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Fishmans!(my fishmans life)


辻村豪文, 辻村友晴, 角張渉

축하! 결성 20주년 & 카쿠바리듬(カクバリズム) 이적 후 첫 베스트 앨범 『KICELL'S BEST 2008-2019』 발매 & 세 번째 히비야 야음(日比谷野音) 원맨(9월16일)! 기념으로 해보았습니다. 키세루와 카쿠바리듬 카쿠바리 와타루(角張渉), 13년 만의 앙코르 대담.


과거 키세루의 BLOG에 공개된 대담으로부터 13년. 카쿠바리듬에서 4장의 음반 발매, 밴드 편성의 정착, 야음(野音) 원맨, 전국 각지를 방문했던 투어 등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3명이 생각하는 앞으로의 키세루를, 카쿠바리듬 근처의 맛집에서 술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구성: 마츠나가 료헤이(松永良平))




카쿠바리 와타루: 2006년 12월, 키세루의 BLOG에 공개했던 키세루와 저의 대담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13년 뒤의 후속편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오늘 두 분을 모셨습니다. 지금의 키세루의 현주소를 살펴보면서 이야기 해보고 싶었어요. 결국 되돌아보면서 든 생각이, 약 10년 간의 카쿠바리듬과 키세루의 역사는 이런 저런 시행착오의 연속이었구나. "(키세루로) 이런 걸 하고 싶은데, 해보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에 여러 가지로 함께해 주었구나 싶은.


츠지무라 타케후미(辻村豪文): 아니, 정말 저희야말로 여러 가지로 함께해 주어서.


(여기서 술이 나왔다)


카쿠바리: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니지, 20주년 축하드립니다. 건배! 키세루가 카쿠바리듬에 들어와 주었을 때, 이렇게 하자거나 저렇게 하자거나 이런 저런 목표가 있었거든. 10년 동안 이렇게 될 줄은 우리 세 명뿐 아니라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애초에 그때는 카쿠바리듬이 계속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겨우 "지속될까?" 정도의 느낌.


타케후미: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웃음)



─ 카쿠바리 군과 타케후미가 처음 이야기를 나눈 것이, 2005년 9월 SAKEROCK의 라이브 뒤풀이에서.


카쿠바리: 오모테산도(表参道) FAB였죠.


츠지무라 토모하루(辻村友晴): 저는 그 자리에 없었지만, 집에 돌아온 형이(※당시에는 같이 살았다) "연주곡으로 7인치를 내는 건 어떨까요?"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어."라고 해서, 재미겠다고 둘이 얘기했던 기억이 나요.


카쿠바리: 맞아 맞아. 연주곡으로 7인치가 좋겠다고 생각했었지. 그 당시 카쿠바리듬은 니카 씨(二階堂和美(니카이도 카즈미))도 그랬지만, 다른 레이블의 음원을 라이선스 해서 7인치로 내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 여러 사람의 아날로그, 특히 7인치를 내고 싶었어.


타케후미: 그 무렵, 바리 씨가 라이브에도 자주 와줘서.


카쿠바리: 갔었지. 요요기(代々木)의 Zher the ZOO나 O-nest나, 여러 군데. 당시 키세루에게 말을 걸었던 다른 레이블도 있었지만, 우리 회사에서 내고 싶었으니까.


타케후미: 뭐, 우리도 "레이블 찾고 있어요"라고 여기저기 물어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카쿠바리듬이 좋다고 결정했지.


카쿠바리: 그 선택엔 용기가 필요했잖아. 당시의 키세루 주변에서 우리 레이블은 아직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으니까. YOUR SONG IS GOOD도, SAKEROCK도 인스트 밴드였고, 커리어적으로도 아직 베테랑이 아니었으니까.


타케후미: 용기가 필요했달까, 나도 카쿠바리듬을 몰랐으니까. 여러 사람들과도 논의했고, "우리끼리 괜찮을까?"라는 불안감은 있었지만, 어쨌든 뭔가 재미있을 것 같던 게 역시 컸을 지도.


토모하루: (피부)감각적으로 "여기라면 있고 싶다"라는 게 있었던 걸까.


카쿠바리: 그래도 그로부터 10년이 흘렀고 이미 키세루는 고참이니까... 그 10년 사이에 들어온 cero 이후의 젊은 친구들도, 키세루가 있으니까 "이 레이블은 품위가 있다"라고 생각해 준 부분도 있고.


타케후미: 힝?


카쿠바리: "여러 다양한 걸 지니고 있어"라는 이미지였던 것 같아. 그런 의식이 두 사람에게는 절대 없을 것 같지만.


두 사람: (웃음)


카쿠바리: 왜냐면 아직도 "(방금) 입사한" 듯 한 기분이랄까? "이 회사에 익숙해 지지 않는구나" 싶은(웃음). 그 느낌을 모르지 않지. 나도 여전히 이 업계의 신입사원 같으니까.


토모하루: "어? cero 선배였었나?" 라든지(웃음)



─ 키세루가 어떻게든 카쿠바리듬에 들어왔으면 했던 건 왜죠?


카쿠바리: 같이 하고 싶기도 했고, 당시에는 메이저 메이커를 찍소리 못하게 하고 싶다는 자뻑 반골 정신 같은 것도 있었으니까요. 다만, 동시에 메이저에서도 제대로 좋은 음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감각도 있었고(※ 자세한 내용은 카쿠바리의 저서를 참고. 웃음). 그러던 중에 마침 2006년 YOUR SONG IS GOOD이 메이저 데뷔를 하고, 키세루는 메이저에서 이적해 주어서. 그런 교착이 있는 가운데, 어디선가 "메이저에도 한 방 먹이고, 인디펜던트도 한 방 먹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더구나, 펑크나 하드코어만 듣던 젊은 시절에 노래(歌もの)로 듣던 유일한 메이저 아티스트가 키세루였기 때문에,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러고 나서, 우리 회사에 들어와준 이후 현장 레이블의 일로 했던 것이, (일반적인) 앨범 발매 투어 같은 게 아니라 연말 연례행사인 도쿄-나고야-오사카(東名阪) 투어의 공연장에서 음원을 발매(키세루 EP, "유나기(夕凪)")하거나 히비야 야음(日比谷野音) 한정으로 판매한 라이브 앨범(『KICELL EP in 미나토 온천(KICELL EP in みなと湯)』, 커버 앨범(『Songs Are On My Side』) 등, 앨범을 한 번에 동시에(せーの) 팔기 보다는 우선 현장에 와준 사람들에게 처음 선보인다고 할까, 보다 현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전개 방식도 키세루와 함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어요. 키세루로 시험에 성공했기 때문에 그 방식을 YOUR SONG IS GOOD이나 cero에서도 할 수 있었고. (키세루는) 어리지만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도 있고, 내가 생각했던 "이런 걸 하고 싶다"는 것도 항상 받아들여 주어서 기뻤어요. 그 대신 "신곡이 빨리 나오지 않는 걸까"라는 걱정은 항상 있었지만(웃음)



─ 카쿠바리 군의 여러 제안에 대해 키세루 측에서 NO라고 한 적은 지금까지 없었나요?


타케후미: 이번에 나온 베스트 앨범 같은 건 망설였어요. "팔릴까?" 싶어서.


카쿠바리: 그치만, 그다지 NO는 아니었지. 한 가지 없던 일이 된 아이디어는, 키세루의 트리뷰트 앨범 정도일까. "그런 걸 하면 베테랑 밴드 같잖아"라면서 거절당했어요(웃음).


타케후미: 그랬었나(웃음). 트리뷰트라는 게 이쪽에서 부탁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카쿠바리: 그렇게 말하기에 그런가?라고(웃음). 하지만 이번 베스트 앨범은 정말 내길 잘했다고 생각해요. 몇 년 뒤에 효과가 있다고 할까, 새로운 뭔가를 낳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게다가 올해 FUJI ROCK 라이브(7월 27일, FIELD OF HEAVEN)를 스트리밍으로 보고, "베스트 앨범이 나오는구나."라고 처음 알게 된 사람도 많았던 것 같아요. 그 영상을 아주 많은 사람이 봤더라구요.


타케후미: 그러게. 마츠모토의 편의점에서 봤던 사람이 말을 걸어 주기도 했고.


카쿠바리: 짱이네(웃음). 또, 오랫동안 알고 지낸 팬들도 "이번에 베스트가 나오니까 다시 들어 볼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이 있고. 그것도 정말 좋지만, (무엇보다) 좋은 작품이 나온 것도 같고. 디스크 2장을 집에서 녹음한 것도 좋았으니까.


타케후미: 정말?


(여기서 추가주문)


카쿠바리: 여기요. 에다마메, 고구마튀김.


토모하루: 참치! (マグロぶつ)


타케후미: (호피(ホッピー)) 중(中) 주세요.


카쿠바리: 다시 말하자면, 키세루를, 메이저를 그만두고 인디에 온 아티스트로 성공한 모델케이스로 하려는 건 아니지만, 카쿠바리듬에서 처음 발매한 음반이었던 『magic hour』(2008년 1월)가, 스피드 스타(スピードスター)의 마지막 앨범인 『여행』(2005년 5월)의 두 배 정도 팔렸어요. 지금도 기억하지만, 『magic hour』 발매일이 1월 27일 눈의 날이었는데, 타워레코드에서 엄청 팔려서 매진됐거든요. "거봐! 거봐!"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때부터 인디에서 키세루가 음악을 제대로 마주하고, 제작 페이스를 지키면서 원만하게 해나갔으면 하고 생각해왔던 10년이었던 것도 같아요.



ー 오리지널 앨범 발매는 간격(スパン)이 있어도, 키세루는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있는데.


카쿠바리: 그렇죠? 오리지널 앨범은 4장이지만, 멈추지 않고 여러 음반을 내고 있어요. 그치만, 한 번 길었던 때가 재해 때(2011년 3월 11일)였을까. 형의 붓이 잠시 멈췄던 게 재해 이후.


타케후미: 글쎄, 『나기(凪)』(2010년 6월)부터 『밝은 환상(明るい幻)』(2014년 12월)이 나올 때까지 간격이 있었던 건 그 영향도 컸지만, 다른 이런저런 일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밴드가 많이 나와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는 그런 시기이기도 했고. 지금도 그런 것 같지만.


카쿠바리: 그치만, cero의 다카기(高城) 군이나 하시모토(橋本) 군도 키세루를 아주 좋아해서, 카쿠바리듬에 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후치쿠치(風知空知)에서 했던 작은 이벤트(2008년 6월 22일 『밤의 발화점(夜の発火点)』)에 하시모토 군이 보러 왔었죠. 쇼핑(ショピン)과 형의 솔로 라이브와, 토모하루 군이 게스트 DJ를 했던 이벤트. 우리도 스스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오랫동안 음악을 해왔기 때문에, cero가 키세루나 SAKEROCK을 좋아했다거나, 오모이데야로(思い出野郎)가 YOUR SONG을 좋아했다거나, 어렸을 때는 카쿠바리듬이라는 걸 모르고 들었을지도 모르는 새로운 아티스트가 우리 레이블에 들어오는 걸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키세루는, 그런 자신의 깃발을 확실히 견지하며 활동을 해주어서, 너무 대단한 것 같지만... 그 부분은 회사(레이블)로서도 정말 고마워요. 앨범 발매 간격이 이렇게 길어져도 계속 할 수 있다는 건 회사 입장에선 용기라고 할까 간판이기도 하고(웃음)


토모하루: 그래도 4년이나 비었던 건 한 번뿐이잖아(웃음)


타케후미: 죄송합니다(웃음)


카쿠바리: 그래도 10년 중에 4년 동안 안 나온 건 너무 하지 않아?(웃음)


타케후미: 바리 씨가 엉덩이를 두드려 주는 부분과 참고 기다려 주는 부분 둘 다 고마우니까, 그런 말을 들어도 전혀 괜찮긴 하지만.


카쿠바리: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어(웃음). 나쁜 놈이 돼야 할 때도 있잖아. 그래도, 키세루는 그 중에도 커버나 BGM 같은 작업을 해왔고. 원래 대다수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한 곡에 대한 노력이 엄청나니까. 예컨대, 내가 재촉하는 듯 한 말을 하지 않으면, "바리 씨로부터 별 말이 없었어서, 다음 앨범이 5년 후에 나왔어"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지금 20주년의 타이밍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지만(웃음). 이라고 말해도, 이 두 사람은 신의 조화(配剤)니까. "너희들은 음악을 하거라"라고 신께서 말씀하신 두 사람을 우연히 카쿠바리듬에서 책임지고 있는 것뿐이니까.


타케후미: 그 말, 자주 하더라.


카쿠바리: 이 10년 동안 가끔씩 "제멋대로인 저 같은 사람만 만나지 않았어도, 혹시 두 사람에게는 다른 인생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서 헤맬 때도 있었지만, "그런 일은 없어"라고 생각할 때도 있거든. 왜냐하면 서로 좋아서 하는 거고, 그게 우연히 같은 벡터를 따라가는 거니까. 이제 그런 고민은 관뒀지만.


타케후미: (카쿠바리에게) 맞춰주고 있다는 느낌은, 그다지 없는 것 같은데


카쿠바리: (술을 내뿜을 뻔)


타케후미: 그래도, 카쿠바리듬에 들어갔을 무렵에, 바리 씨가 그리고 있던 "키세루를 이렇게 하고 싶다"라는 이미지는 있었지. "US인디감" 같은 얘길 자주 했잖아(웃음)


카쿠바리: 진짜 창피하다! (웃음)


타케후미: 하긴, 그 기대에는 아마 부응하지 못한 것 같지만.


카쿠바리: 그런가? 언젠가 LIQUIDROOM에서의 라이브 때는, 그런 느낌이 있었어.


타케후미: "US인디감"이라는 게, 대체 어떤 걸까라고 생각하면서 했었나.


카쿠바리: 하지만, 그 쪽으로 가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조금 들어. 키세루에게는 "일본의 포크" 같은 혈맥도 분명히 있고, 그래서 좋으니까. 그런데, 최근의 라이브에서도 아주 노련한 티를 내도 괜찮은데, 끝나는 순간에 "정말 고맙습니다, 키세루였습니다-"라고 갑자기 신인 밴드가 되어버리는 순간이 계속 있잖아(웃음)



─ 거기서 커리어와 원숙미가 리셋 되는 재미(웃음)


카쿠바리: 귀여움도 있긴 하지만.


토모하루: 항상 라이브든 뭐든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감은 있어.


카쿠바리: 그래도 보고 싶었던 경치는 야음에서 여러 번 보여줬으니까. 첫 번째 야음도, 두 번째 야음도 그랬어. 하지만, 그 앞을 고민하는 게 레이블 대표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잘 모르게 되기도 해. 어떻게 계속해 나갈까? 키세루가 좋은 대로 하게 하는 것이 실은 좋은 게 아닐지도 모르고. 좋은 대로 한다는 건 사실 사고를 중지해 버리는 거니까, 이쪽에서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절차탁마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지금부터 앞으로의 10년을 향해서, 두 사람이 50대가 됐을 때 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 있지 않을까 라는 걸 최근 2년 정도 모색하고 있거든......



─ 해외에서의 전개도 의식한다거나?


카쿠바리: 해외에서는, 키세루의 음악을 나이라거나 상관없이 들으니까, 그런 것에 관해서는 순풍이 불기 쉽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토모하루: 형은 해외에서 하고 싶다고 요즘 자주 말하잖아


타케후미: 지금 당장 그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평소처럼 해외에 나가서 라이브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는 생각해. 지금까지도 뉴욕, 프랑스, 한국 등에서 라이브를 해왔지만, 그런 특별한 느낌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해외에서도 평범하게 공연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긴 해.



─ '평소처럼(普通に)'이라는 건 어떤 느낌?


토모하루: 아직 가본 적은 없지만, 형이 살고 있는 마츠모토(松本)에, Give me little more.이라는 가게가 있어서, 도쿄에서는 좀 더 큰 곳에서 할 것 같은 외국 아티스트가 갑자기 거기서 라이브를 한다거나, 그런 환경을 평범하게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런 걸 보고 생각하게 된 거야? 도쿄라면 커다란 공연장에서 빽빽하게 보게 되는데, 마츠모토에서는 조금 더 평소처럼 체험할 수 있다거나.


타케후미: 일상적으로 라이브를 하고, 일상적으로 돌아간다는 감각이랄까. 제대로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런 느낌으로 해외에서도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라는... 근본적인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아주 다른 감각으로 저쪽 사람들은 하고 있는 걸까 싶은. 이제와서 깨닫는 것도 좀 늦었지만.


토모하루: 생맥주 두잔 부탁합니다-!


카쿠바리: 지금의 키세루가 좋은 점은 두 사람만으로도 여기 저기 갈 수 있고, 밴드의 라이브도 굉장히 좋으니까. 이제부터는, 그 밸런스를 생각하면서 해나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



─ 확실히 "밴드로서의 키세루"라는 모드는 카쿠바리듬에 들어간 이후에 생겨난 거니까. 그래서인지 둘이서 할 때가 더욱 좋아진 것도 있고.


카쿠바리: 맞아요. 요즘 세상의 경향으로는 "밴드 세트=호화"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 얼마 전에 오슈(王舟)와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오히려 반대로 돼도 좋으니까.


토모하루: 예전에, 키세루 두 명이 앉아서 하는 라이브 투어를 했을 때, 관객들이 평소보다 더 많이 왔던 것 같은 인상이 있었어. "밴드여서 보러 왔다"는 사람이 키세루의 경우엔 별로 없는 것 같아. 관객들이 키세루의 음악을 "이런 식으로 듣고 싶다"라고 요청하는 부분과, 우리가 "이렇게 하고 싶다"라는 부분이 서로 다투는 것 같기도 하고. 만족스러울 때도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할 때도 있어.



─ 공연 장소나 콘셉트를 스스로 제안해서 하는 방식이 앞으로는 있을 수도 있겠네요.


토모하루: 그렇게 해도 재밌겠네.


카쿠바리: 이번 야음도 토모하루군이 스테이지 플랜을 제안하기도 했잖아.


타케후미: 키세루의 경우, "서서 / 앉아서"의 갈등은 계속 있었어. 밴드로든 둘이 하든 마찬가지지만, 관객 입장에서 어떻게 보는 게 가장 좋을지가 사람마다 너무 제각각이니까. 혹시 우리가 그 때 당시 하고 싶은 것을 전하기 위해 이상적인 인원이나 장소가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카쿠바리: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할 수 있는 건, 역시 이 10년 동안 라이브가 엄청 좋아졌기 때문이잖아. 앞으로도 여러 곳에서 관객과 만나는 장소를 만들어 가야지. 그걸 일본에서나 해외에서나 같은 라인으로 할 수 있으면 더 좋고.


타케후미: 그건 맞다고 생각해.


카쿠바리: 10년을 같이 해왔는데, 지금부터 앞으로는 좀 더 페이스 업하는 게 좋지 않을까. 최근에는 "키세루는 좋은 걸 만드는 게 당연해"라고 생각하니까, 허들이 높아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는 "히트를 노린다"는 것도 아주 괜찮을 것 같아. 40에서 50살이 되어 갈 때 히트곡이 나온다는 게 너무 멋있잖아.


타케후미: 그렇네(작은 목소리로)


카쿠바리: 목소리가 작아졌어(웃음). 그래도, 야음이 끝나고 다음 신곡이 나와서, "엄청 좋네. 20주년이 지나서 두 꺼풀 정도 벗겨졌구나" 같은 곡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생활 감각이 있다는 게 형의 좋은 점이기도 하니까, 소재가 좀 더 아무래도 좋은 것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너구리라거나(웃음)


타케후미: 알기 쉬운 걸 목표로 만드는 재주는 거의 없지만, 카쿠바리 군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알고 있어.


카쿠바리: 구체성과 추상성의 안배라고 할까, 언어의 이해도랄까. "논의 저편에 초등학교가 보인다"는 정도로만 노래를 만들어도 되지 않을까. 해마다 경험이 쌓여서 여러 가지 일을 소화하는 속도는 빨라졌지만, 소화만 시키고 아웃풋이 안 나오는 패턴도 자주 있으니까. 좀 더 자기 안에서의 실험이랄까, 노는 걸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고... 잘난 척 하는 것 같지만......(웃음)


타케후미: 다음을 내고 싶어서 노래를 만들고 있으니까. 요즘의 흐름도 잘 따라가고 싶고, 거기서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은 생각도 크니까.


카쿠바리: 그럼, 다음 10년의 내 목표는 정해졌습니다. "키세루로 히트곡이랄까 새로운 대표곡을 발매하는 것". 히트곡이라기 보다, 주위의 친구들도 포함해서 "에? 정말 좋잖아!"라는 반응을 어느 때 보다 늘려 가는 것. 그건 이쪽의 목표. 라고는 해도 아주 평범한 목표지만(웃음). 단지, 그 히트를 만드는 것이, 어쩌면 지금까지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이라거나, 보이는 방법일지도 모르고, 그럴 필요가 없을 수도 있고, 여태까지 발표한 곡들 중에서 다들 아주 좋아하는 노래 안에 있을지도 모르고. 빛을 비추는 방식에 있을 수도 있고. 그런 고민을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매번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이런 계기로 키세루의 새로운 챕터가 시작된다면, 몇 장이 되는 거지? 3장? 4장?


타케후미: 1장이 스피드 스타?


카쿠바리: 2장이 카쿠바리듬에서의 10년. 3장이 앞으로 10년.


타케후미: 평소처럼 계속 하더라도 일본에서 더 팔려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아까 말했 듯이, 해외에서 일상적으로 라이브를 한다는 것도 목표가 되려나. 지금 당장 하고 싶다기 보다는 앞으로 10년 정도의 기간 동안 해보고 싶은.


카쿠바리: 마지막으로 토모하루의 목표를 듣고 싶은데


토모하루: 글쎄. 일본의 쉑스(The Shaggs)가 될 수 있다면.


카쿠바리: 그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 아냐(웃음)


타케후미: 게다가 "일본의 무엇"이 된다고 말하는 시점이 이상해(웃음)


카쿠바리: 결성 20년의 밴드가 아니잖아(웃음). 이미 "일본의 키세루"가 되었으니까.


토모하루: 에? 그럼 뭘까?


카쿠바리: 연주곡(インスト) 앨범을 낸다거나?


토모하루: 아니, 그건 별로 관심이 없어서.


카쿠바리: 진짜?


토모하루: 계속 인스트를 만들고는 있지만, 출구가 없으니까. 뭐, 언젠가 인스트 작품은 만들고 싶지만.


카쿠바리: 엄청나네. 사후에 미발표 작품집이 발매되는 패턴(웃음)


타케후미: 나도 요즘 솔로로 인스트를 하고 있어.


카쿠바리: 아주 좋다고 하던데. 마츠모토에서 형의 솔로 라이브를 본 친구가 말해줬어.



─ 그거야말로 카쿠바리 군의 최초의 아이디어가 인스트(연주곡) 7인치를 키세루로 내는 거였기도 하니까


카쿠바리: 그렇네요... 하지만, 최근엔 그다지 잘 팔리지 않는 것 같기도 하던데......(웃음)


토모하루: 목표라... 좀 더 일상적으로 노래를 만들고 싶기는 한데. 그리고, 내가 가사를 쓸 수 있게 된다면 키세루로서는 5배 정도 비약이 있으려나.


카쿠바리: 해보면 어때? 형에게 보여주기 전에 내가 체크할게(웃음) 그리고, 키세루의 새 앨범을 2022년까지 내는 것!


타케후미: 응? 『The Blue Hour』로부터 5년 후인데, 괜찮아?


카쿠바리: 어라? 내년이 2022년이 아닌가?(웃음) 그럼, 내년에는 싱글로 아주 좋은 곡을 만들자. 히트곡! 히트곡! (웃음) 카쿠바리듬에서도 릴리즈의 방식을 좀 더 고민해서, 관객과 이어지는 것도 새롭고 즐겁게 해봅시다!


두 사람: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번역 = 고엄마 (2019.9.4)


/*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가능한 직역을 했습니다. 회사에서 눈치 봐가며 급하게 번역한 것이라, (물론 천천히 했어도) 오타/오역이 넘쳐납니다. 잘못된 부분이나 더욱 매끄러운 문장을 알려주시면, 술 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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祝! キセル結成20周年&カクバリズム移籍後の初ベスト・アルバム『KICELL'S BEST 2008-2019』リリース&3度目となる日比谷野音ワンマン(9月16日)! ということで、やってみました。キセルとカクバリズム角張渉、13年ぶりのアンコール対談。


かつてキセルのBLOGで公開された対談から13年。カクバリズムで4枚のアルバム・リリース、バンド編成の定着、野音ワンマン、全国各地を訪れてのツアーなどなどいろいろありました! 今3人が思うキセルのこれからをカクバリズム近所の名店にてお酒も交えつつ語ってみました。(構成:松永良平)




辻村豪文, 辻村友晴, 角張渉


角張渉


2006年の12月にキセルのBLOGで公開したキセルと僕の対談というのがあるんですが、あの13年後の続きをやったらどうだろうかと思って、今日は二人に来てもらいました。今のキセルの現在地を探りつつ、話をしようかなと。結局振り返ってみて思ったのは、この約10年のカクバリズムとキセルの歴史っていろいろ試行錯誤の連続だったなと。俺が「(キセルで)こういうことやりたい、やったらどうか?」というアイデアにいろいろ付き合ってもらったなぁというか。


辻村豪文


いや、本当にこちらこそいろいろ付き合ってもらって。


(ここで飲み物が揃う)


角張


おつかれさまです、いや、20周年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かんぱーい! キセルにカクバリズムに入ってもらったとき、こうしようああしようっていろいろ目標はあったよね。でも、この10年やってきて、こういうふうになるとは俺ら3人とも誰も予想してなかったし、そもそもあのころはカクバリズムがずっと続くとも思ってなかった。せいぜい「続くかな?」くらいの感じ。


豪文


うちらも同じです(笑)


──角張くんと兄さんが初めて話したのが、2005年9月のSAKEROCKのライヴの打ち上げで。


角張


表参道のFABでしたね。


辻村友晴


僕はその場には居なかったけど、家に帰って来た兄さんが(※当時は一緒に住んでた)「インストで7インチを出すのはどうですか?って言ってくれる人がいたよ。」って言っていて、面白そうやねと2人で話した記憶がある。


角張


そうそう。インストで7インチがいいと思ってた。当時、うちはニカさん(二階堂和美)とかもそうだったけど他のレーベルの音源をライセンスして7インチで出すというのをやらせてもらっていて。いろんな人のアナログ、特に7インチを出したかったんだよね。


豪文


あのころ、バリさん、よくライヴも来てくれて。


角張


行ってたよね。代々木のZher the ZOOとかO-nestとか、いろいろ。当時キセルに声かけてた他のレーベルもあったけど、うちで出したかったからね。


豪文


まあ、俺らも「レーベル探してます」ってあちこちに相談してたから。でも、俺はカクバリズムがいいと決めてた。


角張


その選択は勇気が要ったよね。当時のキセル界隈にはわれわれカクバリズムはまだぜんぜん知られてなかったから。YOUR SONG IS GOODもSAKEROCKもインストバンドだったし、キャリア的にもまだベテランでもなかった。


豪文


勇気が要るというか、俺もカクバリズムのことを知らんかったし。いろんな人にも相談したし、「自分たちで大丈夫かな?」という不安はあったけど、とにかくなんか面白そうっていうのがやっぱり大きいかも。


友晴


肌感覚で「ここなら居たい」っていうのはあったかな。


角張


でも、それから10年経って今やキセルは古株ですからね……。この10年の間に入ってきたcero以降の若者たちも、キセルがいるから「このレーベルには品がある」と思ってくれたところはある。


豪文


ひん?


角張


「いろんなものが保たれてる」イメージだったみたい。そんな意識、二人には絶対ないと思うけど


二人


(笑)


角張


だって未だに“入社したて”みたいな感じでしょ。「この会社に慣れてないな」みたいな感じがある(笑)。その感じわからんでもないんだよね。俺も未だにこの業界の新入社員みたいな感じでいるからね。


友晴


「あれ? cero先輩やったっけ?」とか(笑)


──キセルにどうしてもカクバリズムに来てほしかったのはなぜ?


角張


一緒にやりたいと思ったし、当時はメジャー・メーカーをギャフンと言わせたいという勝手な反骨精神みたいなものがあって。ただ同時にメジャーでもうまく良い音楽を作ってみたいって感覚もあって(※詳しくは角張の著書を笑)。そんな中ちょうど2006年にYOUR SONG IS GOODがメジャーデビューして、キセルはメジャーから移籍してくれて。そういう交錯があるなかで、どこかで「メジャーでもかまして、インディペンデントでもかましてやる」みたいな気持ちがあった。さらに、パンクやハードコアばっかり聴いてた若いころに唯一歌もので聴いてたメジャー・アーティストがキセルだったから、「俺になにかできることはないだろうか」と思ってましたね。そういうなかで、うちに来てくれてから現場レベルなこととしてやってみたのは、アルバムリリースツアーじゃない年末恒例の東名阪ツアーの会場での音源発売(キセルEPや’’夕凪’’)や日比谷野音限定で売るライヴ盤(『KICELL EP in みなと湯』)やカヴァー集(『Songs Are On My Side』)とか、アルバムをせーので売るというよりは現場できて来てくれる人に最初は優先で販売するというか、より現場での展開のやり方とかもキセルで切り開いていったところはあるかなって今は思いますね。。キセルで試して成功したからそれをYOUR SONG IS GOODやceroでもやってみたし。(キセルは)若いながらに歴史があるからやれることがあったし、俺が思いついた「こういうことやりたい」っていうのを常に受け止めてやってきてくれてうれしかったですね。その代わり「新曲早く来ないかな」みたいな気がかりは常にあるけど(笑)


──角張くんのいろんな提案に対するNOは、キセル側にはこれまでなかった?


豪文


今回のベスト盤とかは躊躇ありました。「売れるんかな?」みたいな。


角張


でも、あんまりNOはないよね。ひとつ無しになったアイデアとしては、キセルのトリビュートかな。「それやったらベテラン・バンドみたいやんか」って断られた(笑)。


豪文


そうやったかな(笑)。トリビュートってこっちからお願いしてやるもんでもないかな、と思ったから。


角張


そう言われてそうだよなって(笑)。でも今回のベスト盤は出してよかったなぁってしみじみ思います。数年後効いてくるというか、新しい何かを産んでくれるような気がしてます。それに今年のFUJIROCKのライヴ(7月27日、FIELD OF HEAVEN)を配信で見て「ベスト盤出るんだ」って初めて知ってくれた人も多かった。あれ、すごい数の人が見てたからね。


豪文


ね。松本のコンビニで観た人が声かけてくれたりして。


角張


すごい(笑)。あと、長い付き合いのファンの人でも「今回ベスト出るから聴き返して見ようかな」っていうの反応の人もいっぱいいたからさ。それはすげえいいことだし、いい作品になったと思うよ。ディスク2の宅録もいいしさ。


豪文


本当すか?


(ここで追加注文)


角張


すいませーん。枝豆、さつま揚げ。


友晴


マグロぶつ!


豪文


(ホッピーの)中ください。


角張


話を戻すと、キセルをメジャーをやめてインディーに来たアーティストがうまくやるモデルケースにするわけじゃないんだけど、カクバリズムで最初のアルバムだった『magic hour』(2008年1月)が、スピードスターの最後に出した『旅』(2005年5月)の倍くらい売れたからね。覚えてるけど、『magic hour』発売日の1月27日が雪の日で、タワーレコードでめちゃ売れて品切れしてさ。「ほら!ほら!」と思ったね(笑)。そこからインディーでキセルが音楽をしっかり向き合って制作ペースを作ってうまくやれたらと思いながらやってきたのが、この10年だったかなと思ったり。


──オリジナル・アルバムのリリースはスパンが空いても、常になにかやっている感はキセルにはある。


角張


そうですよね。オリジナル・アルバムは4枚だけど、途切れずにいろんなタイトルを出してる。でも、ひとつデカいのは震災かな。兄さんの筆が止まったのは震災以降。


豪文


まあ、『凪』(2010年6月)から『明るい幻』(2014年12月)が出るまでスパンが空いたのはそれも大きいけど、いろいろあった気がする。若いバンドがたくさん出てきて、自分らができることを考えるみたいな時期でもあったりして。今もそんな感じですけど。


角張


でも、ceroの高城くんも橋本くんもキセルがすごい好きで、カクバリズムに入る前に、俺らが風知空知でやったちっちゃいイベント(2008年6月22日『夜の発火点』)を橋本くんが見に来てくれてたんだよね。ショピンと兄さんのソロがライヴで、友晴くんがゲストDJだったやつ。俺らも自分で思ってる以上に長く音楽をやってきてて、ceroがキセルやSAKEROCK好きだったとか、思い出野郎がYOUR SONG好きだったとか、若いうちにカクバリズムと知らなくて聴いてたみたいな新しいアーティストがうちに入ることにつながってたりするから。キセルって、そういう自分の旗をしっかり持って活動してくれてるから、めちゃくちゃ偉そうだけど……そこは会社(レーベル)としても本当にありがたい。リリース・スパンがこんだけ空いてもやれてるんだっていうのも会社としての勇気というか看板だし(笑)


友晴


でも4年も空いたのは一回だけやで(笑)


豪文


申し訳ない(笑)


角張


でも、10年のうち4年出てないってヤバくない?(笑)


豪文


バリさんのケツを叩く部分と我慢して待ってくれる部分は両方ありがたいんで、そう言われるのはぜんぜんいいんやけど。


角張


そこはね、しょうがないよね(笑)。悪者にならざるをえないときもある。でも、キセルはその間でもカヴァーや劇伴の仕事やってくれたりしているし。あとそもそもみんなが思ってる以上に一曲に対する労力は賭けてるよね。たとえば俺が催促するようなことを言わなくなったら、「バリさんから言われなくなったんで、次のアルバムは5年後になった」みたいにはなんないでほしいなと、この20周年のタイミングであらためて思うけどね(笑)。とはいえ、この二人っていうのは神の配剤だからね。「あなたたちは音楽をやりなさいよ」と神様に言われた二人をたまたまカクバリズムで預かってるだけなので。


豪文


それ、よく言うよね。


角張


この10年でもときどき「俺のわがままに付き合わせてるだけで、もしかしたら二人には違う人生があったんじゃないか」とも思って迷ったりもしたけど、「そんなことはねえな」とも思うときもあった。だってお互いに好きでやってるわけで、それがたまたまおなじベクトルをたどってるわけだからね。今はもうそういう迷い方はやめた。


豪文


「(角張に)付き合ってる」っていう感じは、そんなにないかな。


角張


(飲み物を吹き出しそうになる)


豪文


でも、カクバリズムに入ったころに、バリさんが思い描いてる「キセルをこうしたい」っていうイメージはあったよね。「USインディー感」みたいなことよく言ってた(笑)


角張


めちゃくちゃ恥ずかしい!(笑)


豪文


でも、その期待にはたぶん応えられへんかったなあ、と思ってるけど。


角張


そうかな? 一時期のLIQUIDROOMでのライヴには、応えてる感じあったよ。


豪文


「USインディー感」って、どういうアレなんかなって思いながらやってたかな。


角張


でも、そっちに行ってしまわなくてよかったともちょっと思ってる。キセルには「日本のフォーク」的な血脈もちゃんとあるし、だからいいんだよね。しかし、最近のライヴもすごく堂に入ってていいんだけど、終わった瞬間「どうも、キセルでしたー」って急に新人バンドみたいになる、っていうのはずっとあるよね(笑)


──そこでキャリアや円熟味がリセットされる面白さ(笑)


角張


かわいさでもあるんだけど。


友晴


いつもライヴにせよなんにせよ「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感はある。


角張


でも、見たかった景色は野音では何度も見せてもらってるよ。1回目の野音も2回目の野音もそうだった。でも、その先を考えるのがレーベルの代表の仕事なのかなと考えると、ちょっとわかんなくなるんだよね。どう継続していくか? キセルに好きにやらせてることは本当はいいことじゃないのかも。好きにやらせるってことは実はこっちが思考停止しちゃってるからで、もっとこっちが考えて切磋琢磨していかないといけない。で、これから次の10年に向けて、二人が50代になっていくときにできる新しいやり方があるんじゃないかっていうのをこの2年くらい俺は模索ばっかしている……。


──海外での展開も意識するとか?


角張


海外では、キセルの音楽って年齢とか関係なく聴かれてるから、そういうことに関しては追い風が吹きやすいんじゃないのか、とかは思うけど。


友晴


兄さんは海外でやりたいって最近よく言ってるよね。


豪文


今すぐそうなれるとは思えないけど、普通に海外に行ってライヴやれるようになれたらなって思う。今までもニューヨーク、フランス、韓国とかでライヴやらせて貰ったことはあるけど、そういう特別な感じじゃなくて、海外で普通にやる感じにどうやったらなれるのかなって考えたりはするっすね。


──「普通に」っていうのは、どういう感じ?


友晴


まだ行ったことないんですが、、兄さんが住んでる松本に、Give me little more.ってお店があって、東京ではもっと大きなところでやるような外国のアーティストがそこにふらっと来てライヴしたり、そういう環境が普通っぽく思えるというか。そういうのを目にして思うようになったんちゃう? 東京だと大きめのハコでぎゅうぎゅうで見ることになるけど、松本だともうちょい普通に体験できるというか。


豪文


普通にライヴして、普通に帰っていくような感覚っていうか。うまく言えないんですけど、そういう感じで海外でどうやったらできるんかなって。根本的な態度の問題やと思うんですけど、かなり違う感覚で向こうの人はやってるんやろうなぁって。今さら気づくのも遅いんですが。


友晴


生ふたつお願いしますー!


角張


今のキセルのいいところは二人でもあちこちに行けるし、バンドのライヴもすごくいい。これからは、そのバランスを考えていくことも大事かもね。


──確かに、「バンドのキセル」っていうモードはカクバリズムに入ってからできたものだし。それでいて二人でやるときのよさも研ぎ澄まされてきてる。


角張


そう。今は世の中の傾向として「バンドセット=豪華」ということになってるけど、そういうことじゃなくてね。こないだ王舟ともその話になったけど、逆になってもいいんだよね。


友晴


前に、キセル二人の座りライヴツアーをやったとき、お客さんがいつもより来てくれた印象がある。「バンドやから観に来る」というのはキセルにとってはそんなにないかな。お客さんがキセルの音楽を「こういうふうに聴きたい」と求めてる部分と、自分らが「こうしたい」みたいな部分のせめぎ合いみたいな感じでやってるところもあるしね。成功するときもあれば歯がゆいときもあるし。


──やる場所やコンセプトを自分たちから提案していく、みたいなことも、これからはあるのかも。


友晴


そういうことがあっても面白いやろうね。


角張


今回の野音でも友晴くんからステージプランの提案があったしね。


豪文


キセルは「立ち/座り」の葛藤はずっとあって。バンドか二人かもそうやけど、お客さんがどう見るんがいちばん楽しいかが結構人それぞれだったりもするから。自分たちがそのときやりたいことを伝えるのに理想的な人数とか会場がもしかしたらあるのかも。


角張


でも、そう考えられるのは、やっぱりこの10年でライヴがめちゃくちゃよくなってるからなんだよ。これからもいろんなところでお客さんとの出会いの場所を作っていかないと。それを日本も海外もおなじラインでやれたらいいし。


豪文


それはそう思う。


角張


この10年一緒にやってきたけど、これから先はもう少しペースをアップしてやれたらいいのかな。最近は「キセルはいいものを作って当たり前」みたいに思われてるから、ハードルが高いのかもしれないね。これからは「ヒットを狙ってく」というのもすごくいいと思うんだよね。40から50歳になってくときにヒットが出るなんてすげえかっこいいじゃん。


豪文


そうやねえ(小声)


角張


小声になってるし(笑)。でも、野音終わって次の新曲が出て、「すげえいいじゃん。20周年超えて二皮くらい剥けてるね」みたいな曲があるといいかもしれない。生活の感覚があるというのは兄さんのいいところでもあるけど、題材がもうちょっとどうでもいいものでもいいかも。タヌキとか(笑)


豪文


わかりやすいのを狙って作る技量はたぶんないけど、角張くんの言ってることはすげえわかる。


角張


具体性と抽象性の按配というか、言葉のわかりやすさとかね。「田んぼの向こうに小学校が見える」ってことだけを歌にしたっていいのかもしれない。年々経験が上がってきて、いろんな物事を消化するスピードは上がってるけど、消化するだけに終わってアウトプットで出てこないってパターンはよくあるしね。もっと自分のなかでの実験というか、遊びを作ってもいいのかもとか偉そうですが……(笑)


豪文


次を出したいなと思って曲は作ってるから。今の流れにもちゃんと追いつきたいし、そこで新しいものを出したいという気持ちもすごくある。


角張


じゃあ、次の10年の俺の目標は決まりました。「キセルでヒット曲というか新しい代表曲をリリース」。ヒット曲というより、周りの友達とかも含めて「え? 超いいじゃん!」って反応をこれまで以上に多くしていきたい。それはこっちの目標。ってめちゃくちゃ普通の目標だけど(笑)。ただ、そのヒットの引っ掛かりとしては、もしかしたらこれまで試していないやり方だったり、見せ方だったりするかもしれないし、そんなの必要ないかもしれないし、今まで出した曲でみんながめちゃくちゃいいと思ってる曲のなかにあるのかもしれない。光の当て方だけかもしれないし。それを考えていくってことかなって毎度考えているんだけど。でも、これを機にキセルの新しい章が始まれば。第何章なのかな? 3章? 4章?


豪文


1章がスピードスター?


角張


2章がカクバリズムでの10年。3章がこれからの10年。


豪文


普通に続けて行くのに日本でもっと売れないと、っていうのはあるけど、さっきも言った、海外に行って普通にライヴする、とかが目標かな。今行きたいというよりこの10年くらいのスパンでやっていきたい。


角張


最後に友晴くんの目標を聞きたいな。


友晴


そうやね。日本のシャッグスになれれば。


角張


それじゃイチから出直しじゃない(笑)


豪文


しかも「日本のなんとか」になるって言ってる時点でおかしい(笑)


角張


結成20年のバンドじゃない(笑)。もう「日本のキセル」になってるから。


友晴


えー? じゃあ、なんやろう?


角張


インスト集を出すとか?


友晴


いや、それはあんまり興味ないんで。


角張


マジで?


友晴


ずっとインストを作ってはいるけど、出口がないから。まあ、いつかはインストの作品は作りたいけど。


角張


ヤバいね。死後に未発表作品集がリリースされるパターン(笑)


豪文


俺も今ソロでインストやってるよ。


角張


すごくいいらしいね。松本で兄さんのソロ・ライヴ見た知り合いが言ってたよ。


──それこそ角張くんの最初のアイデアはインストの7インチをキセルで出すというものだったわけだし。


角張


そうですね……。でも、今は売れなそうだなとか……(笑)


友晴


目標……、もうちょっと普通に曲を作れるようになりたいかな。あと、僕が歌詞を書けるようになったらキセルにとって5倍くらい飛躍的やね。


角張


やってみたら? 兄さんに見せる前に俺がチェックします(笑)そして、キセルのニュー・アルバムを2022年までに出す!


豪文


え? 『The Blue Hour』から5年後でいいの?


角張


あれ? 来年って2022年じゃなかったっけ?(笑)じゃあ来年はシングルでめちゃくちゃいいのを作ろう。ヒット曲!ヒット曲!(笑)カクバリズムとしてリリースの仕方も工夫して、お客さんとのつながり方も新しく楽しくやりましょう!


二人


今後とも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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