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아닌 결론을 찢는]은 미래의 일기라 불러도 좋겠다. 인간에게서 인간을 소멸해 버린 세계, 그 상태의 말, 그 말의 자동기술이라 해도 되겠다. 인간에게서 인간을 소멸한다는 것은 시인이 시 안에서 인간에게 역진화를 경험하게 한다거나 진화를 멈춘 세상에 있게 하는 것이다. 시인의 시간에 대한 의식이 그렇게 움직이자 '로보트, 인형, 복제, 외계인'의 심박수가 더 도드라지게 등장한다. 마치 소포클레스가 [필록테테스]에서 '더 이상 인간들과 함께 하지 않으니 자신을 더욱 잘 표현할 수 있게 되는구나' 라고 말한 것처럼 '흐려진, 투명해진, 잃어버린, 얇은' 존재 상태에서 더욱 분명하고도 당위적으로 미래에의 기투를 가시화할 수 있게 된다. 시인은 섬멸된 세계나 소멸된 인간을 시에 불러옴으로써 돌부리에 걸려 엎어진 진화의 길목들을 보여주는데, 이 자리가 시적 화자가 일기를 쓰는 자리다. 시인 스스로가 말한 것처럼 '사라진 일기를 찾는 방법은 모레의 일기'를 미리 쓰는 것이니까.
시인은 섬멸된 세계나 소멸된 인간을 시에 불러옴으로써 돌부리에 걸려 엎어진 진화의 길목들을 보여주는데, 이 자리가 시적 화자가 일기를 쓰는 자리다. 시인 스스로가 말한 것처럼 '사라진 일기를 찾는 방법은 모레의 일기'를 미리 쓰는 것이니까.
/ 김혜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