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갈과 이대투쟁과 ㅈㅋ.
개인적으로 올 여름 가장 고민이었던 사건/주제였던 것 같다.
어쨌든,
지긋지긋 했던 프로젝트도 마무리 했고,
잠깐 도쿄에 가서 휘시만즈도 보고 왔고,
이사한 집 첫손님으로 츠기마츠도 다녀갔고,
우이도도 오랜만에 별일 없었고,
보노보도 예상대로 순조롭게(=낮은 예매로) 진행 중이고,
캠프도 언제나처럼 실망과 기대와 실무와 한숨과 저주가 뒤죽박죽인 채로,
또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다.
굳이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조용히 끄덕일 때가 많았지만,
땀이 별로 없고 더위를 잘 타지 않는 체질 덕분에,
이번 여름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너무 뜨거워 힘들다고 할 때도
"아 오늘은 좀 더 따뜻하네" 정도로 지나갔던 것 같다.
2.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친구들과 술 약속이라도 없는 날엔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 누워 보내고 있다.
스포츠 채널을 들락거리거나
케이블 월정액 프로모션으로 철 지난 영화들을 보거나
눈을 뜨고 있는 게 피곤하면 랜덤하게 음악을 틀어놓는다.
끈적거리면 샤워를 하고,
배가 고프면 누룽지를 끓이고,
배가 아프면 비데 위에 앉고.
게다가 올 여름엔 CDJ와 (USB out이 있는) 턴테이블도 장만했다.
요컨대, 템퍼+테레비+전축+샤워기+누룽지+비데만으로 충분한 생활인 것이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점점 좁아지고,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3.
그래도 언제나 이 맘때 - 추석 즈음이 제일 좋았다.
어릴 적 옥상에 올라가 소원을 비는 것도,
동네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병나발을 불 때도,
친구들에게 닭살 돋는 삐삐 음성 메시지를 남기던 것도,
'날씨가 좋아서' 사표를 떤졌을 때도,
달을 보며 고등동 언덕길을 오르거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한바퀴 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왠지 이 무렵의 공기와 바람과 하늘이 그래도 괜찮다고, 기나긴 영면 전에 잠깐 동안의 생기를 주는 것 같았다.
4.
말하자면, 진동과 안정 사이의 딜레마 중에 '안정'을 좀 더 키우고, '진동'을 대폭 줄인 것이다.
그런만큼 local minima에 빠질 위험이 늘어나고,
삶은 조금 심심해 지겠지만,
뭐 그러든지 말든지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바람 좋은 패밀리데이 금요일 저녁에 이러고 있는 건...
자, 오늘은 마시자!
(하지만 역시 귀찮다;)
5.
모쪼록, 한 줌도 되지 않는 작은 별들이 더욱 커지기 보다는,
스스로 반짝이는 작은 별들이 무수히 많아지길...
그 방법 밖에 없다.
2016.9.9
(사진) 2002년 가을 동물원(악어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