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번역 모임에 도움이 될까? 싶어 올리는 글.

조회 수 1517 추천 수 0 2011.06.03 17:48:46

안녕하세요. 은별입니다. 

지난달 22일(벌써 지난달) 밤, 첫 번역 모임에 참가했습니다. 즐거웠어요. 

번역기 돌리듯 기계적으로 말을 바꾸어 놓고, 그날 벼락치기로 다듬었는데 결국엔 허리 아파서 다 하지 못했습니다.

못한 부분은 빨리 마무리해서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그 전에, 제가 잠시 언급한, 일본문학 번역가 권남희의 <번역에 살고 죽고>에서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구절을 올려놓겠습니다. 일본어 원문과 / '해석(독해)' /그리고 '번역' 이런 순입니다. 차이가 보이실 거예요. 


그때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처럼 어디까지가 의역인지 직역인지에 대해 각자 생각이 다를 수 있기에,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발췌해봤습니다. 


다만 지금 단계에서 우리 목표는 당장 출판을 위해 매끄럽고 통일성 있는 번역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출판 계약' 된 책을 홀로 맡는 프로인 저자완 프로세스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일단 쉼표 삭제나 어순을 다소 매끄럽게 바꾸는 것, 혹은 '~と思う' ’とか’ ’~というもの’、’~ということ’ 등을 탈락시키거나 자주 쓰지 않는 것 등은 자율적으로 하더라도 처음 단계에선 원문의 단어와 표현, 느낌은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저 역시 번역은 한국말로 봤을 때 매끄러워야 된다고 생각하고, 영어나 일본어투가 많이 남아있는 번역을 싫어하지만 

일단 지금 단계에선 '부정한 미녀'보단 '정숙한 추녀'를 추구...한다고? 해야 하나? 

 

17세기 프랑스의 유명 번역가 페로의 번역을 보고, 어떤 대학자가 "내가 투르에서 사랑한 여인을 연상시킨다. 아름답지만 부정한 여인(벨 앵피델)이었다."라고 했답니다. 이 '부정한 여인'은 원문에 충실하지 않은 번역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밑에 걸 옮기면서 생각해 봤는데, 

일차적으로는 이 권남희 씨가 말하는 '해석'을 해서 서로 공유하면 어떨지 싶습니다. 


너무 말이 많았습니다. 그럼 책 발췌한 거 나갑니다. (저작권 문제 있으려나..) 



**


"나도 그랬지만, 누구나 처음 번역을 할 때는 단어와 조사를 빠트리지 않고 충실하게 옮기는 것이 옳은 줄 안다. 하긴 처음부터 멋대로 이것 빼고 저것 빼고 하는 것보다 정석대로 옮기는 게 바른 자세이긴 하다. (...) 해석이 정확하다고 번역을 잘한 건 아니다. 사전적인 뜻에만 충실해서는 좋은 번역을 할 수가 없다. 일단 정확한 해석을 했으면, 그 문장을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바꾸어보라."   


1.


求めていらっしゃるのは、このひとはないでしょうか

一年前の六月の三十日の夜明け前、わたしは両親に気づかれないよう靴下のまま玄関ドアを開け、外へと出てから靴をはき、深い藍色におおわれた空の下を、早足で駅へと向かっていました。

あたしの生まれた街は、自動車メーカーの関連産業が集まってひらけた都市の中心に、放射線状に延びたベッドタウンの一つです。駅前には、ビルや商店が立ちならび、朝夕は大勢の人で混雑します。2年前の春まで通っていた高校は、電車で二十分ほど先の場所にあり、あたしは親友と駅で待ち合わせて、通学していました。

 

-해석 : 찾고 계신 것은, 이 사람이 아닐까요.

일 년 전의 6월 30일 동트기 전, 나는 부모님이 눈치 채지 않도록 양말을 신은 채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뒤 신발을 신고, 짙은 감색으로 덮인 하늘 아래를, 빠른 걸음으로 역으로 향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마을은, 자동차 메이커 관련 산업이 모여서 펼쳐진 도시를 중심으로, 방사선상으로 뻗은 베드타운 중 한 곳입니다. 역 앞에는, 빌딩과 상점이 늘어서 있고, 아침저녁에는 많은 사람들로 혼잡합니다. 이 년 전 봄까지 다녔던 고등학교는, 전철로 이십 분 정도 가는 곳에 있어, 나는 친구와 역에서 만나, 통학하고 있었습니다.

 

-번역 : 혹시, 이 사람을 찾고 있나요?

일 년 전 6월 30일 아침 동트기 전, 나는 부모님이 깨지 않게 양말바람으로 살그머니 현관문을 열고 나와 밖에서 신발을 신었습니다. 그리고 짙은 감색으로 뒤덮인 하늘 아래 역으로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자동차 관련 산업체가 모여 있는 도심에서 방사상으로 뻗은 베드타운 중 한 곳입니다. 빌딩과 상점이 즐비한 역 앞은 아침저녁으로 꽤 혼잡합니다. 이 년 전 봄까지 다녔던 고등학교는 역에서 전철로 이십 분 거리여서, 나는 친구와 역에서 만나 같이 등교했습니다.


"일본어 문장에는 쉼표가 심하게 많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되도록 쉼표를 생략하는 추세다. 앞의 원문에서는 쉼표가 총 12개인데 번역문에서는 4개다. (...) 나는 옛날에 작가의 숨결을 살리겠노라고 모든 쉼표를 그대로 다 옮긴 적이 있다. 물론 작가가 일부러 단어마다 쉼표를 쿡쿡 찍어놓은 글이어서 그랬긴 하지만, 역시 책이 되어 나온 걸 보니 쉼표가 방해를 해 가독성이 떨어졌다." 

 

2. 


あなたは誰も知らないようなジャズのミュージシャンの名前はたくさん知っているのに、私の名前は何度でも忘れた。電話番号のメモもすぐにどこかにやってしまった。

 

-해석 : 당신은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재즈 뮤지션의 이름은 많이 알고 있으면서도 내 이름은 몇 번이고 잊었다. 전화번호 메모도 이내 어딘가에 둬버렸다.

 

-번역 : 당신은 남들이 모르는 재즈 음악가 이름은 많이 알면서도 내 이름은 매번 잊어버렸다. 심지어 전화번호를 적어둔 메모지도 아무 데나 나뒹굴게 내버려두었다.

 

3.


”説教するわけじゃないんだけどさ”

と、あなたは言う。その枕詞の後はいとも説教だ。勉強しろとか、部活やれとか、軽い煙草に変えろとか、将来のことを考えろとか、痩せすぎたとか、友達増やせとか、あとはそう、世の中っておまえが思っているよりもずっといやなものなんだよ、とか。説教をひとしきり終えると、あなたは煙草に火をつけ、神経質そうにまばたきをしながらいうのだった。

”で、お前、名前なんだったっけ。”

 

-해석 : "설교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지"

하고, 당신은 말한다. 그 서두 뒤에는 언제나 설교다. 공부해라, 라든가, 동아리 활동 해라, 라든가, 가벼운 담배로 바꿔라, 라든가, 너무 말랐다, 라든가, 친구를 늘려라, 라든가, 다음은 그렇지,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기분 나쁜 곳이야, 라든가. 설교를 한바탕 마치면, 당신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신경질적으로 눈을 깜박이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너, 이름 뭐였더라."

 

-번역 : "설교하려는 건 아닌데 말이지." 하고 당신은 운을 뗀다. 그 뒤에는 언제나 설교였다. 공부해라, 동아리 활동 해라, 순한 담배로 바꿔라, 너무 말랐다, 친구를 많이 사귀어라. 그 다음은, 세상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기분 나쁜 곳이야, 라든가. 한바탕 설교가 끝나면 당신은 담뱃불을 붙이면서 신경질적으로 눈을 감빡이며 말했다.

"근데 너, 이름이 뭐였지?"

 

"とか(라든가)" 같은 병렬조사가 한 문장에서 여러 번 나올 때는 해석하지 않는 게 좋다. 앞에서 보듯 "라든가"를 빼니 훨씬 깔끔해졌다. 역자는 원문의 분위기를 알고 있기 때문에 단어 하나, 조사 하나가 모두 필요한 부품처럼 느껴져서 선뜻 버리질 못한다. 그러나 우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부품이 알고 보면 부품이 담긴 비닐봉지일 때가 있다. 판매할 때는 부품을 담을 비닐봉지가 필요하지만, 조립할 때는 봉지가 필요 없다. 부품인지 비닐봉지인지 구분하는 안목은 아무래도 경험에서 나오겠지만, 되도록 깔끔한 번역을 위해서 군더더기가 될 것 같은 단어나 조사는 미련 없이 버리자. 


그리고 이건 '되도록'이 아니라 '무조건' 지킬 것인데, "いうのだった(말하는 것이었다)"라는 표현은 "말했다"로 옮기자. "言うことだ","言うわけだ"도 마찬가지다.


4.

 

ルイはモデルで、副業としてホステスをやっていると車中で聞いていた。ホステス七モデル三の営業状況だが、職業欄に記入するのはあくまでモデルなのだそうだ。たしかに、半袖の男物のTシャツに袖をまくりあげたジーンズというどういうことのないスタイルがかっこよかった。

 

-해석 : 루이는 모델로, 부업으로 호스티스를 하고 있다고 차 안에서 들었다. 호스티스 7 모델 3의 영업 상황이지만, 직업란에 기입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모델이라고 한다. 확실히, 반팔 남자 티셔츠에 단을 걷어올린 청바지라는 특별할 것 없는 스타일이 멋있었다.

 

-번역 : 루이는 원래 모델인데, 부업으로 호스티스 일을 한다고 오면서 들었다. 호스티스 7, 모델 3의 비율로 일하지만 직업란에는 늘 모델로 적어넣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남자용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 아랫단을 접어올린 평범한 차림인데도 왠지 멋있어 보였다.

 

'영업 상황'이란 말이 어색하지만, 원문에 있는 단어 그대로이니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어에 너무 익숙한 역자 혼자만의 생각이다. 우리말로 읽는 독자는 당장 거부감을 느낀다. '반팔 남자 티셔츠'도 잘못되지 않았다. 그러나 번역을 보면 어디가 어색한지 느낄 것이다.

 

그밖에도 비닐봉지가 몇 가지 있는데, 일본어 문장에서 엄청 많이 나오는 "(라고 생각한다)" "(인 게 틀림없다)" "(일지도 모른다)" "(해버리다)" 등이 표현도 되도록 번역하지 않고 버리는 게 좋다. 열 개 중 한두 개쯤은 꼭 써야할 때가 있겠지만, 그 한두 개를 고를 자신이 없다면 다 버려도 별 문제는 없다. 습관처럼 쓰는 표현들이니까. 


 

 -<번역에 살고 죽고>(권남희 저, 마음산책) 중.




+ 덤으로 밑에 건 러시아어 동시통역가 요네하라 마리의 <대단한 책>에 나오는 에세이의 일부를 옮겨 본건데요.

우리의 번역도 이런 경험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덧붙입니다.


소비에트 학교 시절 러시아 친구가 어느날 일본으로 놀러와서 글쓴이 집에 한달 동안 머무르게 되는데, 둘이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을 함께 읽어나가게 됩니다. 


그녀는 오에 겐자부로의 골수팬으로, 최신작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는다. 문학작품에 대해 그 내용을 아무리 잘 설명한다 해도 직접 읽고 받는 감동 자체는 전해지지 않는다. 결국 오에 겐자부로의 <체인지링>을 러시아어로 구두 번역하여 그녀에게 들려주게 되었다. (...) 이야기를 듣는 그녀가 내 러시아어 표현을 하나하나 고쳐 주면서 해석 그 자체에 이의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해 주는 것이 너무나 재미있었고, 공명 효과를 통해 감동이 배가되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 아내 치카시의 시점에서 기술한 부분에서는 우리 둘 다 몇 번이나 울고 말았다. 2주일에 걸쳐 계속된 나의 구두 번역이 끝나자, 그녀는 처음으로 그녀의 남편이 자살했음을 고백했다. 주변 사람들은 역사학자였던 그녀의 남편이 소비에트연방 붕괴라는 환경 변화에 정신적으로 적응하지 못했다고 일반적으로 설명한다. 그렇게 간단하게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 한편으로, 그녀 자신은 태산 같은 의문을 남긴 남편의 자살에 대해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나 틀렸다. 이제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죽은 남편과 대화를 계쏙하려고 한다. 이를 <체인지링>이 가르쳐주었다. 그런 말을 남기고 그녀는 귀국했다.

 

오랜만에 그녀의 활짝 핀 미소를 보고, 어쩌면 이것이 번역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기술된 말을 모국어로 하는 사람과 번역된 말을 모국어로 하는 사람의 공동 작업을 통해 비로소 완전한 번역이 가능한 것은 아닐까? 




go

2011.06.04 07:59:54
*.12.50.138

좋은 글 감사!

hame

2011.06.04 13:08:44
*.205.231.140

우와 이렇게 길게... 두고두고 도움이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ㄱㄷ

2011.06.05 05:28:15
*.12.50.138

-_-b은별짱

ㅈㄷ

2011.06.06 01:16:40
*.140.182.238

은별님 정말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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