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할 곳 없는 천사(free board)


10월의 엄마 오지연 어머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4월의 엄마 유예은 엄마입니다. 아이를 잃고 저의 이름은 사라지고 예은이 엄마가 되었습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이름을 남길 만큼 유명해지라는 뜻으로만 생각했는데 우리 딸 정말 이름만 남았어요. 이름을 부르는 게 살을 칼로 베어내듯 아프지만 그래도 아이와 연결된 유일한 끈 같아요.

 

예은이는 4녀 중 2녀로 쌍둥이 중 작은아이입니다. 가수를 꿈꾸며 실용음악학원을 다니다가 열정과 성실함을 눈여겨본 원장님 덕분에 SBS의 청소년 다큐에 출연도 했고, 비록 원하던 예고 진학은 이루지 못했지만 단원고 진학해서 뮤지컬학원에 다니며 꿈을 키우던 아이였습니다. 집에서는 늘 양보하며 엄마와 동생들을 챙기던 착한 아이였습니다.

 

오지연님 사연은 4·16생명안전공원 5월 예배 순서지를 준비하며 읽었습니다. 2018년 정부합동분향소가 철거되고 야외에서 예배를 이어오고 있는데 올해 3월부터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전체 이름을 낭독하고 3명씩 사연을 읽고 있습니다.

 

순서지 준비를 위해 오지연님 사연을 미리 읽고 요약하면서 많이 울었습니다. 좋아하는 것도 많고 잘하는 것도 많고 그런데 부모님 기대를 생각해 잠시 꿈을 접고 은행 정규직 필기 시험까지 합격했으니 얼마나 기특하고 자랑스러우셨을까. 또 아일 보내고 나서는 하고 싶은 거 더 해보게 해주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마음에 걸리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이 뭐 사달라고 졸라댈 때 늘 "난 괜찮아"라고 말하던 예은이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런 예은이를 보내고 동생들이 힘들어했기에 혼자 남은 지연님의 동생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오지연님도 예은이도 이렇게 보내면 안 되는 너무 아깝고 사랑스러운 딸입니다.

 

지난 10년 세월호 유가족들이 길 위에서 잠을 자며 불편해도, 경찰의 폭력에 온갖 설움이 몰려와도, 인간 같지 않은 이들의 더러운 혐오의 말에 상처를 입어도, 믿었던 국가와 정치인들의 배신과 방해에 절망해도 참고 견디며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과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야 세월호 참사는 제대로 기억되는 것이고 그나마 아이들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해 조금이라도 책임을 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태원 참사를 비롯해 여러 참사가 일어나면서 눌러왔던 불편함, 설움, 상처, 절망 등이 쓰나미처럼 세월호 유가족을 덮쳤습니다. 넋을 잃고 쓰러져 있다가 5월의 어머니들(5·18민주화운동 희생자 어머니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분들은 몇 번의 고통의 쓰나미를 겪었을까. 세월호를 보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팽목에 '당신 원통함을 내가 아오. 힘내소, 쓰러지지 마시오'라는 현수막을 걸었을까. 그 마음을 헤어리며 다시 일어섰습니다.

 

지난 10년의 시간 중 가장 힘든 시간을 꼽으라면 1주기 때입니다. 2015년 2월부터 부모들은 활동을 줄이고 집에서 잘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늘 북적이던 분향소 대기실조차 적막했습니다. 대신 가정마다 1년 전처럼 곡소리가 났습니다. 아이의 사진과 유품을 안고서 1년 동안 정신없이 싸우느라 참아왔던 눈물을 터뜨렸습니다.

 

그러니 제가 지연 어머님께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을까요. 부디 잘 버텨주시라고, 너무 많이 몸과 마음 상하게 하지 마시라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무엇보다 하늘과 먼저 간 우리 아이들이 이 일의 되어감을 지켜보고 있고 언제든 함께 힘 모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특별히 세월호 참사 가족들은 끝까지 함께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린 꼭 해낼 겁니다.

 

4월의 엄마 유예은 엄마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0261118000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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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리듬을 믿고(この胸のリズムを信じて)", "우리는 걷는다 단지 그뿐(ぼくらは步く ただそんだ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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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캠프

2023.10.29 19:34:26

이제야 꽃을 든다

/ 이문재


이름이 없어서
이름을 알 수 없어서 꽃을 들지 못했다
얼굴을 볼 수 없어서 향을 피우지 않았다

누가 당신의 이름을 가렸는지
무엇이 왜 당신의 얼굴을 숨겼는지
누가 애도의 이름으로 애도를 막았는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우리는 안다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면
당신의 당신들을 만나 온통 미래였던
당신의 삶과 꿈을 나눌 수 있었다면
우리 애도의 시간은 깊고 넓고 높았으리라

이제야 꽃 놓을 자리를 찾았으니
우리의 분노는 쉽게 시들지 않아야 한다
이제야 향 하나 피워올릴 시간을 마련했으니
우리의 각오는 쉽게 불타 없어지지 않아야 한다
초혼招魂이 천지사방으로 울려퍼져야 한다

삶이 달라져야 죽음도 달라지거늘
우리가 더불어 함께 지금 여기와 다른 우리로
거듭나는 것, 이것이 진정 애도다
애도를 기도로, 분노를 창조적 실천으로
들어 올리는 것, 이것이 진정한 애도다

부디 잘 가시라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꽃을 든다
부디 잘 사시라
당신의 당신들을 위해 꽃을 든다
부디 잘 살아내야 한다
더 나은 오늘을 만들어 후대에 물려줄
권리와 의무가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해 꽃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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