자라서 약자로 규정될 수는 있다. 그러나 사안에 대한 판단은 그게 우선이어서도, 그게 전부여서도 안 된다.

타인의 약자성을 판별하는 데 들이는 공을 자신의 약자성을 성찰하는 데에 써보자.
지금 이 상황에서 나는 약자인가? 어떤 면에서 약자인가? 나는 약자이기만 한가?
같은 질문을 어떤 상황에 놓인 타인들에게도 던져봐야 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누가 약자인가? 어떤 면에서 그런가? 그는 약자이기만 한가?

우리는 좀 더 공정한 방식으로도 약자의 편에 설 수 있다.


[출처]
https://steemit.com/namufree/@namufree/3um2ge
profile

"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 "우리는 걷는다 단지 그뿐(ぼくらは步く ただそんだけ)"

엮인글 :
http://kuchu-camp.net/xe/75341/88f/trackback

ㅇㅅㅇ

2019.07.07 20:58:59
*.223.20.247

"‘말’이 놓여야 할 자리에는 ‘편’이 들어서고, 대화와 존중 대신 낙인과 배제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의견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변절자나 망언자로 낙인찍는 일은 손쉽다.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결속이 단단해질수록 비판자에 대한 적대는 강화된다. 피아(彼我)의 전선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은 설자리를 잃는다."

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1904081520241&code=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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