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학구열


[밑줄] The Myth of Repressed Memory

조회 수 183 추천 수 0 2019.02.01 21:40:35
The Myth of Repressed Memory (1994)

/ Elizabeth Loftus



‘기억의 순응성(malleability)’, ‘오정보 효과(misinformation effect): 사후 정보에 의한 기억의 변형’, ‘잘못된 정보로 인한 기억의 왜곡’ (17)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이 분필과 지우개로 끊임없이 썼다 지웠다 하는 변화무쌍한 칠판이라는 점, 외부의 영향에 쉽게 좌우되는 우리 마음의 본질

“우리 마음이 맑은 물이 담긴 그릇이라고 합시다. 그리고 각각의 기억은 그 물에 뒤섞여 들어가는 한 스푼의 우유라고 보고요. 모든 성인의 마음속에는 이처럼 뿌연 수많은 기억들이 들어 있습니다. 어느 누가 거기서 물과 우유를 따로 구분해낼 수 있을까요?”

내가 이 비유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기억이 마치 코드화된 컴퓨터디스크나 서랍에 고이 모셔둔 빳빳한 서류철처럼 우리 뇌의 특정 부위에 존재한다는 흔한 해석을 뒤집는 비유이기 때문이다. ... 과학자들은 ‘영(spirit)'이나 ’영혼(soul)' 같은 말의 사용을 꺼리기는 하지만, 나는 기억이 물적인 실체보다는 영적인 실체에 더 가깝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기억은 바람이나 숨이나 증기처럼 존재하지만, 만지려 하면 흐릿하게 사라져버린다. (18)


심지어 존재한 적도 없는 인물이나 일어나지도 않은 사건을 믿게 만드는 식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거짓기억(false memory)’을 심는 일도 가능했다.

내 연구는 기억을 있는 그대로의 진실로 해석하는 비디오레코더 모델에서 사실과 허구가 창조적으로 뒤섞인 것으로 이해하는 재구성 모델로, 기억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일조해왔다. (20)


“과거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을지 몰라도 분명 그 운율은 반복된다.” (마크 트웨인) / “역사가 가르쳐주는 것은 인간이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헤겔)

억압(repression)이라고 하는 오늘날의 이 드라마는 바로 인간의 마음속, 다시 말해 현실이 본래 상징적인 곳, 이미지가 경험과 감정의 연금술에 의해 기억으로 변하는 곳, 그래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바로 그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24-25)


내가 연구실을 뛰쳐나와 현장 연구의 아수라장으로 기꺼이 뛰어든 것은 과학이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현상의 원인을 따지느라 머리를 싸매고, 거기에 뒤얽힌 우연과 의도를 꼼꼼하게 풀어나가는 데서부터 말이다. ... 나는 억압 현상이 우리 자신의 내면을 어렴풋이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그 거울을 편견 없이 보고자 한다면, 어딘가에 속하고 사랑받고 인정받고 이해받고 회복되고 싶어 하는 우리의 욕망에 관한 심오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74)


이야기적 진실(story-truth)과 실제로 일어난 진실(happening-truth), 우리는 어디까지가 실제로 일어난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이야기적 진실인지 헷갈리게 된다. (77-78)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은 변한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많은 변화와 왜곡이 생기게 마련이다. 새로운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에 관한 사실들이 우리 마음속에 뒤섞여 들어오면서, 원래의 기억은 서서히 변형을 일으킨다. (91-92)


프로이트가 불확정적인 은유(우리 마음의 닿기 힘든 비밀스런 부분에 어떤 감정과 경험들이 묻혀 있다는 시적인 관념)로서 제시한 개념이 문자 그대로 확정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포로이트는 억압을 알레고리로 사용했다. 즉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예를 들어 설명하기 위한 상상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의 은유적 표현을 혼동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현대인들은 무의식과 그 내용을 손에 쥘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떤 기억이 통째로 몇 년 동안 묻혀 있다가 낡고 상한 곳 하나 없이 본래 모습 그대로 발굴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00-101)


기억의 다른 조각들이 떠오르면 최초의 핵심적인 기억에 접목되면서 이미지, 감정, 경험, 믿음이 상호 연결된 복잡한 체계가 만들어졌다. 다만 나는 그 체계가 확실한 사실이 아닌 소망, 꿈, 공포, 욕망으로 이루어진 덧없는 조합일 수 있다고 믿는다. ... 즉 에일린의 이야기는 ‘그녀 자신’의 진실이지만, 결코 일어나지 않은 진실이다. (121-122)


낯선 환상, 기이한 환영, 비현실적인 환각이 반드시 계시적인 것은 아니다. ... 간단히 말해 환각은 인간 조건의 일부다. 꿈이란 잠든 사람이 겪는 환각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124-125)


그러나 이야기의 나머지 부분은 내 머릿속에서는 생생하다 해도 확인할 길이 없다. 내가 기념품 가게 바깥에서 에일린 프랭클린이 머그컵을 집어 들고 가격표를 확인하는 모습을 지켜봤던가? ... 이처럼 비교적 사소한 과거의 일을 떠올릴 때조차, 나는 어디까지가 실제로 일어난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이야기적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다. (135)


‘의원성 주입(iatrogenic implantation)’, ‘의원성’ 질환이란 의사(혹은 치료사)의 행위에 기인하는 질환을 말한다. 치료사의 태도, 기대, 행동은 끔찍한 학대에 대한 환자의 생생한 기억을 암시, 강화할 수 있다. 치료가 병을 만드는 것이다. (158)


그들의 기억은 거짓이었다. 그들의 표현대로 그들이 치료사로부터 ‘탈출’해 적절한 심리적 치료법을 찾아내자, 그 기억들은 진실의 거센 바람에 밀려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다. (359)


나는 마음속으로 몇 번씩 그 말을 되뇌어야 했다. 이건 기억에 관한 논쟁이지 이념 논쟁이 아니야. 기억, 기억, 기억에 관한 논쟁이라고. (365)


양측이 난타전을 벌이는 동안 장외에서 지켜보던 나는 한 가지 위안을 얻었다. 적어도 이제는 ‘지옥에서 온 사악한 소아성애 심리학자’가 두 명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378-379)


모든 것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바버라가 한 일이 뭔지는 알았다. 그녀는 내 기억을 훔쳐다가 핀으로 찌르고 피를 흘리게 만들었다. (387)


“경험이란 인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의미한다.” -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453)


“되살아난 과거란 환자로 하여금 과거, 현재, 미래의 ‘실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상징적으로 재현하게 함으로써 환자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 과거”이기 때문이다. ... “자극과 반응 사이, 사건과 행동 사이에 마음의 작용이 있다. 그것은 상징, 즉 ‘마음의 작용이라는 시’를 짓는 일이며, 이것이 바로 정신분석이 연구해야 할 대상이다.”

“심리치료는 학대와 피해라는 어휘를 버리지 않고도 당면한 사회 문제의 원인을 탐구하는 장이 될 수 있다. ...... 우리는 학대받는다는 느낌을 버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학대받는다는 느낌, 무기력하다는 느낌은 대단히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거에 의한 학대가 ‘직업’, ‘재정상태’, ‘정부’ - 내 삶에 함께하는 모든 것들 - 의 실제 상황에 의한 학대만큼 크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심리치료실은 혁명의 산실이 될 것이다. “지금 나는 진정 무엇으로부터 학대받고 있나?”와 같은 문제를 논의하게 될 테니 말이다. 심리치료에서 그런 논의를 한다면 멋진 시도일 것이다.” (458-459)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런 식으로 기억하는 것” (프로이트) (459)


“우리는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의 가장 강력한 원을 보고 신이라 이름 붙였다. 그러나 신은 우리가 원하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도 불릴 수 있었다. 심연, 수수께끼, 절대적 어둠, 절대적 밝음, 물질, 영혼, 궁극의 희망, 궁극의 절망, 침묵.” (니코스 카잔차키스)

우리가 우리의 운명에 대해 물을 때 -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할 때, 몸과 마음과 영혼의 상처를 치유하고자 몸부림칠 때, 신이나 인간 조건의 풀리지 않는 신비에 관해 물을 때 - 우리는 의미를 구하고, 통찰을 구하고, 절망의 깊이와 희망의 가능성을 가늠할 방법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설명과 대답은 우리가 탐색하려는 경험의 깊이를 축소시킨다.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460-461)


엘리자베스 로프터스에게 불의에 맞서는 일의 중요성을 가르쳐준 그녀의 가족(피시먼, 브레스킨 등)에게 감사와 애정을 전한다. 그녀가 엘리 위젤의 작품을 처음 읽게 된 것은 그녀의 가족 덕분이었다. 엘리 위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불의를 미리 막지 못하는 일은 생길 수 있어도, 불의에 맞서는 일은 절대로 실패하는 법이 없다.” (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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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있었고, 있으며, 있을 것이다! (we were, we are, we shall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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ㅊㅇ

2019.08.02 10:37:10
*.223.36.177

"나는 피해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정작 자신들이 저지른 가해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것이 정확히 어떤 메커니즘에 의한 것인지 한동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프로이트를 읽다가 거기에 대한 하나의 그럴듯한 설명을 발견하게 됐다.

프로이트는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에 나오는 리처드 3세(글록스터)의 독백을 인용하는데, 전부 여기 옮길 수는 없고 대략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못 생겼고, 여인을 따라 다닐 수 있는 한량이 아닌 바에야, 천하의 악당이 되어 그들의 사랑놀음에 저주를 퍼부으리라.' 정도이다.

여기에 대해 해석하면서, 프로이트는 이 독백이 공공연하게 드러난 내용 밑에 다음과 같은 어떤 비밀스런 논리를 숨기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균형잡힌 몸을 내게 주지 않음으로써 자연은 나에게 심각한 불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로 인해 인생은 나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했고, 나는 이 요구를 뿌리칠 수 없었다. 나에게는 예외일 권리가 있고 다른 사람들을 망설이게 하는 번민들을 과감히 넘어설 권리도 있다. 나 자신이 불의의 희생자이므로 불의를 저지르는 것도 내게는 허락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하게 되면, 그것으로부터 하나의 보상으로서 자신이 예외가 될 수 있는 특권을 도출해 내게 되며, 자신이 불의한 행동을 저질러도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를 여성의 경우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여인들은 전혀 아무런 잘못을 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어린 시절부터 피해를 보았고 초라한 짐짝처럼 별도의 취급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특권들을 주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이 저지르는 폭력은 괜찮다고 말할 때 이는 그들이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자신의 특권적이고 예외적인 지위를 끌어내는 데까지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프로이트에 따르면 결국 "손상된 나르시시즘과 자기애"가 역전된 결과이며, 본질적으로 나르시시즘적이다.

어제 이런 식의 주장을 하는 페친 하나를 정리했다. 자신이 이런 식의 논리에 따라 사고하고 계신다면, 알아서 빨리 나를 정리하길 바란다."

- ㅊㅇ(2019/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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