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Fishmans!(my fishmans life)


논, 베를린, 생활, 그리고 『천체(天体)』 - [대담] 오오야 유스케(Polaris)× Bose(스챠다라파)


오오야 유스케와 카시와바라 유주루(Fishmans / So many tears)의 록 밴드, Polaris가 전작  『Music』으로부터 3년 4개월 만에 풀 앨범 『천체(天体)』를 릴리즈했다. OTOTOY에서는 이번 작품을 릴리즈한 날인 2018년 6월 20일부터 한 달 동안 하이 레졸루션 스트리밍을 실시한다! Polaris 사운드를 들으려면, 절대적으로 하이 레졸루션을 추천! 하이 레졸루션으로 만들어진 사운드를 세세한 부분까지 꼭 즐겨 주세요. 그리고 릴리즈에 맞춰 Polaris의 프로트맨 오오야 유스케의 지명으로, 스챠다라파 Bose와의 대담을 실현! 그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지, 두 사람의 생각하는 방식에 다가가는 대담을 전합니다.   


INTERVIEW : 오오야 유스케(Polaris)× Bose(스챠다라파)


부유감 있는 목소리와 그것을 떠받치는 리듬대, 다양한 요소를 받아들여 유일무이한 사운드를 구축하는 Polaris의 오오야 유스케. 그리고 유머가 넘치고 시니컬하게 사회를 비판하는 가사로, 일본 힙합 씬의 선두를 꾸준히 이끌고 있는 스챠다라파의 Bose. 한편으로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그 만남은 10년을 넘어, 사는 방식이나 사물에 대한 관점 등 여러 면에서 서로 동질감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이번 인터뷰는 현재 Bose가 생활의 거점으로 삼고 있는 카마쿠라에서 취재했다. 이 대담을 읽어 보면, ‘Polaris 사운드’가 새 앨범 『천체(天体)』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된 이유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진행/글: 스즈키 유우키(鈴木雄希)
사진 : 오오하시 유키(大橋祐希)
취재협조 : Paradise Alley Bread & Co.


첫 만남은 논에서


── 두 분은 어디에서 처음 만났습니까?

오오야: 친하게 된 건, 같은 논에서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치바에 스페이스맨이라는 분이 계신데, 아는 사람에게 논을 나눠주셨거든요. 그 곳에서 저는 2006년 정도부터 그 논을 빌려서 쌀을 심었어요. Bose 씨와는 아마 2008년 정도부터였어요, 처음에 같이 풀을 베던 기억이 나네요.

*1. 스페이스맨
나카노 마사조우(中野雅蔵)
〈레게 선 스플래시 in 비와호(琵琶湖)〉(1985년)의 프로듀서로 전설적인 히피 페스티벌 <이노치 마츠리(いのちのまつり)〉등을 주최했다.
치바에서 농사 워크숍을 주최하다가, 3.11 지진 재해 후, 오키나와로 이주.

Bose: 그러니까 제가 처음 농사를 지었을 때, 오오야 군이 함께 있었던 거죠.

── 이번에 오오야 씨께서 Bose 씨를 지명해서 대담을 하고 있는데요. 왜 Bose 씨였나요? 

오오야: 만남의 입구가 그랬으니까, 그곳에 있는 시점에서, 살아가는 방식 면에서 가까운 장르의 사람이랄까, 이미 같은 것을 공유할 수 있을 것 같은 감각이 있었어요.

Bose: 저도 오오야 군이 베를린에 가서, 어떻게 생활을 했다거나, 충분히 2만자 정도 듣고 싶어요. 결국 베를린에 몇 년 정도 있었던 거지?

오오야: 햇수로 몇 년인 걸까요? 2010년부터, 실제 비자가 남아있던 건 2014년 정도 까지였네요. 마지막엔 왔다 갔다 했습니다만. Bose 씨와 만나고, 베를린에 가고……. 그런 경험이 점점  Polaris의 음악과 이어지는 감각이 있어요. 2006년에 Polaris 활동을 중지하고, 치바에서 여러 사람과 만나거나 베를린으로 이주하거나 했기 때문에, 환경이나 기분도 크게 달라져서, 어떤 의미에서 제 자신의 내용물이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정도로 변했어요. 그래서 2012년에 다시 활동을 시작했을 때, Polaris의 감촉이 전혀 되돌아오지 않더라고요. 일단 Polaris가 어떤 음악이었는지 시행착오를 거쳐서, 전작 『Music』을 만들고, 거기서 밴드의 근본을 직시하게 되었어요. 그럼, 한 번 해볼까라는 식으로.

그 후에 레이블을 옮겨서 환경을 바꾸거나, 라이브를 자주 하면서, 지금의 Polaris가 되었습니다. 확실히 Polaris이긴 하지만, 새로운 밴드 같은 느낌도 있고. 그래서 더욱, Polaris에 대해 말하면, “이번 앨범 노래들 중에 이 곡조는 뭐라거나…….”, “이건 사운드적으로는 어떻다거나…….” 식의 이야기가 되곤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이번엔 굳이 안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웃음).

Bose: 아니, 정말 그래요. 어떤 사람이 무얼 하느냐는 것일 뿐이니까.

오오야: 베이스 유주루 씨도, “이젠 나랑 오오야 군만 있으면 Polaris니까 어떤 음악이어도 상관없잖아”라고 말씀하시니까요.

── Bose 씨는 『천체』를 들어보고 어떠셨나요?

Bose: 아까 말했던 것처럼, 사운드적으로는 이전의 Polaris를 생각하고 있던 사람이라면, 달라진 부분이 아주 많다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저는 베를린에 가서, 생활이 달라지고……. 와 같은 부분이 더욱 신경 쓰여요. 역시,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지가 드러나게 되니까요.

오오야: 그건 정말 이미 드러나 있어요. 역시 베를린이 컸구나, 어떤 의미에서 일본을 부감해서 바라보는 것 같은. 


베를린, 가마쿠라 이주, 그리고 도쿄라는 장소의 특수성


── 왜 이주 장소로 베를린을 선택하셨습니까?

오오야: 베를린 여행을 했을 때, 우연히 <러브 퍼레이드(Love Parade)>의 후속 이벤트 같은 행사가 있었는데요. 국가로부터도 공식적으로 확실히 인정받는 이벤트였는데, 거리에서 밤새도록 난리가 났었습니다. 정말 별 볼일 없는 상점가에서 아침까지 클럽 이벤트가 있었는데, 평범한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놀러오기도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Bose: 역시 테크노의 나라(웃음). 즐길 때는 확실히 즐긴다.

오오야: 그리고 일에 관해서는 비교적 일본인과 닮았달까, 성실하고 깔끔한 편이었어요. 그렇지만 의외로 일본인이 적어서, 그것도 좋았던 것 같아요.

Bose: 그렇구나. 예전의 뉴욕의 소호처럼, 전 세계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자유로는 느낌인 걸까.

오오야: 맞아요. 그래서 처음 갔을 때 정말 놀랐던 일이 있었어요. 처음에 독일어를 잘 하지 못해서, 국립 독일어 어학교에 다녔어요. 일단 일본에서는 영어와 알파벳은 어느 정도 읽고 쓸 수 있잖아요. 그런데 거기는, 영어나 독일어로 한마디도 커뮤니케이션 할 수 없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갑자기 오게 된 65세 아저씨 이민자 등이 있는 거예요. 아랍어권의 사람들은 알파벳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전혀 의사소통이 안 됐는데, 세 번 정도 갔을 때, 그 아저씨의 이름이 알렉산더라는 걸 겨우 알게 된 적도 있어요.

Bose: 모두가 동일한 스타트 라인에 있는 것 같은 상황이 신선했겠네. 오오야 군에게는, 그런 일에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은 부드러운 인간성이라고 할까, 그런 일을 재밌어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보통은, 그 시점에서 ‘엣?’하고 물러서서, 너무 놀라버리겠지만.

오오야: 맞아요. 순수하게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Bose: 그게 대단한 것 같아. 역시 베를린은 여전히, 밖에서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자유나 예술에 대한 자유 같은, 아티스트가 모여드는 듯한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건가?

오오야: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아주 열려있어요. 그리고 독일은 아티스트 비자를 받는 게 비교적 쉬워서, 그것도 중요했어요. 아티스트로서 살아간다는 것이 보장된다. 지금까지 그런 점 때문에 독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Bose: 같이 아는 영상작가나 서예가 같은 친구들도, 그런 감각으로 베를린에 살았잖아. 왠지, 베를린을 선택해서 이주한 사람들은, 우리하고 감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 오오야 씨는 베를린이었지만, Bose 씨가 가마쿠라로 이주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나요?

Bose: ‘왜 다들 좁은 곳에 있어야만 하는 걸까’라는 의문이 계속 들어서(웃음). 나도 무엇에 얽매였는지 모르겠지만, 도쿄의 4킬로미터 권내 정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시기가 20년 정도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건, 그렇게 되게끔 길러진 탓이 아닐까 싶어요.

드 라 소울(De La Soul)이라는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고 있는 랩그룹이 일본에 왔을 때,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물었더니, “지금 한 명은 마이애미에 살고 있고, 한 명은 애틀랜타에, 또 한 명은 워싱턴에 있어.” “아니, 너무 멀잖아(웃음)!”라고 했더니, “아니, 아주 일반적이야”라는 식으로 말하더라고요. 그 얘길 들었을 때, “앗, 그렇구나…….” 싶었죠.

오오야: 맞아요. 베를린에 살았을 때, 유럽의 여러 장소에 라이브를 하러 갔었는데, 상대편 부킹 에이전트가 “미안하지만, 내일 바르셀로나로 라이브 하러 와 주세요.”라고 해서, “내일이라구요!?!” 같은 일도 있었어요(웃음).

Bose: 확실히 감각이 다르네. 이동도 “엣, 고속열차로 6시간이지?”, “비행기면 1시간이잖아” 같은 감각인거지. 하지만 특히 일본은 “좁은 곳에 모여 있지 않으면 불편해질 거예요”라고 계속 들어왔던 셈이니까.

오오야: 그래도 일본의 다른 지역에 가면 여러 곳에 로컬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의외로 그런 것 같지 않은데, 그런 느낌이 드는 건 도쿄뿐일지도 몰라요. 어떤 의미에서 로컬하면서도 풀뿌리가 남아있는 베를린으로 가서,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도쿄가 특수한 장소라는 걸 깨닫게 된 것 같아요.

Bose: 어느 나라든 그런 걸지 모르겠지만, ‘시티’라고 불리는 장소를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그 환상을 계속 보여줘서, 왠지 “거기서 멀어지면 일이 사라져요” 같은 이미지를 심어 주잖아. 그러한 것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어야 할 뮤지션이라는 사람들이야말로 도쿄에 있는 것 같고.

오오야: 처음 스페이스맨의 논에서 Bose씨와 이야기 했을 때, 이런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나네요. 그건 역시 도쿄에서 활동하면서 점점 느끼게 됐던 건가요?

Bose: 맞아. 왠지 자주 감기에 걸린다거나, 편두통이 있다거나 하는 신체적인 부분도 있었고, 정신적으로도 ‘뭐가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걸까?’, ‘잘 풀리지 않는 원인이 무엇일까?’라는 기분도 들었고.

오오야: 아아, 몸이 이미 엉망진창으로 호소하고 있던 거네요.

Bose: 그럴 때 스페이스맨을 만났는데, 거기 같이 놀러갔던 나가즈미 타카시(하나레구미) 군 등도 비슷한 상태였거든. 그래서 다 같이 논 바닥에 발을 담갔더니, 확실히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야. 가마쿠라에는 바다가 바로 그런 거니까. 바다를 걷는 것만으로도, ‘세이프’ 같은 느낌이었거든. “위험해!”라는 생각이 들면 바로 바다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지.

오오야: 저도 논을 시작한 건 같은 이유였어요. 독일은 그런 게 거리 자체거나, 숲이나 호수라거나. 저 땅에 한 번 발을 담갔다 나오면, 리셋 되어서 어느 정도 변신이 가능하니까, 그 이후로 정말 괜찮아졌어요.


Bose: 그러게 말이야. 그 외에도 친구인 오자와 켄지(小沢健二)가 쭉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그곳과의 거리감으로 이야기하다보면, 미국에서 보고 있는 풍경과 일본에서 보는 풍경이 전혀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오오야: 일본이랄까, 도쿄에서 보던 풍경과, 베를린에서 보던 풍경은 정말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Bose: 인터넷 같은 것 때문에 오픈되어 있다고는 말하지만, 결국 한 방향으로만 보이는 거겠지.

오오야: 어제, 세상을 바꿔버릴 만한 엄청난 사건(북미 정상 회담)이 일어나고 있는데, 톱뉴스에는 ‘로드맨 통곡!’이라는 뉴스가 먼저 떠서, “그쪽인거야!”라고 느꼈어요(웃음).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역시 그런 뉴스를 먼저 띄우는구나’ 싶었죠.

Bose: 그러게. 일본에서 보고 있는 뉴스는, 어떤 방향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정보, 말하자면 현재는 ‘미국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할리우드 영화만 보고 있는 상황과 같다고나 할까. 바로 옆의 나라, 가장 가까이 있는 나라의 일인데, 왜 미국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있는지. 결국 그건, 그 나라에 친구가 생기는 순간 알 수 있듯이, 문자의 측면에서 보고 있으면, 어쩐지 그렇지 않은 느낌이 들잖아. 한국 사람이라고 한다면, 한국인 친구가 생긴 순간에 한국인의 시선을 이해하게 되거나 하잖아. 텔레비전에서 내보내는 이미지와 전혀 다른.


랩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Bose)


── 지금과 같은 견해를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Bose: 랩 뮤직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는, 단순히 멋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지만, 잘 생각해 보면, 역시 펑크 같은 자세랄까, 체제에 대한 반항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부분, “이 세계에 대해 뭔가 위화감을 느낀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음악에서, 그런 “이 세계를 모조리 부수어서 무언가를 바꾸지 않으면”이라는 측면에 매료되었어요.

오오야: 사운드 같은 것이 아니었네요.

Bose: 결국은 그런 거죠. 물론 소리도 멋있었기 때문에 들었겠지만, 퍼블릭 에너미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비스티 보이즈의 시선이라면 이런 식으로 보였겠지, 와 같은 것이 점점 이어져 갔어요.

오오야: 베를린에 있었을 때, 음악이나 예술을 즐기는 방식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예술이라는 것은, 이해하는 척 팔짱을 끼고 심각하게 생각하면서 봐야한다고 생각했었는데요(웃음). 갤러리에 들어가 보면, 조금 초현실적인 그림 같은 것을 모두 즐겁게 와인을 한손에 들고 보고 있거나, 현대 미술 작품을 아이들이 둘러싸서 즐기고 있거나. 그 순간에 ‘아, 어렵다고 생각했던 예술이 이렇게 재밌는 거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 거죠.

음악에 관해서도, 그 당시에는 유행이 지났다고 여겨졌던 턴테이블이, 베를린 가전 마트에서 평소처럼 팔리고 있었어요. 게다가 그 가전 마트에 딸려있는 CD 숍에 CD 만큼의 레코드가 놓여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아, 벌써 아날로그 붐이 다시 오고 있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카세트 데크도 평상시처럼 팔고 있더라고요. 그 익숙한 모습을 보고, ‘어? 혹시 이건 시대의 유행의 문제가 아니라 면면히 계속되는 거였구나.’라는 깨달음이(웃음). 그래서 음악 자체도 “지금 이게 유행하고 있어”라는 식이 아니라, 모두 등가로 그곳에 있었어요.

Bose: 레코드 붐도 ‘몇 주째 붐이다’라는 것은 사실상 없고, 전부 계속되고 있는 거니까. 그걸 CD로 만들거나 스트리밍용 데이터로 만드는 것은, 플레이어를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하는 측의 문제라고 할까. 특별히 포맷은 뭐라도 상관없으니까.

오오야: “어떤 것이 지금 시대의 것이다”라는 것은 없어요. 베를린 사람들은 정가가 없는 것 같은 이벤트라거나, 음악이나 예술, 길거리 아티스트에게도, 만약 그게 좋으면 제대로 돈을 지불하기 때문에, 도네이션 등으로도 잘 사는 사람이 있어요. 일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감각이죠.

Bose: 대단하네, 유럽은 역시 나아가고 있는 걸까. 일본에서는 자주 “중국이나 한국과 같이 열등한 민족과는 다르게 우리는 똑똑하기 때문에 예술의 훌륭함과 그 권리에 대해, 서양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사실 시선을 당겨서 보면, 일본인의 민도가 낮은 정도라는 것이 정말(웃음). 제 자신을 필두로, 마음 속 깊이 아시아구나라고 생각해(웃음).

오오야: 애초에 음악이나 예술을 인식하는 방법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옛날부터 면면히 계승되어온 감각이 다르기 때문에, 금방 바뀔 수는 없겠죠. 예술이나 음악에 대한, 유럽의, 압도적인 포용력을 느꼈다고 할까요. 유럽에서는 여러 일을 하면서 음악을 하는 것이 비교적 자연스러운 일이고, 그런 사람이 좋은 의미에서 프라이드가 높기도 하니까. 그건 정말 멋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일본에서는 거꾸로 “음악만으로 밥 먹고 살고 있습니다.”라는 것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어느 쪽이 더 좋다는 건 아니지만.

Bose: 그러니까, 민도가 낮은 일본에서는 “뮤지션은 음악만 만든다.”와 같은 말을 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은 이런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어떤 걸 말하는지도 듣고 싶고, 어떤 맛있는 걸 만드는지도 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죠. 그래서 나도 직업란에 “래퍼 등”이라고 쓰고 있지만. 실제로 랩만으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랩을 하고, 글을 쓰고, 아이의 도시락을 즐겁게 만들고, 유쾌하게 자동차 이야기를 하고, TV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사실 전부 같은 거니까. 바꿔 말하면, “랩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오오야: 베를린에서 비자를 받을 때, 어떤 아티스트인지 물어보니까 “저는 카페를 하고 있습니다. 운영하는 것 자체가 제 예술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Bose: 우와, 멋지네. 정말 맞는 말이야. 이 가게(파라다이스 어레이)도 실은 ‘빵집’이 아니야. ‘빵집 등’이거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오오야: 그 카페를 경영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아니에요.

Bose: 좋네~ 그게 옳다고 생각해. 일본이라면 말이야, 역시 직함을 확실히 정해야 하는 기분이 들잖아.

오오야: 그게 참 곤란하죠.

Bose: 아티스트라는 말도, 일본에서는 “아티스트라니……. 너무 하잖아!”라는 식이니까.

오오야: 그렇죠. 그러면 ‘아무것도 아닌 우리’가 되는 거죠.

Bose: 그래서 “음악 등”, “작사 작곡 등”처럼 쓰면, 앞선 미래 같은 기분이 들어. 스스로는 그렇게 하고 있지만, 왠지 좀.

오오야: 그 여백을 허락하지 않는 느낌이 있죠. 그 나머지 부분이 중요한데요.

── 이제 슬슬 마쳐야 하는 시간인데요, 혹시 그 밖에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으시면…….

Bose: 이젠 뭐, 무한하지(웃음).

오오야: 무슨 대담인지 모르게 되어 버려서(웃음).

Bose: 하지만 중요한 것이 그 부분이라는 걸, 지긋한 나이가 돼서야 겨우 깨닫게 된 거지. 그게 없었으면 음악 같은 건 만들지 않았을 거야!

오오야: 이번에 「천체」를 만들게 됐을 때, 지난 번 앨범을 완성했을 무렵의 Polaris라면 한 번 그만둬도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그 정도의 심경까지 이르렀어요. 그래서 정말 처음부터 모든 환경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서, 라이브를 거듭해 차근차근 2년 정도를 쌓아 왔어요. 힘들었지만, 지금은 정말 그렇게 하길 잘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작곡도 제작도 전부, 누르고 눌러서 만들었기 때문에, 뜻밖에 충실한 작품이 나오게 됐어요. 그러니까 역시 오늘 이야기한 것들도 소중하고, 그렇게 느끼고 있는 인간은 음악을 만들어야 하는 거겠죠.

Bose: 그런 거지. 결국은 음악으로만 전할 수 있는 게 있으니까. (누군가) 만든 음악을 듣고, 무언가를 느끼고, 사람이 바뀌고. 그런 식으로밖에 세계는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번역: 고엄마(2019.1.8)

출처: https://ototoy.jp/feature/201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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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んぼ、ベルリン、生活、そして『天体』──【対談】オオヤユウスケ(Polaris) × Bose(スチャダラパー)

左からBose(スチャダラパー)、オオヤユウスケ(Polaris)

オオヤユウスケと柏原譲(Fishmans / So many tears)によるロック・バンド、Polarisが、前作『Music』から、実に3年4ヶ月ぶりとなるフル・アルバム『天体』をリリースした。OTOTOYでは今作をリリース日の2018年6月20日から1ヶ月間、独占ハイレゾ配信を実施します! Polarisサウンドを聴くなら絶対ハイレゾがオススメ! ぜひ作り込まれたそのサウンドを細部までお楽しみください。そしてこのリリースにあたり、Polarisのフロントマン、オオヤユウスケの指名によって、スチャダラパーのBoseとの対談が実現! 彼らがなにを考えて、この社会を生きているのか。2人の考え方に迫った対談をお届けします。


INTERVIEW : オオヤユウスケ(Polaris) × Bose(スチャダラパー)

浮遊感のある歌声とそれを支えるリズム隊、さまざまな要素を取り入れ、唯一無二のサウンドを構築するPolarisのオオヤユウスケ。そしてユーモアたっぷりにシニカルに社会を斬るリリックで、日本ヒップホップ・シーンの先頭を走り続けるスチャダラパーのBose。一見、繋がりが見えにくい2人だが、その出会いは10年を超え、生き方やものの見方で多くのシンパシーを感じているようだった。今回はBoseが現在生活の拠点にしている鎌倉にて取材を敢行。この対談を読んでもらえば、“Polarisサウンド”が新アルバム『天体』で大きな変化を遂げた理由がわかるはず。

進行&文 : 鈴木雄希
写真 : 大橋祐希
取材協力 : パラダイスアレイ Paradise Alley Bread & Co.

出会いは田んぼにて

──おふたりはどこで出会ったんでしょうか?

オオヤ : 仲良くなったのは、同じ田んぼで米を作ってたということからかな。千葉にスペースマンという方がいて、知り合いに田んぼを区分けしてたんです。そこで僕は2006年くらいからその田んぼを貸していただいて米を作っていて。Boseさんとはたぶん2008年くらいかな、最初一緒に草取りした記憶がありますね。

※1. スペースマン
中野雅蔵。
〈レゲエ・サンスプラッシュin 琵琶湖〉(1985年)のプロデューサーや伝説的ヒッピー・フェス〈いのちのまつり〉などを主催した。
千葉で田んぼワークショップを主催していたが、3.11の震災後、沖縄に移住。

Bose : それでぼくがはじめて田んぼをやったときに、オオヤ君とも一緒でね。

──今回オオヤさんの方からBoseさんを指名しての対談となります。なぜBoseさんと?

オオヤ : 出会いの入り口がそういうものだったから、そこにいる時点で、生き方的に近めなジャンルの人というか、すでに同じことを共有できてる感覚があったんですよね。

Bose : ぼくもオオヤ君がベルリンに行って、そこでどんな暮らしをしてたとかも、たっぷり2万字くらい聞きたいのよ。結局ベルリンには何年ぐらいいたんだっけ?

オオヤ : 足掛け何年になるかな。2010年から、実際ビザが残ってたのは2014年くらいまでですね。最後の方は行ったり来たりしていましたけど。Boseさんたちと出会ってから、そしてベルリンに行って…… みたいな経験がいまようやくPolarisの音楽と結びついた感覚があって。Polarisを2006年に活動休止にしてから千葉でみなさんに出会ったりベルリンに移住したりして、環境や気持ちも大きく変化して、ある種自分自身の中身が別人になっちゃうぐらい変わったんですね。だから2012年に再始動したときにPolarisの感触がぜんぜん戻らなくて。それでPolarisってどういう音楽だったっけなってとにかく試行錯誤をして、前作『Music』を作り、そこでバンドの根幹を見つめることが出来て。じゃあ、動こうかとなったんです。

そこから事務所を移籍して環境を変えたり、ライヴをいっぱいやったりすることで、やっといまのPolarisになっていったんです。たしかにPolarisではあるんですけど、新しいバンドくらいな感じもあって。だからこそ、Polarisって「今回のアルバムの曲のこの曲調は何とかで……」「これは音質的には…… で」みたいな話になりがちなんですけど、そういう話は今回はいいかなと思って(笑)。

Bose : いや、ほんとそうですよ。どういう人が何をやってるかだけだから。

オオヤ : ベースの譲さんとも、「もう俺とオオヤ君がやってればPolarisなんだからもはやどんな音でもいいよ」って話をしていて。

──Boseさんは、『天体』を聴かれていかがでした?

Bose : さっき言ってたみたいに、サウンド的には前のPolarisをイメージしていた人からしたら変わった部分もすごいあると思うのよ。だけど、僕はベルリン行って生活も変わって…… みたいなところが気になる。やっぱりそれでどうなったかが出てるだけだからね。

オオヤ : これはもう本当に出てますよ。やっぱりベルリンってのは大きかったですね、ある意味日本を俯瞰して見ちゃったみたいな。


Polaris/星屑

ベルリン、鎌倉への移住、そして東京という場所の特殊さ

──どうして移住する場所にベルリンを選んだんですか?

オオヤ : 旅行でベルリンに行ったときに、たまたま〈ラヴ・パレード〉の後継みたいなイベントがやっていて。ちゃんと国が公式で認めているイベントで、街中で一晩中大騒ぎしているんです。本当に何でもない商店街で朝までクラブ・イベントがやっていて、そこに普通におじちゃん、おばちゃんとかが来たりしていて、ビックリしたんですよ。

Bose : さすがテクノの国(笑)。楽しむ時はきっちり楽しむ。

オオヤ : あとは仕事に関してはわりと日本人に似てるのか、マジメだしキッチリしてるんです。だけど意外と日本人は少なくて、それもよかったかな。

Bose : そうなんだ。昔のニューヨークのソーホーみたいに、世界中からアートをやっている若い人が集まっていて、自由な感じなのかな。

オオヤ : そうなんですよ。だから最初すごいびっくりしたことがあって。最初はドイツ語があまりしゃべれなかったので、国立のドイツ語学校に通うことになったんです。こっちは一応多少の英語とアルファベットの読み書きくらいはできるじゃないですか。そこには、ひと言も英語やドイツ語でコミュニケーションが取れないアフガニスタンから突然来た65歳のおじさんの移民とかいるんですよ。アラブ語圏の方でアルファベットが読めないから、まったくコミュニケーションを取れないところから始まって、3回くらい通って、そのおじさんが「アレクサンダー」という名前だということがやっとわかるみたいな。

Bose : 全員が同じスタートラインにいるような状況って、新鮮だよね。でもオオヤくんには、それに対応するような柔らかい人間性と言うか、それをちょっとおもしろがることができるような心のゆとりみたいなものがあると思う。普通だったら、その時点で「えっ?」って引いて、びっくりしすぎちゃう感じもあるだろうけどね。

オオヤ : そうですね。純粋に楽しいなって思いましたね。

Bose : それがすごいよね。やっぱりいまでもベルリンって、外で音楽をやることに対しての自由やアートに対しての自由とかの、アーティストが集まってくるような雰囲気が続いてるのかな?

オオヤ : そういうものに対してはものすごく開かれてますね。あとドイツはアーティスト・ビザが比較的取りやすいので、その点はすごく大きかったですね。アーティストとして生きていくことが保障されている。いまでもそれがあるからドイツに住んでる人もいるし。

Bose : 共通の友達の映像作家とか書家とかでも、そういう感覚でベルリンに住んでいたよね。なんかね、ベルリンを選んで移った人たちは、自分らと感覚が近い人が多いような気がする。

──オオヤさんはベルリンでしたが、Boseさんが鎌倉に移住したのはなぜですか?

Bose : 「なんでみんな狭いところにいなければいけないんだろう」という疑問はずっとあって(笑)。僕にも何に囚われたのかわからないけど、東京の4km圏内くらいから出ずにいた時期が20年ぐらいあるんですけど。でもこれって、そうなる様に育てられてしまっただけなんじゃないかと。

デ・ラ・ソウルっていう昔から仲良くしてもらっているラップ・グループが日本に来たときに、いまどんな暮らししてるのかを聞いたら、「いま1人はマイアミに住んでるんだけど、1人はアトランタで、1人はワシントンにいるよ」って言っていて。「いや、距離遠すぎるでしょ(笑)!」ってなったんだけど、彼らは「別に全然普通だよ」くらいの感じで話していて。それを聞いたときに「あっ、そうだわ……」って思って。

オオヤ : そうですよね。ベルリンに住んでたとき、ヨーロッパの色々な場所にライヴに行ったんですけど、向こうのブッキング・エージェントから「すいませんけど、明日バルセロナにライヴをしにきてください」とか言われて「明日ですか!?!」みたいなこともありました(笑)。

Bose : 感覚が確実に違うんだよね。移動も「えっ、高速で6時間でしょ?」「飛行機だったら1時間じゃん」みたいな感覚なんだろうね。でも特に日本は「狭いところに集まっていないと不便なことになりますよ」って言われ続けてる感じで。

オオヤ : でも日本の他の地域に行くと色んなところにローカルが根ざしていて意外とそうでもないし、その感じがあるのは東京だけかも。ある意味ローカルで草の根の残るベルリンに行って、普通だと思ってた東京は特殊な場所だってことに気が付きましたよ。

Bose : どこの国でもそうなのかもしれないけど、「シティ」って言われる場所をつくるわけじゃないですか。その幻想をずっと見せて、なんとなく「そこに近くないとお仕事がなくなるよ」みたいなイメージをさせる。そういうものから1番遠くあるべきミュージシャンという人たちこそが東京にいる、みたいな。

オオヤ : 最初スペースマンのところでBoseさんと話したときに、こういう話もした記憶があって。それはやっぱり東京で活動しながらも徐々に感じてたんですか。

Bose : そうだね。なんか風邪をひきやすかったり、偏頭痛があったりっていう身体的なこともあったし、精神的にも「なにがこれをしんどくさせているんだろう?」「何がうまくいかない原因なんだろうな」っていう感じもあって。

オオヤ : ああ、身体がもうめちゃくちゃ訴えてきてたんですね。

Bose : そんなときにスペースマンとかに会ったら、一緒にそこに遊びに行ってた永積タカシ君とかも同じような状態だったりしてね。それでみんなで田んぼの泥の中に足を浸けてたら、明らかに気持ちがラクになったのよ。鎌倉だと海がまさにそれで。海を歩いてるだけで「セーフ」みたいな感じあるんだよね。「やばい!」と思ったらすぐ海に行くみたいな。

オオヤ : 僕も田んぼを始めたのは同じ理由でした。ドイツだとそれが街そのものだったり、森や湖だったり。あの地に一回足を踏み入れて出てくると、リセットされて結構変身しちゃうから、そのあと全然大丈夫なんですよね。


Polaris/グラデーション

Bose : そうだよね。あと、そういうことに加えて、友達の小沢健二がずっとアメリカにいたから、そことの距離で話してみると、アメリカで見ている景色と日本で見ている景色って全然違うなって思ったんですよ。

オオヤ : 日本というか、東京で見ていた景色と、ベルリンで見た景色って本当に違うなって思ったんですよ。

Bose : ネットとかのおかげでオープンになっているとは言いながらも、結局一方向でしか見えていないもんなぁ。

オオヤ : 昨日は、世界を変えてしまいそうなとてつもない出来事(米朝首脳会談)が起きているはずなのに、トップ・ニュースのところに『ロッドマン号泣!』のニュースの方が先に来ていて、「そっちかよ!」って思って(笑)。もちろんそれも重大なんですよ、だけど結局「やっぱりそのニュースを先にあげちゃうんだな」って。

Bose : そうだね。日本で見ているニュースは、ある方向から来た情報、つまりいまでいうと“アメリカ的な目線”でしか見えていないから、いつまで経ってもハリウッド映画を見ている状況と同じというか。すぐ隣の国、すぐ近くの国のことなのに、なんでアメリカの側から見てるんだっていう。結局それって、その国の友達ができた瞬間にわかるんだけど、文字面で見ていると、なんかそうじゃない気がしてくるんだよね。韓国の人だって、韓国人の友達ができた瞬間に韓国人の目線がわかったりするよね。テレビから流れているイメージと全然違うという。

ラップだけしかできないと思うなよ! (Bose)

──いまみたいな見方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のはきっかけがあったんですか?

Bose : ラップ・ミュージックを好きになったときは、単純にカッコイイって思ったからなんだけど、よく考えると、やっぱりパンクっぽい姿勢というか、体制に対して反抗的な目線を持っているところ「この世界に対して何か違和感がある」と思っている人たちが作っている音楽で、そういう「この世界をぶっ壊して何かを変えないと」っていう部分に惹かれていたはずなんですよ。

オオヤ : サウンドとかじゃないんですよね。

Bose : 結局はそうなんですよ。もちろん音もかっこいいから聴いていたんだろうけど、パブリック・エナミーがなんであんなことを言っていたのか、ビースティ・ボーイズの目線だったらこういう風に見えたんだ、みたいなものがどんどん繋がっていった。

オオヤ : ベルリンにいるときに、音楽とかアートの楽しみ方についても同じことを思ったんですよ。アートというものは、わかったようなふりをして腕組みをしてジーッと考えながら見ないといけないと思っていたんだけど(笑)。ギャラリーに入ってみると、ちょっとシュールな絵とかをみんな楽しそうにワイン片手に見ていたり、現代アートの作品を子供達が囲んで面白がってたり。その瞬間に「あ、難しいって思ってたアートってこういう楽しいものなんだな」というのがわかったような気がして。

音楽に関しても、その当時には下火だとされていたターンテーブルが、ベルリンの家電量販店には普通に売っていて。しかもそこの家電量販店に併設されているCDショップに、CDと同じくらいレコードが置いてあったんですよ。最初は「あ、もうアナログの再ブームが来てるのか」って思ったんだけど、よくよく見るとカセットデッキも普通に売っていることに気がついて。その馴染みかたとかを見て、「あれ?もしかしてこれは流行り廃りじゃなくて脈々とずっとあったんだな」ってわかっちゃって(笑)。だから音楽自体も「いまこれが流行っている」とかじゃなくて、みんな等価にそこにあったんです。

Bose : レコードのブームも「何周目のブームなんだ」みたいなことは本当はなくて、全部が続いているはずだよね。それをCDにしたり配信用のデータにしたりというのは、プレイヤーを売って儲けている側だけの問題というか。別にフォーマットはなんだっていいわけで。

オオヤ : 「どれがいまの時代のものだ」ということはないんですよ。ベルリンの人は定価がないようなイベントとか、音楽やアート、路上アーティストにも、それが良ければちゃんとお金を支払うから、ドネーションとかでもしっかり暮らしている人がいるんです。日本だとあんまりない感覚ですよね。

Bose : すごいねぇ、ヨーロッパってやっぱり進んでいるってことなのかな。よく日本では「中国や韓国のように劣った民族とは違って賢い我々は、アートの良さやその権利について、西洋的にわかっている!」みたいな感じで言ってるけど、本当に引いた目線で見たときの、日本人の民度の低さっていうのはね(笑)。自分を筆頭に、心底アジアだなーって思う(笑)。

オオヤ : そもそも音楽やアートの捉え方が少し違うんだろうなって。昔から脈々と受け継いだ感覚が違うから、すぐには変えられないのかも。アートとか音楽に対しての、ヨーロッパの、それはもう圧倒的な懐の深さを感じるっていうか。向こうでは、いろんな仕事を持ちながら、音楽をする方が割と自然で、そういう人の方がいい意味でプライドが高かったりして。それはかっこいいなと思ったんですよね。日本だと逆で、「音楽だけで飯食ってます」というのが大事にされてるところがありますね。どっちがいいかということではないんですけど。

Bose : だからね、民度の低い日本では「ミュージシャンは音楽だけつくってろ」みたいなことを言われがちなんだけど、本当はこういう音楽を作る人がどういうことを話すのかも聞きたいし、どんな美味しいものを作るのかも見たいと感じるのが普通なんじゃないかって思うよね。だからぼくも職業欄には「ラッパーなど」と書くんですよ。実際にラップだけでお金を稼いでるわけじゃないし、ラップをやる、文章を書く、子供のお弁当をおもしろく作る、おもしろく車の話をする、テレビでなにかをやるみたいなことは、全部同じで。逆に言うと、「ラップだけしかできないと思うなよ!」って。

オオヤ : ベルリンでビザを取るときに、どんなアーティストなのか聞かれて「ぼくはカフェをやっています。運営していること自体がぼくのアートなんです」って言っている人がいて。

Bose : うわー、いいっすね。でもそうだよね。この店(パラダイス・アレイ)も「パン屋」じゃないの、本当は。「パン屋など」なんだよね。それが普通だと思う。

オオヤ : そのカフェを経営している人は、絵も描けなければ楽器をできるわけでもないんですよ。

Bose : いいね〜。でもそれが正しいと思うわ。日本だとさ、やっぱり肩書きをハッキリ決めないといけない感じがするよね。

オオヤ : あれ困りますよね。

Bose : アーティストという言葉も、日本だと「アーティストって…… 言い過ぎだろ!」ってなるじゃん。

オオヤ : そうなんですよね。そうなると“なにでもないぼくら”になるんですよね。

Bose : だから「音楽など」「作詞作曲など」みたいなことは、進んだ未来な気がしていて。自分はそういうふうにやっているんだけど、なかなかね。

オオヤ : その余白を許してくれていない感じはありますね。のりしろが大事なのに。

──そろそろお時間も迫っているのですが、もし他にもお話しされたいことなどありましたら……。

Bose : もうね、無限だよ(笑)。

オオヤ : なんの対談なんだって感じになっちゃっうからね(笑)。

Bose : でも大事なのはそこだってことに、いい歳になってやっと気づいて来たってことだと思うんですよ。それがなければ音楽なんて作っていない!

オオヤ : 今回『天体』を作るにあたって、前作を作り終えたときこのままのPolarisなら1回やめてもいかなって思ったんですよ。そのぐらいの心境までたどり着いた。だから、本当に一からすべての環境を作り変えるところから始めて、ライヴを重ねてじっくり2年ぐらい積み重ねてきた。大変だったけど、そうしてきて良かったって、いま本当に思ってて。だから曲作りも制作も全部、込めに込めて作ったんで、とんでもなく充実した作品が出来ました。だから、やっぱり今日話したようなことも大切にしてるし、そう感じている人間は音楽を作るべきですよね。

Bose : そうなんだよ。結局は音楽でしか伝えられないことがあるからね。作った音楽を聴いてもらって、何かを感じてもらって、人が変わって行く。そういうことでしか世界は変わらないって思う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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