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 공중캠프 presents 알콜토크 vol.27
: <실록 연합적군>

実録・連合赤軍.jpg


* 일시: 2020년 3월 7일(토) door open 17:00 / screening 19:00 / alcohol talk 22:30
* 장소: 공중캠프
* 회비: 무료 (술/음료 별도 주문)
* 프로그램: <실록 연합적군> 상영 후 알콜 토크

- (17:00~19:00) 식전 알콜 섭취
- (19:00~22:30) 와카마츠 코지, <실록 연합적군> 상영 (인터미션 10분)
- (22:30~24:00) 알콜 토크 + 못다한 알콜 섭취


* 상영작
: <실록 연합적군(United Red Army, 実録・連合赤軍 あさま山荘への道程)> (와카마츠 코지, 2007, 190분, 일본)


United Red Army.jpg


일본의 학생운동이 막을 내린 계기가 된 나가노의 ‘ 아사마 산장’사건을 소재로 혁명을 좇던 젊은이들이 파국에 내몰려야 했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영화. 1972년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눈 덮인 산장에서 경찰과 10여일간 대치하며 농성을 벌이다 체포된다. 이들은 당시 학생운동의 상징적 단체이던 연합적군으로 이 사건 이후 일본 학생운동은 막을 내리게 된다. 혁명전사를 꿈꾸던 젊은이들이 동료간에 린치, 살인, 이후 인질극을 벌이게 되는 과정을 치밀하게 담아냈다.



* 이번 알콜토크 vol.27은 미나상 간바레 vol.7 (MG.7)과 함께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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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Vino Veritas! (술 속에 진리가!)" [알콜토크]는 맥주 한 잔 하면서, 느슨하고 흐릿한 기분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비정기 프리 토크 이벤트입니다. 입과 귀, 앎과 삶이 분리된 강의/세미나,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내용과 과정, 학연/가방끈주의자들의 허세와 먹물질 등을 지양합니다. 쉽게 바뀌지 않는 오래된 습관에 절망하면서, 새로운 리추얼의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입니다. (물론, 술을 원하지 않는 분은 소프트 드링크(Non-Alcoholic Drinks)를 마셔도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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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ef History of "알콜토크"]

vol.1 2013.03.09 - 후쿠시마와 우리
vol.4 2014.03.08 - 후쿠시마와 밀양
vol.5 2015.05.02 - 세월호와 우리
vol.8 2016.01.31 - <옥상자국>
vol.12 2016.03.11 - <맨발의 겐>
vol.20 2017.03.11 - <핵의 나라 2>
vol.21 2017.07.28 - <전공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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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 "우리는 걷는다 단지 그뿐(ぼくらは步く ただそんだ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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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캠프

2020.02.01 21: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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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적군파: 내부 폭력의 사회심리학(死へのイデオロギー ー日本赤軍派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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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캠프

2020.10.08 12:22:51
*.223.39.182

[페이스북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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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캠프

2020.10.17 11: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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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核派拠点を警視庁が家宅捜索 関係者が立ち入りの捜査員を検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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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캠프

2026.05.12 12: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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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3시 30분,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가라 가라 두 번째 처녀>(1969) 상영 후에 이번 ‘일본영화의 풍경론’ 특별전의 주제이기도 한 ‘풍경론’에 대한 히라사와 고 평론가의 강연과 관객과의 대화가 있을 예정이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특별전을 개최한 것이 2006년 5월이니, 꽤 오래전 일이다. 특별전에 맞춰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 관객과 이야기를 나눴고, 때마침 한국에서 <수>를 작업 중이던 최양일 감독이 극장을 찾기도 했다.

그날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이 6-70년대와 달리 투쟁의 방식이나 출구를 모색하는 것이 달라져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물었다.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은 자신이 지금 제작 중인 <실록 연합적군>(2007)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방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총, 칼로 사람을 죽였지만 지금은 대량 살상 무기로 사람을 죽이죠. 그런 상황 속에서도 어떤 식의 다른 방식으로 가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사마 산장 사건’ 때 그들은 왜 그렇게 서로를 죽여야 했었는가. 연합적군도 죽었고, 경찰 3명, 민간인 1명이 죽었습니다. 그 상황을 지켜보면서 왜 그래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은 계속 가졌었습니다. 서로 생김새도 비슷하고 같은 언어를 쓰는데 말이죠. 당시 ‘아사마 산장 사건’이 있었을 때 저는 TV 방송에 나가서 ‘이 젊은이를 믿는다’고 성명 발표를 했었습니다. 그때까지 적군이나 응원하는 사람들은 완전히 침묵을 지켰는데 저만 공식적으로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그런 식으로 싸웠던 것이 과연 옳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그런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 이번에 <실록 연합적군>을 찍을 생각입니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은 미시마 유키오의 할복을 다룬 <11.25 자결의 날>(2012)을 만들기도 했는데, 그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와 만나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는 10월 12일 도쿄에서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인터뷰에서 <실록 연합적군>과 <11.25 자결의 날>이 실은 쌍둥이 같은 작품이라 말했었다. 그는 ‘이 두 작품은 1970년대 일본 사회의 좌익과 우익을 대표하는 사건을 그렸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는 정반대 입장에 있다. 하지만 나라를 극진히 사랑하고,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비슷하다. <실록 연합적군>의 좌익 학생운동 단체 ‘연합적군’이 동료끼리 살인을 벌이고, <11.25 자결의 날>의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을 한 건 자기 자신을 위해서나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모두 세상의 모순을 바로 잡기 위해 그런 어마어마한 행동을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실록 연합적군>과 <11.25 자결의 날>은 세상을 바꾸려 했던 방법이 다를 뿐,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좌익의 방법과 우익의 방법 중에 어느 것이 맞는지는 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상한 말이지만, ‘나도 모르겠다’는 말에 이끌렸다. 그가 했던 마지막 말에는 지금의 정치 상황에 대한 암울한 생각이 짙게 깔려 있었다. “1970년대는 혁명의 시대였다. 그때 난 ‘세상을 바꾸는 건 결국 총을 드는 폭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총을 들 수 없었기 때문에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영화를 찍었다. 남들이 찍지 않는 영화를.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일본 사회는 완전히 바보가 돼 버린 것 같다. 이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선거밖에 없다. 한데 그 방법도 암울하긴 마찬가지다. 난 지금의 일본 국회의원들을 전부 다 죽이고 싶거든.”

오늘 히라사와 고의 강연에서는 주로 ‘풍경론’에 대해서 다룰 예정이라 와카마츠 코지의 작품이나 시대적 맥락이 생소한 관객들을 위해서 당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와카마츠 코지 심포지엄’의 내용 일부를 조금 길지만 원본 내용으로 소개한다. 긴 이야기의 축약본은 아래에 올린 ‘시네마테크 소식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때의 만남이 계기가 되어 일본에서 발매된 ‘와카마츠 코지 초기걸작선’의 DVD 박스세트에 ‘가라 가라 두 번째 처녀’에 관한 짧은 글을 썼었다. 2006년의 심포지엄에서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 ‘저는 자기 손을 더럽혀서라도 영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한 영화에 대해서는 시효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범죄 같은 경우는 보통 공소시효가 있는데 영화는 필름이 남아 있는 한 감독이 죽어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던 것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적었다.

—————
심포지엄: 와카마츠 코지의 세계 (2006.05.20)

김성욱:
먼저 이번 특별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재작년부터 일본의 60, 70년대 영화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행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 첫 번째가 ‘일본 ATG 영화 특별전’이었습니다. ATG가 돈을 투자했지만 배급은 하지 않았던 이상한 영화가 되어 버린 <천사의 황홀>도 그 때 상영을 했었습니다. 일본의 60, 70년대 영화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쇼치쿠 영화사에서 뛰쳐나와 그 이후에 만든 영화들 정도의 윤곽만을 갖고 있을 뿐, 60년대 중반부터 70년대에 이어지는 일본의 영화들을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재작년 ‘일본 ATG 영화 특별전’을 통해서 알려지지 않은 일본 영화들을 보게 되는 기회를 갖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ATG 영화들의 기원적인 영화라고 볼 수 있는 50년대 말부터 60년대 초반에 이르는 언더그라운드 영화들, 실험적인 영화들, 전위적인 영화들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특별전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재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ATG 특별전을 하게 되면서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 ‘전주국제영화제’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그 때 저도 참석자로 ATG 심포지엄에 참석하게 되면서 처음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얼굴을 뵈었는데, 이장호 감독의 표현대로 찰슨 브론슨 같은 외모에 연세가 많으신데도 굉장히 순진하고 순박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때 히라사와 고 씨와 와카마츠 특별전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얘기를 나눴었고, 일단 그 전에 일본의 언더그라운드 영화들, 그 전사가 되는 영화들을 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는 언더그라운드 영화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올 해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영화를 소개하게 됐습니다. 히라사와 고 씨의 얘기를 들어보니,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전작은 아니지만 10편이 넘는 영화를 묶어서 특별전을 하게 된 것은 일본 이외의 지역에서는 처음 있는 행사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행사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영화는 올해 2월에 ‘생 드니’라는, 주로 정치적인 영화를 많이 상영하는 특별한 영화제에서 ‘Sex is Politics’라는 제명 하에 상영되기도 했습니다. 그 때 와카마츠 코지 감독도 프랑스에 가서 프랑스 관객들과 직접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그 때 제가 프랑스에 있었는데 감독님을 직접 뵙지는 않았지만 그 영화를 보고 온 관객들의 놀라운 반응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보자면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을 전 세계에 소개하는 일환 중의 하나가 이번 서울에서 열리는 특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영화를 보신 분들은 영화가 다루고 있는 성과 폭력, 정치적인 문제, 다양한 시각적 표현들에서 놀라움을 많이 받으셨을 것입니다. 몇몇 관객들의 반응을 들어보니 어떻게 저 시절에 저런 이야기와 문자를 썼을까, 테러, 폭파, 혁명 이런 문구가 과연 허가됐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는 분도 있었습니다. 저도 의구심이 들어서 감독님에게 여쭤봤는데 뭐든 해도 괜찮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행동들을 했고, 영화를 다른 방식으로 상영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와카마츠 코지 초기 걸작선’을 통해 60, 70년대 일본 영화의 새로운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이 영화들이 처해있고 다뤘던 시대적 맥락들과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영화가 갖고 있는 특정한 문제들에 대해 히라사와 고 씨가 발언을 해주시겠습니다.

히라사와 고:
관객과의 대화를 들어보니까 당시 일본의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그런 부분에 대해 먼저 말씀드릴까 합니다. 일본의 전후사, 한국에서는 해방 이후사라고 말하는 1945년 이후 시기죠. 초기에는 일본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좌익의 주도세력이었습니다. 50년대 전반까지 일본공산당은 무장투쟁 노선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1955년에 의회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하겠다는 식으로 방향 전환을 했고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스탈린 비판이 1956년에 있었습니다. 50년대 중, 후반으로 넘어가는 그 시점에서 일본 공산당은 그 역할을 끝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50년대 후반에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공산주의자 동맹, 독일에서는 분트라고 불렀는데 그 분트라는 세력이 등장하게 됐고, 그 세력들이 1960년 ‘미일안전보장조약’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중심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한국에서도 소개됐겠지만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일본의 밤과 안개>라는 작품에서는 일본공산당의 퇴폐성과 새로 등장하게 된 신좌파들을 그리고 있습니다. 1960년 안보투쟁은 결국 패배하게 되었는데 그 이후에는 운동 침체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속에서 와카마츠 코지 감독은 <벽 속의 비사>를 찍었습니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일본의 밤과 안개>가 안보투쟁의 상황을 그리려고 했다면, 와카마츠 코지 감독은 <벽 속의 비사>를 통해서 포스트 안보 세대, 그런 사회의 상황을 그리려고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67년, 1968년쯤을 중심으로 ‘전학공투회의’ 운동이 생겼죠.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작품들에도 그 활동가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번에 상영된 작품들도 1967년, 1968년도 무렵의 작품이니까 전공투 운동과 함께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공투 운동에 발맞춰 했다고 하기보다는 전공투 옆에 있으면서도 비판적이고 비평적인 위치에서 전공투 뿐만 아니라 운동이라는 것 자체에 자극을 주기 위한 영화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영화가 가질 수 있었던 전공투 운동에 대한 거리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세계적으로 봐도 1968년이라는 해를 아주 특권화 시키려는 움직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벽 속의 비사>가 1968년보다 이전인 1965년도에 만들어진 것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1968년의 특권성이라는 것을 넘어서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60년대 중반의 혼돈스러운 상황을 그린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도 그 작업들이 전공투 운동을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전공투 운동에 앞섰기 때문에 그런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시기의 영화들에 대해서 그 후에 오는 전공투 운동에 대해 예견했다는 의견이 많은데,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영화야말로 예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가 정치적인 배경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작품들을 생각할 때 또 하나 중요한 특징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독립 프로덕션인 와카마츠 프로덕션을 만들어 거기에서 영화제작을 했다는 것입니다. 와카마츠 프로덕션이라는 것은 <벽 속의 비사>가 베를린 영화제에 출품된 것을 계기로, 물론 당시 일본 내에서는 국치라고도 했었지만, 스스로 제작사를 설립해서 자유로운 영화를 제작하자는 의도에서 설립되었습니다. 60년대 전반쯤에는 정치적인 신좌파들의 태동과 마찬가지로 영화인들도 메이저 영화사에서 탈퇴해서 자기 스스로 제작사라는 것을 만들던 시대였습니다. 그 시기에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을 비롯한 쇼치쿠 누벨바그 사람들도 자기 제작사를 만들었던 흐름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지만,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프로덕션은 그런 사람들의 프로덕션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다른 프로덕션 같은 경우는 중심적인 작가가 있고 그 사람이 영화를 찍을 수 있게 하는 프로덕션이라는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와카마츠 프로덕션은 거기에 모인 아다치 마사오 같은 다양한 작가들, 조감독들이 감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그 시대에서 와카마츠 프로덕션 말고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와카마츠 프로덕션이라는 공간 자체가 하나의 자율 공간으로서 기능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거기에서 만든 영화들이 핑크영화 전용관에서 상영됐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와카마츠 코지 감독은 핑크 영화의 거장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했었는데 본인은 그런 호칭에 대해 약간 거부 반응을 보이기도 하죠. ‘나는 핑크 영화라는 장르를 무기로서 이용했을 뿐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그렇게 감독이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그 때의 배급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보통 독립영화가 아닌 상업적인 장르 영화 같은 경우 제작사에서 먼저 요청이 들어와서 제작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와카마츠 프로덕션에서는 먼저 제작에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돈을 모아서 제작을 하고 잘 팔 수 있을 것 같으면 그것을 핑크영화관에 넘기면서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영화제작을 할 수 있었습니다. 1967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생긴 ’ATG 언더그라운드 전갈자리‘라는 소극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만 상영한 작품들도 많았습니다. 혹은 대학이나 운동현장에서만 상영됐던 작품들도 있습니다. 핑크 영화관에서 상영을 안했던 작품도 많이 있다는 거죠. 이번에 상영한 작품 중에도 제목은 핑크영화 같지만 아닌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핑크 영화라는 장르를 넘어 와카마츠의 영화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동시대적인 언더그라운드 작가들을 보면 이렇게 많이 찍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많이 히트작을 냈다는 데 그 성공의 비결이 있는 거죠. 핑크영화로서 찍으면 그것이 상업적으로 성공을 하고, 그렇게 성공을 해서 벌어들인 돈으로 다른 전위적인 영화들의 작품을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좀 전에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 제가 좋아하는 영화만 고른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부분에 대해 어떤 의미에서는 자아비판이 될 수도 있는 말을 해야겠습니다. <더럽혀진 백의>나 <처녀 게바게바>는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작품이기도 한데 사실 100편이 넘는 영화 중에서 이런 작품들은 주변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영화 중에는 많은 히트작이나 시리즈물도 있습니다. 많은 관객들이 봤다는 점에서는 그런 영화가 오히려 대표작이라고 할 수도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아주 다양한 와카마츠 코지의 작품이라는 게 존재하는데 전위적, 정치적, 폭력적인 것만 갖고 이것이 와카마츠 코지의 영화라고 말하는 것은 약간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상영된 것도 대부분 예술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먼저 이런 예술적이고 전위적인 영화들을 소개하고, 그 다음에 다른 스타일의 영화를 소개하고 점차 범위를 넓혀가는 그런 방식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감독님이 동의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같이 하는 프로그래머나 큐레이터들도 오히려 그런 방식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서 일단 이런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본 국내에서 하는 경우에는 사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라는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접근이라는 게 가능하죠. 일본 국내에서는 특별한 영화만 상영해도 하나의 접근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세심하게 주의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초기 걸작선‘이라는 식으로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초기작품들이 DVD로 나오고 있는데 12편을 골라 두 달 뒤에 완결될 것입니다. 후기 작품들은 메이저에서 한 것이 대부분이라 이미 DVD로 나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와카마츠 프로덕션의 자율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다시 얘기하고 싶습니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영화를 보면 각본가로서는 초기에는 오타니 요시아키라는 필명으로 나오고 나중에는 데구치 데르라는 집단의 필명으로 각본가 이름이 나옵니다. 오타니 요시아키라는 이름은, 닛카츠의 조감독 그룹이 각본을 썼었는데 회사 외부의 일을 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 자기 이름 중 한 자씩 뽑아서 만든 이름입니다. 처음에는 누군지 숨기기 위해 했었는데 나중에는 아예 집단적인 각본 작업을 한다는 의미에서 데구치 데르라는 이름으로 작업을 진행시켰습니다. 그렇게 단수의 이름이 아닌 복수의 이름으로 각본이나 영화작업을 진행시켰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운동체로서 집단적인 신체성을 획득해가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그런 방식이 택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작 집단으로서 와카마츠 프로덕션이라는 것이 집단성을 지닌 운동체처럼 활동을 했었다는 거죠. 그런 사상은 와카마츠 프로덕션뿐만 아니라 와카마츠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작품들에서도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천사의 황홀>의 폭파장면이나 주인공이 마지막에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 가는 장면, 또는 <성의 도적:섹스 잭>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다리를 건너는 장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영화의 주제와도 관련되는데, 지도자라든가 위에 있는 사람들의 위치에서 보는 게 아니라 군중의 위치에서 혹은 개 같은 위치에서 본다는 거죠. 아니면 폭탄을 던지는 한 개인, 한 병사로서의 위치에서 영화를 보는 게 이 작품들의 특징일 수 있습니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의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주인공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거나 주인공의 시선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장면에서 이런 특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라는 사람의 위치가 물론 특권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그런 것도 사회적, 역사적인 전체 속에서 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는 70년대 이후 개인의 시대, 즉 큰 정치에서 작은 정치나 일상, 작은 부분으로 주목하게 됩니다. 그런데 80년대 이후에 신자유주의라는 게 전개되는 과정에서 개인이 소비자로 환원되어 있는 게 현실입니다. 개성이나 개인은 집단적인 운동 속에서 단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와카마츠 프로덕션이 했던 실험은 다양한 관점에서 검증되고 참조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핑크영화와 로망 포르노에 대한 해설적인 말씀을 덧붙이겠습니다. 핑크영화는 1962년에 시작된 한 장르를 말합니다. 핑크영화는 대체로 독립 약소 제작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로망포르노는 메이저 영화사인 닛카츠가 만든 것인데 기존 스타일로는 어려우니까 70년대 초쯤 기존에 있었던 핑크영화라는 것에 접목해서 만든 것입니다. 닛카츠는 자기 제작소와 촬영소가 있었는데 이런 예산규모나 제작방식 등의 실제제작 방식도 그렇고 사상적으로 봐도 전혀 다른 것입니다. 물론 로망포르노 중에도 훌륭한 작품은 있습니다. 그런데 장르로서 전혀 다른 영화라는 것을 인식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성욱: 와카마츠 코지 감독도 그렇지만 60, 70년대 영화들이 갖고 있는 몇 가지 특징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당시 시대적인 권력, 보통 얘기하는 강권에 대항하는 그런 내용들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내용만이 아니라 형식, 그러니까 표상에 대한 공격도 가늠하는 부분이 있죠. 히라사와 고씨도 지적했지만 <천사의 황홀>의 마지막에 나오는 국회의사당이나 후지산의 풍경, 폭파 장면 같은 것처럼 말이죠. 또 하나는 이 시절의 영화가 제작 자체가 완전 달랐다는 점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와카마츠 프로덕션 자체가 일종의 자율공간이었다는 것, 이 당시에 만들었던 영화가 핑크영화라고 불리는 것인데 배급과정도 일반 영화와 상당히 달랐고, 이런 영화들은 예술적인 영화라고 불릴만한 영화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술영화가 아니었다기보다는 기존의 부르주아적인 예술을 지향한다든가 안락한, 혹은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예술적 지향성을 가진 영화가 아니라 대중들과 특정한 시대, 대중들에 대한, 어떻게 보면 공격적인 영화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영화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한편으로는 지금의 관객들에게 부분적으로 예술적으로 보여지는 일종의 시간적 격차는 있는 것 같습니다. 히라사와 고 씨에게 정황적인 얘기들을 들었고, 이제 감독님에게 한두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당시 감독님의 영화를 핑크영화라 불렀고, 감독님을 핑크영화의 제왕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감독님에게 있어서 핑크영화란 무엇이고 그 정신은 어떤 것인지, 여전히 헷갈리는 로망포르노와는 어떤 차별성을 두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몇 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핑크리본>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당시의 영화감독들 특히 와카마츠 코지 감독이 자주 등장하는 다큐멘터리였고 여러 다양한 감독들의 견해가 나오더군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핑크영화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와카마츠 코지:
핑크영화라는 말은 신문기자가 만든 말인데 그렇게 핑크영화라고 소개한 것이 이상하게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 자체가 유행어가 됐는데, 그 후로 모든 사람들이 이 장르를 핑크영화라고 부르게 된 거죠. 저로선 상관없었습니다. 핑크영화든 조폭영화든 상관없었습니다. 저는 단지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걸 찍었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알려지면서 잡지 같은 데 기사가 나오게 됐죠. 그렇게 핑크영화가 유명해졌는데, 7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평론가들이 핑크영화에 대해 칭찬을 하더군요. 그 칭찬이 일반화되면서 핑크영화가 메이저가 되어버린 것이죠. 그렇게 되니까 재미가 없었습니다. 저는 영화는 음지에서 출격을 해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핑크영화가 메이저가 되니까 관심이 떨어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저도 메이저 영화사에서 돈을 받고 영화를 찍게 되었죠...좀 전에 히라사와 고 씨도 지적했지만, 제가 그런 식으로 영화사에서 일하면서 감독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거든요. 와카마츠 프로덕션에 들어온 사람들도 모두 감독을 하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여 그런 사람들을 모두 감독을 시켜줬습니다. 빚을 내면서 감독을 시켰으니까 그때는 물론 어려웠죠. 모두 무명 감독들이었으니까요. 영업을 많이 하면서 힘들었지만 덕분에 그 후로는 칭찬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인재들을 배출했으니까요.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만드는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드는 게 재미있어서, 즐거워서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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