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극장 202409 : 쓸쓸함에 대한 유머로서의 영화]
드디어 가을이네요. 차가운 바람이 불면 생각나는 영화는 무엇인가요? 다른 좋은 작품도 많겠지만, 이번에는 왠지 <옥희의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홍상수에 대한 많은 말들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인위를 통해 진심을 전해야 해”라는 진구의 말처럼,) 영화라는 미디어/언어를 통해, 복잡하고 모순적인 삶/인물의 정체성과 관계 등을, ‘사친’(思親(주변의 작은 일들과 가까운 것들을 통해 사유하는 것))과 구조, 리듬의 조율 등으로, 간결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아티스트/철학자/과학자인 것 같습니다.
모든 조건이 적대적인 상황에서, 단 4명의 스태프로, 하루 전에 섭외한 배우들과 함께, (언제나처럼) 당일 아침에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를 찍는 방식도 재밌지만, 영화 자체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실천, 영화 안팎의 내용과 형식의 얽힘, 인물들 간의 관계와 정서, 차이와 반복, 쓸쓸함/슬픔과 품격/유머 등에 관한 추상과 구체의 표현이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독특하고 즉흥적인 디렉팅이나 제작 방식 뿐만 아니라, (“돈, 돈, 돈 하며 썩어 빠진” 주류의 영화 시스템과는 다르게) 최소한의 리소스를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끊임없이 흥미로운 작품을 만들고 배급하는 새로운 영화적 생태계/파이프라인을 만든 것 역시, 매우 독립(Indie)적인 동시에 공학적(CI/CD(continuous integration and continuous delivery))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을 바람에 마음을 빼앗겨 하루 전에 올리는 번개 공지가 되어버렸지만, 무엇보다 자판기 앞에서의 송 선생의 그 대사가 다시 듣고 싶었던 것도 같고, 어쩌면 술 취한 이선균이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월요일 저녁, <옥희의 영화>를 보고, 맥주 한 잔 하면서, 영화와 쓸쓸함과 유머에 대해 이야기 해보면 어떨까요?

* 일시: 2024년 9월 23일(월) 19:00 door open / 20:00 screening start
* 장소: 공중캠프
* 회비: 무료 (술/음료 별도 주문)
* 상영작:
- 9/23(월) <옥희의 영화> (Oki's Movie, 홍상수, 80m, 한국, 2010)

(programmed by Go-mama / flyer designed by 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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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극장]은 영화/다큐/드라마 등 영상물에 관심이 있는 캠퍼들의 소모임이자 공중캠프 (비)정기 상영 이벤트입니다. 일반적인 영화관에서처럼 깜깜한 조명 아래 가만히 앉아 영화를 관람하기 보다는, (주위 분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친구와 이야기도 나누고 맥주도 한 잔 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조명을 완전히 끄지 않습니다. 상영 중 수다 및 음료/술 주문, 화장실 들락날락 등이 가능합니다.)
* [공중극장 상영작 리스트]
http://kuchu-camp.net/xe/board_club_theater/38484

“살아 있는 무언가와 닮은 영화를 유기체적인 영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 <옥희의 영화>는 형식 자체가 그 유기체적 자기 조직성으로 전망을 모색할 뿐 아니라, 이상하게도 지금과 같은 영화 생태계에서 유기체로서의 영화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순결에 가까운 자기 모험적 정신이 극한에까지 서려 있는 것 같다. 홍상수의 영화가 윤리적이고 또한 정치적이라면 실로 이 점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옥희의 영화>에 밴 저 뜻모를 쓸쓸함과 고독함은 그러니까 영화의 내용뿐 아니라 필시 이런 영화 생태계 안에서 그의 영화적 생존과도 관련이 깊어 보인다.
나는 <옥희의 영화>가 슬픔에 반응하는 영화라고 느낀다. 슬픔이 아닌 그에 대한 반응이라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애상에도 쓰러지지 않는 격조라고 생각한다. 격조라고 말하고 나니 기품이라고도 말하고 싶어진다. 어, 이런 감정인가, 그럼 영화로 만들면 어떻게 되지, 하는 그런 반응. 그 반응을 더 선명하게 이름 짓지는 못하겠으나 그 행위는 용감하다. 용감함, 마침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슬픔에 반응하는 위풍당당함이다. 그 모든 소란스러움을 뒤로한 채로 빠르지 않지만 기품있게 활동하는 행위”
- 정한석, 아무것도 아닌 그러나 신비하기 이를 데 없는[2] (씨네21, 2010년 9월호) http://m.cine21.com/news/view/?mag_id=62378
2.
김혜리) 지난해 여름 <하하하>를 찍고 얼마 여유를 두지 않고 단 4명의 스탭과 함께 13회차 촬영으로 <옥희의 영화>를 만들었다. 원래 가벼운 행장으로 영화를 찍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이번은 특수한 경우로 보인다.
홍상수) <하하하>의 마무리도 끝나지 않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기 중간이었다. 몸은 많이 피곤했고 투자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약속된 배우도 없었다. 보통 같으면 전혀 영화를 찍을 형편이 아닌데, 어느 날 갑자기 장편이냐 단편이냐는 둘째치고 완성 못해도 좋으니 뭔가 찍고 싶더라. 이렇게 모든 조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영화를 찍으면 무엇이 나올지 보려는 마음이 있었다.
김혜리) 최악의 환경에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이후로는 훨씬 자유로워질 거라는 생각을 한 건가.
홍상수) 어떤 상황이 되어도 찍을 수 있다는 자기 확인의 의미도 물론 있었지만 그건 부수적이고, 모든 조건이 적대적일 때 내 안에서 뭐가 나올지 궁금한 마음이 제일 컸다.
김혜리) 4편으로 구성된 <옥희의 영화>의 작명법은 수록 단편 중 한편의 제목을 전체 제목으로 삼는 단편소설집의 그것 같다. 초기에는 이 영화의 가제가 <사친>(思親)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홍상수) ‘사친’(思親)은 이 영화와는 관계가 없고, 다만 내가 영화를 찍는 어떤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허구적인 사고의 틀에서 자유로워지는 제일 적극적인 방법이 내게 가까운 것들을 갖고 생각하는 거라고 믿는다. 나나 생활, 주변의 작은 일들을 통해 바라볼 때 ‘틀’의 허구성이 보이지 않나. <옥희의 영화>는 깊이 생각해 정한 제목은 아니고 그저 다른 제목이 내키지 않았다. 각편의 제목은 첫신 찍는 아침에 정해지기도 하고 당일 촬영분 편집을 하면서 떠오르기도 했다.
김혜리) 유독 4편의 크레딧만 문성근, 정유미, 이선균의 이름을 한번 비춘 다음 다시 이선균, 정유미, 문성근 이름을 반복해 보여주던데.
홍상수) 편집하고 보니 장편이 되기에 약간 시간이 모자라서 그랬다. (좌중 웃음)
김혜리) 각편의 시작과 끝에 두 가지 편곡의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을 썼다. <극장전>의 <라데츠키 행진곡>이나 <밤과낮>의 <베토벤 교향곡 7번>처럼 전형적인 곡을 가져다 쓴 경우다. 황량하고 일상적인 영화의 앞에서 “당신이 볼 이 모습이 진짜 장엄한 거다”라고 선언하는 기분도 든다.
홍상수) <옥희의 영화>를 만드는 초기에 그 음악에 꽂혔다. 원래 좋아하던 곡을 오랜만에 들었는데 더욱 좋았다. 이 영화를 준비하는 동안 듣고 있던 음악이고 그 곡이 내게 준 만족감과 쾌감이 있으니 영화(를 만드는 나의 상태)와 이 음악은 당연히 연결돼 있다고 본다.
김혜리) 1편에서 영화과 강사인 진구는 “인위를 통해 진심을 전해야 해”라고 가르친다. 홍상수식으로 말하자면 인위는 ‘구조’인가.
홍상수) 구조, 그리고 리듬의 조율, 간결화 등등 타인에게 진심을 전하기 위해 의존해야 하는 인위적 틀이 오만 가지 있다. 중간에 틀이 있어야 진심이 전달되지 100% 날것으로 그냥 말하면 도리어 타인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진부함에 질려 귀를 막을 수도 있고 장광설에 질리거나 엄격하지 못한 자기 연민이 꼴보기 싫어 도망쳐버릴 수도 있다.
홍상수) <옥희의 영화>를 구성하는 네편의 관계를 깔끔히 정리할 수는 없을 거다. 토막인 동시에 독립적이다. 다만 세 인물의 관계가 주는 정서는 일관되게 간다. 내 전작들은 관객에 의해 구조적으로 다시 꿰맞추어지는 영화들이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반발이 있었고 그게 주는 쾌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정서만 일관되고 관계는 비논리적으로 겹쳐지게 하면 인물들이 확장되는 느낌이랄까. A라는 사람이 B 같기도 하고, 충분히 구체적인 인물이지만 고유한 단일 정체성은 갖고 있지 않은 인간이 보인다. 세 사람 모두가 섞여서 만든 뿌연 그림이 인간들 전체로 확장되는 것 같은. 그럼으로써 한 인물의 일면은 구체적인데 영화 전체를 의식하며 그를 바라보면 옆에 있는 인물과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나 생각했다.
홍상수) 서로 기댄 세개의 막대기 같다. A의 머리는 B의 등에 기대고 B의 머리는 또 C의 어깨에 기대고 하는 식으로 편하게 있는 기운이 포착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옥희의 영화>가 <첩첩산중>의 미래라든지 백그라운드 스토리인 건 아니다. 정서도 진구와 옥희의 분위기는 <첩첩산중>의 그것보다 건조하다.
김혜리) <옥희의 영화> 포스터는 옥희와 진구의 흑백사진 귀퉁이에 홍 감독이 펜으로 그린 송 교수의 얼굴이 들어간 디자인이다.
홍상수) 4편을 아차산에서 촬영하는데 한 어른이 지나가다 배우들 사진을 한장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 새로 산 카메라로 풍경을 찍어보려고 산행을 왔는데, 자제분이 좋아하는 이선균씨를 알아보고 만났다는 증거를 남기려고 사진을 찍으신 거다. 그런데 이분이 알고보니 내가 일하는 건대에서 정년퇴임한 교수님이셨다. 나중에 연구실로 배우들과 나를 위해 뽑은 사진 세장을 갖고 오셨다. 내 몫의 사진을 벽에 붙여두고 물끄러미 보다가 장난치듯 무심코 거기 빠진 문성근씨를 그려놓고 ‘옥희의 영화’라고 썼는데 그것이 포스터가 됐다. (웃음)
절감(節減), 절감(切感)
김혜리) 4편 말미에는 감독인 옥희의 내레이션이 있다. “배우 해주실 분은 최대한 원래 모델이 된 분과 비슷한 인상의 분을 선택했습니다. 그 비슷함이란 한계 때문에 제가 원래 보고 싶었던 붙여놓은 두 그림의 효과를 절감시킬 것 같습니다.” 이것은 둘로 이해된다. 비슷해봤자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효과가 절감(節減)됐다는, 즉 영화매체의 한계에 관한 말 같기도 한 반면, 동일하지는 않고 비슷하기 때문에 형상화의 효과를 절감(切感)할 수 있었다는 표현 같기도 하다.
홍상수) 실제로도 두 번째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고 나 역시 이상한 어감 때문에 그렇게 쓴 면도 있다. 어쨌든 옥희가 의도한 건 첫 번째다. 영화를 통해 두 그림을 나란히 붙여놓음으로써 자신이 기억하는 것 이상을 보고 깨닫고 싶었는데, 즉물적 느낌이란 진짜를 붙여놓아야만 알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부족했다는 뜻이다. 이 내레이션으로 인해 세 인물은 갑자기 다 배우가 되어버린다.
- 김혜리, [홍상수] 문성근, 정유미, 이선균 서로 기댄 세 개의 막대기처럼 (씨네21, 2010년 9월호) http://m.cine21.com/news/view/?mag_id=62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