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 공중캠프 present 알콜토크 vol.22.1-3
: 『자본론』 150년, '러시아 혁명' 100년, '노동자 대투쟁'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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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 구성체는 그것이 충분히 포용하고 있는 생산력들 모두가 발전하기 전에는 결코 몰락하지 않으며, 더 발전한 새로운 생산 관계들은 자신의 물질적 존재 조건들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내에서 부화되기(have matured in the womb of the old society itself) 전에는 결코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맑스, 1859)


(플라이어 작업 중)



▶ 알콜토크 vol.22.1 - 『자본론』 1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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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17년 10월 21일(토) door open 19:00 / alcohol talk 19:30

* 장소: 공중캠프
* 진행: 김공회
* 참가비: 10,000원 (with 1 free drink, 안주/음식 반입 환영) (선착순 50명)
* 프로그램:

- (19:00~19:30) 식전 알콜 섭취
- (19:30~21:30) 알콜 토크
- (21:30~24:00) 못다한 알콜 섭취 (DJ 서동진 and more)


▶ 알콜토크 vol.22.2 - '러시아 혁명'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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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17년 11월 4일(토) door open 19:00 / alcohol talk 19:30
* 장소: 공중캠프
* 진행: 서동진
* 참가비: 10,000원 (with 1 free drink, 안주/음식 반입 환영) (선착순 50명)
* 프로그램:

- (19:00~19:30) 식전 알콜 섭취
- (19:30~21:30) 알콜 토크
- (21:30~24:00) 못다한 알콜 섭취 (DJ 김공회 and more)


▶ 알콜토크 vol.22.3 - '노동자 대투쟁'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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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17년 11월 18일(토) door open 16:00 / alcohol talk 17:00
* 장소: 공중캠프
* 진행: 김진숙 (토론: 김공회, 서동진)
* 참가비: 10,000원 (with 1 free drink, 안주/음식 반입 환영) (선착순 50명)
* 프로그램:

- (16:00~17:00) 식전 알콜 섭취
- (17:00~20:00) 알콜 토크
- (20:00~24:00) 못다한 알콜 섭취 (DJ 김공회, DJ 서동진 and more)



[참가신청 방법] 

(참가신청 오픈) 2017년 10월 9일(월) 낮 12:00

알콜토크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참가신청 양식 https://goo.gl/forms/OLLMaUxjkj7KmC1D2 을 작성하신 후, 해당 금액을 [우리은행 1005-702-633835 (예금주: 경성수)] 앞으로 입금해 주세요. (양식 제출 후 24시간 내에 입금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참가 신청이 자동 취소되오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취소/환불]

예매 취소 및 환불을 원하시는 분은  계좌번호와 함께 staff@kuchu-camp.net 앞으로 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알콜토크 일주일 전(10/14(토), 10/28(토), 11/11(토))까지 : 환불 수수료 0%
- 10/15(일)~10/19(목) 낮 12시, 10/29(일)~11/2(목) 낮 12시, 11/12(일)~11/16(목) 낮 12시까지 : 환불 수수료 20%
- 10/19(목) 낮 12시, 11/2(목) 낮 12시, 11/16(목) 낮 12시 이후 : 환불 불가


* 진행: 

- 김공회
http://socialandmater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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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런던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국회와 한겨레신문사 등을 거쳐 현재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성립과 발달에 관한 이론적 탐구와 지역 차원에서의 구체화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으며, 세계경제 및 한국경제의 최근 발달양상에 발맞춰 정치경제학 이론을 발전시키고자 노력 중이다. 『정치경제학의 대답: 세계대공황과 자본주의의 미래』(2012), 『왜 우리는 더 불평등해지는가: 피케티가 말하지 않았거나 말하지 못한 것들』(2014) 등의 저서(공저)와, 「Das Kapital의 성격과 그 번역에 대한 몇 가지 이슈」(2010), 「방법과 변증법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의 진화」(2015) 등의 논문이 있다. 한때 홍대앞 LP바에서 파트타임으로 DJ를 한 적도 있다.



- 서동진
http://www.homopo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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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리뷰, 당대비평, 현실문화연구, 서울퀴어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 계원디자인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변증법의 낮잠』(2014),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2009), 『디자인 멜랑콜리아』(2009), , 『ROCK 젊음의 반란』(1998), 『누가 성정치학을 두려워하랴』(1996) 등이 있고, 역서로 『섹슈얼리티: 성의 정치』(1999) 등이 있다. 「전진하는 미학: 사회와 정치 그리고 예술의 동요」(2012), 「알튀세르와 푸코의 부재하는 대화: 정치적 유물론의 분기」(2011)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경제와 문화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관계를 연구한다.



- 김진숙
https://twitter.com/JINSUK_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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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이자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방직공장 노동자, 우유 배달원, 신문 배달원, 버스 안내양 등으로 일하다, 1981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용접공이 되었다. 1986년 2월 노동조합 대의원에 당선된 후, 어용노조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어, 31년째 복직 투쟁 중이다. 1990년대 전노협 설립과 민주노총 출범 투쟁, 2000년대 민주노조 사수와 구조조정 저지 투쟁 등 노동 운동에 앞장섰다. 2011년 1월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영도조선소 35m 높이의 85호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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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Vino Veritas! (술 속에 진리가!)" [알콜토크]는 맥주 한잔 하면서, 느슨하고 흐릿한 기분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비정기 프리 토크 이벤트입니다. 입과 귀, 앎과 삶이 분리된 강의/세미나,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내용과 과정, 학연/가방끈주의자들의 허세와 먹물질 등을 지양합니다. 쉽게 바뀌지 않는 오래된 습관에 절망하면서, 새로운 리추얼의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입니다.



[Brief History of "알콜토크"]

- vol.1 2013.03.09 - 후쿠시마와 우리
- vol.2 2013.04.06 - 살육행위(the act of killing)
- vol.3 2013.11.15 - 맑스 재장전(Marx Reloaded)
- vol.4 2014.03.08 - 후쿠시마와 밀양
- vol.5 2015.05.02 - 세월호와 우리
- vol.8 2016.01.31 - <옥상자국>
- vol.12 2016.03.11 - <맨발의 겐>
- vol.18 2016.10.29 - 라캉, 알튀세르, 페미니즘
- vol.20 2017.03.11 - <핵의 나라 2>
- vol.21 2017.07.28 - <전공투>


댓글 '17'

공중캠프

2017.09.29 10: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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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공회, 150살 ‘자본론’이 인공지능 시대를 만났을 때


<자본론> 제1권 출간 150주년
150살 ‘자본론’이 인공지능 시대를 만났을 때

1867년 9월14일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지은이는 카를 마르크스. 정확히 150년 전의 일이다. 지난 15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공황이 이어졌다. <자본론>이 오늘날에도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교본임을 일깨워주는 증거다. <자본론>은 미래 세상의 설계도로 남을까.

1867년 4월10일 아침 8시. 독일 함부르크로 향하는 증기선 한 척이 가무잡잡한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를 한 중년 사내를 싣고 런던을 떠났다. 항해 내내 계속된 비바람과 파도로 여기저기서 승객들이 구역질하며 쓰러지는데도, 이 사내는 그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며 헤벌쭉댔다. 누구도 그가 열흘 전만 해도 사타구니에 난 종기와 저승사자 같은 빚쟁이에게 시달리며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던 비참한 망명객이었음을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중년 사내의 이름은 카를 마르크스. 그가 그토록 기분이 좋았던 것은, 20년 넘게 계획했고 적어도 10년 이상 독촉받았던 어떤 원고의 집필을 드디어 끝냈기 때문이다. 그의 여행가방엔 바로 그 원고뭉치가 들어 있었다. 북해의 풍랑을 헤치고 엘베강 하구를 거슬러, 배는 마침내 함부르크항에 닻을 내렸다. 4월12일 정오. 장장 52시간의 항해 뒤 쉬지도 않고 마르크스가 향한 곳은 출판업자 오토 마이스너의 사무실이었다. 원고는 다시 독일의 동부 라이프치히에 있는 인쇄소로 보내졌다.

9월14일. 지난한 교정작업 끝에 드디어 <자본론> 제1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본의 생산과정’이란 부제가 붙었다. 오랜 세월을 준비한 만큼 당연히 기대도 컸다. 걱정하는 건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뿐이었다. 감시와 추방, 도망과 망명, 어린 자식(아들 둘, 딸 하나)의 죽음, 불안정한 수입 등 그동안 그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리라. 예니와 달리, 마르크스의 사상적 동지이자 재정적 조력자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남다른 감회에 사로잡혔다. 이 저작의 탁월함과 의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는 <자본론>이 출간 즉시 세상에 큰 충격을 주면서 대성공할 것임을 확신했다.

마르크스 자신도 한껏 고무되었음은 물론이다. 한 편지에서 그는 <자본론>이 “지금까지 부르주아지의 머리에 던져진 가장 가공할 만한 포탄이 될 것”이라 호언하기도 했고, 나오지도 않은 책의 영어판과 불어판 번역자를 일찌감치 물색하기도 했다. 마이스너는 독일 신문들에 사전광고를 냈고, 출간 뒤에는 엥겔스가 유럽과 미국의 신문에 독어와 영어로 최소 일곱 편의 서평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냈다. 마르크스 주변 인물들이 총동원돼 ‘바람잡이’로 나선 셈이다.

그럼 결과는? ‘재앙’까지는 아니었으나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11월이 되자 서평도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조바심이 커지다 보니 종기가 도졌다. 삶이 다시 예전의 비참한 상태로 돌아가는 듯했다. 마이스너와의 계약에 따르면 1권 출간에 이어 2권과 3권을 연달아 내야 했으나, 마르크스는 이 의무의 이행을 미룬 채 후속 권들에 더욱 완벽을 기하고자 1883년 런던에서 영원히 눈을 감을 때까지 새로운 연구노트만 채워 나갔다.

왜 마르크스는 <자본론>에 그다지도 집착했을까? 1818년 독일 남부 트리어에서 태어난 마르크스는 변호사인 아버지의 바람대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베를린에서 수학하는 동안 급진적으로 해석된 헤겔 철학에 매료되어 박사논문도 철학 분야로 쓰게 된다(1841년). 대학에 자리를 잡으려던 계획이 반동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무산되자, 마르크스는 언론계로 방향을 튼다. 이때 그는 생전 처음으로 의회와 법정에서 보호관세나 재산권을 둘러싼 갈등을 가까이서 목격하고 또 그에 대해 논설할 기회를 얻었는데, 훗날 그의 회고에 따르면 ‘물질적 이해관계’를 다뤄야 하는 ‘곤란’에 처한 것이다.

이러한 ‘곤란’은 그저 직업상의 의무가 아니라 그의 생각의 틀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어떤 사변적인 명제나 가치도, 심지어 법조항도 ‘물질적 이해관계’ 앞에서 무력해지는 것을 지켜보며, 어떻게 급진적으로 해석하더라도 헤겔 철학은 그 관념성 때문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마르크스는 결론지었다. 따라서 그가 헤겔 철학의 ‘유물론적’ 전복을 시도한 포이어바흐에 경도된 것은 자연스러웠다. 나아가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현실의 부조리를 타파하려는 노동자들의 운동을 접하면서 ‘실천’의 중요성을 깨닫기에 이르는데, 이쯤 되면 포이어바흐까지 포함한 모든 철학들이 ‘말장난’일 뿐이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왔을 뿐이다.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마르크스는 범유럽적 혁명운동에 투신하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선언>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가 최종적으로 실패하면서 마르크스는 1849년 런던으로 망명하게 된다. 이렇게 실천이 봉쇄된 채 유폐된 상황에서 그는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고 훗날 새로운 ‘실천’을 도모하기 위해 자본주의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힘인 ‘물질적 이해관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로 한다. 결국 <자본론>은 그러한 탐구의 불완전하지만 최종적인 결실인 셈이며, 나아가 마르크스의 지적 여정의 ‘종착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물적 이해관계를 단순히 ‘탐구’하지만은 않았다. 일반적으로 그런 탐구에 특화된 학문 분야가 경제학인데, 마르크스는 당대 경제학이 근대사회의 물적 이해관계의 작동 메커니즘을 제대로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그의 기획은 기존 경제학과의 ‘대결’이라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고, <자본론>은 그러한 ‘경제학 비판’ 기획의 일부다.

마르크스가 보았을 때 경제학의 가장 중대한 오류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본질적인 성격을 규명했으면서도 이를 자본가와 노동자 간 계급관계의 바탕 위에 적절히 배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생산의 본질적 성격이란, 모든 부가가치는 노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어떤 노동자가 톱과 망치를 사용해 목재에 노동을 가해 개집을 만들었다고 하자. 이 생산물의 가치는 기존에 존재하던 톱·망치·목재로부터의 가치 이전분과 전혀 새로운 부가가치로 나뉠 텐데, 이 후자는 전적으로 노동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이 부가가치 모두를 노동자가 취한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으며, 여기까지는 애덤 스미스 같은 경제학자도 의견이 일치한다.

한편 자본주의에서 생산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관계에서, 곧 노동의 도구와 대상을 독점한 자본가가 오직 노동력만을 가진 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일어난다. 이때 자본가가 생산의 최종 결과물 중 자신이 애초 투입한 부분만을 분배받는다면, 그는 이 생산에 참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전적으로 노동자가 생산한 부가가치의 일부를 요구할 것인데, 만약 이 요구가 수용되면 근대경제 특유의 등가교환 가정이 깨지게 된다.

이런 모순에 직면해 경제학은 이른바 ‘요소이론’, 곧 생산물의 가치는 그 생산에 참여한 각 계급이 가져가는 이윤·지대·임금의 합이라는 명제를 내놓는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것은 제기된 모순을 해결한 게 아니다. ‘부가가치=노동’ 규정을 버린 것일 뿐이다. 반면 마르크스는 위 모순을 노동과 노동력을 구별함으로써 해소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고용된다는 것은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함을 의미하며, 고용된 시간 동안 노동력이 발휘되어 생산된 모든 것은 자본가에게 속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가는 그렇게 생산된 부가가치의 일부를 노동력 판매의 반대급부(임금)로 노동자에게 제공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갖는다(이윤).

요컨대 모든 부가가치가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자본주의의 특수한 조건, 즉 생산수단을 자본가가 독점한 조건 아래서는 그 부가가치는 임금과 이윤으로 분할되어 각각 노동자와 자본가에게 분배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본주의에서 생산과 분배는 괴리되며, 그 괴리를 마르크스는 ‘착취’라고 불렀다. 따라서 이 착취의 크기를 두고 자본가와 노동자는 항구적인 갈등상태에 놓이게 되는데, 반면 ‘요소이론’에서는 각 계급은 ‘주어진 자기 몫’만 챙겨가면 되기 때문에 서로 싸울 일이 없다.

<자본론>은 이렇듯 착취를 본질로 하는 노동-자본 간의 계급관계를 중심으로 경제를 파악하며, 이는 경제에 대한 독특한 분석력을 <자본론>에 부여한다. 이를테면 개별 자본가는 본성적으로 자신의 몫을 늘리고 착취를 강화하기 위하여 기술혁신에 나서고 생산에서 노동을 상대적으로 줄이려 한다. 그런데 모두가 이렇게 경쟁적으로 움직일 때 거기 몸을 던지지 않는 자본은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경쟁적 기술혁신은 개별 자본에겐, 그리하여 경제 전체적으로도 맹목적인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지속되어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이 상대적으로 계속해서 줄어들면 자본의 착취 영역도 줄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경제 전체적으로 이윤율이 떨어지고 자본들 간의 경쟁은 더욱 격화되는데, 여차하면 많은 자본이 한꺼번에 도산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공황’이다.

<자본론> 제1권 출간 이후 정확히 15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150년 동안, 자본의 조직화와 국가의 정책역량 강화가 꾸준했지만, 공황은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발생했다. 물론 그동안 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1930년대 대공황, 1970년대 석유파동, 1980년대 남미 외채 위기, 1990년대 동아시아 위기 등을 자본주의 자체가 아닌 어떤 외적 요인에 그 원인을 돌려왔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세계자본주의의 핵심부에서 촉발된 공황은 더 이상 그런 변명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사실 자체가 어쩌면 <자본론>이 오늘의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게 아닐까?

<자본론>이 경제의 장기적인 발전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으로 파악한다는 점도 곱씹을 만하다. 당장 인공지능 같은 신기술들을 떠올려보자. 이들이 인류의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고된 노동을 줄이면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리라는 장밋빛 전망이, 대규모 실업이나 대다수 자본의 경쟁력 상실에 대한 걱정과 공존하고 있는 현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혹시 그것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근거로 한 현재의 착취적인 생산관계의 철폐 필요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아가 이미 우리의 일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또는 포털서비스 같은 이른바 ‘플랫폼’ 기업들이 공적인 통제 아래 두어졌을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이렇게 <자본론>은 출간된 지 150년이 지난 오늘의 미래를 설계할 때에도 유용한 빛을 던져주는 것 같다.

김공회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한겨레, 2017.9.9]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810310.html

공중캠프

2017.09.29 10: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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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서동진, 러시아혁명 백주년을 위하여


이제 몇 시간을 더 셈하면 2017년이라는 새해가 들이닥칠 것이다. 보신각종을 타종하고, 새해가 밝았음을 축하하는 몇 마디 들뜬 말들을 들을 것이다. 그러곤 다시 심드렁하게 새해가 아닌 또다시 찾아온 오늘 속으로 묵묵히 들어갈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시간은 이런 것이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오늘이란 시간의 세계. 오늘날 시간이 처한 운명을 간략히 보여주는 것은 주식시세와 환율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시간을 통해 거래한다. 수십년 전의 주가나 환율은, 역사학자나 경제사가 몇을 빼곤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서는 역사적 시간은 사라지고 다만 지금이란 순간, 무한히 작게 축소된 오늘이 중요할 뿐이다. 지금 살 것인가 팔 것인가 아니면 더 가지고 있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데 고려되는 시간은 지금일 뿐이다. 이는 한 세기 전 겪고 느낀 시간과는 다를 것이다.

지난 세기의 시간은, 마냥 선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과거와 미래라는 이름으로 시간의 범위를 벌리고 그 속에서 어제의 결과로 또 내일의 기획으로 경험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집단의 이름으로 혹은 모두의 이름으로 그렇게 시간을 겪고 집행할 때, 그에 붙여준 이름은 혁명이었다. 오늘날 혁명은 평온하고 정상적인 정치를 중단시키는 병적인 현상으로 치부되는 듯하다. 그러나 지난 세기에 정치가 내건 목표는 언제나 혁명이었다. 식민지배와 내전, 분단으로 이어진 역사가, 혁명을 둘러싼 갈등의 역사가 아니라고 잡아뗄 수 있을까. 또 그것은 여기 대륙 끝에 자리한 작은 나라의 사태가 아니라 세계적인 사태였던 것이 아닐까. 내년은 그러한 세기의 시작을 알렸던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정치는 미래의 세계를 창설하는 것이라는, 지금은 흐릿해질 만큼 흐릿해진, 시간으로서의 정치, 정치로서의 시간을 기약했던 사건이, 러시아혁명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감히 세계사적 혹은 보편사적 사건이라고 할 만한 그 사건을 기억할 기력이 우리에겐 없는 듯하다.

아마 많은 이들이 그따위 혁명이란 악몽 혹은 미친 꿈은 이미 결산되었다고, 그것은 완벽한 실패로 판정되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리고 더 이상 무슨 뜻인지 모르게 된 민주주의라는 수수께끼 같은 개념을 엄호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일에 정치의 소임을 묶어두어야 한다고 강변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치를 미래로부터 떼어놓는 일일 뿐이다. 미래를 다루는 일에서 벗어난다면 정치는 따분한 행정업무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물론 많은 정치인들은 미래를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미래는 고작해야 점성술사가 말하는 것 같은 예언, 이를테면 4차 산업혁명, 인구절벽, 성장률 하락 운운의, 그저 그렇고 그런 예측으로 채색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미래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과 같은 현실이 지속된다면 도래할 결과들을 합산한 것일 뿐이다. 그것은 미래라기보다는 현재의 후유증에 가까운 것일지 모른다.

며칠 뒤면 도래할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꺼이 기억할 이들은 아마 희박할 것이다. 그럴수록 발터 베냐민이 말했던, 미래가 위험해지면 과거도 위험해지고 말 것이라는 쓰라린 경구가 머릿속을 맴돈다. 미래가 없다면 과거는 그저 골동품 수집가들이나 관심을 기울일 시간으로 전락한다. 미래를 살리려면 기억 역시 되살려야 한다. 100년을 맞이한 그 사건을 기억하는 일은 미래라는 낱말을 덮고 있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일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새해란 것은 오늘치의 시간들을 쌓아놓은 시간의 자루가 더 이상 아닐 것이다.

서동진 계원예술대 융합예술학과 교수

[한겨레, 2016.12.30]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6788.html

공중캠프

2017.09.30 16: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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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양돌규, 김진숙 쩜 에이치더블유피 파일을 만들었던 이유


옛날이야기다. 김진숙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고등학생이었던 1990년대 초입이었을 것이다. 부산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어떤 분이 그분을 일컬어 ‘한국 조선산업 최초의 여성 용접사’라 했고 난 용접사가 그 무슨 항공기 조종사쯤 되는 것처럼 멋있어 보였다. 그 당시 내가 아는 ‘용접사’라고는 길을 지나치며 본, 불꽃 튀는 철공소에서였고 한참 들여다보면 눈이 먼다는 섬광의 주인공은 늘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서부영화의 총잡이처럼 허리에 용접봉 뭉치를 꽂은 가죽 벨트를 하고 여성이 그런 거칠고 위험하기까지 한 일을 한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늘 편견보다 앞서가고 그래서 굴러갈 수 있나 보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조선, 자동차, 중장비, 광업 등 중공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1992년 울산의 직업훈련원에서 쇠를 깎는 선반 일을 처음 배우던 시절, 이제 막 노동현장에 온 나를 이따금씩 돌봐주던 선배 부부가 있었다. 당시 그분들은 갓 결혼해 신혼 살림을 꾸리고 계셨는데, 혼자 자취를 하는 나를 긍휼히 여겨 아나고며 광어며 히라스며 서울에서는 잘 알지도 못했던 활어의 세계에 입문시켜 주었다. 술이 한 순배 돌자 형님은 예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공고를 막 졸업하고 현대중공업에서 용접을 하던 때였는데 비계를 타고 건조 중인 배 바깥에서 용접을 하고 있노라면 미포만의 겨울 바닷바람에 얼어붙은 철판에 손이 쩍쩍 달라붙어 자칫하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었다는 ‘노동의 모험담’ 같은 것들이었다. 발을 헛딛어 족장 바깥 수십미터 아래 도크에 추락해 죽거나 또는 크레인의 전자석에서 전기적 이상으로 철판이 떨어져 그 아래 깔려 죽거나 하면 사람의 시신을 삽으로 긁어내 큰 통에 담고 다시 크레인에 걸어 올렸다는 얘기 같은 건 덤이었다. 그때 떠올렸던 분은 다시 김진숙이었는데, 머릿속에 떠오른 수식어는 ‘한국 조선산업 최초의 여성 용접사’에서 ‘대한조선공사 해고자’로 바뀌어 있었다. 현대중공업이나 대한조선공사, 그러니까 지금의 한진중공업이나 무간지옥 같은 노동 현실은 매한가지였을 거고, 걸핏하면 사람이 죽어 나가는 죽음의 공장에서 투쟁 말고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당대에 그분 역시 해고노동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싶었다.

그런 얘기를 나누던 활어의 세계로부터 새마을 연탄보일러를 때던 달세 5만 원짜리 울산 성내삼거리의 단칸방으로 돌아와 보면 이곳에도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다. 내가 세든 방 옆과 앞에는 그런 방이 한 예닐곱 개 있었는데 맞은편에는 나보다 두세 살 위로 보이는 여성 노동자들이 살고 있었다. 양말이나 속옷 등속을 빨던 마당 수도꼭지에서 말을 튼 옆방 이웃은 그녀들은 현대중공업 하청에 나가는 용접사들이라고 귀띔했다. 여성 노동자라고 하면 서울 구로의 전자 쪽이나 대구, 구미의 화학섬유 공장을 떠올리던 때였지만 ‘중공업의 그녀들’은 도처에 있었고 그런 그녀들을 마주칠 때마다 전설 같던 그 이름 김진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도 다 옛날이야기다.

시간이 흐르고 2006년 즈음해서 후마니타스 출판사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였나, 김진숙 씨 이야기를 꺼낸 안 편집장으로부터 그의 원고를 모아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아뿔싸! 내 노트북에도 그녀가 썼던 글들을 여기저기서 긁어모아 편집해 둔 ‘김진숙 쩜 에이치더블유피’ 파일이 있었다. 안 편집장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갔나 싶었다. 내가 출판사를 차리게 된다면 꼭 책을 내야겠다고 아껴 뒀던 필자 중의 한 명이 김진숙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안 편집장으로부터 원고를 모은 파일을 받아 부를 나누고 글 배치를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며 살펴보니 나보다 더 많은 글을 꼼꼼하게 모아두기까지 했더라. (출판사를 차린 것도 아니었던 나로서는) 아깝지만 김진숙 씨를 ‘단념’해야 했고 (역시 김진숙 씨에게는 죄송스러운 이야기겠지만) 후마니타스에 ‘양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김진숙 씨께서는 책을 낼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의사를 밝혔고 편집장은 혼자 애면글면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이런저런 조언을 주었는데 그게 도움이 되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소금꽃나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2007년 난 공교롭게도 15년 만에 울산에 내려가 있게 됐는데 마침 김진숙 씨의 강연이 열렸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기념 사업이었다. 근로자복지회관 입구에서 50여 권을 완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생생하긴 한데, 이것도 10여 년 전 옛날 얘기다.

세대의 순환은 계절처럼 어김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작년, 민주노총이 20주년 기념 행사를 했고 내년이면 1987년 789노동자대투쟁이 30주년을 맞게 된다. 현대중공업, 대우자동차 등 노동자대투쟁을 주도했던 대공장 조합원들이 매년 수천 명씩 정년퇴직으로 공장 문밖을 나서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활어 같던 그 세대의 노동자들은 백무산 시인의 시구처럼 국가로부터 ‘산업전사’로 호명되던 시간을 넘어 ‘노동전사’로서 투쟁했지만 아직 전사도 뭣도 아닌 미생의 후속 세대들을 뒤로하고 있다. 김진숙이 떠나야 했던 죽음의 조선소도 여전해 올해 2월 울산에서는 4톤의 철구조물에 깔린 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재사고가 발생했다.

2003년 김주익 열사의 추도사로 김진숙은 널리 알려졌고 2007년 『소금꽃나무』가 출간됐으며 2011년 그녀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 309일을 싸웠다. 하지만 난 그녀의 이름은,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이 1980년 신군부의 쿠데타로 압살당한 이후 다시금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터져나오던 시절을 예비하던 그 모든 노동자운동에 헌신했던 이들의 이름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1990년 ‘전노협’을 건설했고 1996년 ‘민주노총’을 세웠으며 1996-1997 총파업을 조직했다. 그 세대가 잘나고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조운동을 비판하는 것은 필요하다. 지금의 분절된 노동시장, 비정규사회가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따라서 민주노조운동 내에도 그 책임이 있지만 이 운동이 그러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지금 같은 상황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김진숙이 쓴 자신의 노동사를 통해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건너가고 넘어가야 할지를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1980년대를 넘어섰던 이 노동의 선배들이 갖고 있던 문제의식, 실천 의지, 치열함, 삶과 주위 사람들을 대하던 태도 같은 것들이 한 시대를 건너게 했다. ‘충분치 않다?’ 물론이다. 하지만 강화에서 가출한 십대 소녀 김진숙이 35년이 흘러 여기까지 멀리 왔다. 그건 우리 노동자들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웅변한다. 김진숙이 올랐던 85호 크레인은 도크에 추락사해 죽기나 하던 우리 노동자들이 어디까지 오를 수 있는지, 뿔뿔이 흩어져 각개격파 당하던 이들이 희망이라는 이름의 버스를 타고 어디까지 연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상징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통을 이어가며 달려야 하는 이 길은 김진숙의 말처럼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의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선배 세대들은 아직 짱짱하다. 옛날 사람도 아니고 옛날이야기도 아니고 옛날 꿈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 되고자 하는 노예의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은가. 여전히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이 있다. 이것이 내가 김진숙 쩜 에이치더블유피 파일을 만들었던 이유다.

양돌규 레드북스

[후마니타스 블로그, 2017.1.30]
http://humabook.blog.me/220922626647

공중캠프

2017.10.01 18: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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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이미지 - "태내에서 부화하는 에일리언 레고" 참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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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자신이 『자본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한 「상품」장에서 그는 ‘상품의 이중적 성격’(사용가치(Gebrauchswert/worth)와 가치(Tauschwert/value))과 그 상품에 체현된 ‘노동의 이중성’(사용가치를 낳는 서로 다른 구체적 유용노동(work)과 가치를 생산하는 동일한 추상적 인간노동(labour))에 대해 먼저 설명한다. 그리고 ‘단순한 가치형태’로부터 ‘화폐형태’로의 ‘가치표현의 발전과정’을 꼼꼼히 분석하면서, 사적 노동과 사회적 노동의 모순으로부터 발생하는 상품의 물신적 성격은 교환을 위해 상품을 생산해야 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상품 형태나 이 형태가 나타내는 바의 노동생산물들의 가치관계는 노동생산물의 물리적인 성질이나 그로부터 생겨나는 물적 관계와는 절대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인간 자신들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일 뿐이며 여기에서 그 관계가 사람들의 눈에는 물체와 물체의 관계라는 환상적 형태를 취하게 된다. [...] 이것을 나는 물신숭배(物神崇拜, Fetischimus, fetishism)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자마자 이들에 달라붙는 것으로서 상품생산과는 불가분한 것이다.

즉, 맑스에게 있어 물신성은 인간/관계의 사물화에 대한 비판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부의 기본형태”인 상품의) 근본적인 속성이며, 상품생산사회를 지속시키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인 것이다. 『공산당 선언』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에 관한 부분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기존의 신분 질서를 무너뜨리고 “거대한 생산력들을 창조”한 부르주아지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하며 다음과 같이 경의를 표한다:

부르주아지는 지금까지 존경받았던, 사람들이 외경을 갖고서 바라보았던 모든 직업으로부터 그 신성한 후광을 벗겨 버렸다. 부르주아지는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를 자신들의 유급 임금 노동자로 바꾸어 버렸다. [...] 모든 신분적인 것, 모든 정체적인 것은 증발 되어 버리고, 모든 신성한 것은 모독당한다. [...] 부르주아지는 백 년도 채 못 되는 그들의 계급 지배 속에서 과거의 모든 세대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고 더 거대한 생산력들을 창조하였다. 자연력들의 정복, 기계, 공업과 농업에의 화학의 응용, 기선 항해, 철도, 전신, 전 대륙들의 개간, 하천의 운하화, 땅 밑에서 솟아난 듯한 전 주민들 - 이와 같은 생산력들이 사회적 노동의 태내에서 잠자고 있었다는 것을 과거의 어느 세기가 예감했을까

하지만 그 장의 마지막 문단에서 그들은 “부르주아지를 그 무의지적 무저항적 담지자로서 가지고 있는 바의 공업의 진보는 [...] 노동자들의 혁명적 단결”을 가능하게 하여, “대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부르주아지가 생산하며 생산물들을 전유하는 그 기초 자체가 부르주아지의 발 밑에서 무너”질 것이라고 역설한다. 즉, 부르주아지는 “자기 자신의 매장인”을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고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바로 부르주아지의 “발 밑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지젝의 『시차적 관점』에서 나오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는 투쟁 자체를 대표한다(in the class struggle between bourgeoisie and proletariat, the proletariat stands for the struggle as such)” (지젝, 2009(2006): 89(42))는 문장은 바로 이러한 ‘부르주아의 내재적 분열’을 의미한다. 노동자 계급의 착취를 통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부르주아의 시대”는 노동의 소외와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인 동시에 새로운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한편 토대와 상부구조,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에 관한 아래의 유명한 구절은 변증법의 운동 법칙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의지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일정한 필연적 관계들, 즉 자신들의 물질적 생산력들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조응하는 생산 관계들에 들어선다. 이러한 생산 관계들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 즉 그 위에 법률적 및 정치적 상부 구조가 서며(arises on) 일정한 사회적 의식 형태들이 그에 조응하는 그러한 실재적 토대를 이룬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 방식이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 과정 일반을 조건 짓는다. 인간들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들은 그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지금까지 그것들이 그 내부에서 운동해 왔던 기존의 생산 관계들 혹은 이 생산 관계들의 법률적 표현일 뿐인 소유 관계들과의 모순에 빠진다(come into conflict with). 이러한 관계들은 이러한 생산력들의 발전 형태로부터 그것들의 족쇄로 변전한다(turn into their fetters). 그때에 사회 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더불어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서서히 혹은 급속히 변혁된다. [...] 한 개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그 개인이 자신을 무엇이라고 여기는가에 따라 판단하지 않듯이, 그러한 변혁의 시기가 그 시기의 의식으로부터 판단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의식을 물질적 생활의 모순들로부터, 사회적 생산력들과 생산 관계들 사이의 현존하는 충돌(the existing conflict)로부터 설명해야만 한다. 한 사회 구성체는 그것이 충분히 포용하고 있는 생산력들 모두가 발전하기 전에는 결코 몰락하지 않으며, 더 발전한 새로운 생산 관계들은 자신의 물질적 존재 조건들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내에서 부화되기(have matured in the womb of the old society itself) 전에는 결코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맑스, 1859)(*1).

즉, 현재의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물질적 생활의 모순들로부터”, 자본주의의 바깥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서서히 혹은 급속히 변혁”되는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공산주의”를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state of affairs)”나 “현실이 이에 의거하여 배열되는 하나의 이상(ideal)”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real movement)”으로 정의하고 “이 운동의 조건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전제들로부터 생겨난다”(*2)고 강조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맑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은 서로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요소들이 뒤섞여있는 도시 공간 연구에 기본적인 방법론을 제공해 왔다. 서로 다른 가치와 문화가 공존하는 ‘홍대 앞’이나 주류 질서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인디’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더욱 잘 이해될 수 있다. 자본주의 도시 공간과 소비문화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들춰내어 비판하거나 주류와 인디의 관계를 교집합이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대립항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현존하는 충돌”로 바라볼 때 더욱 정치적·변혁적일 수 있다. 즉, ‘인디 공간’이란 자본주의적 도시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면서 그 “발 밑에서” 혹은 “태내에서 부화”하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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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사람들은 이 문장을 인용하며, 맑스주의를 토대 결정론 혹은 경제 결정론이라고 비판한다. 훗날 엥겔스는 이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추가해야 했다: “역사를 유물론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궁극적으로 역사를 결정하는 요소(the ultimately determining element)는 현실적 삶의 생산과 재생산이다. 맑스도 나도 이 이상의 것을 주장한 적은 없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이것을 왜곡해서 경제적 요소만이 유일한 결정적 요소(the economic element is the only determining one)라고 말한다면, 그는 그 명제를 무의미하고 추상적이며 얼빠진 소리로 전락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 엥겔스, (Letters) Engels to J. Bloch In Konigsberg, London, September 21, 1890

*2. “공산주의란 우리에게 있어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가 아니며, 현실이 이에 의거하여 배열되는 하나의 이상도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을 공산주의라 부른다. 이 운동의 조건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전제들로부터 생겨난다.(Communism is for us not a state of affairs which is to be established, an ideal to which reality [will] have to adjust itself. We call communism the real movement which abolishes the present state of things. The conditions of this movement result from the premises now in existence.)” (맑스&엥겔스, 1988(1846))

*3. 이러한 관점에서 인디는 엘리어트의 자전거에 태워 먼 우주로 보내야 하는 ‘ET(Extra-Terrestrial)’가 아니라 케인의 가슴을 찢고 나오는 ‘에일리언’이라고 할 수 있다. 주류와 인디의 관계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본 논문의 3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ㄱㅇㅂ, 2010)

공중캠프

2017.10.10 23: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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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매 양식 중) <자본론 150년, 러시아 혁명 100년, 노동자 대투쟁 30년>에 대해 한말씀 (이번 알콜토크에 참가한 이유와 기대하는 것, 함께 논의하고 싶은 주제 및 의견 등)]

"이번 알콜토크의 기획에 박수를 보냅니다~! 논의하고 싶은 주제를 강연을 들으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___^"
(ㄱㄱ 님)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ㄱㅈㅇ 님)

"세번째 시간이 특히 재밌을 듯 한데요. 어찌 얘기가 될지 궁금합니다."
(ㅅㅈㅇ 님)

"김진숙님이 출연하신 영화 '위로공단' 잘 보았습니다. 여성으로서의 노동운동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ㅎㅅㅇ 님)

"러시아 혁명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과 서동진 선생님의 관점을 듣고 싶어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ㅁㅇㅈ 님)

"미친 라인업인 것 같습니다. 보수정권 10년이 지나고 김지도님이 노동운동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ㅅㅅㅇ 님)

"지긋지긋한 회사생활. 철저한 위계관계. 비합리적인 일들. 하지만 말 한마디 반항하지 못한다. 밥 그릇 사라질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는 나뿐만이 느끼는 게 아닐 것이다. 과연 자본론과 러시아 혁명이 오늘날 한국사회 우울한 직장인에게 어떤 메시지를 안겨줄지 기대하며 참석한다."
(ㅇㅂㄹ 님)

"자본론에 대한 이해를 넓힐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ㅎㅇㅈ 님)

"저기 댓글에 "[첨부 이미지 - "태내에서 부화하는 에일리언 레고" 참고글] (ㄱㅇㅂ, 2010)" 이 글은 어디에 실린 누구의 글인가여~ 전문 보고 싶네여"
(ㅁㄱ 님)

"선생님들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
(ㅈㄱㅅ 님)

"잘모릅니다 공부하겠습니다"
(ㅎㅈㅎ 님)

"러시아 혁명이 궁금해서"
(ㅇㅎㅈ 님)

"2017년 가을과 겨울의 시점에서 기념과 기억을 해야 할 큰 사건에 대해 주변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이 행사에서 소중한 말씀을 듣고 싶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ㅅㅈㅎ 님)

"공부하고 싶다"
(ㄱㄱㅎ 님)

"쉽게 바뀌지 않는, 오래된"
(ㅊㅊㅎ 님)

공중캠프

2017.10.10 23: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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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매 양식 중) 알콜토크에 대해 한말씀 Comment to Alcohol Talk (알콜토크 주제/형식 제안, 진행자/참가자/주최측에 전하고 싶은 말씀 등)]

"기획 좋다!"
(ㄱㅇㅊ 님)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ㄱㄱ 님)

"화이또!"
(ㅅㅈㅇ 님)

"흥미로운 주제들로 이뤄진 알콜 토크를 기획해주셔서 고맙습니다."
(ㅁㅇㅈ 님)

"강의가 아주 가볍지도 아주 무겁지도 않았으면."
(ㅇㅂㄹ 님)

"아직 참석을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이벤트 인 것 같습니다"
(ㅎㅇㅈ 님)

"잭다니엘 마시고 싶습니다."
(ㅁㄱ 님)

"좋은 기획 감사합니다"
(ㄴㅅㅊ 님)

"고생많으십니다."
(ㅈㄱㅅ 님)

"잘모릅니다 공부하겠습니다"
(ㅎㅈㅎ 님)

"고맙습니다"
(ㅇㅎㅈ 님)

"알콜토크에 대해 김공회 선생 페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나름 더 홍보수단을 모색할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행사시작을 좀 일찍 시작해서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참석한 사람들의 귀가에 불편이 없도록 했으면 합니다."
(ㅅㅈㅎ 님)

"헿"
(ㄱㄱㅎ 님)

"좋은 기획, 감사"
(ㅊㅊㅎ 님)

공중캠프

2017.10.17 00:48:09
*.1.197.192

▶ 알콜토크 vol.22.1 - 『자본론』 150년 참고 텍스트

<책>
마르크스의 『자본』 탄생의 역사 / 비탈리 비고츠키
자본론 이펙트 / 프랜시스 윈

<논문>
김수행의 『자본론』 번역: 의의와 개역 과정상의 특징 / 김공회
Das Kapital의 성격과 그 번역에 대한 몇 가지 이슈 / 김공회
한국에서 『자본론』의 수용과 번역 / 장시복

<영상>
BBC Genius Of The Modern World Episode 1:Marx
https://youtu.be/U_cU9MUhUWk
(올해 상반기에 방영된 BBC의 다큐멘터리. 영어자막 있음.)

(김공회)

공중캠프

2017.10.18 09:32:45
*.7.19.241

▶ 알콜토크 vol.22.2 - '러시아 혁명' 100년 참고 텍스트

[러시아혁명에 관해 공부하고 싶다면 읽어볼 책들]

- 박노자, 러시아 혁명사 강의, 나무연필, 2017.

이제 막 도착한 이 책은 러시아혁명을 한국현대사를 읽는 반면 거울로 삼는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서술을 시도한다. 구 소련에서 성장하고 시장경제로의 이행과 더불은 배반의 역사를 지켜보기도 했던 저자의 서술은 러시아혁명과 구 소련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국가와 당을 통한 지배 등에 관한 저자의 강한 거부감은 거리를 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만 러시아혁명을 오늘의 시점에서 반복할 필요를 느끼는 이들에겐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 존 리드, 세계를 뒤흔든 열흘, 서찬석 옮김, 책갈피, 2005.

아마 서구사회에서 러시아혁명의 현장을 가장 널리 알린 기념비적인 책이다. 이 책에서 러시아혁명의 실험이 무엇이었는지를 감격과 흥분에 찬 목소리를 통해 들어볼 수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혁명은 노동자와 농민들을 비롯한 근로대중들이 역사상 최초로 권력을 장악하고 평등한 사회경제질서를 만들어내려고 했던 실험이었다. 이 글은 그 역사적인 실험에 참여했던 이들의 열정을 마치 곁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해준다.

- 빅토르 세르주, 러시아혁명의 진실, 황동하 옮김, 책갈피, 2011.

존 리드의 책과 더불어 러시아혁명의 현장의 열광 나아가 동요와 혼란을 전하는 글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방랑 혁명가인 세르주는 러시아혁명이 성공하고 난 이후 1년의 시간을 섬세하게 기록하고 증언한다. 무엇보다 혁명을 지키고 확장하며 방어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딜레마를 헤아리는데, 그리고 노동자와 민중이 주인 되는 세계를 창설한 최초의 실험에서 어떤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데 유익하다.

- 레온 트로츠키, 러시아 혁명사, 볼셰비키그룹, 아고라, 2017.

레닌과 함께 러시아혁명을 이끌었던 지도자이며 또한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이자 소비에트연방의 군사위원장이기도 했던 트로츠키야말로 러시아혁명에 관한 가장 중요한 증언자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트로츠키란 이름을 둘러싼 열광이나 거부감을 뒤로 하고 혁명을 직접 지휘하고 또 그것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결정적 판단과 선택을 감행했던 트로츠키의 회상을 읽는다면 러시아혁명의 진면목을 보다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 * *

그러나 러시아혁명에 관한 몇 권의 책으로는 러시아혁명 이후의 세기였던 20세기의 역사를 이해하기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러시아혁명이 유럽은 물론 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민중과 지식인들에게 미친 영향을 이해하거나 러시아혁명이 문화와 예술에 끼친 충격과 효과를 이해하자면 수천 권이 넘는 글들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러시아혁명은 유토피아적 기획을 현실에서 실행하고자 했던 전무후무한 실험이었다. 그것을 기억하지 않고 또 그로부터 배우지 않은 채 유토피아적인 기획을 실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러시아혁명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한 목록을 만들어보기를 권한다.

노동자라면 금융화와 공황이니 4차산업혁명이니 하는 알쏭달쏭한 말들이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위기와 관련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러시아혁명의 교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노동자와 민중이 자신들이 주인이 되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를 위한 전망을 찾고 나침반을 고르는데 러시아혁명은 최고의 학교가 될 것이다.

혹은 철학을 공부하는 이라면, 프랑스혁명이 없었다면 칸트와 헤겔의 위대한 철학이 불가능했던 것처럼 러시아혁명을 철학적인 사건으로서 바라보며 그것이 20세기의 철학에 어떤 위대한 철학적 전통을 만들어냈는지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가라면 다다나 초현실주의와 더불어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최전선에 있었던 러시아 혁명의 예술적 실천을 추적하면서 오늘날 급진적인 예술이 처한 문제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던 그것이 고독한 사색이어서는 곤란하다. 러시아혁명을 이끈 가장 큰 비결은 학습하고 선전하고 조직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공부하고 주변에 알리며 뜻을 같이하는 이들을 조직하는 일이다.

(서동진)

공중캠프

2017.11.05 21: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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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정말 러시아 혁명을 알고 있나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17252.html

러시아혁명의 쓸쓸한 100돌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europe/817367.html

대중은 혁명을 일으켰지만 혁명은 딜레마를 낳았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817479.html

공중캠프

2017.11.13 12: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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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캠프

2017.11.14 10: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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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하경, 가슴으로 쓴 글 - '소금꽃 나무' 서평


첫 인연

김진숙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본 건 1989년 겨울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그해 여름>을 쓰기 위해 창원 통일중공업 노조를 취재하고 있었는데, 마산창원에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고 해서, 때마침 부산지법에 있던 강금실 씨(전 법무장관)가 혼자 기거한다는 얘기를 듣고 염치 불구하고 찾아가, 그의 아파트 방 한 칸에 눌러앉아 식객노릇을 하던 참이었다. 때마침 그 아파트는 부산의 서쪽 끝 사상 시외버스터미널과 가까운 동네에 있었고, 사상에서 마산까지는 5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서 버스 타고 부산과 마산을 왔다갔다하며 자료도 수집하고 인터뷰도 하고 그랬다.

인터뷰가 없는 날은 가끔 부노련(부산노동조합총연합)의 행사도 기웃거리고 자료도 얻고 했는데, 그때 거기서 처음 <조공노동자신문>을 봤고, 신문을 만든 이가 중학교를 중퇴한, 그것도 여성 용접공 김진숙이란 사실에 깜짝 놀라서 단순한 호기심 차원에서 달려들어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글을 다 읽은 다음 나는 잠시 머리가 멍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한마디로 믿을 수 없었다. 말도 안돼. 학출이 대신 썼거나, 최소한 뒤에서 코치를 했거나, 아님 학출한테 글쓰기 훈련을 빡쎄게 받았거나....그렇다고 생각했다. 글을 써본 사람들은 쉽게 쓴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어려운 얘기를 어렵게 쓰는 게 쉬운 얘기를 쉽게 쓰기보다 더 힘들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그냥 말하듯 술술술 힘 안 들이고 쓰면서도 노동자의 생활과 생각을, 안 봐도 비디오처럼, 안 들어도 오디오처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듯,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려면, 최소한 선수가 돼야 한다고, 글쓰기의 고수가 되야 한다고,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더욱이 새해 첫 논설치고는 파격적이었다. 다른 일간신문은 물론 다른 노동자신문과도 달랐다. 흔히 연두사설에는 보통 때보다 더 힘이 들어간다. 신문의 논지를 더욱 뚜렷이, 새해의 목표나 전망을 강하게 드러내야 하므로, 목소리를 높이고 잔뜩 권위를 부풀리면서 여간 폼을 잡는 게 아니다. 감동이 목적이 아니라 가르침이 목적이기 때문에 관념어 추상어가 난무하는 건 물론이고, 첫째 둘째 셋째 등등 요지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딱딱한 글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의 글에서는 판에 박은 듯한 천편일률적인 관념어 추상어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인다.

그때 받은 충격이 얼마나 컸으면 지금도 그때 읽은 글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자세한 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짐작된다. ... 늙은 노동자가 새끼줄에 꿴 연탄 두 장을 들고 힘겹게 산동네 오르막길을 올라오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해서, 이런 노동자들이 그나마 하루 연탄 두 장씩이나마 떨어뜨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추운 겨울 가난한 노동자가 연탄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되어야하지 않겠냐....고 끝난 걸로 기억된다.

그의 글은 처음부터 읽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었다. 분칠한 얼굴과 콧소리로 가장하는 싸구려 유혹과도 달랐고, 거창한 거대담론으로 기를 죽이듯 압박하는 당위성과도 달랐다. 아주 작고 평범한 일상으로부터 조용조용 시작되는 그의 글은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한 발짝 두 발짝 들어가게 만든다. 그리고 어느 새 아무렇지도 않게 가난한 노동자의 일상에 뒤섞여 함께 밥 먹고 함께 일하고 함께 웃고 떠들다 잠이 들게 한다. 그들의 땀과 눈물을 닦아주고, 그들의 한숨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그들의 얼굴에 깊이 팬 주름살 하나하나를 가만히 더듬고 있는 자신을 느끼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콧마루는 시큰해지고 눈앞은 뿌옇게 흐려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낀다. 도저히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꽉 쥐기도 한다. 단결! 투쟁! 올 상반기 투쟁의 목표! 투쟁의 전망! 이런 단어나 느낌표조차 하나 없이도 몸과 마음은 결기로 단단해지고 뻣뻣하게 긴장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다.

엄청난 변화다. 이런 변화야말로 진정 깊은 감동이고 강한 설득력이 아니고 무엇이랴.


염화시중의 미소

솔직히 말해 충격 그 자체였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글을 쓸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왔다. 노동자 김진숙의 글이 내 안에 숨겨져 있던 뇌관을 건드린 것이다. 혼자 몰래 삭이고 또 삭이던 치명적 약점 하나가 상처를 입은 것이다. 바로 지식인 콤플렉스였다. 김진숙의 글을 계기로 폭발하고 만 것이다. 구미호처럼 아홉 번 둔갑을 해도 노동자가 될 수 없다는 그 절망감. 지식인도 노동소설을 쓸 수 있다고 겨우 버티고 있던 얄팍한 사명감과 당위성이 한방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애진작에 노동소설을 쓰겠다고 떠들고 다니며 똥 폼을 잡은 내 자신이 얼마나 한심하고 부끄러웠는지, 취재와 인터뷰만으로 소설을 쓸 수 있다던 호언장담이 얼마나 허황된 욕심이고 오만이었는지,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대로 보따리 싸서 서울로 올라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해 여름>을 끝까지 완성한 것 역시 그의 글 덕분이었다. 그의 글이 나를 아프게도 했지만, 동시에 그 아픔이 나를 일으켜 주었다.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글을 써서 누군가를 감동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떻게 써야 감동을 줄 수 있는지도 몰랐다. 김진숙의 글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써온 글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김진숙의 글이 감동적인 건 단지 그가 노동자라서가 아니었다. 그가 누구보다 노동자를 사랑하고 노동자의 삶에 대해 항상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게 뭔지, 아픔과 슬픔과 두려움이 뭔지를 예리하게 포착하여 잘 헤아리고 따뜻하게 보듬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진짜 감동적인 글을 쓰려면 노동자와 노동자의 삶에 대해 남다른 관심과 사랑을 가지면 되었다. 그 관심과 사랑이 진정이기만 하면 되었다. 한마디로 가슴으로 쓰면 되는 것이었다. 가슴으로 쓰는 글이 진정한 감동을 주는 글이었다. 그때서야 눈앞이 환하게 밝아졌다. 희망의 등불이 켜졌다. 바로 이거야! 가슴으로 쓰는 글!

나도 한번 그런 글을 써보고 싶었다. 가슴으로 쓰는 글을 써보고 싶었다.

노동자냐 지식인이냐의 구분은 핑계일 뿐이었다. 손끝 글재주만으로 쓰느냐? 머리로 쓰느냐? 가슴으로 쓰느냐? 감동은 이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노동자가 썼냐 지식인이 썼냐의 차이에서 감동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진정 감동적인 글을 쓰려면 가슴으로 써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구보다 인간과 삶을 가슴으로 사랑하며 살아왔기에, 그로 인해 누구보다 상처와 아픔을 많이 겪었기에, 그래서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주제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오만이고 욕심인 줄은 나중에 알았지만, 그 때는 그나마도 없었으면 버티지도 살아가지도 못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절망을 딛고 다시 일어섰다. 나도 가슴으로 글을 써보리라.

이심전심이라고 했던가. 그의 글이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다가와 나의 가슴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지식인이 노동소설을 쓸 수 있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이 미소를 떠올린다.

그 길로 나는 짐을 싸들고 다시 서울에서 마산으로 이사를 내려오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지역노동자들과 살을 부대끼며 함께 울고 웃고 살아가면서 <그해 여름>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정치적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전노협 창립과 동시에 상층 지도부 대부분이 구속 수배로 공백 상태가 되었다. 울산에서는 골리앗투쟁이 벌어지고 창원에서도 통일중공업 노조 이영일 열사가 분신하는 등으로 전노협 차원의 총파업이 내려진 상황이었다. 밖으로 뛰쳐나가 투쟁대열에 동참해야 하나 아니면 안에 틀어박혀 소설을 마저 끝내야 하나, 두 갈래 갈림길 앞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할 때마다 <조공노동자신문>을 떠올렸다. 그 신문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투쟁동참과 글쓰기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피가 튀고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투쟁하는 것과 똑같이, 투쟁하는 것처럼 치열하게 글을 쓴다면, 그런 글은 투쟁과 똑같다고, 하나라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 깨달음의 힘으로 나는 부족하나마 <그해 여름>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영도 앞바다도 울었다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한 뒤 인사차 부산을 찾았을 때가 1990년 말인지 1990년 초인지는 모르겠다. 겨울인 것만은 확실히 기억한다. 박창수 위원장이 강제 연행된 게 1991년 2월 10일 대기업연대회의 수련회장에서였으니까 아마도 그 이전 어느 날이었을 것이다. 부산에 내려가 강금실씨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부노련 사무실을 찾았다.

마침 회의실에는 부산지역 노조간부들이 송곳하나 들어갈 틈도 없이 빼곡했다. 한 겨울인데도 뜨거운 열기가 후끈후끈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연단에는 박창수 한진중공업 위원장이 열변을 토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지역적 공동파업이나 공동대응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던 걸로 추측된다. 그 회의실 맨 앞자리에 김진숙씨가 앉아있었다. 처음 얼굴을 본 게 그날이지 싶다. 무척 앳되 보였고, 열기 때문인지 볼이 발그레 상기되었고, 그 때문에 얼굴 전체가 복숭아처럼 발그레 빛났던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박창수 열사의 장례식장에서 다시 김진숙을 만났다.

그날 한진중공업 맞은 편 언덕받이 산동네는 까마귀떼가 덮친 것처럼 사람들로 새까맣게 뒤덮였다. 이른 아침부터 박창수 열사의 운구를 배웅하기 위해 할머니 아줌마 아이들이 몰려나와, 길을 메웠고, 장독대와 담장은 말할 것 없고 심지어 지붕 위까지 올라앉아 일제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생떼 같은 지아비와 애비를 잃은 젊은 아내와 어린 두 남매를 바라보면서, 하나같이 발갛게 부어오른 그들의 눈에서는 쉼 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굵은 뼈마디가 불거진 손으로 눈물을 훔치던 검고 주름진 얼굴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장례식은 해가 뉘엿뉘엿 지는 오후 늦게서야 시작되었다. 기다리던 사람들의 얼굴엔 피로의 기색이 역력했다. 몇몇 유명 인사들의 추도사가 지루하게 흘러가자 모두들 잠이 든 것처럼 눈을 감거나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마이크가 터질듯 쩌렁쩌렁 울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들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저마다 누고? 하면서 목을 길게 빼밀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부산시민들이 김진숙의 이름을 알게 된 계기가 그때가 아니었나 싶다.

“박창수 열사여! 당신의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불러봅니다.”

김진숙이 한 번씩 목 놓아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영도 앞 바다가 쩌렁쩌렁 울렸고, 흐느낌은 오열로 변했다. 장례식장은 순식간에 울음바다로 변했다.

운구 행렬이 영도다리를 지나 시청 앞으로 향했다.

“창수야, 일어나라. 일어나서 싸워라!”

온 부산이 다 일어나 울부짖는 듯 메아리치던 이 목소리, 이 목소가 <소금꽃나무>를 읽는 지금도 귓전을 울린다. 새삼 그때처럼 눈물이 또 흘러내린다.

1992년 나는 다시 서울에서 마산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어느 날 누가 <연대와 실천>에 글 쓸 사람을 물어보기에 김진숙을 적극 추천했고, 정확한 날짜는 가물가물하지만 그 즈음 정식으로 얼굴을 맞대고 인사를 나눈 것 같다. 김진숙은 잦은 수배와 구속으로, 나는 서울과 마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노라고 매번 어긋나기만 했었다. 그런데 첫 만남인데도 흥분도 설렘도 없이 덤덤하기만 했다. 아마 그동안 많은 글을 읽어서 잘 안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마치 아주 오래 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여겨져 그랬는지도 모른다.


완벽주의자 = 지독한 노력파

‘김진숙이 만난 사람들’(1994년 12월~ 1995년 5월)은 꽤 인기가 있어서 나도 그랬지만 그를 좋아하는 애독자가 참 많았다. 그런데 갑가기 그가 구속되는 바람에 연재가 중단되고 말았다. 그러나 석방된 뒤에도 그의 글은 다시 볼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무척 아쉬워했다. 그는 글쓰기에 대한 부담이 어찌나 큰지 진짜 감옥보다 더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누구보다 글쓰기의 완벽성을 추구하는 성격을 알기에 서운한 마음을 뒤로 한 채 그를 글 감옥에서 놓아 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김진숙은 완벽한 글쓰기로 꽤 정평이 나있다. 강의안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일 정도로 거의 완벽에 가깝다. 교육이나 연설을 의뢰했을 때 그에게 수락을 받기가 쉽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강의할 자신이 없으면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대신에 승낙하면 거의 백 프로 절대적으로 신뢰해도 좋다.

이런 유명세에는 ‘지독한 노력파’라는 또 다른 별칭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그는 항상 강의안이나 연설문 하나를 준비하는데도 엄청난 시간과 정성을 기울인다. 사전에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핵심 주제나 전달할 내용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공부하고 연구하는 건 물론 수많은 예를 찾아내 들어주며 쉬운 말로 정리한다. 그렇게 하여 하나의 완벽한 강의안이나 연설문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의 강의안이나 연설문은 그 자체가 잘 쓰여진 하나의 작품에 비유되기도 한다.

<소금꽃나무>에 실린 글 중에는 강의안이나 집회장에서 한 연설문을 그대로 옮긴 것도 있다. 김진숙에게는 말과 글이 하나기에, 새롭게 고치거나 바꿀 이유가 없을 정도로 말과 일치하기에, 강의안이 연설문이 곧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영원한 고전 <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김진숙의 이름이 전국에 알려진 건, 그러니까 전국적으로 뜬 건 2003년 한진중공업노조 김주익 열사 추모사 때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의 교육과 강의를 한번쯤은 들어봤을 조합원도 많을 테고, 이래저래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겠지만, 부산역광장에서 낭독한 김주익 열사의 추모사가 인터넷으로 퍼져나간 뒤부터 그 이름이 전국적 지명도를 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가장 감동적인 글 한 편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119쪽~123쪽)를 손꼽을 것 같다.

이 글은 한 시대를 풍미하다 잊혀 질 그런 글이 아니다. 아마도 노동문학의 고전으로 남아 영원히 우리 가슴에 기억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몇 번을 읽고 또 읽어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콧마루가 시큰거리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고전의 반열에 올려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한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열사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던 김주익이 죽는 방식이 같은 나라.” (같은 글 123쪽)

노동자가 가혹한 운명을 지고 살아가야하는 이 비극의 땅을 이 한마디로 절절하게 표현한 문장을 나는 어디서도 읽어본 적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민주노조 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그냥 그렇게 살 걸 그랬습니다....못 본 척 못 들은 척 살걸 그랬습니다.....감지덕지 살 걸 그랬습니다.” (같은 글 120쪽~121쪽)

지면상 생략했지만 말 줄임표(....) 안에 들어간 내용은 반드시 읽어보아야 한다.

차라리 노예로, 짐승처럼, 벌레처럼 살았다면 최소한 이 젊은 열사들의 죽음만은 막을 수 있지 않았겠냐는 반어법 앞에서 회한과 허탈감이 밀려온다.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품었냐는 그의 절규를 들으면서는 비수로 후벼 파는듯 가슴이 저며온다. 이런 추모사를 들으며 어떻게 카메라 렌즈가 눈물로 얼룩지고 부산역 광장이 눈물바다로 변하지 않을 수 있겠나.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그들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만날 우리만 죽고 천날 우리만 깨집니다. 아무리 통곡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고스란히 되돌려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버이날 요구르트 병에 카네이션을 꽂아놓고 아빠를 기다리던 용찬이, 아빠 얼굴을 그려보며 일자리 구해줄테니 사랑하는 아빠, 빨리 오라던 혜민이.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동지 여러분! 좀 달라야하지 않겠습니까?” (같은 글 123쪽)

이 마지막 살 떨리는 문장을 읽으면서 태연히 배를 깔고 엎드려 책장을 넘길 배짱이 나는 없다. 이런 문장을 읽고 있으면 저절로 누워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똑바로 앉게 된다. 하긴 이 책은 결코 편한 책이 아니다. 벌러덩 누워서 술렁술렁 읽을 수 있는 책이 분명 아니다. 불편한 책이다. 읽다보면 왠지 벌을 서거나 야단을 맞는 기분이 든다. 한마디 한마디 아픈 데만 골라 콕콕 찔러댄다. 그런데도 신기하게도 반박하거나 핑계대거나 도망갈 수가 없다. 김진숙의 글이라서 그럴 것이다.

사실 이런 글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김진숙이기에 쓸 수 있다. 아니 김진숙만이 쓸 수 있다. 그가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이유다.


산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바치는 추모사

그런데 말이다. 나는 그의 추모사가 얼마나 문학적으로 탁월한지, 얼마나 감동적인지를 말하면서도 자꾸만 속이 거북하다. 마음에 안 든다. 칭찬할 게 따로 있지, 어떻게 죽은 자를 기리는 글을 잘 썼다고 추켜세운단 말인가.

반대로 생각해보면 김진숙의 추모사가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은 그만큼 열사가 많이 죽었기 때문이다. 줄줄이 이어진 열사들의 죽음이 김진숙으로 하여금 억장 무너지는 슬픔과 치 떨리는 분노에 찬 추모사를 쓰게 한 것이다. 결국 그 추모사는 수많은 열사들에 의해 만들어낸 거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잘 썼다고, 감동적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칭찬할 수 있나. 아무리 잘 써도 아무리 감동적이어도 함부로 칭찬도 할 수 없는 글, 그것이 바로 추모사다.

추모사는 쓰기 힘들다. 꺼린다. 좋은 일도 아니고 죽은 사람 일에 나서는 데, 그걸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뽀다구가 나는 일도 아니다. 아무리 잘 써봤자 본전도 못 건질 게 뻔하다. 고인을 잘 알아도 어렵고 조심스러운 게 추모사다. 그래서 대부분 형식적인 요식절차로 때우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책에는 김진숙이 쓴 열사들의 추모사가 6편이나 등장한다. 다른 건 다 그만두고라도,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추모사를 도맡았다는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나는 김진숙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의문은 왜 그렇게 힘든 추모사를 많이 썼냐는 것이다. 단지 마음이 약해서, 거절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닐 것이다.

추모사는 무엇보다도 다른 글과 달리 슬픔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슬픔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이 점에서 김진숙은 누구보다 슬픔을 잘 아는 사람이다.

이 책에는 남달리 굴곡이 많았던 그의 가족사와 개인적 삶이 나온다. 아울러 가혹한 운명 속에서도 얼마나 그의 가슴이 따뜻한 넓은지 잘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본질을 꿰뚫어보는 정확하고 날카로운 눈과 귀를 가진 운동가도 드물지만, 남녀노소, 지역과 업종, 정규직 비정규직, 여성과 장애인 소수자까지 두루두루 포용하는 가슴이 넓은 운동가, 진심으로 따뜻한 가슴으로 동지를 안아주는 운동가는 더 드물다. 그 흔치않은 운동가 중 한사람이 바로 김진숙이다.

그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슬픔과 기쁨을 느끼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중년 남성노동자들을 어린애처럼 꺼이꺼이 울게도 만들고, 젊은 조합원들이 배꼽을 잡고 웃게도 하고, 여리고 예쁘기만 한 아가씨들을 거친 싸움꾼으로 변모시키기도 하니 말이다.

한마디로 타고난 심령술사다. 그 심령술로 사람들 마음을 쥐락펴락하며 글을 쓰니 어찌 감동을 받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의 추모사는 열사의 영혼이 그의 입을 대신 빌려 한을 토해내는 것처럼 들린다. 천도제를 관장하는 스님이나, 살풀이굿 씻김굿을 인도하는 무당처럼 느껴지는 게 바로 이런 때다. 죽은 영혼들의 한을 굽이굽이 풀어주고 못다 이룬 갈망을 달래주는 솜씨가 딱 그 짝이다. 죽은 자의 혼령뿐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한과 욕망까지도 다 풀어주고 달래준다. 한이 무엇이고 욕망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그 한을 풀어주고 욕망을 달래주는가. 이런 것들을 속속들이 잘 알지 않으면 제관이 될 수 없다. 그의 추모사가 한 편의 감동적인 시요, 산문으로 변하는 건 바로 이런 순간이다.


촌천살인의 한 문장에 담긴 책 한권 삶의 무게

나는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만나면 밑줄을 치는 버릇이 있다. 아껴두었다가 필요할 때 인용도 하고 다른 곳에 퍼 나르기도 한다. 그런데 <소금꽃 나무>를 읽으면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처음 몇 번 밑줄을 치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밑줄 칠 문장이 하도 많다보니 책 한권 전체가 밑줄 천지가 될 것 같았다. 그의 문장은 펄떡펄떡 살아 날뛰는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말할 수 없을 만큼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수두룩했다.

그 중에서도 특기할 점은 한 문장 한 문장이 책 한편을 압축한 것 같은 경구로 이루어져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긴 시간도, 아무리 넓은 공간도, 아무리 많은 사람도, 아무리 처절한 삶도, 한마디 문장으로 표현하는 비범한 재주가 있다. 아마도 돈벌이 책을 쓰는 사람이라면 그가 쓴 한 문장 한 대목만 뽑아 늘려서 책 한권을 너끈히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한 문장 한 문장이 주옥같았다.

문장 하나로 삶의 한 세대를 드러내는 걸 보면 놀랍기만 하다. 가출해서 여기저기 공장을 떠돌던 김진숙의 십대 정서가 한 문장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집에 편지를 쓴다고 화창한 일요일 기숙사 창문 아래 배를 깔고 엎드려 “어머니 아버지 보세요.” 한줄만 써놓고는 편지지에 눈물 콧물 칠갑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든지, 그럴 때는 뭔지 모르게 자꾸 억울하다는 생각이 치밀고는 했다.” (<그 시절의 이력서> 중에서 40쪽)

그런가하면 얼마나 짓밟혔으면, 얼마나 무서웠으면....하는, 한 문장이 백 마디 설명보다 더 또렷하게 각인되는 문장도 있다.

“자면서도 ‘잘못했으예.’ 잠꼬대를 하며 흐느끼던 영숙이, 미순이, 상남이들.” (<그 시절의 이력서> 중에서 43쪽)

오늘의 그가 태어난 삶의 전환점으로 추측되는 대목도 나온다. 공부에 목말라 찾아간 근로야학에서 처음 전태일 평전을 읽고, 자기 자신에게 부끄러워 꺼이꺼이 지리산 계곡처럼 울었다던 그 대목이다.

“가슴에 큰 산 하나가 들어앉아 그 산에서 돌덩이가 와르르 쏟아져 양심에 돌팔매질을 해대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시절의 복직>중에서 47쪽)

그런가하면 <20년만의 복직>에서는 20년 해고자 생활을 동거동락하던 두 형들이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복직이 된다. 그제서야 김진숙은 20여년동안 어깨를 짓누르던 부채감에 대해 털어놓는다.

“단지 나 때문에 해고당했다고 말하면 그 형들의 신념이나 자존감들을 폄훼하는 일이 될 수도 있겠으나, 그것과는 상관없이 20년 세월 내가 지니고 있었던 건 분명 ‘부채감’이었다. 나를 여기까지 꾸역꾸역 떠메고 온 9할은 사실 ‘부채감’이었다. 저들이 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내가 먼저 떠날 수는 없는, 그러면 어디 가서 뭔 일을 하고 살더라도 필시 응징을 당하고야 말 것 같은.....이제 와 말이지만 떠나고 싶은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이제는 정말 벗어나고 싶었던 순간들이 얼마나 시시때때였는지. 그래서 내가 막 못되게 굴어도, 고랑을 파고도 남았을 상처들을 주었음에도 날 한 번 세우지 않던 그들의 둔함이, 쇠심줄 같던 늑수긋함이 권태기처럼 지긋지긋했던 날들이 또 얼마나 많았는지, 제발 내일 아침에는 저들 중 누구 하나라도 안 나타나기를, 힘들어서 더는 못 하겠다 취중이라도 선언해주기를 얼마나 빌었는지, 차마 먼저 가겠단 말은 못하고 그걸 빌미로라도 그만 떠나고 싶을 만큼 고단했던 날들.” (<20년만의 복직>중에서 16쪽)

마침내 20년만에 복직되어 출근하던 날, 세 사람은 회사 정문 앞에 나란히 선다. 그러다 두 사람은 들어가고 한 사람은 밖에 남겨진다. 김진숙은 자신이 비로소 그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부채감을 내려놓았다고 안도하면서도 그 부채감이 복직한 형들에게 고스란히 되지우게 될까 걱정한다. 박창수, 김주익, 곽재규 그들에 대한 부채감도 20년 아니 40년이 걸리더라도 이렇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고 덧붙이는 대목에서는 피붙이보다 더한 동지애에 울컥 감동이 치받친다.

해고자 생활 20여년을 버텨낸 힘을 ‘부채감’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고, 책 한권을 써도 모자랄 것 같은 해고자 생활 20여년을 몇 문장으로 다 표현하는 이 사람,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삶의 전면적 진실

고달픈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할 때도 김진숙은 길게, 어렵게, 진지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짧고 쉽고 가볍게 얘기한다. 가볍다는 인상을 주는 건 아무리 심각하고 진지한 이야기도 해학과 낙관으로 표현하기 때문일 것이다. 해학과 낙관은 김진숙 글의 트레이드 마크다. 흔히 이런 걸 노동자만의 독특한 표현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달리 말하고 싶다. 삶의 전면적 진실이라고 말이다.

<동네사람들아!>(24쪽~32쪽)를 예로 들어보자. 이 글은 1986년 처음 대공분실에 끌려가 살인적인 고문에 시달리던 때의 얘기다. 그 시절의 살벌한 얘기를 하면서도 그는 주머니에서 나온 사탕 한 알에 대해 이렇게 허허실실 풀어놓는다.

“어버이날 회사 여직원회에서 나눠준 사탕 한 알을 아끼노라 안 먹고 넣고 다녔던 건데 아끼면 똥 된다더니 그 사탕도 나도 그렇게 됐다.” (같은 글 24쪽)

여기에 “독극물 묻었는지 조사해 봐.” 라는 한마디가 이어지면서 상황은 엽기적으로 치닫는다. 그런데도 김진숙은 제3자 얘기를 하듯이 이죽거리며 태연하게 이어간다.

“사탕 한 알의 운명은 졸지에 반공전시관이나 전쟁박물관 같은데 보면 반드시 전시돼있는 남파 간첩들의 필수품인 독극물 앰프의 품위로 격상돼 버렸고, 그걸 소지한 나는 남파 간첩의 예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처우를 유감없이 당하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취방을 발칵 뒤집으며 수색한 끝에 그들이 찾아낸 건 ‘갈까 말까’ 네 글자만 적혀 있는 달랑 쪽지 한 장이었다. 몸이 아파서 일요일에 특근을 하러 갈까 말까망설이며 긁적이던 네 글자는 남파간첩이 북으로 갈까 말까 망설이는 낙서로 둔갑한다. 기가 막히고 허탈하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픽’하는 소리와 함께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렇듯 그의 글은 살벌하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소름이 돋는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특히 가족사나 개인의 삶을 이야기를 할 때 더 심하다.

<부고없는 죽음>(243쪽~246쪽)은 집안의 유일한 아들인 남동생이 노숙자 신세로 처연하게 객사한 이야기다. 마침 설날이라서 온 가족이 다 모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하지만 설날이라서 문상객이 하나도 없었던 건 불운이었다. 같은 설날이 이렇듯 행운과 불운을 함께 품는다.

빈소에는 큰 언니의 곡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 큰언니의 가게 차부상회(<차부상회 문근부>(197쪽~199쪽) 참조)는 한 번도 문을 닫은 적 없어서, 그날도 아들이 가게를 맡아 보고 있다.

“잊고 있었다는 듯 큰언니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가게를 보던 조카가 “엄마 와사비 얼마야?”라고 묻는 전화가 오면 “큰 거? 짝은 거?” 묻고는 “짝은 건 820원”대답하고는 다시 우는 사이....셋째 언니네 식구들이 도착했다.” (<부고없는 죽음>244쪽)

콩트 한 장면이 연상된다. 웃으면 실례인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팍’하고 웃음이 터져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동생의 돌연사라는 기박한 운명과 구멍가게라는 엄연한 현실이 한 문장 속에서 나란히 목을 내밀고 있다. 슬픔과 웃음이 함께 어우러져있다. 이것이 김진숙이 우리에게 드러내주는 삶의 전면적 진실이다. 그의 글에서는 웃기기만 하는 삶이나 심각하고 진지하기만 한 삶은 부분적 진실에 불과하다. 진지하고 심각했다가도 웃음이 나는가하면, 웃다가도 진지하고 심각해지는 것이야말로 삶의 전면적 진실이다. 이런 점에서 <소금꽃 나무>는 삶의 전면적 진실을 말하는 책이다.

처음 <조공노동자신문>을 읽었을 때 나는 김진숙이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라는 걸 예감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는 세상이 그의 진가를 몰라주는 게 말할 수 없이 서운했다. 이제 늦은 감은 있지만 내 예감이 적중하여 이렇게 <소금꽃 나무>가 출간된 걸 볼 수 있어서 진심으로 기쁘다.

책을 읽으면서 불편하고 아파보기는 참 오랜만이다. 책은 쉽게 빨리 읽었지만 여운은 쉽게 빨리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아주 오래오래 나를 불편하게하고 아프게 할 것만 같다.


김하경 소설가

[참세상, 2007.8.29]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id=40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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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7 23: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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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 <소금꽃 나무> 밑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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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일곱에도 해고자로 남아 있는 제가 20년 세월의 무력감과 죄스러움을 눙치기 위해 스물일곱의 신규 해고자에게 어느 날 물었습니다.
봄이 오면 뭐가 제일 하고 싶으세요?
내게도 저토록 빛나는 청춘이 하루라도 있었다면……. 볼 때마다 꿈꾸게 되는 맑은 영혼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원피스 입고 삼랑진 딸기밭에 가고 싶어요.

적개심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닌, 그 순결한 꿈이 이루어지는 봄이길. 부디 저 고운 영혼들이 꽃보다 먼저 환해지는 봄이길. 봄마저 쟁취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그런 봄이 부디 저들의 것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pp.156-157)


권미경이라는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열세 살 때부터 홀어머니와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오빠와 어린 동생 둘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 되어야 했습니다. 글재주가 유난했던 영민한 아이였습니다.
...
미경이의 글재주는 작업 시간에 빵 먹었다고 조장한테 터지고 온 날, 구비구비 서러운 일기를 써 내려가는 데밖엔 써먹을 데가 없었습니다. 매일매일이 유서 같았던 일기장을 몇 권이나 남겨 놓고 공장 옥상에서 고단하기만 했던 스물두 살의 몸뚱이를 끝내 날렸던 미경이의 유서는 그러나 막상 짧기만 했습니다. "......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라고 왼쪽 팔뚝에 볼펜으로 비명처럼 새겨 넣고 갔습니다.


......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억압의 땅에 묻지 말고
그대들 가슴 깊은 곳에 묻어 주오.
그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으리.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마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 권미경의 왼쪽 팔뚝에 쓰인 유서

(pp.22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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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물여섯, 정식이 형 스물일곱, 영제 형 스물여덟(16)


'갈까 말까', '자생적 공산주의자'(25)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입에서 나는 김치 냄새조차 절망이 되어 갔다. 저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인간이 인간한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그 몸서리쳐지는 사실이, 무엇보다 내가 여기에 온 걸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는 절망이었다.
...
다시 돌아온 세상은 너무나 아무 일이 없어 보였다. 길에서 내려다보이던 주인집 울타리엔 목련꽃이 지고 새잎이 돋아나고, 그게 참 서러웠다.(30)


"와, 순이 젖통 크네."
...
니들 왜 그러냐고 화를 낼 수도, 사장님한테 일러 줄 수도, 순이한테 왜 그렇게 당하고만 있냐고 화를 낼 수도 없었다.(34)


그 책을 끝내 들추지 말았어야 했을까.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난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부끄러워 꺼이꺼이 지리산 계곡처럼 울었다.(47)


더군다나 나는 어쩌자고 겨우 열아홉 살이었던 것이다. 순진하고 세상 물정을 몰라서라기 보단, 무력했다. 무력하기 짝이 없다 보면 타협하게 되고, 타협에 길들여지다 보면 그게 사는 요령이라고 믿게 된다. 인간임을 끊임없이 부정당하다 보면 스스로 부정하게 되고, 오로지 연명하는 일이 지상 과제이자 존재 이유인 이들에게 인간의 품위와 계급적 자존감이란 깨달을수록 성가신 일일 뿐이다.(53)


"난 진 죄가 있기 때민에 남덜 열 개 헐 때 스무 개 해야 허는 입장이다. 스무 개 헐 재주가 없는 게 한이 된다."
...
약 두 시간 30분 동안의 대화 내용 중 절반 이상을 강석용 씨는 자신이 저질렀다는 '죄'에 대해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이 파업할 때 자신은 관리자에게 불려 나가 작업을 했다는 죄. 그리고 그 죄를 씻는 나름의 방법에 대해.(72-73)


강석용. 지금도 한반도 구석구석에서 무딘 쇠를 벼려 칼을 만들고 묵은 땅을 갈아엎을 쟁깃날을 담금질하고 있을 보석 같은 사람들. 소련이나 동구가 아니라 그들에게서 우리의 전망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77)


"기왕지사 쓸라먼 대우조선 권동기가 아니라 대우조선 노동조합 권동기라고 꼭 잠 써 주씨요이. 은제나 참 살기 좋은 시상을 고민허는 권동기라고 딱 부러지게 쓰씨요. 난 거창헌 거슨 싫응께 고로큼만 쓰먼 되아요."(78)


"설탕물 좀 잡숫지 그러셨어요?"
"워매 참말로 환장혀 불겄네이. 기자님인지 의장님인지 참말로 실수허고 기시네. 미끼로 걸린 미꾸락지를 낼럼 받아묵다 보먼 은젠간 밥이 되는 법칙을 몰르간디? 회사에서 우리를 으디가 이삐다고 미꾸락지를 줄 것이요. 후라이판에 지름 뿌려지고 나서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이미 자반 신세가 되아 불먼 먼 소용이다요. 이눔 저눔 젓가락질에 죄 띧기구 나서 뻬가지만 남으먼 지가 고등언지 칼친지 언 놈이 알아묵을 것이요. 그때 가서 아무리 가심을 쳐 봐야 고상혀서 먹이 찾어 먹을 생각 않고 낼럼 미끼를 물어 버린 주딩이가 웬쑤제. 회사에서 우리헌티 설탕물을 왜 주간디? 한마디로 노얄제리 맹기러라 그거이제. 쌔 빠지게 노얄제리 맹기러 줘 봐야 그 질로 우리 목심은 볼장 다 봐 분 것이여. 사고로 죽고 벵 걸리서 골골 거리다 죽고 고로크롬 썩어져 봐야 회사에서 영정 받쳐 놓고 통곡이라도 해 준답디요?
그려도 회사에선 헐 말 허고 사는 늠을 무서라 허지 설탕물이나 뽈뽈 뽈아 쳐묵겄다고 눈치나 슬슬 보는 것덜은 인간 취급도 안 허요. 앞에서야 오냐 내 새끼 험시로 간이라도 빼 줄디끼 그려 싸도 뒤돌아스먼 밸도 없는 인사덜이라고 숭보고 욕혀 쌓는당께. 그려도 노조가 떡허니 버팅기고 있응께 즈그 펜 맹기러 볼라고 갖은 양념 발린 소릴 다 혀도 바람막이 없어져 불고 비빌 언덕도 없어져 불먼 우린 홍어 좆 되아 분당께. 워매 나 입 잠 보소. 홍어 고 말은 빼드라고. 즘잖게 거 뭐시냐, 그려 추풍에 낙엽이라고 쓰씨요잉. 추풍에 낙엽, 워매 멋진 거."(81)


"그때만 혀도 우리 힘이 너무 많응께 나 겉은 건 으디 낄 자리도 읎었지라. 참말로 그때가 봄날이제. 그때 겨울을 준비혔어야 되는 거인디. 사시사철 봄만 있을지 알았제. 요로크롬 찬바람 씽씽 부는 겨울이 올지 누가 알았간디.
심깨나 씨고 목청깨나 높이던 사람덜은 핫바지 방구 새드끼 한나한나 읎어져 불고 애드발룬만 높직허니 띠아 놓고는 바람은 다 빠져 분 모냥새가 되아 부렀응께 참말로 깝깝허제라.
월부로 차나 끌고 댕기고 회사에서 융자 내 준 주택자금으로 집칸이나 지니고 살먼 지가 사장이다요? 아무리 그려 싸도 갈 데 없는 노동자제. 네꼬다이나 매고 메이카 옷 걸치고 댕기먼 언 놈이 싸인해 달라고 줄이라도 슨답디요? 일헐 때 헨장에서 보먼 그게 으디 사람 꼬라지간디? 멘사무소에 사람으로 입력되아 있응께 사람으로 쳐 주는 거이제.(85)


사나이 나이 사십에 남은 건 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마누라와 토끼 같은 딸 둘, 그리고 노보에 실린 글 네 편이 전부지만 그래도 앞만 보고 살면 힘이 절로 난다는 분. 울산 강석용 동지에게서 노동자의 양심과 진실을 만났다면 이분에게선 노동자 특유의 낙관과 희망을 본다.(90)


어제 병원에 누워 있는 이대경 수석을 보면서, 나는 등이 굽은 채 사막을 걷는 낙타를 생각했다. 사막에도 갈림길이 있다. 그 막막한 길에서 낙타라고 왜 갈등이 없겠는가. 그러나 본능적으로 물의 냄새를 알고 그 길을 가는 낙타는 언제나 현명하다. 그러나 자신만이 현명하다고 믿는 인간은, 지름길이라고 믿는 길로 낙타를 내몰다 결국은 길을 잃고, 낙타의 혹에 고여 있는 물을 빼앗기 위해 낙타의 등을 벤다.
낙타가 죽으면 저도 살 수 없다는 걸, 욕심에 어두운 인간들은 종종 잊는다.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에 출현하기 전부터 낙타는 살아 있었고, 낙타는 멸종하지 않았다. 숙명처럼 길을 걸을 뿐, 결코 쓰러지거나 지름길을 탐하지 않기 때문이다.
길은 거는 만큼 줄어든다. 이 길도 언젠가는 끝나게 될 것이고, 우리는 머잖아 우리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예전의 우리는 이미 아닐 것이다.(141)


정규직의 적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자본입니다. 우리가 맞장을 떠야 할 건 약자가 아니라 구조조정이라는 사시미 칼을 든 깡패입니다.
자본의 발밑에 짓밟혀 파들파들 떨고 있는 민들레를 한 번 더 짓밟는 게 아니라 그 발을 치워 줘야 합니다. 민들레에게 너희도 시험 쳐서 소나무가 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민들레에게는 숨 쉬고 씨앗 흩날릴 영토와 햇볕을 나눠 줘야 합니다. 민들레가 죽어 가는 땅에선 어떤 나무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154)


동지 여러분.
저는 우리가 참 멀리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뒤돌아보니 우리가 떠나온 자리에 이들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이제는 노예의 사슬에서 벗어났다고 믿었습니다. 어느 날 되돌아보니 우리가 벗어던졌다고 믿었던 사실이 이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돼 있었습니다. 비정규직의 자리에서마저 쫓겨난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한단 말입니까.(162)


마지막에 그 말을 했던 것 같다. "나는 교향악단을 구경한 적도 없고 오케스트라 같은 건 지나 가다라도 본 적이 없다. 내가 만약 단 한 번만이라도 여러분들의 연주를 듣고 노래를 듣고 아름답다고 느낀 적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나는 엄청난 죄책감에 사로잡혔을 거다. 한 달에 70만원을 받고 그마저도 잘릴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그 음악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하면 누가 그 음악을 듣고 행복할 수 있겠는가. 모멸감을 느끼면서 만들어진 음악이 도대체 누구의 영혼을 살찌울 수 있겠는가."(169)


... 짜장면 한 그릇 못 사 준 이모한테 옷도 사 주고 신발도 사 주고 명절 때는 노자 하라고 용돈도 주고, 그런 아이다.
그런 아이가……. 나 때문에 비정규직이 됐다. 98년 노사정위원회가 만들어질 때 내가 온몸으로 반대하지 못해서 이 아이가 비정규직이 됐다. 노사정위에서 파견법이 합의될 때 온몸을 던져서라도 막아 내지 못해서 이 아이가.....
솔직히 잘 몰랐다. 우리 조합원들은 노조가 있고, 단결된 힘으로 단체협상에서 막아 내면 솔직히 되지 않을까, 그런 이기적인 생각도 있었다.(191)


개는 종소리가 들려야 침을 흘리기 시작하지만, 인간은 침을 먼저 흘리고 종을 울리기 위해 지 머리를 종에다 들입다 들이받기도 하거든. 그렇게 저 혼자 종 치고 민주화됐다고 믿는 인간이 수요 이상으로 출하된 게, 어쩌면 이 시대의 비극일 것이다.
자발적 굴신, 혹은 굴종. 이들이 지금 간신히 삐대고 들어간 집단에서 폐기처분되거나 폐인이 되지 않기 위한 길은 끊임없이 부정하는 것뿐이다. 자진이 몸담았던 집단에 대해서, 자신을 자가 발전시켰던 논리에 대해서, 자신을 지탱해 왔던 신념에 대해서,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의 존재와 영혼에 대해서조차. 까치에겐 탁란의 둥지가 필요했을 뿐이다.(211)


제일은행 노동자들이 잘릴 때 주택은행 노동자들은 시금치를 무치거나 아이의 장난감을 고르는 일이 더 중요했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잘릴 때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은 대부분 잔업을 하거나 축구를 보고 있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이 먼저 잘릴 때 남성 노동자들은 이제 시집이나 가라고 농담처럼 말했고 형님들이 잘릴 때 동생들은 '헹님은 인자 낚시도 실컷 댕기고 땡잡았네.'라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웃으면서 했던 똑같은 말을 울면서 듣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219)


처음에 아버지가 부산역에 오셨다는 연락을 받고 부산역으로 갈 때만 하더라도, 아버지 손에 맞아 죽는 거 아니면 머리채를 잡혀 강화로 질질 끌려가는 상상을 하면서 대공분실보다야 더하겠냐 하고 나갔는데......
아버지의 첫마디는 "다친 덴 없냐?"였습니다.(238)


그날 이후로 전 어딜 가나 3자였습니다.
...
3자. 그게 참 우습더군요. 해고된 당사자가 복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데도 3자라더군요.(264-265)


열 포기밖에 못 했던 김장을 올해는 열다섯 포기 할 수도 있고, 작년 추석에는 고향 갈 때 정종 한 병밖에 못 사갔는데 올해는 소고기 두어근 묵직하게 들고 갈 수도 있고, 그게 고향에 계신 부모님들에겐 다음 명절까지 내내 자식 자랑이 되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임금 인상이 제대로 안 되면, 물가는 자꾸 오르고 명절이 돌아오는 것도 무섭고, 애들 학교에서 운동회 한다 해도 한숨부터 나오고 그러는 게 그들의 삶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해마다 서슬 퍼렇게 엄단을 해대고 그 칼날에 수많은 노동자들이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노동자들의 투쟁이 끊이질 않는 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엄마마저 돈 벌러 나가고 없는 집을 지키다가, 친구가 다니는 유치원 담벼락에 쪼그리고 앉아 친구 나올 때까지 기다리며 하루를 보냈다는 작은아이에게 노란 유치원 가방을 당당하게 매 주고 싶어서이고, 애들이 우리 김밥은 안 먹는데 하며 소풍 도시락을 그대로 들고 와서는 내팽개치는 큰아이의 소풍날엔 우리 아이 김밥에도 쇠고기 볶아 넣고 햄도 큼지막하게 썰어 넣어 주고 싶어서입니다. 고무 공장에서 신발 밑창에 풀칠을 해대느라 갈라 터진 아내의 손바닥을 볼 때마다 죄스러움으로 외면하는 게 아니라, 가슴 떳떳하게 펴고 이제는 정말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고 싶어서입니다.(270-271)

공중캠프

2017.11.18 1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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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노동자대투쟁 30주년 기념토론회 자료집]
노동세계의 변화와 민주노조운동의 미래 (파일첨부)

http://nodong.org/data_paper/7212362

공중캠프

2017.11.18 12:5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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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 현대차지부 조합원 교육
https://youtu.be/D01x2xaIywI
https://youtu.be/D01x2xaIy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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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8 12:5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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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김진숙지도위원 인터뷰 (통진당 사태 관련)
https://youtu.be/Oxx8kh3h5y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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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8 14: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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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과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 김주익 열사 추모사 (김진숙)


작년에 한진에서 밀려난 아저씨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30년 일해 온 일터에서 명퇴란 이름으로 강제로 밀려난 아저씨는 술이 한 잔 들어가자 박창수 위원장 이야기를 하며,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는 아저씨가 자꾸 미안하다며 울었습니다.
50이 넘은 사내가 10년도 더 지난 일로 술잔에 눈물, 콧물을 빠뜨리는 걸 보면서 우리 모두에게 박창수란 이름은 세월의 무게로도 덮을 수 없는 아픔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박창수 하나만으로도 우린 무겁고 아픕니다.
두번쨉니다. 대한조선공사를 한진중공업이 인수한 이후 여섯 명의 위원장 중 두 명은 구속 뒤에 해고되고, 한 명은 고성으로, 율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쫓겨 다니고, 두 명은 죽었습니다.

지난 번 위원장 선거가 끝나고 어떤 아저씨가 그러셨습니다. "내는 김주익이 안 찍었다. 똑똑하고 아까운 사람들, 위원장 뽑아 놓으면 다 짤리고 감빵 가고 죽어 삐는데,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김주익이를 우째 또 사지로 몰아넣겠노?"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우리가 뭘 그렇게 죽을죄를 졌습니까? 조양호 회장님, 조남호 부회장님, 언제까지 하실 겁니까? 이 소름 끼치는 살인 게임이 앞으로 몇 판이 더 남았습니까?
LNG 선상 파업으로 김주익 지회장이 구속됐을 때 인권 변호사 이름을 팔아 그를 변호했던 노무현 대통령 각하! 노동자의 가련한 처지를 팔아 따낸 권력의 맛이 그렇게 달콤합디까? 조중동 그 찌라시들의 꼬붕 노릇이 그렇게 안락하더이까? 대기업 노조가 나라를 망친다했습니까?
21년된 노동자의 임금이 105만원, 세금 떼면 80만원, 그마저도 가압류로 12만원. 129일을 크레인에 매달려 절규를 해도, 늙은 노동자들이 88일을 애원해도, 청와대·노동부·국회의원 누구 하나 코빼기 내미는 놈이 없었습니다.

동지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민주노조 하지 말걸 그랬습니다. 교도소 짬밥보다 못한 냄새나는 꽁보리밥에 쥐똥이 섞여 나오던 도시락 그냥 물 말아서 먹고, 불똥 맞아 타들어간 작업복, 테이프 덕지덕지 넝마처럼 기워 입고, 체감온도 영하 수십도 한겨울에도 고양이 세수해 가며, 쥐새끼가 버글거리던 생활관에서 쥐새끼들처럼 뒹굴며 그냥 살 걸 그랬습니다. 변소에 우글거리던 구더기들처럼 그냥 그렇게 살 걸 그랬습니다.
한여름 감전사고로 혈관이 다 터져 죽어도, 비 오는 날 족장에서 미끄러져서 라면발 같은 뇌수가 산산이 흩어져 죽어도, 바다에 빠져 퉁퉁 불어 죽어도, 인명은 재천이라던데 그냥 못 본 척 못 들은 척 그렇게 살걸 그랬나 봅니다.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내일에 대한 희망도, 새끼들에 대한 미래 따위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며, 조선소 짬밥 20년에 100만원을 받아도, '회장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감지덕지 살 걸 그랬습니다.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박창수가, 김주익이가, 그 천금 같은 사람들이, 그 억만금 같은 사람들이 되돌아올 수 있다면, 그 단단한 어깨를, 그 순박한 웃음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용찬이 예란이에게, 준엽이, 혜민이, 준하에게 아빠를 다시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어쩌자고 그렇게 착하고, 어쩌자고 그렇게 우직했단 말입니까?

애비 잘 만난 조양호, 조남호, 조수호, 조강호는 태어날 때부터 회장님, 부회장님으로 세자 책봉받는 나라. 이병철 회장님의 아들이 이건희 회장님으로 재계 순위 1위가 되고, 또 그 아들 이재용 상무님이 2위가 되는 나라. 정주영 회장님의 아들이 정몽구 회장님이 되고, 또 그 아들 정의선 부사장님이 재계 순위 4위가 되는 나라.
태어날 때부터 그 순서는 이미 다 점지되고, 골프나 치고 해외로 수백억씩 빼돌리고, 한 달 수천만원을 써도 재산이 오히려 늘어나는 그들이 보기에 한 달 100만원을 벌겠다고 숨도 쉴 수 없고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탱크 안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겠습니까? 순이익 수백 억이 나고 주식만 가지고 있으면 수십 억이 배당금으로 저절로 굴러들어 오는데, 2년치 임금 7만 5,000원을 올리겠다고 크레인까지 기어올라간 그 사내가 얼마나 불가사의했겠습니까?
비자금으로, 탈세로 감방을 살고도, 징계는커녕 여전히 회장님인 그들이 보기에, 동료들 정리해고 막겠다고 직장에게 맞서다 해고된 노동자가 징계 철회를 주장하는 게 얼마나 가소로웠겠습니까? 100만 원 주던 노동자 잘라 내면 70만원만 줘도 하청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신통했겠습니까? 철의 노동자를 외치며 수백 명이 달려들다가도 고작해야 석 달만 버티면 한결 순해져서 다시 그들 품으로 돌아오는데, 그게 또 얼마나 같잖았겠습니까?
조선강국을 위해 한 해 수십 명의 노동자가 골반 압착으로, 두부 협착으로 죽어 가는 나라. '물류강국'을 위해 또 수십 명의 화물 노동자가 길바닥에 사자밥을 깔아야 하는 나라. 섬유 도시 대구, 전자 도시 구미, 자동차 도시 울산, 화학 도시 여수, 온산. 그 허황한 이름을 위해 노동자의 목숨이 바쳐지고 그들의 뼈가 쌓여갈수록 자본의 아성이 점점 높아지는 나라.
쉰이 넘은 농민은 남의 나라에 가서 제 심장에 칼을 꽂고 마지막 유언마저 영어로 남겨야 하는, 참으로 세계화된 나라. 전 자본주의가 정말 싫습니다. 이제 정말 소름이 끼치게 무섭습니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던 김주익이 죽는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이들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만날 우리만 죽고 천 날 우리만 깨집니다. 아무리 통곡하고 몸부림을 쳐도 저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이 피가 거꾸로 솟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고스란히 되돌려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버이날 요구르트 병에 카네이션을 꽂아 놓고 아빠를 기다린 용찬이. 아빠 얼굴을 그려 보며 일자리 구해 줄테니 사랑하는 아빠 빨리 오라던 혜민이.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동지여러분! 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진숙, <소금꽃 나무>, pp.119-123)

https://youtu.be/KwFRfxob9z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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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2 19: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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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자』 특집 기사

▶ 러시아 10월 사회주의혁명의 세계사적 의의 ①
http://socialist.kr/1917-2017-russian-socialist-revolution-100-anniversary-1
▶ 러시아 10월 사회주의혁명의 세계사적 의의 ②
http://socialist.kr/1917-2017-russian-socialist-revolution-100-anniversary-2/
▶ 사회주의 운동은 새롭게 고양하고 있다
http://socialist.kr/1917-2017-russian-socialist-revolution-100-anniversary-3/
▶ 1917년 2월, 노동자 권력기관 소비에트가 등장하다
http://socialist.kr/1917-2017-russian-socialist-revolution-100-anniversary-4/
▶ 러시아혁명과 식민지 조선
http://socialist.kr/1917-2017-russian-socialist-revolution-100-anniversary-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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