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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12월 8일이 존레넌 25주기였었죠?
노동자의 힘(http://pwc.or.kr/maynews/index.php)에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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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존 레넌: 정치와 음악, 노동자계급 (1)

기관지노힘  제88호  
번역/ 원영수 | 노동자의 힘 편집위원장  



1971년 1월 21일 좌파신문 『붉은 두더지』(Red Mole) 편집자 로빈 블랙번과 타리크 알리가 존 레넌과 오노 요코를 인터뷰하다


알리: 최근 레코드와 최근 성명들, 특히 『롤링스톤』지 인터뷰를 보면 당신의 견해가 점차 급진화·정치화되고 있다는 느낌인데, 이런 상황은 언제 시작되었는지?

레넌: 알다시피 전 항상 정치 의식적이었고, 현상유지에 반대했죠. 저처럼 성장한 경우라면 경찰을 천적으로 증오하고 두려워하는 게 기본적이죠. 군대도 모든 사람을 어디론가 데려가 죽은 채로 내버려두는 곳으로 경멸하는 게 기본이죠. 제말은 나이가 들고 가족이 생기고 체제에 흡수되면서 사라지긴 해도, 기본적인 노동자계급성 같은 거라는 거예요.
제 경우에 약하던 시절에, 아마 65∼66년경에 종교에 심취했지만 정치적이지 않았던 때는 결코 없었죠. 그리고 그 종교는 슈퍼스타 짓거리의 직접적 결과인데, 종교는 제 억압의 분출구였죠. '인생 외에도 뭔가 있지 않겠어? 이게 아니겠어?'라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항상 정치적이었어요. 제가 쓴 두 권의 책에서, 비록 조이스 식의 딱딱한 표현으로 썼지만, 종교에 대한 시비걸기도 있고 노동자와 자본가에 관한 희곡도 있어요. 저는 어린 시절 이후로 체제를 풍자해 왔어요. 학교 다닐 때 잡지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저한테 시비를 걸기도 했지만, 저는 계급을 무척 의식했죠. 저는 저에게 일어난 일을 잘 알고 있었고, 우리에게 가해지는 계급억압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같은 사실이지만, 비틀즈의 태풍 속에서 그것은 사라졌고, 저도 시대의 현실에서 멀어졌어요.

알리: 당신의 음악이 어떤 이유로 성공했다고 생각하지요?

레넌: 아, 그 당시에 노동자들이 발전했다고 생각했지만, 되돌아보면 성공은 체제가 흑인들에게 육상선수나 권투선수, 연예인이 되게 한 것처럼 흑인들에게 준 것과 똑같은 엉터리 거래란 것을 깨달았어요. 그게 이 체제가 허용하는 선택이죠. 이제 출구는 팝스타가 되는 건데, 그게 바로 '노동자계급 영웅'이란 앨범에서 제가 말하고자 하던 바죠. 『롤링스톤』지에서 말했듯이, 권력을 가진 똑같은 사람들이고, 계급체제는 조금도 변하지 않아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지금 긴 머리로 돌아다니고 중산층 아이들은 예쁜 옷을 입고 다니죠.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잘 차려입고, 똑같은 나쁜놈들이 모든 것을 운영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을 빼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어요.

블랙번: 물론, 계급은 미국 록그룹들이 다루지 못한 문제죠.

레넌: 그들은 모두 중산층이고 부르주아죠. 또 그들은 계급을 보여주기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들은 사실 노동자들을 무서워하죠. 왜냐면 미국에서 노동자들은 대개 우익이고, 자신의 생활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만약 이런 중산층 그룹들이 상황과 계급체제를 인식한다면, 이 사람들을 모든 부르주아적 똥에서 벗어나게 하는 건 그들에게 달려 있죠.

알리: 비틀즈의 일원으로 당신에게 강요된 역할에서 언제부터 벗어나기 시작한 거죠?

레넌: 비틀즈의 전성기에도 저는 저항하려고 했어요. 조지도 그랬고. 우리는 미국에 몇 번 갔는데, 엡스타인은 항상 우리에게 베트남에 대해 말하지 않도록 하려고 애썼지요. 그래서 조지랑 제가 이렇게 말했죠. '이봐요, 그들이 다음번에 물으면, 우리는 우리는 베트남 전쟁을 싫어하고 미국이 당장 철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할 거요." 우린 그렇게 했어요. 그 당시에 이건 대단히 급진적인 일이었고, 특히 "4인조"에게는 그랬죠. 그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나서서 깃발을 흔든 첫 기회였죠.
하지만 여러분은 제가 항상 억압당하고 있다고 느꼈다는 점을 기억해야 되요. 우리는 모두 항상 압박을 받고 있어서 자신을 표현할 기회가 거의 없었고, 계속 투어를 하면서 바쁘게 일할 때에는 더욱 그렇죠. 항상 신화와 꿈의 고치 속에 갇혀 있죠. 여러분이 시저가 되고 모든 사람이 당신이 훌륭하다고 말하고 모든 멋쟁이와 여자들에 둘러싸여 있으면, 거기 빠져나오기 아주 힘들죠. '나는 왕이 되고싶지 않아. 현실적이고 싶어'라고 말하기 아주 힘들죠. 그래서 나름대로 제가 말한 두 번째 정치적 것은 '비틀즈가 예수보다 위대하다'고 말한 거죠.
그 말 때문에 정말로 판이 깨졌고, 미국에서 저격당할 뻔했죠. 그건 우리를 추종했던 모든 아이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죠. 그당시까지 비록 항상 신문을 읽어도 미묘한 문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 묵비권 정책이 있었어요.
상황에서 대해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했죠. 저는 더 이상 게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폭발했어요. 그런 게임은 저한테 너무 힘들었죠. 물론, 미국행은 전쟁이 거기에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제 체력을 강화시켰죠. 어떤 면에서 우리가 트로이목마가 된 셈이죠. '최고인기 4인조'는 정상에 올라간 다음 마약과 섹스에 대해 노래하다가, 다시 저는 점점 더 무거운 주제를 다루었죠. 바로 그 때 그들이 우리를 버리기 시작했죠.

블랙번: 처음부터 당신이 하고 있던 일에 대한 이중적 비난이 있지 않았나요?

요코: 당신은 항상 매우 직접적이었죠. …

레넌: 맞아, 우리가 가장 먼저 한일은 세상에 우리의 리버풀다움을 선언하고 '우리가 리버풀출신이고 이렇게 말하는 것은 괜찮아요'라고 말한 거였죠. 이전에는 리버풀 출신 그 누구도, 테드 레이, 토미 핸들리, 아서 애스키 등도 BBC에 출연하기 위해 리버풀 액센트를 버려야 했어요. 그들은 단지 코미디언일 분이지만 우리 앞에 리버풀 출신들은 그런 식이었죠. 우리는 게임하기를 거부했어요. 비틀즈가 등장한 이후에는 모두가 리버풀식 액센트를 쓰기 시작했죠.

알리: 어떤 면에서 당신이 혁명을 다루는 것처럼 보일 때 정치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거군요?

레넌: 아, 예, '혁명.' 그 노래는 두가지 버전이 있었지만, 언더그라운드 좌파는 단지 '나를 빼줘'(count me out)라고 한 버전만을 골라냈죠. LP판의 끝대목 오리지널 버전은 '나를 넣어줘'(count me in)로 되어있어요. 확신이 없어서 두가지 가사가 나온 거죠. 세 번째 버전도 있었어요. 추상적인 합성음악식 순환고리인데, '인민들이 절규하고 있다'는 거죠. 내 생각에 소리로 혁명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죠. 하지만 알다시피 실수를 했죠. 실수는 그 곡이 반혁명이라는 거죠.
싱글앨범으로 발매된 버전에서 저는 '파괴에 대해 말한다면 나를 빼줘'라고 했죠. 죽고 싶지 않았어요. 마오주의자들에 대해 그다지 잘 알지 못했지만, 그들이 아주 소수이지만 자신들이 청춘이 경찰의 폭력을 기다리는 세력이란 것 정도는 알았죠. 저는 단지 민감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죠, 아시겠지만. 원래의 공산주의 혁명가들은 좀더 조절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걸 피하진 않았죠. 그게 제 생각이었어요. 저는 정말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던 거죠. 노동자계급 출신으로서 저는 항상 러시아와 중국에 관심 있었고, 비록 자본주의적 게임을 하고 있었지만 노동자계급과 관련된 모든 것에 관심이 있었죠.
한때 종교라는 똥에 상당히 심취해서 우회적으로 기독교 공산주의자라고 한적도 있지만, 야노프가 말한 것처럼 종교는 합법화된 광기죠. 제 자신의 고통을 느낀도록 한 모든 것을 떨어낼 수 있는 수 있는 치료법이었어죠.

블랙번: 당신이 만났던 심리분석가, 그 사람이 이름이 뭐더라…

레넌: 야노프…

블랙번: 그 사람의 생각은 랭과 공통점이 있는데,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비참한 처지와 타협해서 세상에 적응하도록 하는 게 아니라 그 근본원인과 직접 대면하도록 만드는 점인데?

레넌: 저, 그 사람 스타일은 어린 시절 이래로 내면에 축적된 고통을 느끼라는 것이죠. 저는 모든 종교적 신화를 정말로 박살내기 위해 그렇게 해야 했죠. 이 치료법에서는 인생의 모든 고통스런 순간을 정말로 느껴요. 누구나 가슴이 쿵쾅거려서 잠을 깰 정도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지, 하늘에 있는 누군가 때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되는 거죠. 그건 부모와 환경의 결과죠.
이걸 깨달으면서 모든 게 제자리를 잡게 되었죠. 이 치료법으로 저는 신에 관한 모든 개소리를 정리해야 했죠. 우리 모두는 자라면서 과도한 고통과 타협하게 되죠. 억압을 해도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요. 최악의 고통은 우리 부모는 우리가 원하는 만큼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고, 아무도 우리를 원치 않는다는 걸 깨닫는 고통이죠.
어렸을 때 추한걸 보고 싶지 않고, 또 아무도 나를 원치 않는 걸 직시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경험했죠. 이런 사랑의 결핍이 내 눈과 내 마음 속으로 들어 왔어요. 야노프는 이런 걸 단지 말하는 게 아니라, 느끼게 하죠. 일단 이런 걸 느끼게 되면, 나머지 대부분은 스스로 해야 되요.
아침에 일어나서 심장이 뛰거나 등이 아프거나 뭔가 고민거리가 생기면, 마음이 고통으로 다가가 고통 자체가 육체를 억압하는 원래의 기억을 토해내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고통은 다시 억압되는 대신에 올바른 채널을 찾게 되고, 약을 먹거나 목욕하면서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신에게 찾거나 자위행위를 하거나 또는 그걸 하는 꿈을 꾸지요.
이 치료법은 마치 자연스럽게 몸에서 아주 느리게 마약의 효과가 나는 것 같죠. 거기에 대해 말하기 어려운데, 왜냐면 '고통스럽다'고 느끼면 그건 자의적으로 들리지만, 지금 저의 고통은 이모든 특수한 억압을 느껴봤기 때문에 다른 의미가 있어요. 그건 마치 장갑을 벗고 처음으로 자기 피부를 느끼는 것같았죠.
그렇게 말하는 건 다소 따분하지만, 경험하지 않으면 이해 못할 거예요. 비록 저는 그걸 앨범에서 표현하려고 했지만. 하지만 어쨌든 저한테 그건 신이나 아버지 같은 걸 해소하는 부분이었죠. 항상 일종 천국같은 걸 찯는 대신에 현실을 직면하는 거죠.

블랙번: 가족 일반이 이런 억압의 원인이라고 보는가요?

레넌: 제 경우는 극단적이죠, 알다시피. 우리 부모는 별거했고, 스무살까지 아버지는 보지도 못했고, 어머니도 별로 못봤죠. 하지만 요코는 부모님이 있었고 일반적인 경우와 똑같은…

요코: 아마 부모님이 있어서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르죠. 배고플때랑 비슷한데, 치즈버거가 전혀 없는 것보다 치즈버거의 상징물만 있으면 더 나쁘죠. 아시겠지만, 아무런 쓸모가 없어요. 자주 엄마가 죽었으면 바랬고, 그래서 최소한 일부 사람들의 동조는 구할 수 있었죠. 하지만 엄마는 살아있었고, 완벽하게 아름다운 어머니였죠.

레넌: 요코의 가족은 중산층 일본인이었지만, 모든 동일한 억압은 있었죠. 그래도 중산층 사람들도 항상 미소짓고 인형처럼 사는 멋있는 가상의 부모가 있으면 가장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이들은 '엄마 안녕, 아빠 안녕'이라고 말하기 가장 힘든 부류죠.

알리: 이 모든 건 당신의 음악과 어떤 관계죠?

레넌: 예술은 고통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제말은 요코가 뭔가를 그렇게 끄집어내는 이유는 자신이 경험한 종류의 고통을 끄집어내는 것이기 때문이죠.

블랙번: 비틀즈의 많은 노래가 어린 시절에 대한 거였는데…

레넌: 그렇죠, 대부분이 제 얘기일텐데…

블랙번: 그 노래들은 아주 훌륭하지만, 항상 뭔가 빠진 게 있어요…

레넌: 현실이겠죠. 빠진 부분은. 아무도 정말로 나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스타가 된 유일한 이유는 제 억압 때문이죠. 제가 '정상'이라면 그 어떤 것도 저를 그렇게 만들지 못했을 거예요…

요코: 또 행복했다면.

레넌: 그런 성공을 향해 돌진한 유일한 이유는 '자, 엄마 아빠 저를 사랑할 건가요?'라고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알리: 그렇지만 당신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것 이상의 큰 성공을 했잖아요…

레넌: 이런, 그건 완전한 억압이었어요. 제 말은 우리가 중산층과 쇼비즈니스, 정치인들 때문에 계속 굴욕을 당했다는 의미죠. 그들은 항상 거만하고 멍청했어요. 모두가 우리를 이용하고 했죠. 그건 저에게 특별한 치욕이었죠. 왜냐면 결코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항상 이 압력을 이기려고 술을 마시거나 약을 먹어야 했어요. 그건 정말 지옥이었죠.

요코: 그런게 그에게 현실적 경험을 다 뺏어갔죠, 아시겠지만.

레넌: 정말 비참했어요. 성공한 첫 번째 감격을 빼고요. 첫 번째 넘버원 레코드, 첫 미국여행의 스릴을 제외하면. 처음에 우리는 엘비스처럼 크자는 일종의 목표가 있었죠. 전진하는 건 훌륭한 일이지만, 실제로 성공을 성취하는 건 커다란 실망감이죠. 저는 어렸을 때 항상 싫어했던 종류의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즐겁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죠. 이런 사실이 저를 현실로 돌려보내기 시작했어요.
저는 우리 모두가 억압받고 있다고 깨닫기 시작했고, 그게 비록 제 자리가 어딘지 모르지만 억압에 대한 뭔가를 하고 싶은 이유죠.

블랙번: 어쨌든 정치와 문화는 연결되어 있잖아요? 현재 노동자들은 총이 아니라 문화에 의해 억압받고 있다는 거죠…

레넌: 노동자들은 일종의 마약에 취한 상태죠…

블랙번: 그리고 그들을 취하게 하는 문화는 예술가들이 만들거나 부수는 문화죠…

레넌: 그게 바로 제가 앨범에서 또 이 인터뷰에서 하려고 하는 거죠. 제가 하려는 일은 제가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거예요. 아직 꿈을 꾸고 있고 마음 속에서 커다란 물음표에 던지는 모든 사람들이요. 약의 힘을 빌리는 꿈은 끝났다. 이게 바로 제가 말하려는 바죠.

블랙번: 알다시피 과거에도 사람들은 비틀즈 노래에 새로운 가사를 붙이곤 했죠. 예를 들어 '옐로 서브마린'은 여러 가지 개사곡이 있죠. 파업노동자들이 불렀던 개사곡은 '우린 모두 빵과 마가린을 먹고 살지요'라고 시작하고, 런던경제대학(LSE)에서는 '우린 모두 붉은 LSE에 살지요'라는 개사곡이 있었죠.

레넌: 맘에 드네요. 옛날에 축구관중들이 '이제 우리 함께'라고 부르는 걸 좋아했어요. 또 다른 개사곡이죠. 미국운동권이 '평화에게 기회를'을 부를 때 기뻤죠. 왜냐면 정말로 그걸 마음에 두고 곡을 썼기 때문이죠. 저는 1800년엔가 만들어진 '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는 대신 뭔가 현대적인 걸 부르길 바랬죠. 저는 그 당시에도 술집에서 또는 데모할 때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써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어요. 이건 지금 제가 혁명을 위한 노래를 작곡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구요…

블랙번: 우리에겐 몇 곡의 혁명가 밖에 없는데 19세기에 작곡된 곡들이죠. 우리 음악전통에서 혁명가로 사용될 만한 게 있나요?

레넌: 제가 시작했을 때, 록앤롤은 우리 나이와 상황의 사람들에게 기본적 혁명이었죠. 우리는 우리같은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모든 불안과 억압을 떨쳐버릴 뭔가 강력하고 분명한 것이 필요했어요. 미국인을 모방하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는 음악에 빠져들었고 그게 절반은 백인음악의 컨츄리와 웨스턴, 절반은 흑인음악의 리듬앤 블루스란 걸 알았죠,
대부분의 노래는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온 건데, 이제 다시 우리에게 오고 있는 셈이죠. 딜런의 수많은 베스트 송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나 잉글랜드에서 온 것이죠. 일종의 문화적 교환이죠.
하지만 저한테 보다 흥미로운 노래는 흑인음악인데, 보다 간단하기 때문이죠. 흑인노래는 '니 엉덩이 또는 **[성기]를 흔들어라'는 식인데, 그건 정말 혁신적이었죠. 그 다음에 주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하는 노동가들이 있죠. 흑인들은 자신을 지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니까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일을 아주 적은 단어로 표현해야 했던거죠. 그 다음에 시티 블루가 있는데, 많은 곡들이 섹스와 싸움에 대한 거죠.
수많은 이런 곡들은 자기표현이었지만, 최근에야 에드윈 스타가 전쟁기록을 하듯 블랙파워를 완벽하게 표현했죠. 그 이전에 많은 흑인가수들은 여전히 신이란 문제와 씨름했죠. '신이 우릴 구원하리라'라는 식이죠. 그러나 흑인들은 이제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자신의 고통과 섹스에 대해 노래하고 있고, 그게 제가 좋아하는 이유죠.

블랙번: 당신은 컨츄리뮤직과 웨스턴 뮤직이 유럽의 포크송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죠. 그런데 이 포크송들은 때로 아주 끔찍한 것이죠, 패배에 대한 것이잖아요?

레넌: 우리가 어렸을 때 포크송에 반대했던 건 아주 중산층 취향이었기 때문이죠. 커다란 스카프를 두른 대학생들이 멕주잔을 들고서 우리가 라딜라 목소리라고 부르는 식으로 '나는 뉴-카-슬의 광산에서 일했다네'라고 부르는데, *같은 것이었죠. 제가 비록 도미닉 베헌을 좀 좋아하고 리버풀에서도 들을 수 있는 좋은 곡이 몇곡 있지만 진정한 포크송 가수는 아주 극소수죠. 아주 가끔씩 라디오나 TV에서 아주 오래된 레코드로 아일랜드나 다른 곳의 진짜 노동자들이 이런 노래를 하는걸 들을 수 있는데, 그 파워는 환상적이죠.
그러나 대개 포크뮤직은 낭랑한 목소리들 가진 사람들이 뭔가 오래되고 이미 죽어버린 걸 살리려고 애쓰는 것 같아요. 오늘날의 진정한 포크송은 록앤롤이죠. 비록 어쩌다가 미국에서 나왔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음악을 만들기 때문에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고, 바로 그 사실이 모든 걸 변화시켰죠.(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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