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 공중캠프 present 알콜토크 vol.22.1-3
: 『자본론』 150년, '러시아 혁명' 100년, '노동자 대투쟁'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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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회 구성체는 그것이 충분히 포용하고 있는 생산력들 모두가 발전하기 전에는 결코 몰락하지 않으며, 더 발전한 새로운 생산 관계들은 자신의 물질적 존재 조건들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내에서 부화되기(have matured in the womb of the old society itself) 전에는 결코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맑스, 1859)


(플라이어 작업 중)



▶ 알콜토크 vol.22.1 - 『자본론』 15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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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17년 10월 21일(토) door open 19:00 / alcohol talk 19:30

* 장소: 공중캠프
* 진행: 김공회
* 참가비: 10,000원 (with 1 free drink, 안주/음식 반입 환영) (선착순 50명)
* 프로그램:

- (19:00~19:30) 식전 알콜 섭취
- (19:30~21:30) 알콜 토크
- (21:30~24:00) 못다한 알콜 섭취 (DJ 서동진 and more)


▶ 알콜토크 vol.22.2 - '러시아 혁명'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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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17년 11월 4일(토) door open 19:00 / alcohol talk 19:30
* 장소: 공중캠프
* 진행: 서동진
* 참가비: 10,000원 (with 1 free drink, 안주/음식 반입 환영) (선착순 50명)
* 프로그램:

- (19:00~19:30) 식전 알콜 섭취
- (19:30~21:30) 알콜 토크
- (21:30~24:00) 못다한 알콜 섭취 (DJ 김공회 and more)


▶ 알콜토크 vol.22.3 - '노동자 대투쟁'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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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17년 11월 18일(토) door open 16:00 / alcohol talk 17:00
* 장소: 공중캠프
* 진행: 김진숙 (토론: 김공회, 서동진)
* 참가비: 10,000원 (with 1 free drink, 안주/음식 반입 환영) (선착순 50명)
* 프로그램:

- (16:00~17:00) 식전 알콜 섭취
- (17:00~20:00) 알콜 토크
- (20:00~24:00) 못다한 알콜 섭취 (DJ 김공회, DJ 서동진 and more)



[참가신청 방법] 

(참가신청 오픈) 2017년 10월 9일(월) 낮 12:00

알콜토크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참가신청 양식 https://goo.gl/forms/OLLMaUxjkj7KmC1D2 을 작성하신 후, 해당 금액을 [우리은행 1005-702-633835 (예금주: 경성수)] 앞으로 입금해 주세요. (양식 제출 후 24시간 내에 입금이 확인되지 않을 경우, 참가 신청이 자동 취소되오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취소/환불]

예매 취소 및 환불을 원하시는 분은  계좌번호와 함께 staff@kuchu-camp.net 앞으로 메일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알콜토크 일주일 전(10/14(토), 10/28(토), 11/11(토))까지 : 환불 수수료 0%
- 10/15(일)~10/19(목) 낮 12시, 10/29(일)~11/2(목) 낮 12시, 11/12(일)~11/16(목) 낮 12시까지 : 환불 수수료 20%
- 10/19(목) 낮 12시, 11/2(목) 낮 12시, 11/16(목) 낮 12시 이후 : 환불 불가


* 진행: 

- 김공회
http://socialandmater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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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런던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국회와 한겨레신문사 등을 거쳐 현재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성립과 발달에 관한 이론적 탐구와 지역 차원에서의 구체화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으며, 세계경제 및 한국경제의 최근 발달양상에 발맞춰 정치경제학 이론을 발전시키고자 노력 중이다. 『정치경제학의 대답: 세계대공황과 자본주의의 미래』(2012), 『왜 우리는 더 불평등해지는가: 피케티가 말하지 않았거나 말하지 못한 것들』(2014) 등의 저서(공저)와, 「Das Kapital의 성격과 그 번역에 대한 몇 가지 이슈」(2010), 「방법과 변증법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의 진화」(2015) 등의 논문이 있다. 한때 홍대앞 LP바에서 파트타임으로 DJ를 한 적도 있다.



- 서동진
http://www.homopop.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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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리뷰, 당대비평, 현실문화연구, 서울퀴어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등에서 일했으며, 현재 계원디자인예술대학교 융합예술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변증법의 낮잠』(2014),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2009), 『디자인 멜랑콜리아』(2009), , 『ROCK 젊음의 반란』(1998), 『누가 성정치학을 두려워하랴』(1996) 등이 있고, 역서로 『섹슈얼리티: 성의 정치』(1999) 등이 있다. 「전진하는 미학: 사회와 정치 그리고 예술의 동요」(2012), 「알튀세르와 푸코의 부재하는 대화: 정치적 유물론의 분기」(2011)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경제와 문화의 관계에 관심을 두고,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관계를 연구한다.



- 김진숙
https://twitter.com/JINSUK_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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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이자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 방직공장 노동자, 우유 배달원, 신문 배달원, 버스 안내양 등으로 일하다, 1981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용접공이 되었다. 1986년 2월 노동조합 대의원에 당선된 후, 어용노조를 비판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어, 31년째 복직 투쟁 중이다. 1990년대 전노협 설립과 민주노총 출범 투쟁, 2000년대 민주노조 사수와 구조조정 저지 투쟁 등 노동 운동에 앞장섰다. 2011년 1월 정리해고 철회를 외치며, 영도조선소 35m 높이의 85호 크레인에서 309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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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Vino Veritas! (술 속에 진리가!)" [알콜토크]는 맥주 한잔 하면서, 느슨하고 흐릿한 기분으로 특정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비정기 프리 토크 이벤트입니다. 입과 귀, 앎과 삶이 분리된 강의/세미나, 수동적이고 일방적인 내용과 과정, 학연/가방끈주의자들의 허세와 먹물질 등을 지양합니다. 쉽게 바뀌지 않는 오래된 습관에 절망하면서, 새로운 리추얼의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입니다.



[Brief History of "알콜토크"]

- vol.1 2013.03.09 - 후쿠시마와 우리
- vol.2 2013.04.06 - 살육행위(the act of killing)
- vol.3 2013.11.15 - 맑스 재장전(Marx Reloaded)
- vol.4 2014.03.08 - 후쿠시마와 밀양
- vol.5 2015.05.02 - 세월호와 우리
- vol.8 2016.01.31 - <옥상자국>
- vol.12 2016.03.11 - <맨발의 겐>
- vol.18 2016.10.29 - 라캉, 알튀세르, 페미니즘
- vol.20 2017.03.11 - <핵의 나라 2>
- vol.21 2017.07.28 - <전공투>


댓글 '8'

공중캠프

2017.09.29 10: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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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김공회, 150살 ‘자본론’이 인공지능 시대를 만났을 때


<자본론> 제1권 출간 150주년
150살 ‘자본론’이 인공지능 시대를 만났을 때

1867년 9월14일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지은이는 카를 마르크스. 정확히 150년 전의 일이다. 지난 15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공황이 이어졌다. <자본론>이 오늘날에도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을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교본임을 일깨워주는 증거다. <자본론>은 미래 세상의 설계도로 남을까.

1867년 4월10일 아침 8시. 독일 함부르크로 향하는 증기선 한 척이 가무잡잡한 얼굴에 헝클어진 머리를 한 중년 사내를 싣고 런던을 떠났다. 항해 내내 계속된 비바람과 파도로 여기저기서 승객들이 구역질하며 쓰러지는데도, 이 사내는 그들을 하나하나 관찰하며 헤벌쭉댔다. 누구도 그가 열흘 전만 해도 사타구니에 난 종기와 저승사자 같은 빚쟁이에게 시달리며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던 비참한 망명객이었음을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중년 사내의 이름은 카를 마르크스. 그가 그토록 기분이 좋았던 것은, 20년 넘게 계획했고 적어도 10년 이상 독촉받았던 어떤 원고의 집필을 드디어 끝냈기 때문이다. 그의 여행가방엔 바로 그 원고뭉치가 들어 있었다. 북해의 풍랑을 헤치고 엘베강 하구를 거슬러, 배는 마침내 함부르크항에 닻을 내렸다. 4월12일 정오. 장장 52시간의 항해 뒤 쉬지도 않고 마르크스가 향한 곳은 출판업자 오토 마이스너의 사무실이었다. 원고는 다시 독일의 동부 라이프치히에 있는 인쇄소로 보내졌다.

9월14일. 지난한 교정작업 끝에 드디어 <자본론> 제1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자본의 생산과정’이란 부제가 붙었다. 오랜 세월을 준비한 만큼 당연히 기대도 컸다. 걱정하는 건 마르크스의 아내 예니뿐이었다. 감시와 추방, 도망과 망명, 어린 자식(아들 둘, 딸 하나)의 죽음, 불안정한 수입 등 그동안 그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리라. 예니와 달리, 마르크스의 사상적 동지이자 재정적 조력자였던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남다른 감회에 사로잡혔다. 이 저작의 탁월함과 의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는 <자본론>이 출간 즉시 세상에 큰 충격을 주면서 대성공할 것임을 확신했다.

마르크스 자신도 한껏 고무되었음은 물론이다. 한 편지에서 그는 <자본론>이 “지금까지 부르주아지의 머리에 던져진 가장 가공할 만한 포탄이 될 것”이라 호언하기도 했고, 나오지도 않은 책의 영어판과 불어판 번역자를 일찌감치 물색하기도 했다. 마이스너는 독일 신문들에 사전광고를 냈고, 출간 뒤에는 엥겔스가 유럽과 미국의 신문에 독어와 영어로 최소 일곱 편의 서평을 각기 다른 관점에서 냈다. 마르크스 주변 인물들이 총동원돼 ‘바람잡이’로 나선 셈이다.

그럼 결과는? ‘재앙’까지는 아니었으나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11월이 되자 서평도 더이상 나오지 않았다. 조바심이 커지다 보니 종기가 도졌다. 삶이 다시 예전의 비참한 상태로 돌아가는 듯했다. 마이스너와의 계약에 따르면 1권 출간에 이어 2권과 3권을 연달아 내야 했으나, 마르크스는 이 의무의 이행을 미룬 채 후속 권들에 더욱 완벽을 기하고자 1883년 런던에서 영원히 눈을 감을 때까지 새로운 연구노트만 채워 나갔다.

왜 마르크스는 <자본론>에 그다지도 집착했을까? 1818년 독일 남부 트리어에서 태어난 마르크스는 변호사인 아버지의 바람대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베를린에서 수학하는 동안 급진적으로 해석된 헤겔 철학에 매료되어 박사논문도 철학 분야로 쓰게 된다(1841년). 대학에 자리를 잡으려던 계획이 반동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무산되자, 마르크스는 언론계로 방향을 튼다. 이때 그는 생전 처음으로 의회와 법정에서 보호관세나 재산권을 둘러싼 갈등을 가까이서 목격하고 또 그에 대해 논설할 기회를 얻었는데, 훗날 그의 회고에 따르면 ‘물질적 이해관계’를 다뤄야 하는 ‘곤란’에 처한 것이다.

이러한 ‘곤란’은 그저 직업상의 의무가 아니라 그의 생각의 틀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 어떤 사변적인 명제나 가치도, 심지어 법조항도 ‘물질적 이해관계’ 앞에서 무력해지는 것을 지켜보며, 어떻게 급진적으로 해석하더라도 헤겔 철학은 그 관념성 때문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마르크스는 결론지었다. 따라서 그가 헤겔 철학의 ‘유물론적’ 전복을 시도한 포이어바흐에 경도된 것은 자연스러웠다. 나아가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현실의 부조리를 타파하려는 노동자들의 운동을 접하면서 ‘실천’의 중요성을 깨닫기에 이르는데, 이쯤 되면 포이어바흐까지 포함한 모든 철학들이 ‘말장난’일 뿐이라는 생각에 도달한다.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단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왔을 뿐이다.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마르크스는 범유럽적 혁명운동에 투신하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엥겔스와 함께 <공산당선언>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가 최종적으로 실패하면서 마르크스는 1849년 런던으로 망명하게 된다. 이렇게 실천이 봉쇄된 채 유폐된 상황에서 그는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고 훗날 새로운 ‘실천’을 도모하기 위해 자본주의 세상을 움직이는 가장 근본적인 힘인 ‘물질적 이해관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로 한다. 결국 <자본론>은 그러한 탐구의 불완전하지만 최종적인 결실인 셈이며, 나아가 마르크스의 지적 여정의 ‘종착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물적 이해관계를 단순히 ‘탐구’하지만은 않았다. 일반적으로 그런 탐구에 특화된 학문 분야가 경제학인데, 마르크스는 당대 경제학이 근대사회의 물적 이해관계의 작동 메커니즘을 제대로 포착하는 데 실패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그의 기획은 기존 경제학과의 ‘대결’이라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고, <자본론>은 그러한 ‘경제학 비판’ 기획의 일부다.

마르크스가 보았을 때 경제학의 가장 중대한 오류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본질적인 성격을 규명했으면서도 이를 자본가와 노동자 간 계급관계의 바탕 위에 적절히 배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생산의 본질적 성격이란, 모든 부가가치는 노동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어떤 노동자가 톱과 망치를 사용해 목재에 노동을 가해 개집을 만들었다고 하자. 이 생산물의 가치는 기존에 존재하던 톱·망치·목재로부터의 가치 이전분과 전혀 새로운 부가가치로 나뉠 텐데, 이 후자는 전적으로 노동의 산물이다. 그렇다면 이 부가가치 모두를 노동자가 취한다고 해서 이상할 게 없으며, 여기까지는 애덤 스미스 같은 경제학자도 의견이 일치한다.

한편 자본주의에서 생산은 역사적으로 특수한 관계에서, 곧 노동의 도구와 대상을 독점한 자본가가 오직 노동력만을 가진 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일어난다. 이때 자본가가 생산의 최종 결과물 중 자신이 애초 투입한 부분만을 분배받는다면, 그는 이 생산에 참여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전적으로 노동자가 생산한 부가가치의 일부를 요구할 것인데, 만약 이 요구가 수용되면 근대경제 특유의 등가교환 가정이 깨지게 된다.

이런 모순에 직면해 경제학은 이른바 ‘요소이론’, 곧 생산물의 가치는 그 생산에 참여한 각 계급이 가져가는 이윤·지대·임금의 합이라는 명제를 내놓는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것은 제기된 모순을 해결한 게 아니다. ‘부가가치=노동’ 규정을 버린 것일 뿐이다. 반면 마르크스는 위 모순을 노동과 노동력을 구별함으로써 해소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고용된다는 것은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판매함을 의미하며, 고용된 시간 동안 노동력이 발휘되어 생산된 모든 것은 자본가에게 속한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가는 그렇게 생산된 부가가치의 일부를 노동력 판매의 반대급부(임금)로 노동자에게 제공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갖는다(이윤).

요컨대 모든 부가가치가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자본주의의 특수한 조건, 즉 생산수단을 자본가가 독점한 조건 아래서는 그 부가가치는 임금과 이윤으로 분할되어 각각 노동자와 자본가에게 분배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본주의에서 생산과 분배는 괴리되며, 그 괴리를 마르크스는 ‘착취’라고 불렀다. 따라서 이 착취의 크기를 두고 자본가와 노동자는 항구적인 갈등상태에 놓이게 되는데, 반면 ‘요소이론’에서는 각 계급은 ‘주어진 자기 몫’만 챙겨가면 되기 때문에 서로 싸울 일이 없다.

<자본론>은 이렇듯 착취를 본질로 하는 노동-자본 간의 계급관계를 중심으로 경제를 파악하며, 이는 경제에 대한 독특한 분석력을 <자본론>에 부여한다. 이를테면 개별 자본가는 본성적으로 자신의 몫을 늘리고 착취를 강화하기 위하여 기술혁신에 나서고 생산에서 노동을 상대적으로 줄이려 한다. 그런데 모두가 이렇게 경쟁적으로 움직일 때 거기 몸을 던지지 않는 자본은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경쟁적 기술혁신은 개별 자본에겐, 그리하여 경제 전체적으로도 맹목적인 과정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데, 그것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지속되어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이 상대적으로 계속해서 줄어들면 자본의 착취 영역도 줄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경제 전체적으로 이윤율이 떨어지고 자본들 간의 경쟁은 더욱 격화되는데, 여차하면 많은 자본이 한꺼번에 도산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공황’이다.

<자본론> 제1권 출간 이후 정확히 15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난 150년 동안, 자본의 조직화와 국가의 정책역량 강화가 꾸준했지만, 공황은 세계 곳곳에서 끊임없이 발생했다. 물론 그동안 자본주의의 옹호자들은 1930년대 대공황, 1970년대 석유파동, 1980년대 남미 외채 위기, 1990년대 동아시아 위기 등을 자본주의 자체가 아닌 어떤 외적 요인에 그 원인을 돌려왔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세계자본주의의 핵심부에서 촉발된 공황은 더 이상 그런 변명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 같다. 이러한 사실 자체가 어쩌면 <자본론>이 오늘의 현실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게 아닐까?

<자본론>이 경제의 장기적인 발전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으로 파악한다는 점도 곱씹을 만하다. 당장 인공지능 같은 신기술들을 떠올려보자. 이들이 인류의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고 고된 노동을 줄이면서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리라는 장밋빛 전망이, 대규모 실업이나 대다수 자본의 경쟁력 상실에 대한 걱정과 공존하고 있는 현 상황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혹시 그것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근거로 한 현재의 착취적인 생산관계의 철폐 필요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아가 이미 우리의 일상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또는 포털서비스 같은 이른바 ‘플랫폼’ 기업들이 공적인 통제 아래 두어졌을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이렇게 <자본론>은 출간된 지 150년이 지난 오늘의 미래를 설계할 때에도 유용한 빛을 던져주는 것 같다.

김공회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

[한겨레, 2017.9.9]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810310.html

공중캠프

2017.09.29 10:3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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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서동진, 러시아혁명 백주년을 위하여


이제 몇 시간을 더 셈하면 2017년이라는 새해가 들이닥칠 것이다. 보신각종을 타종하고, 새해가 밝았음을 축하하는 몇 마디 들뜬 말들을 들을 것이다. 그러곤 다시 심드렁하게 새해가 아닌 또다시 찾아온 오늘 속으로 묵묵히 들어갈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시간은 이런 것이다.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오늘이란 시간의 세계. 오늘날 시간이 처한 운명을 간략히 보여주는 것은 주식시세와 환율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시간을 통해 거래한다. 수십년 전의 주가나 환율은, 역사학자나 경제사가 몇을 빼곤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할 것이다. 거기에서는 역사적 시간은 사라지고 다만 지금이란 순간, 무한히 작게 축소된 오늘이 중요할 뿐이다. 지금 살 것인가 팔 것인가 아니면 더 가지고 있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데 고려되는 시간은 지금일 뿐이다. 이는 한 세기 전 겪고 느낀 시간과는 다를 것이다.

지난 세기의 시간은, 마냥 선명한 것은 아니었지만 과거와 미래라는 이름으로 시간의 범위를 벌리고 그 속에서 어제의 결과로 또 내일의 기획으로 경험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집단의 이름으로 혹은 모두의 이름으로 그렇게 시간을 겪고 집행할 때, 그에 붙여준 이름은 혁명이었다. 오늘날 혁명은 평온하고 정상적인 정치를 중단시키는 병적인 현상으로 치부되는 듯하다. 그러나 지난 세기에 정치가 내건 목표는 언제나 혁명이었다. 식민지배와 내전, 분단으로 이어진 역사가, 혁명을 둘러싼 갈등의 역사가 아니라고 잡아뗄 수 있을까. 또 그것은 여기 대륙 끝에 자리한 작은 나라의 사태가 아니라 세계적인 사태였던 것이 아닐까. 내년은 그러한 세기의 시작을 알렸던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정치는 미래의 세계를 창설하는 것이라는, 지금은 흐릿해질 만큼 흐릿해진, 시간으로서의 정치, 정치로서의 시간을 기약했던 사건이, 러시아혁명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감히 세계사적 혹은 보편사적 사건이라고 할 만한 그 사건을 기억할 기력이 우리에겐 없는 듯하다.

아마 많은 이들이 그따위 혁명이란 악몽 혹은 미친 꿈은 이미 결산되었다고, 그것은 완벽한 실패로 판정되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리고 더 이상 무슨 뜻인지 모르게 된 민주주의라는 수수께끼 같은 개념을 엄호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일에 정치의 소임을 묶어두어야 한다고 강변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치를 미래로부터 떼어놓는 일일 뿐이다. 미래를 다루는 일에서 벗어난다면 정치는 따분한 행정업무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물론 많은 정치인들은 미래를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미래는 고작해야 점성술사가 말하는 것 같은 예언, 이를테면 4차 산업혁명, 인구절벽, 성장률 하락 운운의, 그저 그렇고 그런 예측으로 채색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은 미래가 아니다. 그것은 오늘과 같은 현실이 지속된다면 도래할 결과들을 합산한 것일 뿐이다. 그것은 미래라기보다는 현재의 후유증에 가까운 것일지 모른다.

며칠 뒤면 도래할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기꺼이 기억할 이들은 아마 희박할 것이다. 그럴수록 발터 베냐민이 말했던, 미래가 위험해지면 과거도 위험해지고 말 것이라는 쓰라린 경구가 머릿속을 맴돈다. 미래가 없다면 과거는 그저 골동품 수집가들이나 관심을 기울일 시간으로 전락한다. 미래를 살리려면 기억 역시 되살려야 한다. 100년을 맞이한 그 사건을 기억하는 일은 미래라는 낱말을 덮고 있는 먼지를 닦아내는 일일지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새해란 것은 오늘치의 시간들을 쌓아놓은 시간의 자루가 더 이상 아닐 것이다.

서동진 계원예술대 융합예술학과 교수

[한겨레, 2016.12.30]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6788.html

공중캠프

2017.09.30 16:5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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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양돌규, 김진숙 쩜 에이치더블유피 파일을 만들었던 이유


옛날이야기다. 김진숙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고등학생이었던 1990년대 초입이었을 것이다. 부산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어떤 분이 그분을 일컬어 ‘한국 조선산업 최초의 여성 용접사’라 했고 난 용접사가 그 무슨 항공기 조종사쯤 되는 것처럼 멋있어 보였다. 그 당시 내가 아는 ‘용접사’라고는 길을 지나치며 본, 불꽃 튀는 철공소에서였고 한참 들여다보면 눈이 먼다는 섬광의 주인공은 늘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서부영화의 총잡이처럼 허리에 용접봉 뭉치를 꽂은 가죽 벨트를 하고 여성이 그런 거칠고 위험하기까지 한 일을 한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늘 편견보다 앞서가고 그래서 굴러갈 수 있나 보다. 생각보다 많은 여성들이 조선, 자동차, 중장비, 광업 등 중공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1992년 울산의 직업훈련원에서 쇠를 깎는 선반 일을 처음 배우던 시절, 이제 막 노동현장에 온 나를 이따금씩 돌봐주던 선배 부부가 있었다. 당시 그분들은 갓 결혼해 신혼 살림을 꾸리고 계셨는데, 혼자 자취를 하는 나를 긍휼히 여겨 아나고며 광어며 히라스며 서울에서는 잘 알지도 못했던 활어의 세계에 입문시켜 주었다. 술이 한 순배 돌자 형님은 예전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공고를 막 졸업하고 현대중공업에서 용접을 하던 때였는데 비계를 타고 건조 중인 배 바깥에서 용접을 하고 있노라면 미포만의 겨울 바닷바람에 얼어붙은 철판에 손이 쩍쩍 달라붙어 자칫하면 살점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었다는 ‘노동의 모험담’ 같은 것들이었다. 발을 헛딛어 족장 바깥 수십미터 아래 도크에 추락해 죽거나 또는 크레인의 전자석에서 전기적 이상으로 철판이 떨어져 그 아래 깔려 죽거나 하면 사람의 시신을 삽으로 긁어내 큰 통에 담고 다시 크레인에 걸어 올렸다는 얘기 같은 건 덤이었다. 그때 떠올렸던 분은 다시 김진숙이었는데, 머릿속에 떠오른 수식어는 ‘한국 조선산업 최초의 여성 용접사’에서 ‘대한조선공사 해고자’로 바뀌어 있었다. 현대중공업이나 대한조선공사, 그러니까 지금의 한진중공업이나 무간지옥 같은 노동 현실은 매한가지였을 거고, 걸핏하면 사람이 죽어 나가는 죽음의 공장에서 투쟁 말고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던 당대에 그분 역시 해고노동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싶었다.

그런 얘기를 나누던 활어의 세계로부터 새마을 연탄보일러를 때던 달세 5만 원짜리 울산 성내삼거리의 단칸방으로 돌아와 보면 이곳에도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다. 내가 세든 방 옆과 앞에는 그런 방이 한 예닐곱 개 있었는데 맞은편에는 나보다 두세 살 위로 보이는 여성 노동자들이 살고 있었다. 양말이나 속옷 등속을 빨던 마당 수도꼭지에서 말을 튼 옆방 이웃은 그녀들은 현대중공업 하청에 나가는 용접사들이라고 귀띔했다. 여성 노동자라고 하면 서울 구로의 전자 쪽이나 대구, 구미의 화학섬유 공장을 떠올리던 때였지만 ‘중공업의 그녀들’은 도처에 있었고 그런 그녀들을 마주칠 때마다 전설 같던 그 이름 김진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도 다 옛날이야기다.

시간이 흐르고 2006년 즈음해서 후마니타스 출판사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였나, 김진숙 씨 이야기를 꺼낸 안 편집장으로부터 그의 원고를 모아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아뿔싸! 내 노트북에도 그녀가 썼던 글들을 여기저기서 긁어모아 편집해 둔 ‘김진숙 쩜 에이치더블유피’ 파일이 있었다. 안 편집장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갔나 싶었다. 내가 출판사를 차리게 된다면 꼭 책을 내야겠다고 아껴 뒀던 필자 중의 한 명이 김진숙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안 편집장으로부터 원고를 모은 파일을 받아 부를 나누고 글 배치를 이렇게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며 살펴보니 나보다 더 많은 글을 꼼꼼하게 모아두기까지 했더라. (출판사를 차린 것도 아니었던 나로서는) 아깝지만 김진숙 씨를 ‘단념’해야 했고 (역시 김진숙 씨에게는 죄송스러운 이야기겠지만) 후마니타스에 ‘양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김진숙 씨께서는 책을 낼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의사를 밝혔고 편집장은 혼자 애면글면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이런저런 조언을 주었는데 그게 도움이 되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소금꽃나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2007년 난 공교롭게도 15년 만에 울산에 내려가 있게 됐는데 마침 김진숙 씨의 강연이 열렸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기념 사업이었다. 근로자복지회관 입구에서 50여 권을 완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생생하긴 한데, 이것도 10여 년 전 옛날 얘기다.

세대의 순환은 계절처럼 어김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작년, 민주노총이 20주년 기념 행사를 했고 내년이면 1987년 789노동자대투쟁이 30주년을 맞게 된다. 현대중공업, 대우자동차 등 노동자대투쟁을 주도했던 대공장 조합원들이 매년 수천 명씩 정년퇴직으로 공장 문밖을 나서는 게 작금의 상황이다. 활어 같던 그 세대의 노동자들은 백무산 시인의 시구처럼 국가로부터 ‘산업전사’로 호명되던 시간을 넘어 ‘노동전사’로서 투쟁했지만 아직 전사도 뭣도 아닌 미생의 후속 세대들을 뒤로하고 있다. 김진숙이 떠나야 했던 죽음의 조선소도 여전해 올해 2월 울산에서는 4톤의 철구조물에 깔린 노동자가 사망하는 산재사고가 발생했다.

2003년 김주익 열사의 추도사로 김진숙은 널리 알려졌고 2007년 『소금꽃나무』가 출간됐으며 2011년 그녀는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 309일을 싸웠다. 하지만 난 그녀의 이름은,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이 1980년 신군부의 쿠데타로 압살당한 이후 다시금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터져나오던 시절을 예비하던 그 모든 노동자운동에 헌신했던 이들의 이름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1990년 ‘전노협’을 건설했고 1996년 ‘민주노총’을 세웠으며 1996-1997 총파업을 조직했다. 그 세대가 잘나고 잘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민주노조운동을 비판하는 것은 필요하다. 지금의 분절된 노동시장, 비정규사회가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따라서 민주노조운동 내에도 그 책임이 있지만 이 운동이 그러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지금 같은 상황을 바랐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김진숙이 쓴 자신의 노동사를 통해 우리는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건너가고 넘어가야 할지를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 1980년대를 넘어섰던 이 노동의 선배들이 갖고 있던 문제의식, 실천 의지, 치열함, 삶과 주위 사람들을 대하던 태도 같은 것들이 한 시대를 건너게 했다. ‘충분치 않다?’ 물론이다. 하지만 강화에서 가출한 십대 소녀 김진숙이 35년이 흘러 여기까지 멀리 왔다. 그건 우리 노동자들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를 웅변한다. 김진숙이 올랐던 85호 크레인은 도크에 추락사해 죽기나 하던 우리 노동자들이 어디까지 오를 수 있는지, 뿔뿔이 흩어져 각개격파 당하던 이들이 희망이라는 이름의 버스를 타고 어디까지 연대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상징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통을 이어가며 달려야 하는 이 길은 김진숙의 말처럼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의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선배 세대들은 아직 짱짱하다. 옛날 사람도 아니고 옛날이야기도 아니고 옛날 꿈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인간이 되고자 하는 노예의 꿈’을 꾸고 있지는 않은가. 여전히 들어야 할 이야기가 많이 있다. 이것이 내가 김진숙 쩜 에이치더블유피 파일을 만들었던 이유다.

양돌규 레드북스

[후마니타스 블로그, 2017.1.30]
http://humabook.blog.me/220922626647

공중캠프

2017.10.01 18:4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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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이미지 - "태내에서 부화하는 에일리언 레고" 참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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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 자신이 『자본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한 「상품」장에서 그는 ‘상품의 이중적 성격’(사용가치(Gebrauchswert/worth)와 가치(Tauschwert/value))과 그 상품에 체현된 ‘노동의 이중성’(사용가치를 낳는 서로 다른 구체적 유용노동(work)과 가치를 생산하는 동일한 추상적 인간노동(labour))에 대해 먼저 설명한다. 그리고 ‘단순한 가치형태’로부터 ‘화폐형태’로의 ‘가치표현의 발전과정’을 꼼꼼히 분석하면서, 사적 노동과 사회적 노동의 모순으로부터 발생하는 상품의 물신적 성격은 교환을 위해 상품을 생산해야 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을 밝혀낸다:

상품 형태나 이 형태가 나타내는 바의 노동생산물들의 가치관계는 노동생산물의 물리적인 성질이나 그로부터 생겨나는 물적 관계와는 절대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것은 인간 자신들의 일정한 사회적 관계일 뿐이며 여기에서 그 관계가 사람들의 눈에는 물체와 물체의 관계라는 환상적 형태를 취하게 된다. [...] 이것을 나는 물신숭배(物神崇拜, Fetischimus, fetishism)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노동생산물이 상품으로 생산되자마자 이들에 달라붙는 것으로서 상품생산과는 불가분한 것이다.

즉, 맑스에게 있어 물신성은 인간/관계의 사물화에 대한 비판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부의 기본형태”인 상품의) 근본적인 속성이며, 상품생산사회를 지속시키는 기본적인 메커니즘인 것이다. 『공산당 선언』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에 관한 부분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기존의 신분 질서를 무너뜨리고 “거대한 생산력들을 창조”한 부르주아지의 놀라운 능력에 감탄하며 다음과 같이 경의를 표한다:

부르주아지는 지금까지 존경받았던, 사람들이 외경을 갖고서 바라보았던 모든 직업으로부터 그 신성한 후광을 벗겨 버렸다. 부르주아지는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를 자신들의 유급 임금 노동자로 바꾸어 버렸다. [...] 모든 신분적인 것, 모든 정체적인 것은 증발 되어 버리고, 모든 신성한 것은 모독당한다. [...] 부르주아지는 백 년도 채 못 되는 그들의 계급 지배 속에서 과거의 모든 세대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고 더 거대한 생산력들을 창조하였다. 자연력들의 정복, 기계, 공업과 농업에의 화학의 응용, 기선 항해, 철도, 전신, 전 대륙들의 개간, 하천의 운하화, 땅 밑에서 솟아난 듯한 전 주민들 - 이와 같은 생산력들이 사회적 노동의 태내에서 잠자고 있었다는 것을 과거의 어느 세기가 예감했을까

하지만 그 장의 마지막 문단에서 그들은 “부르주아지를 그 무의지적 무저항적 담지자로서 가지고 있는 바의 공업의 진보는 [...] 노동자들의 혁명적 단결”을 가능하게 하여, “대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부르주아지가 생산하며 생산물들을 전유하는 그 기초 자체가 부르주아지의 발 밑에서 무너”질 것이라고 역설한다. 즉, 부르주아지는 “자기 자신의 매장인”을 스스로의 손으로 만들고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바로 부르주아지의 “발 밑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지젝의 『시차적 관점』에서 나오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투쟁에서 프롤레타리아는 투쟁 자체를 대표한다(in the class struggle between bourgeoisie and proletariat, the proletariat stands for the struggle as such)” (지젝, 2009(2006): 89(42))는 문장은 바로 이러한 ‘부르주아의 내재적 분열’을 의미한다. 노동자 계급의 착취를 통해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부르주아의 시대”는 노동의 소외와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인 동시에 새로운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한편 토대와 상부구조,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모순에 관한 아래의 유명한 구절은 변증법의 운동 법칙을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사회적으로 생산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의지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일정한 필연적 관계들, 즉 자신들의 물질적 생산력들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조응하는 생산 관계들에 들어선다. 이러한 생산 관계들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적 구조, 즉 그 위에 법률적 및 정치적 상부 구조가 서며(arises on) 일정한 사회적 의식 형태들이 그에 조응하는 그러한 실재적 토대를 이룬다. 물질적 생활의 생산 방식이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 과정 일반을 조건 짓는다. 인간들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들은 그 발전의 특정 단계에서, 지금까지 그것들이 그 내부에서 운동해 왔던 기존의 생산 관계들 혹은 이 생산 관계들의 법률적 표현일 뿐인 소유 관계들과의 모순에 빠진다(come into conflict with). 이러한 관계들은 이러한 생산력들의 발전 형태로부터 그것들의 족쇄로 변전한다(turn into their fetters). 그때에 사회 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더불어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서서히 혹은 급속히 변혁된다. [...] 한 개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그 개인이 자신을 무엇이라고 여기는가에 따라 판단하지 않듯이, 그러한 변혁의 시기가 그 시기의 의식으로부터 판단될 수는 없으며 오히려 이러한 의식을 물질적 생활의 모순들로부터, 사회적 생산력들과 생산 관계들 사이의 현존하는 충돌(the existing conflict)로부터 설명해야만 한다. 한 사회 구성체는 그것이 충분히 포용하고 있는 생산력들 모두가 발전하기 전에는 결코 몰락하지 않으며, 더 발전한 새로운 생산 관계들은 자신의 물질적 존재 조건들이 낡은 사회 자체의 태내에서 부화되기(have matured in the womb of the old society itself) 전에는 결코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맑스, 1859)(*1).

즉, 현재의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물질적 생활의 모순들로부터”, 자본주의의 바깥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서서히 혹은 급속히 변혁”되는 것이다. 맑스와 엥겔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공산주의”를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state of affairs)”나 “현실이 이에 의거하여 배열되는 하나의 이상(ideal)”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real movement)”으로 정의하고 “이 운동의 조건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전제들로부터 생겨난다”(*2)고 강조한 것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이러한 맑스와 엥겔스의 변증법은 서로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요소들이 뒤섞여있는 도시 공간 연구에 기본적인 방법론을 제공해 왔다. 서로 다른 가치와 문화가 공존하는 ‘홍대 앞’이나 주류 질서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인디’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볼 때 더욱 잘 이해될 수 있다. 자본주의 도시 공간과 소비문화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들춰내어 비판하거나 주류와 인디의 관계를 교집합이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대립항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현존하는 충돌”로 바라볼 때 더욱 정치적·변혁적일 수 있다. 즉, ‘인디 공간’이란 자본주의적 도시 공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면서 그 “발 밑에서” 혹은 “태내에서 부화”하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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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사람들은 이 문장을 인용하며, 맑스주의를 토대 결정론 혹은 경제 결정론이라고 비판한다. 훗날 엥겔스는 이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문장을 추가해야 했다: “역사를 유물론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궁극적으로 역사를 결정하는 요소(the ultimately determining element)는 현실적 삶의 생산과 재생산이다. 맑스도 나도 이 이상의 것을 주장한 적은 없었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이것을 왜곡해서 경제적 요소만이 유일한 결정적 요소(the economic element is the only determining one)라고 말한다면, 그는 그 명제를 무의미하고 추상적이며 얼빠진 소리로 전락시키는 꼴이 될 것이다.” 엥겔스, (Letters) Engels to J. Bloch In Konigsberg, London, September 21, 1890

*2. “공산주의란 우리에게 있어 조성되어야 할 하나의 ‘상태’가 아니며, 현실이 이에 의거하여 배열되는 하나의 이상도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을 공산주의라 부른다. 이 운동의 조건들은 현재 존재하고 있는 전제들로부터 생겨난다.(Communism is for us not a state of affairs which is to be established, an ideal to which reality [will] have to adjust itself. We call communism the real movement which abolishes the present state of things. The conditions of this movement result from the premises now in existence.)” (맑스&엥겔스, 1988(1846))

*3. 이러한 관점에서 인디는 엘리어트의 자전거에 태워 먼 우주로 보내야 하는 ‘ET(Extra-Terrestrial)’가 아니라 케인의 가슴을 찢고 나오는 ‘에일리언’이라고 할 수 있다. 주류와 인디의 관계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본 논문의 3장을 참고하기 바란다.


(ㄱㅇㅂ, 2010)

공중캠프

2017.10.10 23: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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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매 양식 중) <자본론 150년, 러시아 혁명 100년, 노동자 대투쟁 30년>에 대해 한말씀 (이번 알콜토크에 참가한 이유와 기대하는 것, 함께 논의하고 싶은 주제 및 의견 등)]

"이번 알콜토크의 기획에 박수를 보냅니다~! 논의하고 싶은 주제를 강연을 들으면서 나누도록 하겠습니다~^___^"
(ㄱㄱ 님)

"어떤 이야기들이 나올지 궁금합니다."
(ㄱㅈㅇ 님)

"세번째 시간이 특히 재밌을 듯 한데요. 어찌 얘기가 될지 궁금합니다."
(ㅅㅈㅇ 님)

"김진숙님이 출연하신 영화 '위로공단' 잘 보았습니다. 여성으로서의 노동운동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ㅎㅅㅇ 님)

"러시아 혁명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과 서동진 선생님의 관점을 듣고 싶어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ㅁㅇㅈ 님)

"미친 라인업인 것 같습니다. 보수정권 10년이 지나고 김지도님이 노동운동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ㅅㅅㅇ 님)

"지긋지긋한 회사생활. 철저한 위계관계. 비합리적인 일들. 하지만 말 한마디 반항하지 못한다. 밥 그릇 사라질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는 나뿐만이 느끼는 게 아닐 것이다. 과연 자본론과 러시아 혁명이 오늘날 한국사회 우울한 직장인에게 어떤 메시지를 안겨줄지 기대하며 참석한다."
(ㅇㅂㄹ 님)

"자본론에 대한 이해를 넓힐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ㅎㅇㅈ 님)

"저기 댓글에 "[첨부 이미지 - "태내에서 부화하는 에일리언 레고" 참고글] (ㄱㅇㅂ, 2010)" 이 글은 어디에 실린 누구의 글인가여~ 전문 보고 싶네여"
(ㅁㄱ 님)

공중캠프

2017.10.10 23:18:22
*.1.197.192

[(예매 양식 중) 알콜토크에 대해 한말씀 Comment to Alcohol Talk (알콜토크 주제/형식 제안, 진행자/참가자/주최측에 전하고 싶은 말씀 등)]

"기획 좋다!"
(ㄱㅇㅊ 님)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ㄱㄱ 님)

"화이또!"
(ㅅㅈㅇ 님)

"흥미로운 주제들로 이뤄진 알콜 토크를 기획해주셔서 고맙습니다."
(ㅁㅇㅈ 님)

"강의가 아주 가볍지도 아주 무겁지도 않았으면."
(ㅇㅂㄹ 님)

"아직 참석을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이벤트 인 것 같습니다"
(ㅎㅇㅈ 님)

"잭다니엘 마시고 싶습니다."
(ㅁㄱ 님)

공중캠프

2017.10.17 00:48:09
*.1.197.192

▶ 알콜토크 vol.22.1 - 『자본론』 150년 참고 텍스트

<책>
마르크스의 『자본』 탄생의 역사 / 비탈리 비고츠키
자본론 이펙트 / 프랜시스 윈

<논문>
김수행의 『자본론』 번역: 의의와 개역 과정상의 특징 / 김공회
Das Kapital의 성격과 그 번역에 대한 몇 가지 이슈 / 김공회
한국에서 『자본론』의 수용과 번역 / 장시복

<영상>
BBC Genius Of The Modern World Episode 1:Marx
https://youtu.be/U_cU9MUhUWk
(올해 상반기에 방영된 BBC의 다큐멘터리. 영어자막 있음.)

(김공회)

공중캠프

2017.10.18 09:32:45
*.7.19.241

▶ 알콜토크 vol.22.2 - '러시아 혁명' 100년 참고 텍스트

[러시아혁명에 관해 공부하고 싶다면 읽어볼 책들]

- 박노자, 러시아 혁명사 강의, 나무연필, 2017.

이제 막 도착한 이 책은 러시아혁명을 한국현대사를 읽는 반면 거울로 삼는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서술을 시도한다. 구 소련에서 성장하고 시장경제로의 이행과 더불은 배반의 역사를 지켜보기도 했던 저자의 서술은 러시아혁명과 구 소련에 대한 오해에서 벗어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국가와 당을 통한 지배 등에 관한 저자의 강한 거부감은 거리를 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만 러시아혁명을 오늘의 시점에서 반복할 필요를 느끼는 이들에겐 지침이 되어줄 것이다.

- 존 리드, 세계를 뒤흔든 열흘, 서찬석 옮김, 책갈피, 2005.

아마 서구사회에서 러시아혁명의 현장을 가장 널리 알린 기념비적인 책이다. 이 책에서 러시아혁명의 실험이 무엇이었는지를 감격과 흥분에 찬 목소리를 통해 들어볼 수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혁명은 노동자와 농민들을 비롯한 근로대중들이 역사상 최초로 권력을 장악하고 평등한 사회경제질서를 만들어내려고 했던 실험이었다. 이 글은 그 역사적인 실험에 참여했던 이들의 열정을 마치 곁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전해준다.

- 빅토르 세르주, 러시아혁명의 진실, 황동하 옮김, 책갈피, 2011.

존 리드의 책과 더불어 러시아혁명의 현장의 열광 나아가 동요와 혼란을 전하는 글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에서 방랑 혁명가인 세르주는 러시아혁명이 성공하고 난 이후 1년의 시간을 섬세하게 기록하고 증언한다. 무엇보다 혁명을 지키고 확장하며 방어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딜레마를 헤아리는데, 그리고 노동자와 민중이 주인 되는 세계를 창설한 최초의 실험에서 어떤 난관들이 도사리고 있는지를 생각하는 데 유익하다.

- 레온 트로츠키, 러시아 혁명사, 볼셰비키그룹, 아고라, 2017.

레닌과 함께 러시아혁명을 이끌었던 지도자이며 또한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 의장이자 소비에트연방의 군사위원장이기도 했던 트로츠키야말로 러시아혁명에 관한 가장 중요한 증언자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트로츠키란 이름을 둘러싼 열광이나 거부감을 뒤로 하고 혁명을 직접 지휘하고 또 그것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결정적 판단과 선택을 감행했던 트로츠키의 회상을 읽는다면 러시아혁명의 진면목을 보다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 * *

그러나 러시아혁명에 관한 몇 권의 책으로는 러시아혁명 이후의 세기였던 20세기의 역사를 이해하기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러시아혁명이 유럽은 물론 먼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의 민중과 지식인들에게 미친 영향을 이해하거나 러시아혁명이 문화와 예술에 끼친 충격과 효과를 이해하자면 수천 권이 넘는 글들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러시아혁명은 유토피아적 기획을 현실에서 실행하고자 했던 전무후무한 실험이었다. 그것을 기억하지 않고 또 그로부터 배우지 않은 채 유토피아적인 기획을 실천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러시아혁명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한 목록을 만들어보기를 권한다.

노동자라면 금융화와 공황이니 4차산업혁명이니 하는 알쏭달쏭한 말들이 자본주의의 역사적인 위기와 관련이 있음을 생각하면서, 러시아혁명의 교훈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노동자와 민중이 자신들이 주인이 되는 세계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를 위한 전망을 찾고 나침반을 고르는데 러시아혁명은 최고의 학교가 될 것이다.

혹은 철학을 공부하는 이라면, 프랑스혁명이 없었다면 칸트와 헤겔의 위대한 철학이 불가능했던 것처럼 러시아혁명을 철학적인 사건으로서 바라보며 그것이 20세기의 철학에 어떤 위대한 철학적 전통을 만들어냈는지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가라면 다다나 초현실주의와 더불어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최전선에 있었던 러시아 혁명의 예술적 실천을 추적하면서 오늘날 급진적인 예술이 처한 문제들을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던 그것이 고독한 사색이어서는 곤란하다. 러시아혁명을 이끈 가장 큰 비결은 학습하고 선전하고 조직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공부하고 주변에 알리며 뜻을 같이하는 이들을 조직하는 일이다.

(서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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