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Fishmans!(my fishmans life)


[음악 위인전 제15회]


사토 신지(휘시만즈) (후편)


: 끝이 없는 창조성



シングル「BABY BLUE」発表時のフィッシュマンズ。



일본 음악사에 손톱 자국을 남긴 아티스트의 업적을 되짚어보는 연재. 이번엔 지금부터 20년 전 급서한 휘시만즈(フィッシュマンズ) 사토 신지(佐藤伸治)의 후편을 공개한다. 폴리도르(ポリドール) 레코드 이적까지의 행보를 되돌아본 전편에 이어, 이번에는 휘시만즈가 극적인 음악적 진화를 이룬 활동 중기 이후의 여정을 쫓는다. 프라이빗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면서, 사토의 크리에이티비티는 더욱 가속 일로를 걷게 되고, 휘시만즈는 명곡 「나이트 크루징(ナイトクルージング)」을 시작으로 일본 록 역사에 남는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낸다.


글 / 오노지마 다이(小野島 大)




프라이빗 스튜디오 입수



1995년 6월, 휘시만즈는 폴리도르 레코드와 계약했다. 마침 스피츠(スピッツ)가 크게 성공하면서, 일본음악 부문을 더욱 확대하려고 했던 이 레이블은 휘시만즈를 "넥스트 스피츠"로 기대했을 지도 모른다. 스피츠와 휘시만즈는 메이저 데뷔 전부터 자주 함께 공연했으며, 당시에는 음악성도 가깝고, 나이도 비슷했기 때문에 비교되는 경우도 많았고, 팬들도 많이 겹쳤던 것 같다. 하지만 주위의 기대를 저버리고, 휘시만즈는 이적을 계기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무시무시한 진화를 이루게 된다.



이적이 결정되고, 새로운 디렉터로 휘시만즈를 담당하게 된 사노 토시야(佐野敏也)를 ZAK가 찾아왔다. 천천히 시간을 들여 앨범을 제작하기 위해 스튜디오를 만들고 싶으니, 그 예산(스튜디오 기자재 비용, 임대료 등)을 제작비의 어드밴스(선도금)로 달라는 전대미문의 요구였다. 당시 음악 산업은 뒤늦게 찾아온 버블에 휩싸여 있었다. 밴드 붐은 오래 전에 끝났고, 라이브 하우스는 뻐꾸기가 울고 있는(역주: 파리가 날리는) 상황이었지만, CD 매출은 우상향으로 꾸준히 늘고 있었다. 이런 어이없는 요구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2년 동안 앨범 3장을 만드는 조건으로 휘시만즈는 자신만의 프라이빗 스튜디오를 손에 넣었다. 아와시마길(淡島通り)의 작은 2층 건물을 개조하여 만든 「와이키키 비치 ~ 하와이 스튜디오」(정확히는, 건물 전체의 이름이 「와이키키 비치」, 2층 스튜디오 부분이 「하와이 스튜디오」, 1층 로비 부분이 「와이키키 오션 뷰 호텔」)이었다. 마침 Pro Tools 등 DAW 소프트웨어가 보급되기 시작했을 무렵이어서, 개인의 프라이빗 스튜디오에서도, 컴퓨터를 이용한 저렴한 디지털 레코딩 시스템으로 프로 수준의 레코딩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시기였던 것도 다행이었다. 고가의 프로용 렌탈 스튜디오에서, 돈과 시간의 제약을 신경 쓰며 만드는 것보다, 마음이 내킬 때 스튜디오에 가서, 하루 종일 있을 수도 있고,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언제든 원하는 때 레코딩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것이다.


레이블 이적의 관계로 반 년 동안 레코딩을 할 수 없는 제약이 있어, 멤버에게는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시간에 쫓기는 생활을 싫어하는 사토 신지(Vo)에게 있어 “한가함(ヒマ)”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그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사토는 운전면허를 땄다. 차를 타고, 창문으로 보이는 경치로부터 사토는 새로운 인스퍼레이션(inspiration)을 받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명곡 「나이트 크루징(ナイトクルージング)」이다.


작곡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1995년 7월부터 신작 앨범 「공중캠프」 리허설에 돌입. 그런데 이 타이밍에서 갑자기 하카세(Key)가 밴드를 탈퇴한다. 자신의 음악에 전념하고 싶다, 라는 이유였다고 하지만, 하카세가 있는 걸 전제로 만들어진 곡은, 당연히 큰 궤도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오지마 켄스케(G)에 이어 하카세도 탈퇴하여 밴드는 5인 편성에서 3인 편성이 되어 버렸지만, 레이블을 이적하고, 자신들의 스튜디오도 생겼기 때문에, 적극적인 의욕으로 충만했던 사토와 멤버들에게는,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만드는 것 같은 기세가 있었다. 하카세의 빈틈은 HONZI(Violin, Key), 코구레 신야(木暮晋也, G/힉스빌(ヒックスヴィル)) 등의 서포트로 채웠다.



명곡 「나이트 크루징」 완성



8월이 되어 드디어 와이키키 비치가 완성. 작은 스튜디오여서 제약도 있었다. 큰 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생드럼은 쓰지 못하고, MIDI 드럼을 사용해 레코딩을 해야 했다. 기타와 베이스도 앰프를 사용하지 않는 라인 녹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 명이 함께 모여 동시에 녹음 할 수가 없어서, 한 명씩 악기를 오버 더빙 해 나가는 방식으로 녹음을 했다. 밴드가 일체가 된 박력이나 다이너미즘(역동성)을 희생할 수도 있는 제작 태세였지만, 그만큼 자유롭게 소리를  바꾸고 가공할 수 있게 되어, 미세하게 델리킷(예민)하고 공간적인 확장을 느끼게 하는 음향적인 사운드 제작이 가능해졌다. 말하자면 “홈 레코딩(宅録)”의 환경에서 록 밴드의 사운드를 만든 것이다. 그것은 당연히, 예전 그대로의 ‘록’과는 다른 위상의 것이 되었다. 지금은 그런 밴드와 음원이 드물지 않지만, 휘시만즈가 그 선구의 하나였던 것은 틀림없다.



シングル「ナイトクルージング」(オリジナル発売日:1995年11月25日)

싱글 「나이트 크루즈」 (오리지널 발매일 : 1995년 11월 25일)



같은 해 11월, 싱글 「나이트 크루징」 발매. 명함 교체의 이적 제1탄 싱글로서는 모험일 수 있는 6분 이상의 대작. 휘시만즈의 변화, 진화, 심화를 보여준 명곡 중의 명곡이다. 「ORANGE」의 연장 선상에서 팝적인 휘시만즈를 기대했던 사람들의 당혹스러운 목소리도 높았지만, 이 곡의 완성이야말로 휘시만즈를 예외적이고 특별한 존재로 만들고, 오늘날까지 전설적인 밴드로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모테기 킨이치(Dr)는 이렇게 말했다.


「만들고 보니 그렇게 된 느낌이랄까. 처음 데모 테이프로 들었을 때는, 그렇게 달라진 느낌이 아니었거든요. 녹음하고 TD가 완성되면서 극적으로 변화했던 거죠」(서적 「휘시만즈 전서」)


「평범한 스튜디오에서, 보통의 드럼 세트를 두고, 하나 둘 셋 하고 사운드를 내면, <나이트 크루징>은, 저런 감촉은 나오지 않았어요」( 「뮤직 매거진」 2006 년 2 월호 )


모테기의 발언은, 「나이트 크루징」에서의 휘시만즈의 변화가, 사토의 송라이팅 상의 변화 보다는 밴드의 음향 면이나 어레인지 등 “문체” 상의 변화가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5년에 발매된 베스트 앨범 「우주 베스트 오브 휘시만즈(宇宙 ベスト・オブ・フィッシュマンズ)」에는, 「나이트 크루징」의 데모 버전이 수록되어 있어, 완성판과의 차이를 잘 알 수 있다. 리듬 박스의 간소한 리듬과 사토의 생기타 연주로 포크송처럼 노래하는 이 버전은, 물론 가사와 멜로디는 같지만, 완성 버전과는 전혀 다른 인상이다. 단순히 좋은 곡을 만들고 노래하는 것만이 아닌 경지에 그들은 점점 도달해 가고 있었고, 자그맣고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그릴뿐 아니라, 그 풍경의 쩍하고 벌어진 균열(裂け目)로부터, 미칠 듯 아름다운 비일상의 다른 세계를 엿보는 것 같은, 그런 이매지네이티브(imaginative)하고 사이키델릭한 세계를 획득하고 있었다. 사토는 「이 무렵부터 보는 것의 풍경이 모두 변했다」고 말했다.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의 풍경이 그의 마음 속에서 왜, 어떤 식으로 변해 갔을까. 생전의 사토는 자세히 말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변해 갔던 풍경을 멜로디에, 가사에, 사운드에, 음악에 아로새기는 보기 드문 재능이 그에게는 있었다. 사토가 본 비일상의 풍경이, 미친 듯이 증식하는 이매지네이션(imagination)이, 와이키키 비치의 레코딩 환경에 의해 적확하게 음상화되었다. 멤버와 스태프가 자유롭게 스튜디오에 드나들며 꾸준히 레코딩을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동안, 그 풍경은 자연스럽게 공유되어 갔던 것이다. 「나이트 크루징」, 「공중캠프」에는, 그런 공기감이 응축되어 있다.



5thアルバム「空中キャンプ」(オリジナル発売日:1996年2月1日)

5th 앨범 「공중캠프」 (오리지널 발매일 : 1996년 2월 1일) (*역주: 1995년 3월 17일 발매된 라이브 앨범 「Oh! Mountain」을 제외하면 다섯 번째 앨범이 맞지만, 일반적으로는 (「짓쇼만즈(1997년 휘시만즈가 자체 제작한 <휘시만즈판 우주어 일본어 세타가야어 사전>)」에서와 같이) “여섯 번째 앨범”으로 설명하고 있다.)



「空中キャンプ」発表時のフィッシュマンズ。

「공중캠프」 발표 시 휘시만즈



「LONG SEASON」의 충격



앨범 「공중캠프」는 96년 2월에 발매되어, 극찬을 받았다. 특히 테크노~댄스 뮤직 일대와 서브 컬쳐 주변의 미디어로부터 주목을 받아, 지금까지의 “일본의 록” 코뮌으로부터 비어져 나온 지지층이 생겨났다. 이후, 미디어에서의 노출이 현격히 증가하고, 투어의 횟수도 늘어났다. 「젊지만 역사가 있다(若いながらも歴史あり)」 투어부터는 HONZI와 다츠 세키구치(G)가 함께 연주했는데, 이후 휘시만즈의 라이브는 이 두 사람의 서포트로 열리는 것이 많아졌다. 특히 HONZI가 완수한 역할은 음악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컸다, 라는 스태프의 증언도 있다.



佐藤が表紙を飾った「Quick Japan Vol.18」表紙(画像提供:Quick Japan編集部 / 太田出版)

사토가 표지를 장식한 「Quick Japan Vol.18」 표지 (사진 제공 : Quick Japan 편집부 / 오오타 출판(太田出版))



그 해 9월에는 뉴 싱글 「SEASON」을 릴리즈. 게다가 다음 달에는 그 확대판인 35분 1트랙 앨범 「LONG SEASON」이 발매된다. 「공중캠프」는 여덟 곡이 한 곡 같은 앨범이니까, 그럼 앨범 한 장을 정말 한 곡으로 만들어 보자, 라는 멤버들의 잡담이 아이디어로 발전해 갔다. 「SEASON」을 기본으로 몇 번의 세션을 거듭한 뒤, 그걸 바탕으로 와이키키 비치에서 멤버 전원과 ZAK의 아이디어로 세세하게 에디트해 나갔다. 모니터를 너무 많이 봐서 ZAK의 눈에서 피가 흘렀다는 에피소드도 남아 있다.



6thアルバム「LONG SEASON」(オリジナル発売日:1996年10月25日)

6th 앨범 「LONG SEASON」 (오리지널 발매일 : 1996년 10월 25일) (*역주: 6th -> 7th)



「LONG SEASON」発表時のフィッシュマンズ。

「LONG SEASON」 발표 시 휘시만즈



전편에도 말했듯이, 「King Master George」 투어를 보고 실망한 뒤, 그들에 대한 적극적인 흥미를 잃었던 내가, 오랜만에 제대로 들었던 휘시만즈의 앨범이 이 작품이었다. 그 사이 불과 4년만의 무시무시한 진화에 기겁해, 황급히 거슬러 올라가며 들었던 「공중캠프」에 다시 충격을 받고, 단숨에 그들의 음악에 빠져들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휘시만즈의 작품 중에서도 특히 인상이 깊다. 당시의 리뷰에서 나는 「드럭 투성이가 된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이라고 표현했지만, 더브(dub)의 메탈릭하고 왜곡된 사운드 스케이프가 테크노~앰비언트를 거쳐 초기 Pink Floyd까지 삼킨 듯한 사이키델릭하고 애트머스페릭스(atmospherics)하며, 프로그레시브하고 이매지네이티브한 사운드는, 동시에 꿈속을 떠다니는 듯한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장편이지만, HONZI, 다츠 세키구치, ASA-CHANG, 사토 타이지(佐藤タイジ), UA 등 다채로운 게스트가 참가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마음껏 집어넣어 결코 듣는 사람을 지겹게 만들지 않는다. 그들의 창조성이 피크에 도달했던 시절의 대걸작이다. 같은 이름의 투어 「LONG SEASON '96~'97」의 마지막 날인 12월 26일, 도쿄 아카사카BLITZ(赤坂BLITZ)에서의 엄청난 라이브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https://youtu.be/ZJj1bvdMtoA



멤버의 고뇌



새해가 되어 97년 2월 말 일곱 번째(*역주: 여덟 번째) 앨범 「우주 일본 세타가야(宇宙 日本 世田谷)」의 레코딩 시작. 「2년 동안 앨범 3장」이라는 계약의 압박이 있었다고는 해도, 「공중캠프」, 「LONG SEASON」이라는 힘이 담긴 앨범을 만들고, 틈틈이 투어와 이벤트 출연, 미디어 대응 등 안그래도 바쁜 중에, 지나치게 빡빡한 스케줄이었다. “한가하게 있는 것”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겼던 사람이, 어느새 정신없이 바쁘게 질주하고 있었다. 레코딩은 난항을 거듭했다. 작업은 바짝 졸아들고, 밀려, 결국 6월 초순까지 계속됐다. 담당 디렉터 사노는 이렇게 말했다.


「괴로웠죠. 만약 U2가 「공중캠프」를 만들었다면 향후 5년은 절대 CD를 만들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던 적도 있어요. 자신들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앨범을 만들고, 남은 것은, 텅 비어 있는 자신과 피로감이에요. ZAK를 비롯해 모두들 정말 피곤해 했어요. (중략) 오지마 켄스케가 나가고, 하카세가 나가고, 점점 빠져 나가는 거에요. 그렇지만 작품은 빼어나게 갈고 닦아 나아간다. 밴드는 너덜너덜한 상태였지만, 만드는 걸 그만 둘 수는 없다. 확실히 몸을 깎아서 만들었던 거죠. 그 뒤, ZAK도 (카시와바라) 유주루도 그만 두잖아요. 어떤 의미에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하고 있었으니까, 텅 빈 상태가 되어버린 거에요. 하지만 그 사람과 함께 있으면 충전할 수 없죠. 더 만들려고 하니까요. 그래서 내릴 수밖에 없는」 (책 「휘시만즈 전서」)


"그 사람" = 사토 신지의 발걸음은,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그의 괴물 같은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는 전혀 끝이 없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사토가 집에서 만들어온 데모 테이프를 듣고, 멤버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고 한다. 모테기는 「사토 군의 솔로 색이 강해져서, 그걸 밴드에 녹여내는 데 고생했다」고 말했지만, 요점은 데모의 완성도가 너무 높아서, 밴드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는 것이다. 본인들이 여기에 대체 무엇을 추가할 수 있을지. 어설프게 덧붙이면, 이 아름다운 세계를 부수어 버리는 게 아닐까 싶은...


거기서 딱 잘라, 「데모 테이프대로 만들면 되지」라는 결론은 성립하지 않았다. 휘시만즈가 사토의 원맨 그룹이고, 사토 한 명의 의사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다른 멤버는 단지 서포트에 불과한 솔로 유닛이라면, 카시와바라도 모테기도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휘시만즈는 밴드이며, ZAK나 주위의 스태프를 포함한 팀으로서 사토의 생각과 표현하는 세계를 공유하고 지원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사랑이 넘치는 곳의 상징이 와이키키 비치였다. 하지만 「우주 일본 세타가야(宇宙 日本 世田谷)」의 세계는, 공유할 수 없었다. 괴로워하는 멤버를 신경 쓰지 않고 사토는 자꾸자꾸 곡을 써왔다. 그 한 사람이 무서운 속도로 진화를 거듭하며, 계속 달리고 있었다. 다른 멤버와 스태프는 그걸 따라가는 게 고작이었다.



7thアルバム「宇宙 日本 世田谷」(オリジナル発売日:1997年7月24日)

7th 앨범 「우주 일본 세타가야」 (오리지널 발매일 : 1997년 7월 24일) (*역주: 7th -> 8th)



꿈의 끝과 「남자들의 이별」



7월에 앨범 「우주 일본 세타가야」가 발매되었다. 「우주 일본 세타가야」는 어느 때 보다 치밀하고 델리케이트한 제작 방식과 극강의 완성도로 만들어진 빼어난 작품이며, 휘시만즈가 도달한 가장 높은 지점이다. 동시에 고립무원이 된 사토의 고독이 아프도록 느껴지는 앨범이기도 했다. 그 작업이 끝날 무렵 ZAK가 팀에서 나갔다. 그는 「우주 일본 세타가야」의 마지막곡 「데이 드림」의 작업을 할 때부터 “끝”을 예감하고 있었다고 한다. 와이키키 비치는 임대 계약 종료에 따라, 앨범 발매 직후인 8월 4일에 폐쇄됐다. 꿈과 같은 2년이 끝났다.


ZAK을 잃은 휘시만즈는 이듬해 98년 8월, 두 번째 라이브 앨범 「8월의 현상(8月の現状)」을 릴리즈. 전작 라이브 음반 「Oh! Mountain」과 같이, 객석의 노이즈를 대부분 잘라내고, 라이브 음원을 스튜디오 안에서 다양하게 가공하여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그 후, 12월에 싱글 「유라메키 IN THE AIR(ゆらめきIN THE AIR)」를 발매했다. 그리고 전국 네 곳을 도는 「남자들의 이별(男達の別れ)」 투어의 최종일인 12월 28일, 아카사카BLITZ 공연을 마지막으로, 카시와바라 유주루 (B)가 탈퇴했다. 그의 탈퇴는 음악과 밴드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가정 사정으로, 돌발적인 것이 아니라, 미리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남자들의 이별」이라는 투어 타이틀이 붙여졌다.



ライブアルバム「8月の現状」(オリジナル発売日:1998年8月19日)

라이브 앨범 「8월의 현상」 (오리지널 발매일 : 1998년 8월 19일)



シングル「ゆらめきIN THE AIR」(オリジナル発売日:1998年12月2日)

싱글 「유라메키 IN THE AIR」 (오리지널 발매일 : 1998년 12월 2일)



「ゆらめきIN THE AIR」発表時のフィッシュマンズ。

「유라메키 IN THE AIR」 발표 시 휘시만즈



사토의 급서, 그리고 2019년의 현상



佐藤伸治(フィッシュマンズ)

사토 신지 (휘시만즈)



결국 휘시만즈는 사토와 모테기 두 명이 되었다. 하지만 밴드 내에 비관적인 공기는 없었고, 사토는 의욕적으로 향후의 방향성을 말하고 있었다고 한다. 카시와바라의 탈퇴나 ZAK의 이탈이 깊은 상처가 되기는 했지만, 지금부터 해 나가려고 하는 의욕이 넘치고 있었다. 「우주 일본 세타가야」 무렵, 사토는 세세한 부분까지 지정한 완성도 높은 데모 테이프를 들고 왔지만, 이 즈음에는 심플한 어쿠스틱 기타 노래 형식의 데모로 돌아와 있었다. 그 한 명이 독주하는 것이 아니라, 휘시만즈라는 팀으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느긋하게 음악을 키워 가고자 하는 체제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듬해 99년 3월 15일, 사토가 급사. 밴드는 그 활동을 정지한 것이다.


사토가 사망한 99년은, 「FUJI ROCK FESTIVAL」이 현재의 나에바(苗場)로 옮겨와 처음 개최된 해이다. 일본에 록 페스티벌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싹트고 있었다. 담당 디렉터 사노는 「휘시만즈가 계속 있었으면 무조건 헤드라이너에요」라고 한탄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재기동한 휘시만즈는 2006년에 염원이었던 후지 록에 출연했지만, 역시 사토의, 그 아름다운 짐승 같은 포효를, 나에바의 자연 속에서 듣고 싶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남아있다. 또 사노는 「해외에서 승부하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누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아닌데도, 세계 각지에서 새로운 휘시만즈 리스너가 늘어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그의 바램이 20년이 지나 드디어 실현된 것일까. 그 숫자는 지금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19년은 사토 신지의 사후 20년. 살아 있었으면 53세이다.


(본문 경칭 생략)




/* 가능한 직역을 했습니다. 급하게 번역한 것이라, 오타/오역이 넘쳐납니다. 잘못된 부분이나 더욱 매끄러운 문장이 있으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고맙습니다. (2020.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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音楽偉人伝 第15回 [バックナンバー]


佐藤伸治(フィッシュマンズ)(後編)

尽きることのない創造性



シングル「BABY BLUE」発表時のフィッシュマンズ。



日本の音楽史に爪痕を残すアーティストの功績をたどる本連載。今回は今から20年前に急逝したフィッシュマンズ・佐藤伸治の後編を公開する。ポリドール・レコード移籍までの歩みを振り返った前編に続く今回は、フィッシュマンズが劇的な音楽的進化を遂げた活動中期以降の道のりを追う。プライベートスタジオを手に入れることで、佐藤のクリエイティビティは加速の一途をたどり、フィッシュマンズは名曲「ナイトクルージング」を皮切りに日本ロック史上に残る数々の名作を生み出していく。

文 / 小野島大


プライベートスタジオ入手

1995年6月、フィッシュマンズはポリドール・レコードと契約。ちょうどスピッツを大ヒットさせ、邦楽部門のさらなる強化を狙っていた同社は、フィッシュマンズに“ネクスト・スピッツ”として期待をかけていたのかもしれない。スピッツとフィッシュマンズはメジャーデビュー前にしばしば対バンしており、当時は音楽性も近く、年齢も同じぐらいだったことから比較されることも多く、ファンも被っていたようだ。だが周囲の期待をよそに、フィッシュマンズは移籍を機に誰も予想しなかったすさまじい進化を遂げることになる。

移籍が決定し、新ディレクターとしてフィッシュマンズを担当することになった佐野敏也のもとをZAKが訪ねてきた。じっくり時間をかけてアルバムを作りたいのでスタジオを作りたい、その予算(スタジオの機材費、賃貸費など)を制作費のアドバンス(前渡し金)として渡してほしいという前代未聞の要求だった。当時の音楽産業は遅れてきたバブルに沸いていた。バンドブームはとうの昔に終わり、ライブハウスは閑古鳥が鳴いている状況だったが、CDの売り上げは右肩上がりに伸びていた。こんな無茶な要求でも受け入れる余裕があったのだ。2年間でアルバム3枚を作るという条件でフィッシュマンズは自分たちのプライベートスタジオを手に入れた。淡島通り沿いの小さな2階建てのビルを改造して作られた「ワイキキ・ビーチ~ハワイ・スタジオ」(正確には、建物全体の総称が「ワイキキ・ビーチ」、2Fのスタジオ部分が「ハワイ・スタジオ」、1Fのロビー部分が「ワイキキ・オーシャンビュー・ホテル」)だった。ちょうどPro ToolsなどDAWソフトが普及し始めた頃で、コンピュータを使った安価なデジタルレコーディングのシステムによって、個人のプライベートスタジオでもプロ並みのレコーディング環境が可能になり始めていた時期だったことも幸いした。高価なプロ用の貸しスタジオで、お金や時間の制約を気にしながら作るよりも、気が向いたときにスタジオに行き、1日中でもそこにいて、夜中だろうが明け方だろうが、いつでも好きなときにレコーディングできるという環境が手に入ったのである。

レーベル移籍の関係で半年間レコーディングできないという縛りがあり、メンバーには時間の余裕ができた。時間に追われる生活が嫌いな佐藤伸治(Vo)にとって“ヒマ”であることは何よりも大事なことだった。そのヒマな時間を使って佐藤は運転免許を取った。クルマを手にして、車窓から見る景色に佐藤は新たなインスピレーションを得た。そうしてできあがったのが名曲「ナイトクルージング」である。

曲作りは順調に進み、95年7月から新作アルバム「空中キャンプ」のリハーサルに突入。ところがこのタイミングで突然ハカセが(Key)バンドを脱退する。自分の音楽に専念したい、という理由だったようだが、ハカセがいることを前提として作られた楽曲は、当然ながら大きな軌道修正を迫られることになる。小嶋謙介(G)に続きハカセも脱退してバンドは5人編成から3人編成になってしまったが、レーベルを移籍し、自分たちのスタジオも手に入れ、前向きなやる気に満ちていた佐藤らには、マイナスをプラスにするような勢いがあった。ハカセの穴はHONZI(Violin, Key)、木暮晋也(G / ヒックスヴィル)などがサポートとして埋めた。

名曲「ナイトクルージング」完成

8月になってついにワイキキ・ビーチが完成。小さなスタジオゆえ制約もあった。大きな音が出せないので生のドラムは使えず、MIDIドラムを使ってレコーディングをせざるを得なかった。ギターやベースもアンプを使わないライン録音となった。3人そろってのレコーディングもできず、1人ずつ楽器をオーバーダビングしていくような態勢となった。バンドが一体となった迫力やダイナミズムを犠牲にしかねない制作態勢だったが、その分自由に音を差し替え加工することで、細かくデリケートで空間的な広がりを感じさせる音響的なサウンド作りが可能になった。言ってみれば“宅録”的な環境でロックバンドの音を作ったのである。それは当然、昔ながらの“ロック”とは違う位相のものとなった。今となってはそんなバンドや音源は珍しくもないが、フィッシュマンズがその先駆の1つとなったことは間違いない。

同年11月、シングル「ナイトクルージング」リリース。名刺代わりの移籍第1弾シングルとしては冒険と言える6分超えの大作。フィッシュマンズの変化、進化、深化を知らしめた名曲中の名曲である。「ORANGE」の延長線上にあるポップなフィッシュマンズを期待した人たちからは戸惑いの声も上がったが、この曲の完成こそが、フィッシュマンズを別格的存在たらしめ、今日まで彼らが伝説的バンドとして聴き継がれる決定的契機となったことは間違いない。茂木欣一(Dr)はこう語っている。

「できてみたらそうなったって感じかな。最初デモ・テープで聴いた時は、そんなに変わったって感じじゃなかった。録音してTDが仕上がるに従って劇的に変化したんだよね」(書籍「フィッシュマンズ全書」)

「普通のスタジオで、普通のドラム・セット置いて、いっせのせで音出してたら、<ナイトクルージング>は、ああいう手触りにはならなかったんだよね」(「ミュージック・マガジン」2006年2月号)

茂木の発言は、「ナイトクルージング」でのフィッシュマンズの変化が、佐藤のソングライティング上の変化というより、バンドの音響面やアレンジなど“文体”上の変化が大きかったことを示す。2005年にリリースされたベストアルバム「宇宙 ベスト・オブ・フィッシュマンズ」には、「ナイトクルージング」のデモバージョンが収録されており、完成版との違いがよくわかる。リズムボックスの簡素なリズムと佐藤の生ギター弾き語りでフォークソング風に歌われる同バージョンは、もちろん歌詞やメロディは同じだが、完成版とはまるで異なる印象である。単にいい曲を作り歌うだけでない境地に彼らは達しつつあったし、ちっぽけで平凡な日常を描くだけでなく、その景色のパックリと開いた裂け目から、狂おしくも美しい非日常の異世界が垣間見えるような、そんなイマジネイティブでサイケデリックな世界を獲得しようとしていた。佐藤は「この頃から見るものの景色すべてが変わってきた」と語っている。平凡で退屈な日常の景色が彼の中でなぜ、どのように変わっていったのか。生前の佐藤は詳しく語ろうとはしなかったが、そうして変わっていった景色をメロディに、歌詞に、サウンドに、音楽に焼き付ける類まれな才能が彼にはあった。佐藤が見た非日常の景色が、狂おしく増殖するイマジネーションが、ワイキキ・ビーチのレコーディング環境によって的確に音像化された。メンバーやスタッフが自由にスタジオに出入りしコツコツとレコーディングしながらコミュニケーションを交わし合ううち、その景色は自然に共有されていったのである。「ナイトクルージング」「空中キャンプ」には、その空気感が凝縮されている。

「LONG SEASON」の衝撃

アルバム「空中キャンプ」は96年2月にリリースされ、絶賛された。特にテクノ~ダンスミュージック界隈やサブカルチャー周辺のメディアから注目を集めるようになり、それまでの“日本のロック”コミューンからはみ出した支持層を生んだ。以降、メディアでの露出は格段に増え、ツアーの本数も増えた。「若いながらも歴史あり」ツアーからはHONZI、ダーツ関口(G)が加わり、以後彼らのライブはこの2人をサポートに迎えて行われることが多くなった。特にHONZIの果たした役割は音楽的にも精神的にも大きかった、とはスタッフの証言である。

同年9月にはニューシングル「SEASON」をリリース。さらに翌月にはその拡大版となる35分の1トラックアルバム「LONG SEASON」がリリースされる。「空中キャンプ」は8曲で1曲みたいなアルバムだから、じゃあアルバム1枚を本当に1曲で作ってみよう、というメンバー同士の雑談からアイデアが発展していった。「SEASON」を基に何回かのセッションを重ね、それを基にワイキキ・ビーチでメンバー全員とZAKがアイデアを出し合い細かくエディットしていった。モニターの見過ぎでZAKが目から血を流したというエピソードも残っている。

前編にも書いた通り、「King Master George」のツアーを観て失望して以来、彼らへの積極的な興味を失っていた私が、ひさびさに向き合って聴いたフィッシュマンズのアルバムがこれだった。その間わずか4年でのすさまじい進化に腰を抜かし、慌ててさかのぼって聴いた「空中キャンプ」にまた衝撃を受け、一気に彼らの音楽にのめり込んでいったという経験があり、フィッシュマンズの作品の中でもとりわけ印象深い。当時のレビューで私は「ドラッグにまみれた星屑が降り注いでくるような」という表現をしているが、ダブのメタリックで歪んだサウンドスケープがテクノ~アンビエントを経て初期Pink Floydまで飲み込んだようなサイケデリックでアトモスフェリックでプログレッシブでイマジネイティブなサウンドは、同時に夢の中に漂うような心地よさも感じさせる。長尺ながら、HONZI、ダーツ関口、ASA-CHANG、佐藤タイジ、UAといった多彩なゲストが参加し、あの手この手のアイデアを片っ端からぶち込んで決して聴き手を飽きさせない。彼らの創造性がピークに達していた頃の大傑作だ。同作のツアー「LONG SEASON '96~'97」最終日の12月26日、東京・赤坂BLITZでのライブの素晴らしさは今も記憶に鮮明だ。

メンバーの苦悩

年が明けて97年2月末に7枚目のアルバム「宇宙 日本 世田谷」のレコーディング開始。「2年間でアルバム3枚」という契約の縛りがあったとはいえ、「空中キャンプ」「LONG SEASON」という力のこもったアルバムを作り、合間にツアーやイベント出演、メディア対応など多忙を極める中、あまりに過密なスケジュールである。“ヒマであること”を何よりも大事にしていた男は、いつのまにか生き急ぐように疾走していた。レコーディングは難航を極めた。作業は煮詰まり、滞り、結局6月初旬まで続いた。担当ディレクターの佐野はこう語っている。

「つらかった。話してたのは、仮にU2が『空中キャンプ』を作ったら絶対5年はCD作らないぞって。自分たちのすべてを注ぎ込んだアルバムを作って、残るものは、空っぽになった自分と疲労感ですよ。ZAKもみんなもほんと疲れてた。(中略)小嶋謙介が抜けて、ハカセが抜けて、どんどん抜けていくわけですよ。でも作品は研ぎ澄まされていく。バンドはボロボロの状態で、でも作ることをやめられない。まさに身を削って作った。その後ZAKも(柏原)譲もやめるわけじゃないですか。ある意味自分の限界を超えてやってるから、空っぽの状態になるわけですよ。でもその人と一緒にいたら充電できない。もっと作ろうとしちゃうから。だから降りるしかない」(書籍「フィッシュマンズ全書」)

“その人”=佐藤伸治の歩みは、それでも止まらない。彼の怪物的なクリエイティビティは一向に尽きることがなかった。多忙の合間を縫って佐藤が自宅で作ったデモテープを聴いて、メンバーは途方に暮れたという。茂木は「佐藤くんのソロ色が強くなって、それをバンドに落とし込むのに苦労した」と語ったが、要はデモの完成度が高すぎて、バンドとして何をやるべきかわからなかったということだ。自分たちはこれに一体何を加えればいいのか。ヘタに付け加えれば、この美しい世界を壊してしまうんじゃないか……。

そこで割り切って、「デモテープ通り作ればいいや」とはならなかった。フィッシュマンズが佐藤のワンマングループで、彼1人の意思ですべてが決まるような、ほかのメンバーはただのサポートに過ぎないようなソロユニットなら、柏原も茂木も悩むことはなかっただろう。だがフィッシュマンズはバンドであり、ZAKや周りのスタッフも含めたチームで佐藤の思いや表現する世界を共有し支えることで成り立っていた。その愛にあふれた場所の象徴がワイキキ・ビーチだった。だが「宇宙 日本 世田谷」の世界は、共有しきれなかった。悩むメンバーを尻目に佐藤はどんどん曲を書いてくる。彼1人がすさまじい勢いで進化を続け、走り続けていた。ほかのメンバーやスタッフはそれに付いていくので精一杯だった。

夢の終わりと「男達の別れ」

7月にアルバム「宇宙 日本 世田谷」はリリースされた。「宇宙 日本 世田谷」はこれまで以上に緻密でデリケートな作り込みがなされた極めて高い完成度の高い優れた作品であり、フィッシュマンズが到達した最高地点である。と同時に、孤立無援となった佐藤の孤独が痛いほど感じられるアルバムでもあった。その作業が終わる頃、ZAKがチームを抜けた。彼は「宇宙 日本 世田谷」の終曲「デイドリーム」の作業をしているときから、“終わり”を予感していたという。ワイキキ・ビーチは賃貸契約の終了に伴い、アルバムリリース後まもなく8月4日に閉鎖された。夢のような2年間が終わった。

ZAKを失ったフィッシュマンズは、翌98年8月、2枚目のライブアルバム「8月の現状」リリース。前作のライブ盤「Oh! Mountain」同様、客席のノイズをほとんどカットして、ライブ音源をスタジオ内でさまざまに加工して作り上げた作品だった。その後、12月にシングル「ゆらめきIN THE AIR」をリリース。そして全国4カ所を回る「男達の別れ」ツアーの最終日の12月28日、赤坂BLITZ公演を最後に、柏原譲(B)が脱退した。彼の脱退は音楽やバンドとは直接関係のない家庭の事情が理由で、突発的なものではなく、あらかじめ予定されていたために「男達の別れ」というツアータイトルが付けられたのだった。

佐藤の急逝、そして2019年の現状

とうとうフィッシュマンズは佐藤と茂木の2人になってしまった。だがバンド内に悲観的な空気はなく、佐藤は意欲的に今後の方向性を語っていたという。柏原の脱退やZAKの離脱は痛手ではあったが、これからやっていこうという意欲が漲っていた。「宇宙 日本 世田谷」の頃、佐藤は細かい部分まで指定した完成度の高いデモテープを持ち込んでいたが、この頃になるとシンプルなアコースティックギターの弾き語り形式のデモに戻っていた。彼1人が突っ走るのではなく、フィッシュマンズというチームで彼の思いを共有し、ゆったりと音楽を育てていこうという体制に戻りつつあった。

しかし、翌99年3月15日、佐藤が急死。バンドはその活動を停止したのである。

佐藤が亡くなった99年は、「FUJI ROCK FESTIVAL」が現在の苗場に移って初の開催となった年である。日本にロックフェスティバルという新しい文化が芽生えつつあった。担当ディレクターの佐野は「フィッシュマンズが続いていれば間違いなくヘッドライナーですよ」と嘆く。私もそう思う。再始動したフィッシュマンズは2006年に念願だったフジロックに出演したが、やはり佐藤の、あの美しい獣のような咆哮を、苗場の自然の中で聴きたかったという思いは強く残る。また佐野は、「海外で勝負したかった」と語っていたが、誰が仕掛けたわけでもなく、世界の各地で新たなフィッシュマンズリスナーが増え続けている今の状況は、彼の願いが20年経ってようやく実現したということなのだろう。その数は今も増え続けている。

2019年は佐藤伸治の没後20年。生きていれば53歳である。

(文中敬称略)




https://natalie.mu/music/column/35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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